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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명을 받으라(고전 2장 1- 5)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2: 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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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당의 대기업인 통신회사 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1위는 ‘분당 아줌마’ 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 즉 자신들이 일할 때 운동하고, 수영하고 밥 먹고 수다를 떠는 분당 아줌마가 부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선교회 회원이나 셀 리더들을 보면 분당 아줌마이기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소위 사명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고 하는 말씀의 주제가 여기에 연관이 있습니다.
100년 전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던 때에는 가난의 문제와 경제적인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한 사명자들이 필요했습니다.
복음으로 이 시대를 계몽하고 이끌어 갈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나 100년 후 이 사회는 가난과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여유와 쾌락 가운데 사명을 잃고 있는 사람에게 살아야 될 이유, 삶의 목적, 사명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이 변화가 내적인 것에서,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만지심을 통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두 시간을 통해 우리가 가장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에 중에 하나는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는 이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1907년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까?
어떤 조용한 마을이 있었답니다.
그 마을에는 사찰이 하나 있어서 마을에 많은 종교적 영향을 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열심 있는 목사님이 그 곳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사찰의 정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교회에서는 전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하게 되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할렐루야!’ 라고 외치는 목사님의 영향으로 마을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할렐루야!’를 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찰에 있는 스님들이 염불을 외울 때 가만히 들어보면 ‘할렐루야!’를 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은 이대로 나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린 동자승 하나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자기가 그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 담판을 짓겠다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못 미더운 주지 스님이 동자승에게 묻습니다.
“정말,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니?” 그랬더니 동자승이 자신 있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주지 스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 교회의 영향력이 절에도 스며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내적인 변화에서
본문은 사도바울이 사명자로서의 자세, 어떤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를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복음은 아름다운 말, 인간의 지혜, 인간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며, 내 속에 있는 것이 간증으로 고백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할 때 자신의 과거를 감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사람인 것을, 스데반을 죽이던 자리에 자신도 동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간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내적인 변화에서부터 일어나는 일입니다.
1907년을 전후한 대 각성 운동은 바로 이런 내적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되어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으로, 그리고 1909년 일백만 구령운동으로 이어진 대 각성 운동의 특징이 있다면 내적인 변화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1903년 원산에서 하디목사가 수련회를 준비하다 내적으로 변화가 오게 되었습니다.
선교가 되지 않는 문제가 조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의 무지함 때문에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적으로 새로워지지 못했음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늘 문제의 근원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습니다.
1907년 <장대현 교회>에서 설교하던 길선주 장로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이 이상한 귀빈이라는 것입니다.
존귀하신 분이 비천하고 누추한 땅에 오셨으니 이상한 귀빈이고, 귀중한 몸인데도 오셔서 밖에서 오래 기다리시니 이상한 귀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애하신 귀빈을 환영치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고, 간절한 음성을 듣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며, 굳게 닫은 방문을 열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길 장로는 “문을 열라! 문을 열라! 문을 열고 환영하라!”고 준엄하게 외쳤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길 장로의 기도가 시작되자 감동을 받은 회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통회하며 자복했습니다.
장내는 금세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회중들은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고 은혜의 도가니에 묻혀 교회당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잡으러 왔던 순표가 회개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러 왔던 중이 개종하고, 신부가 은혜 받고 감격하여 염주를 길 장로에게 기념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개와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기도회 도중 시작된 길선주 장로의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 올시다. 친구 한 사람이 죽으면서 남은 재산을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중에 1백 원을 내가 수고비조로 인정하여 소유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속였고 그 친구와 그의 부인을 속인 도둑놈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그 돈을 돌려주겠습니다. 나 때문에 온 회중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올시다.”
