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그라시재라〉,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장편 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출간. 2011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 2022년 노작문학상 수상.
생명보다는 돈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의 사적 욕망들에 맞서 싸울 때 붙들었던 숲의 소리와, 참나무 충영들마저 함께 저항할 때 새어 나온 아름다운 언어가 한 권의 시집이 되었다.
머리띠를 두르며 깃발 아래 모였던 사람들이 무리 지어 나이를 먹자 한 무리는 골프장에 갔고 다른 무리는 정치하러 갔다. 누군가 산은 돈이라고 소리쳤다. 시인은 나무를 교살하지 말라고 나무라고, 도시로 흐르는 물을 위해 저항한다. 민주주의를 농약 치듯 악용하는 인간들에 맞서 숲을 지켜낸 시민들의 이야기를, 옥수수와 솔부엉이와 맹꽁이와 상수리나무와 힘없고 연약한 마을 사람들이 연대하는 이야기를, 그러면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잃어버린 우리말의 춤을 꺼내놓는다. 그 이야기가 산신령이 되고 무당이 되고 마법사가 되고 무당벌레가 되고 갈참나무가 되어 불복종한다. 낮의 스텝은 낮에 불복종하고, 밤의 스텝은 밤에 불복종한다.
1부에는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앉은 마음이 들어 있다. 독자들은 시인이 챙긴 씨앗 주머니를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해도 신이라는 하이네의 시구처럼 2부에 수록된 시편들은 뺨 맞고 무릎 꿇리고 죽임을 당한 신성한 불행이 담겼다.
3부에는 고통으로 충만한 시민불복종의 시편들이 수록되었다.
권력과 자본에 평화와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빚어낸 해원의 언어가 4부의 기념비를 만든다.
시인 조정의 이번 시집은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시인이 가담했던 종횡무진에 대한 기록이다. 반토막 난 국토 최남단 강정에서부터 더 올라갈 수 없는 경의선 끝자락까지 온몸으로 밀고 나간 서사다. 이것은 개인적 이익을 앞세운 단순한 물리력 충돌이 아니다. 절망적 현대와 궤멸적 미래 사이 이타적으로 살기 위한 끊임없는 실천과 투쟁이다. 이 싸움은 문명 대 반문명, 자본 대 반자본, 기득 대 기층이라는 극단적 대립에서도 벗어나 있다. 혹은 자연을 우위에 놓고 인간의 반성만을 요구하는 맥락 없는 선언적 생태 시들과 비교할 바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넘어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에 대한 촉구’이다. - 김명기 시인
사람의 생이 짧지 않다고는 하나 십 년은 긴 세월이다. 십 년을 하루처럼 지순하게, 십 년을 천 년처럼 모질게, 시인은 늘 그 산에 머물렀다. 산은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저 자연의 흐름대로 꽃피우고 벌레와 새들을 먹이며 무던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산을 대신해 산에 깃든 생명을 염려하고 산그늘에 사는 사람들을 살피느라 한겨울 텐트 한 장으로 바람을 막고 땅바닥에 누워 지샜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도와달라 청했다. 그러느라 시도 잊은 줄 알았는데 웬걸. 시인에게 시란 뼈와 내장의 움직임을 읊는 성대와 같은 것이라 이미 시인의 몸이 되어버린 산그늘, 목이 따인 아카시 나무, 불길에 먹힌 꽃들, 손을 타넘는 뱀이 술술 흘러 넘친다. 시의 그릇이 이토록 깊고 그윽한 것은 분노도 실망도 슬픔과 아픔도 삼키고 기어이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랑 때문이리라. 순하고 작고 어리고 말 못하는 생명들에 기어이 기우는 천성 때문이리라. 그래서 시인의 시는 그저 분노도 아니고 그저 슬픔도 아니며 아득히 먼 데까지 닿는 성찰이다. - 이용임 시인
목차
1부 나는 씨앗 주머니를 챙겨
환경영향평가서 | 36 춘분의 갈채 | 38 산황산 | 40 허물 | 42 정화 휴게소 | 44 여우와 당골 | 46 초록 여우 | 50 장항습지가 보낸 여름 편지 | 52 접속어와 손잡은 숲의 살리다 클럽 | 56 울게 하소서 | 58 밥 | 60 손을 찾습니다 | 62 아무렴 좀 염치 있게 망하기 | 64
망종 | 112 2021년 5월 21일 | 114 시민 7인 | 116 단식하는 겨울밤 | 120 8월의 탱고 | 122 시의회 앞에서 | 124 불법벌목 | 126 야만 | 128 리치랑 땅 보기 | 130 농원의 아침 | 132 단추 | 134 옥수수 연대 | 136 함구령 | 138 야간 탐조 | 140 설혜 | 142 입에 은제 나이프 물고 경의선 산책로를 걸어요 | 144
4부 조수림
서망항 | 152 소만 | 154 구의역 그 아이 | 158 우러라 우러라 새여 | 162 붉은 자궁 | 166 이덕구 산전 | 168 동거차도 | 170 돌을 위한 부탁 | 172 성산포 공항 | 174 강정 리포트 | 176 안드로메다로 가는 메텔에게 | 180 병수네 감자밭 | 182 구절초가 슬픔의 저고리를 입고 지켰다 | 184 목시물굴 수림씨에게 띄우는 편지 | 186
