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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제 목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분쟁[2]
한 가족이 자기들이 살아 보고 싶은 집을 도미노를 가지고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온 가족은 도미노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놓아가며 마음이 설렜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지붕을 만들고, 딸은 노란 벽을, 아들은 마당에 잔디와 그네를 만들면서 도미노로 만들어질 집을 상상하며 기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도미노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면서 작품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이제 거의 집이 완성되어 가고 있을 때 방에서 잠이 깬 늦둥이가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도미노가 넘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집을 보고 가족이 함께 느끼는 기쁨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가족 모두 도미노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기가 방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기의 눈에는 그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엄마, 아빠, 형이 보일 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아기는 엄마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도미노 한 개를 건드렸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열심히 만든 도미노가 모두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집이 채 완성되지 못하고 끝이 났지만 가족들은 아기의 귀여운 행동 때문에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지금 가족과 아기가 만들어내는 이런 상황은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이 교회를 세워가고 있을 때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그르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물론 도미노는 재미로 하기 때문에 무너져도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인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번 무너진 도미노는 다시 세울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과 구원의 역사는 한번 무너지게 되면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흔들리면 구원받을 영혼들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멀리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영혼들은 지옥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장하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나온 아기에게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도미노는 또 다시 쌓으면 되니까 크게 책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은 한번 잘못하면 성령을 방해하는 죄가 되기 때문에 일을 할 때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진 달란트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야만 여러가지 색으로 지은 도미노 집처럼 아름다운 구원의 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림 전체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빨간색을 더 많이 사용하겠다고 무조건 고집을 피운다면 교회는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자기의 의견만 주장하면 그 사람 때문에 교회 일을 망칠 수도 있고, 교회가 분열되어 교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는 사역을 한 사람의 잘못 된 판단으로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개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일은 본인의 생각과 다를 수 있으므로 교회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희생이 없으면 교회는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을 가릴 수도 있고, 영혼구원을 방해 할 수도 있으므로 성도들은 모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개인의 결정과 판단이 전혀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어떻게 하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내하고 희생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이 평생 노력하여 쌓은 놓은 것을 자녀나 나쁜 습관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믿음으로 인해 한 순간 무너진 적은 없습니까?
도미노를 건드린 아기처럼 여러분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노력한 인생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가족이 하루 종일 노력한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허무한 마음입니다.
한번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여러분은 방심하지 말고 늘 영적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 사도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아야만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누시기 위해서 만드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성도는 모두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한 지체가 된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관계입니다.
성도가 모두 같은 말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질 때 분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성도를 위해 사단의 영과 악한 자를 대적하고 계신 성령의 은혜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교회에 다니고 있을지라도 사람의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는 말은 모두 분쟁을 일으키며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이렇게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도간의 견해가 심각한 차이를 보이게 되면 교회는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은 교인들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보다는 자기의 말만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빨리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으로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보게 되면 불평이 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자기의 의견만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에는 인간의 고집과 의견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고집과 의견은 하나님앞에 죄만 쌓을 뿐입니다.
전체를 보는 사람은 절대로 내 고집을 피우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수렴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옳은 의견을 들었을 때 자기의 의견을 빨리 버릴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며, 지혜로운 사람에게 일을 맡기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주님의 미련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아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만이 성도가 같은 말을 하게 하고, 분쟁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게 하여 영혼 구원을 위한 교회로 든든히 세울 것입니다.
12절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지금 바울과 아볼로, 그리고 베드로와 그리스도를 각각 자기의 지도자로 삼아 당을 짓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는 목회자들을 같은 반열에 세워놓고 성도들이 분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목회자를 예수님과 같은 반열에 세워놓고 사람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어이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목사인 아볼로는 사도행전 18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으며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주의 도를 배우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진리의 말씀을 사도바울처럼 회당에서 담대히 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회당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를 브리스길라가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후 아볼로가 부임하자 고린도교인들은 그의 뛰어난 언변에 사로잡혀 몸이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은 사도바울보다 그를 존경하고 높였습니다.
물론 교인중에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바울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목회자를 외모나 언변이나 학벌에 따라 차등을 두는 성도들은 결국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도미노를 무너뜨리던 아기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거짓교인들이 하는 말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10장 10-11절에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거짓교인들이 하는 말은 바울은 편지에는 매우 강한 어조로 준엄하게 쓰는 것 같지만 막상 만나 보면 병이 들어서 외모도 좋지 않고, 언변도 좋은 편이 아니라고 사도바울을 비난하며 악선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울은 너희들이 내가 몸이 너무 약하고 언변도 좋지 않아서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편지로 말하는 것이나 너희들과 함께 있으면서 삶으로 믿음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 늘 동일했다고 편지에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진리를 전해주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는데 진리의 말씀은 붙들지 않고 도리어 자기의 외모를 조롱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면서 맘이 아팠습니다.