그가 울면서 회개하기 시작하자 온 회중이 그때 모두 마룻바닥을 치며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내적인 변화는 한국 사회에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회개 운동의 특징은 보속운동으로 전개가 되었는데 단순한 심령의 회개가 아니라 죄의 대가를 지불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일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1907년 한국의 평양에서 놀라운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은 만주 봉천의 중국인 교회의 장로 두 사람이 부흥을 목격하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경회는 끝나고 조용한 상태였습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이들은 평양의 어느 시장에서 중국인 상인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정말로 기독교인들이 많은가요?”
“많습니다.”
“그 기독교인들이 선량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이 다시 묻습니다.
“당신들은 신자도 아닌데 이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자 중국인 상인이 대답을 합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한국 사람들은 외상을 갚을 줄 모릅니다. 나와 거래가 있는 한국 상인이 있는데 그 사람은 외상을 많이 가져가고도 갚지 않았습니다. 갚을 마음도, 갚을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곤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이 와서 외상값을 몽땅 갚았습니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전에는 갚지 않더니 이제 다 갚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에는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지금은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국인들은 돌아가서 복잡한 설교 대신 자신들이 들은 것을 그대로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역사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으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마음이 절절히 나타나는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내어 놓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아니 그의 삶에 목숨을 걸고 해야 할 가장 고귀한 가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을 산 그의 결정은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고백한 후 그의 마음에 결심이 섰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저는 '선교'와 부흥의 역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소원이다!”
“사명이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소원으로 세상을 보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선교입니다.
우리가 흔히 선교지에서 만나는 사람, 원주민, 그들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그들의 삶의 양식 속에 우리가 들어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상상할 수 없는 냄새, 비위생적인 일들.
제가 케냐의 마사이 족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선교하는 안찬호 선교사님이 저에게 제안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곳에 오면 꼭 거쳐 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합니다.”
저는 선교학을 공부하고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호기심도 있었고, 목사로서 그 정도도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흔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집을 찾아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몇 아이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경고가 있다면 함부로 밖에 나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이에나나 짐승들에게 해를 당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메케한 냄새뿐이었습니다.
소똥으로 지은 집으로 그 안에는 소똥을 태워 온기를 느끼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아무것도 깔 것이나 덮을 것도 없으니 나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는데 잠이 들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스물 스물 몸에 기어 다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선교사님의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잠이 들었고, 날이 훤히 밝아 일어나 제 몸을 보았을 때는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가려워 짓눌렀던 곳마다 빈대와 벌레들이 터져서 죽어 있었고 결국은 제 피로 하얀 셔츠가 붉게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여 1주일 동안이나 온몸이 가려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구한말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하며, 평생을 함께한 미국과 호주 캐나다의 선교사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 조선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온갖 멸시를 받으며, 조롱을 받으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그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조그만 모욕도, 불이익도 참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매를 맞고, 배척을 당하며, 그가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과 학벌을 배설물로 여기며 목숨을 내 놓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불러 주셨던 것처럼,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그 누군가를 위해 하나님께서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것처럼, 이 땅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지난주간은 우리교회에서 제주도에 트레스 디아스 영성훈련을 시작한 역사적인 주간입니다.
1907년 부흥운동으로 사명을 받은 이기풍 목사님이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것이 1908년이고 제주도는 이제 선교 백주년을 앞두고 부흥의 물고를 트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기풍 목사님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이기풍 수양관’에서 트레스 디아스를 연 것입니다.
그런데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약 85명의 사람들이 모든 짐을 싣고 비행기를 탔고, 선발대는 차에도 짐을 싣고 배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이 소위 제주도에서는 ‘신구간’이라 불리는데 도민의 90% 정도가 이 기간에 이사를 한다고 합니다.
이 기간 중에 제주도에 있는 모든 신들이 한라산에 모여 회의를 하는데, 그 기간 중에 신들이 모르게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곳은 아직 미신이 많은 곳이고, 대한민국이지만 선교지로 보아야 할 곳입니다.