책 속으로
너도밤나무 충영들아 참나무 충영들아 죽은 소나무의 말굽버섯들아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 마른 가지마다 새의 혀처럼 켜지는 연둣빛 불꽃들아 오라 - 시편 〈춘분의 갈채〉 중에서
산길에 떨어진 골프공을 줍던 나도 놀라고 비탈을 흐르던 저도 놀라고 야생이 스쳐간 손에 뱀 비린내가 돋아 슬픔이 독처럼 몸에 퍼졌다 - 시편 〈허물〉 중에서
여기 왜 왔을까 별이 없고 오방이 없고 미움이 없고 시간이 없고 애틋하게 매듭진 기운이 흩어지고 회한 한 자락 문틈에 끼어있지 않은 허방에, 꿈에서는 만날 수 있는지 물을 수도 없는 빈 곳에 - 시편 〈여우와 당골〉 중에서
그래도 좀 염치 있게 망하자 사람 입자들아 - 시편 〈아무렴 좀 염치 있게 망하기〉 중에서
올봄은 무사할까 근심의 귓속말을 지나 하얗게 마른 이끼들과 잣나무 숲 비탈 올라 저 눈부신, 뜻밖의 환호까지 걸었다 - 시편 〈경칩〉 중에서
편히 앉아 놀기 좋은 터가 명당이다 새야, 사람에게 뺏기지 말고 네가 놀아라 - 시편 〈마차길〉 중에서
없는 사람 보러간 길 돌아 나오는 등이 서늘합니다 - 시편 〈서진주식당〉 중에서
낮의 스텝은 낮에 불복종했다 밤의 스텝은 밤에 불복종했다 - 시편 〈8월의 탱고〉 중에서
어린 자식 껴안고 뒹굴었던 어미들 비탄에 마음을 기울였네. 슬펐네. 해원상생굿이라니. 해원이라 하면 누가 풀어지는 것이며, 상생이라 하면 누가 살아난다는 말인지, 답이 짧은 질문을 혼자 되새겼네. - 시편 〈조수림〉 중에서
시인 조정의 이번 시집은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시인이 가담했던 종횡무진에 대한 기록이다. 반토막 난 국토 최남단 강정에서부터 더 올라갈 수 없는 경의선 끝자락까지 온몸으로 밀고 나간 서사다. 이것은 개인적 이익을 앞세운 단순한 물리력 충돌이 아니다. 절망적 현대와 궤멸적 미래 사이 이타적으로 살기 위한 끊임없는 실천과 투쟁이다. 이 싸움은 문명 대 반문명, 자본 대 반자본, 기득 대 기층이라는 극단적 대립에서도 벗어나 있다. 혹은 자연을 우위에 놓고 인간의 반성만을 요구하는 맥락 없는 선언적 생태 시들과 비교할 바도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넘어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에 대한 촉구’이다. - 김명기 시인
사람의 생이 짧지 않다고는 하나 십 년은 긴 세월이다. 십 년을 하루처럼 지순하게, 십 년을 천 년처럼 모질게, 시인은 늘 그 산에 머물렀다. 산은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저 자연의 흐름대로 꽃피우고 벌레와 새들을 먹이며 무던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산을 대신해 산에 깃든 생명을 염려하고 산그늘에 사는 사람들을 살피느라 한겨울 텐트 한 장으로 바람을 막고 땅바닥에 누워 지샜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도와달라 청했다. 그러느라 시도 잊은 줄 알았는데 웬걸. 시인에게 시란 뼈와 내장의 움직임을 읊는 성대와 같은 것이라 이미 시인의 몸이 되어버린 산그늘, 목이 따인 아카시 나무, 불길에 먹힌 꽃들, 손을 타넘는 뱀이 술술 흘러 넘친다. 시의 그릇이 이토록 깊고 그윽한 것은 분노도 실망도 슬픔과 아픔도 삼키고 기어이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랑 때문이리라. 순하고 작고 어리고 말 못하는 생명들에 기어이 기우는 천성 때문이리라. 그래서 시인의 시는 그저 분노도 아니고 그저 슬픔도 아니며 아득히 먼 데까지 닿는 성찰이다. - 이용임 시인
출판사 서평
〈활과 리라〉에서 옥타비오 파스는 이렇게 비평했다. 아무도 현대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의 지체가 절단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외과 수술 이전에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절름발이의 나라에서 두 발로 걷는 존재가 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몽상가이며 현실을 도피한 사람이다. 세계를 의식의 자료로 환원시키고 모든 것을 노동-상품 가치로 환원시킬 때, 시인과 시인의 작업은 현실로부터 자동적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시인의 사회적 실존이 상실되어 가고, 시인의 작품이 공적으로 유통되는 일이 점점 희박해지면서, 시인에게는 오히려 잃어버린 인간의 절반과 접촉하는 일이 증가한다. 현대 예술의 모든 과업은 그 잃어버린 절반과의 대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마법사의 제자들아 껍질을 깨고 나오라〉에 수록된 시편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스스로 상실해 버린 마법사의 기억을 체험한다. 한때 서로에게 놀라운 꿈을 말하면서 손을 내밀던 마법사의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가? 환상적인 것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환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