순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이들을 보고 있는 바울의 마음은 많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를 안고 복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변이 좋은 아볼로를 만나자 바울의 외모와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전하는 자의 외모나 학벌 그리고 언변과 전혀 상관 없기 때문에 진리보다 사람을 보는 것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자신을 조롱하고 있지만 바울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명을 감당한 사람이므로 올바른 신앙과 참다운 진리를 다시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강한 자를 심판하는 도구로 쓰임 받으시고, 있는 자를 폐하실 때 필요한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누구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세상의 소유와 상관없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도바울은 전에 고린도교회로 부임하지 않겠다는 아볼로를 설득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성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아볼로를 설득까지 해 가며 보냈는데 그들은 바울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을 버린 그들을 향해 바울은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리에 사람이 세울 수 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보와 가이오외에는 아무도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세례는 목사가 주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기 때문에 세례를 주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고 책망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버리고 사람을 따르는 교인들의 신앙이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현대교회에서도 고린도교회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의 학벌과 성도들의 수와 건물의 크기를 자기의 믿음으로 삼아 소형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를 무시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성도의 수가 적은 교회는 그리스도가 없는 것처럼 함부로 대하고, 대형교회교인이 목회자를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고가 팽배하자 목사와 교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것 보다 교회건축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교회건물과 성도의 수는 복음을 더 많이 전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본인이 믿음이 없다면 교회건물이 크면 무엇 할 것이며, 같은 교회 다니는 성도의 수가 많다 해도 내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성도들은 믿음 외에 외부적인 요소를 내 믿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들이 목회자를 청빙할 때 그 목회자가 정말 말씀대로 살았는지, 사역했던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관계가 어떤지, 지금까지 설교한 말씀이 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이처럼 중요한 것은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목회자의 학벌과 외모가 전혀 상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는 외모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또 개중에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간의 다툼으로 인해 성도들이 각각 사람을 선택하여 분열하고 있으므로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욕심으로 대적하는 교회들의 분란으로 인해 진리로 세워진 교회까지 전도가 막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떠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당을 짓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자들이 믿음이 충만하지 않을 때 다른 성도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직분자들의 타락은 말씀을 가르치지 않은 목회자들의 책임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책임을 교회와 목회자와 직분자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가 내가 섬기는 지도자가 더 능력자라며 서로 편을 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어린아이와 같은지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누가 그리스도를 더 정직하게 전하고 있는지 영적으로 분별하여, 그 목회자를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와 성도를 높이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누구보다 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한번도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고, 성령께서 로마로 가라고 하셨을 때 죽을 줄 알면서도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로마로 간 사람입니다.
이런 바울이 그리스도보다 자신을 높인다고 해서 좋아 하겠습니까?
그리고 아볼로는 아굴라의 아내인 브리스길라에게 성경을 배울 정도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진리를 가르쳐준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말씀을 배웠던 겸손한 사람이 자신을 높여준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함께 십자가를 지지는 못했지만 그 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거듭났으며, 인생 마지막 순간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이방교인들이 다른 목회자와 그리스도보다 더 높여 주었다고 해서 절대로 감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성도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들과 같은 반열에 둔다는 것은 창조주께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과 베드로와 아볼로는 자기들이 그리스도와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는 자체가 큰 충격이었을 것이며, 성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죄책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목회자는 주의 종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는 목회자는 주의 종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보다 세상의 복을 강조하는 목회자는 주의 종이 아닙니다.
진리와 비진리의 영분별을 하지 못하는 목회자는 주의 종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이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만 거짓복음, 거짓목회자들에게 속지 않을 것이며, 고린도교회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세상 것은 복처럼 보이지만 결국 썩어질 것이므로 버리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과 십자가의 길만이 썩어지지 않는 영원한 축복이라고 선포한 목회자들이 그리스도보다 높아지려고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교인들은 믿음의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교회에서 당을 짓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내신 것은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므로 아무런 사심이 없다고 편지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외에 다른 것을 전하지 않은 이유는 구원은 말의 지혜로 받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외적인 조건은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한형섭목사를 미국에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제가 한목사를 미국에 보낸 이유는 세상의 조건인 학벌이 필요 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이유로든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보다 목회자의 학벌과 교회의 규모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인간의 마음이 진리를 막지 못하도록 노력한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복음보다 세상적인 조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는 생명을 바쳐서 자기에게 복음을 전해준 바울의 말이 어눌하다고 조롱하고, 몸에 병이 있다고 비웃으며 아볼로와 베드로를 높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신앙을 어떻게 보실까 두렵습니다.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는 죄사함을 위해서 십자가를 진 사람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신 분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목회자와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판단할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그 무엇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진리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면 천사까지 판단하는 권세를 갖게 되는데 그렇게 귀한 성도들이 유한한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해서 산다면 스스로 영생을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주와 하나가 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권세를 받을 것이며, 세상에서 높임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15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이 말씀은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곧 예수님을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사랑을 받던 사람이 선악과 때문에 사단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십자가의 구속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참된 목회자들을 조롱하며 당을 짓고 분열을 조장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거짓교사들이 거짓복음을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목숨을 걸고 진리를 전해준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를 그리스도보다 높여서 당을 짓는 교인들을 용서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희생위에 세워진 교회를 썩을 것으로 채우는 교인들을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며,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진리를 몰라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는 영원한 축복을 스스로 반납하는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교인들이지만 끝까지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도록 돕는 바울의 편지를 보며 우리도 끝까지 복음안에서 중보 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진리의 말씀안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013,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