얼마나 준비과정이 힘들었는지 한번만 하고 말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성훈련을 진행하는 도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인도하면서 목이 다 상할 정도로 가장 어렵게 인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구렁이가 감고 있는 환상, 구렁이가 떠나가는 환상을 보고, 그곳에 참석했던 목사님들 여러 분이 함께 연합하겠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교회를 한번도 가보지 않은 춘천에서 온 연구원 7명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힘이 든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그곳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하였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야겠구나!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하나님의 소원을 향한 마음이고, 1907년 부흥운동을 넘어서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과 동일한 마음을 품었던 우리나라 최소의 선교사 중의 한 분인 언더우드 목사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뵈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 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님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아직은 아니지만 그곳에 서 있는 곳이 미지의 땅이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 때문에 두렵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이 땅의 황무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부흥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데 있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선교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내가 하는 것 같아도 그곳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인도하심 만을 믿을 때, 우리는 가장 강력한 사명자가 됩니다.
제가 은혜를 받고 가장 감사 했던 것은 나의 삶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과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시편 121편 1-2절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산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그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능력 있는 순간은 언제이며, 무엇을 할 때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가장 힘 있고 권위 있는 사람의 명령을 대신하여 행할 때입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예화입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명령을 따라 떠든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적는 그 직책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습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여동생이 1학년 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번 완장을 차고, 여동생 반에 들어가 큰 소리쳤던 그 유치한 자랑스러움이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윤흥길씨가 쓴 [완장]이라는 소설을 기억하십니까?
별 볼일 없던 사람에게 빨간 완장을 씌워 주었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 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난여름 교회학교 수련회에서 가장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 누구냐면,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1학년 도우미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보조교사’라는 명칭을 주었더니 얼마나 열심히 심부름을 하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을 대신하여 얼마나 아이들을 잘 다루는지 모릅니다.
'delegation' 누군가의 능력을 대신하는 일은 굉장한 권위가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삶과 우리교회의 사역의 가장 큰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라는 말이 굉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능력 있게 하는 것은 지혜와 수단과 방법,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임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성령이 불타는 교회’ 라는 찬양을 아십니까?
성령이 불타는 교회.
성령님이 임하시면 능력이 나타나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게 되죠.
참 선한 것이 선한 것이 여기 일어나네
어두움을 물리치는 빛이 있네
능력 힘입어 난 두렵지 않네
참 선한 것이 선한 것이 여기 일어나네
성령의 불타는 교회 성령의 불꽃 임하네
온 마음 다하여서 주 이름 높이세
우리의 마음 불타네 그 빛을 전하기 위해
사랑의 불꽃 전하세
주를 위한 성령의 불타는 교회
[출처] CCM 성령이 불타는 교회 가사 PPT (검정 배경)|작성자 미라클싼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어떤 교회가 되는지 알게 해 줍니다.
이제는 1907년을 전후하여 영적 대각성 운동으로 말미암아 나타났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담대함과 능력 있는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라를 위한 기도
당시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나라를 위한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항일 운동을 주도하는 흐름은 전통적인 의병들의 무장투쟁과 계몽운동, 민족 지사들의 자결 등의 민족 운동이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나라를 위한 일을 함께 했으나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운동을 전개 했습니다.
당시 이화학당의 폐인(J. O. Paine)교장의 보고에 의하면 학생들이 구국 기도회를 개최했다고 나옵니다.
