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3) - 꿈을 이루는 행복한 사람들
본 문 : 로마서12: 9-13
일 자 : 2024. 6. 23(주일 낮 예배 설교)
시편 1편을 보면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율법(말씀)을 즐거워하며 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아멘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씀 묵상을 잘 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염려나 근심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해도 잘 합니다.
그렇지만, 믿는 우리는 걱정 근심보다는 말씀 묵상을 더 많이 하고 더 잘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묵상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편 1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
글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 다 잘 되고,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무의 뿌리가 물과 연결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실 때는 먼저,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언제든지 은혜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합니다.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은 장자의 축복,
곧 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공급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자신의 욕구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축복을 팔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는 에서 대신 야곱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밀씀하신 비유에서 돌아온 탕자도 그랬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 생전에 자기 몫의 상속을 받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갑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그 재물을 다 허비하고 그야말로 알 거지가 되어 굶주리게 됩니다. 그 때 그가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도 아버지가 공급해 주는 양식으로 배불리 먹고 있는데,
나는 아버지 집을 떠나 이렇게 굶주리고 있구나 ! “ 하면서
그제서야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동안 아버지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산 모퉁이에서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달려 나갑니다.
안고 입 맞추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아버지의 은헤를 공급합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소를 잡아 잔치를 하면서 다시 사랑하는 아들로, 다시 아버지의 상속자로 받아 줍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우리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크신 은혜,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큰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은혜보다는 자신의 욕구만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상속을 받아 집 나갔다가 돌아온 못된 동생에게는 소를 잡아 주고,
열심히 일한 자기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 잡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그 불평을 들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빠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멘
여러분 !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풍성하십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그 어떤 기관, 단체, 모임과는 다릅니다.
그 출발부터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는 고백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교회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확고한 신앙
그 신앙고백 위에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지옥과 죽음의 권세도 교회인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아멘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 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오늘 말씀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11장까지는 구원받는 자에 대한 말씀이고,
12장에서 마지막 16장까지는 구원받은 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삶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9절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거짓이 없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까지 거짓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까지 악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는 정직해야 하고, 교회는 선에 속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가족은 거짓이 없는 사랑, 선에 속한 사랑으로 서로 우애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것입니다.
서로 먼저 존경하면, 서로가 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11절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아멘
사실 교회 공동체도 시간이 오래 흘러가면 처음의 열심과 열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연료탱크에 기름이 바닥나면 움직이던 차도 멈추어 서게 됩니다.
연료탱크에 기름이 채워져 있어야 그 기름이 엔진을 돌리고 엔진은 바퀴를 돌리고 차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동차가 목적지를 향하여 달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름이 충분하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 열정과 열심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자동차의 기름과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3무(無), 세 가지가 없습니다.
곧 의욕이 없고, 책임의식이 없고,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는 특별히 3유(有), 세 가지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고, 둘러 데는 핑계가 있고, 남에게 떠넘기는 남탓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의욕이 없고, 책임의식이 없고, 관심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게으른 사람입니다.
더욱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이유가 있고, 둘러대는 핑계가 있고, 남에게 떠 넘기는 남탓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분들도 게으른 사람입니다.
더욱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할 사람입니다.
자신이나 세상 것들에 대한 열심은 반드시 실망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내면 낼수록 소망이 생기고 더욱 힘이 솟아 납니다.
성경의 위인들은 그렇게 능력을 받았고 그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6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찾는다는 말은 열심을 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상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상은 돈이 주는 보상이나 감투가 주는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보상입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열심,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상이 있습니다.
세상 것을 찾는 열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세상 것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언제나 열심을 내십니다.
하나님의 이 열심을 이사야 37장 31-3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37:31-32)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아멘
또 고린도 후서 11장 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열심같이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 12-13)
열심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의 응답도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세월이 지나갈수록 나도 모르게 열심이 사라지고 변질되고 힘을 잃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내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다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통하여 내치리라
우리 주님은 열심내지 않는 신앙, 미지근한 신앙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아멘
끝으로 12-13절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 합니다.
하늘의 소망이 있으니 그 어떤 환난 중에도 참고 기도에 항상 힘을 씁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힘씁니다.
우리 모두 이런 열심있는 성도, 하늘의 상급이 풍성한 성도, 복된 성도/강한교회
꿈을 이루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