매일 정오 이화학당 언문 교사 조신성이 인도하는 구국 기도회는 한 학기 내내 계속 되었고, 겨울 방학이 되어서도 고향에 돌아간 학생들이 같은 시간에 맞추어 기도하였는데,믿지 아니하는 부모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기독교가 ‘나라 사랑하는 종교’인 것을 깨달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야 말로 닫힌 민중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1905년 <을사 5조약>이 체결되자 전덕기 목사님이 시무하던 <상동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한 <엡윗청년회>가 구국 기도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수천 명이 모여 기도하던 열기가 대단하였으며 매일 오후 2-4가 되면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했는데, 당시 <매일신보>에 실린 공동 기도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침륜에 들었으매 하나님밖에 빌 대 없사와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사 야리미아와 이새아의 자기 나라를 위하여 간구함을 들으심같이 한국을 구원하사 전국 인민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다 천국 백성이 되어 나라이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를 받아 지구상에 독립국이 확실케 하여 주심을 야소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이들은 기도를 마치고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 유명한 ‘도끼 상소’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저희 요청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이것으로 저희 목을 치소서” 하는 전통적인 상소 습관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한국 교회에 주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 크리스천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대를 위한 우리의 분명한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념대결이나, 정치적인 행동, 파괴적인 모습보다 기도하는 모습이 앞서야 합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신앙의 고백이고 목회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물론 때가 되어 우리 교회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정의와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나 선거에 관련하여 교회를 방문하거나 등록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소개하거나 내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개인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 가지 정치적 견해를 다르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의 능력을 앞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이념을 추종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앞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의 사명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명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준 열사는 바로 상동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모임에서 <헤이그>로 파송한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잘못 알려진 것이 있는데 그가 억울해서 회의장에서 자결했다는 것은 오보입니다.
제가 헤이그에서 듣고 확인하고 당시의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를 회담장에 못 들어가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결한 것이 아니라 병사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신문들이 한국에 관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07년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고종의 퇴위가 있었던 비극적인 해요, 군대마저 해산 되어 버린 희망을 상실한 해였습니다.
바로 이때 새로운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 이 나라의 문제를 외적인 것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회개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피의 세례가 이어졌습니다.
같은 해 강화의 아브라함이라 불리던 김동수 권사 형제가 일본군에게 살해를 당하고, 사흘 후에는 경기도 이천에서 당시 구역 전도사로서 지역의 지도자인 구연영 전도사와 그 아들 구정서를 시장 한 가운데서 살해하였습니다.
이들이 칼과 총을 들고 나가 싸우지는 않았지만 기도하며 민족을 계몽시키는 것을 일본군들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 땅 끝 선교
1907년을 전후한 격동기의 부흥운동은 여기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교의 지평을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1910년대에 대표적인 부흥사이자 설교가로 이름을 날린 손정도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평남 강서 출신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평양으로 올라가던 중 복음을 듣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상투를 자르고 집안의 사당을 훼파하였습니다. 그 일로 집안에서 쫓겨난 그는 숭실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1907년 평양에서 종교적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날 새벽 기도하던 중 사도행전 1장을 읽다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라는 질문을 “대한민국의 국권을 회복할 때가 이때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접하게 된 그는 “다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결론내립니다.
그래서 그는 늘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나라가 독립한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의 선교사로 베이징과 하얼빈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1919년에는 해외 망명길에 올라 상하이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여 초대 의정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합니다.
그는 복음 전도와 민족운동의 두 가지 축을 가지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사명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감리교 의료 선교사였던 스크랜톤에 대한 일화는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이 안전한 지대였던 정동을 떠나 상민들과 상인들이 있는 상동으로 병원을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역을 이어 받은 전덕기 목사는 남대문을 떠나지 아니하고 조선의 민중들을 위해 목회를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민중 선교를 위한 감리교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전덕기 목사는 후배들에게 늘 ‘상비하고 있어야할 세 가지 품목’을 이야기 했답니다.
‘나막신과 마른 쑥, 의지(약식 관)’이었는데, 이는 연고자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를 때, 부패한 시체에서 흘러나온 체액 때문에 나막신을 신고 방 안으로 들어가 마른 쑥으로 코를 막고 악취를 참아 가며 의지에 시체를 담아 장례를 치렀던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02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이민은 교회를 통하여 사람들이 모집 되었는데, 12월 22일 첫 이민단이 미국 상선 겔릭 호를 타고 인천을 출발하여 101명이 도착을 합니다.
이 숫자는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 호>를 타로 신대륙 아메리카를 향했던 영국 청교도 개척단의 숫자와 동일한 우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새 땅에서 새 일을 시작하기 전 처음으로 한 일은 기도실을 꾸미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주일은 유일하게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장소였으며 1903년에는 하와이 선교를 목적으로 홍승하 전도사를 한국에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세계에 흩어진 한국 사람이 가는 곳이면 늘 교회를 세우는 새로운 풍습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식당을 만들고, 일본사람은 세 사람만 모여도 기업을 시작하면 한국 사람은 교회를 세운다고 말입니다.
1910-20년 사시에 20만이었던 교세는 일제의 탄압이 강화된 1930년대에 50만을 넘어 서고 해방과 전쟁으로 혼돈의 시대인 1950년대에는 1백만 수준으로 뛰어 오르더니, 1870년대에는 5백만 수준을 거처,
격동의 80년대를 지나며 1천만을 넘어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격동기마다 교회는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새로운 부흥을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에 우리 교회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이고, 이 시대에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십자가의 삶을 살고,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명자들이 우리 가운데 나온다면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한국교회를 다시 한 번 들어 쓰시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와 열방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사명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불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를 회복하시고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꿈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명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서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며 앞으로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 가는 탁월한 지도자들이 나오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강남금식 기도원에 있으면서 한 목사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은 소위 미국에서 이민 목회에 성공한 분입니다.
이 목사님에게 20여 년 동안 사귀어온 아주 친한 친구 목사님이 있었답니다.
자신은 처음 개척부터 고생을 하며 목회를 한 반면, 친구 목사님은 소위 공부를 잘하는 엘리트로 승승장구하며 군목생활을 한 목사님으로 영어도 잘하고 유학도 한 목사님이었답니다.
이 목사님이 전역을 하고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한번은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내가 당신보다 못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도대체 목회가 되지 않는다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는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래서 이 목사님이 시작한 목회가 소위 'Service Ministry'였답니다.
미국 이민 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특히 교통수단이 없는 노인들에게 차량을 봉사하며 교회를 인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노인들이 교회만 오면 졸기 시작하고, 끝나면 자신들끼리 2부 순서로 가는 곳이 있어 따라 가보았더니 단체로 점을 보더랍니다.
그래서 점을 치는 여자를 찾아가 만나게 되었답니다.
왜 사람들이 오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 여자와 단 둘이 마주 앉자마자 떨기 시작하더니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당신, 목사지?” 깜짝 놀랐답니다. 점쟁이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은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점쟁이에게 은혜를 받은 목사님이 깨닫게 된 것이 있었는데 “아하, 내 속에서도 성령님이 역사를 하시는구나. 내가 깨닫지 못하고 성령님의 은사를 활용하지 못해서 그렇지 내 속에는 이미 성령님이 계셨구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강력하게 성령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민족과 이 사회를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믿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가 성령님의 역사를 부인하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놀라운 부흥의 부작용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사칭하는 많은 이단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단들이 무서워서 마치 더러운 아이를 씻기고는 그 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게 되었다고,
잘못된 성령의 역사를 무서워하다가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도 버리고 부인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과 순종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 속에서 일하실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교회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살아나야 합니다.
1907년 부흥운동을 넘어서는 것은 또 다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가장 무기력한 것 같으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일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리모델링을 하고 많은 준비를 하지만, 이 중심에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능력도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문화 센터를 준비하면서도 이것이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그곳을 통하여 교회에 들어오게 될 영혼들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할 때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저는 늘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에 앉을 영혼들을 위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저의 설교를 통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저를 사용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저를 사용하지 않으실 때 저는 가장 무기력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교회를 사용하지 않으실 때 우리교회는 가장 무기력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민족은 가장 나약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가 그 시대에 경제가 가장 번성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면 이 민족이 아름답게 사용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