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의 경작 (56)
부처님과 제자들에 대한 비난과 도전은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긴 외도 수행자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신들을 섬기고 제사 지내는 의례, 계급과 종족에 대한 뿌리 깊은 관념 등 바라문들의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부처님에게 대부분의 바라문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들은 부처님의 사상을 문제 삼아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세속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한 사문들의 삶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부처님은 끊임없는 도전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깨달음을 이루신 후 11년,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남쪽,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닥키나기리(Dakkhinagiri)지역의 에까날라(Ekanala)에 머무실 때였다. 까씨바라드와자가 오백 개의 쟁기를 멍에에 묶고 있었다. 바라드와자족 바라문인 그는 직접 농사를 짓고 있었다. 새벽부터 마을 사람과 하인들을 다그친 덕에 동녘이 훤히 밝을 때쯤에는 준비가 끝났다.
간단히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한 후, 까씨바라드와자는 사람과 황소들을 독려하며 먼지가 풀풀 날리는 넓은 들판에 쟁기질을 하고 씨를 뿌렸다.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생업을 경영해 가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노동은 그에게 더없는 기쁨이자 보람이었다. 뽀얗게 뒤집어쓴 먼지를 땀으로 씻으며 그는 하늘에 기도하였다.
“저희는 이렇게 열심히 일합니다. 하늘이여, 저희를 축복하소서.”
해가 한 뼘이나 솟고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파종하는 날인 만큼 우유로 끓인 죽을 비롯한 맛있는 음식이 풍족하게 준비되었다. 음식 주위로 늘어선 마을 사람들에게 까씨바라드와자는 자랑스럽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마침 걸식을 나서다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을 본 부처님이 가까이 다가와 한쪽에 섰다. 까마득히 늘어섰던 행렬의 끝이 보이고 준비한 음식도
바닥을 보일 쯤이었다. 음식을 나눠주던 바라문이 탁발하려고 기다리던 부처님을 보았다.
못마땅했다. 그의 눈에는 한낱 게으름뱅이에 불과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부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그대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십시오.”
까씨바라드와자의 말투에는 거드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저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바라문이 그릇을 내려 놓으며 웃었다.
“난 그대 고따마의 멍에도, 쟁기도, 쟁기날도, 몰이막대도, 황소도 보지 못했소. 그런데도 그대는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라고 말한단 말이오?”
바라문은 제법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그대가 밭을 가는 이라 주장하지만
그대의 밭갈이 나는 보지 못했네
발 가는 이라면 물을 테니 대답해 보시오.
그대가 경작한다는 걸 우리가 어찌 알겠소.
부처님도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믿음은 씨앗, 감관을 지키는 단비
지혜는 나의 멍에와 쟁기
부끄러움은 쟁기자루, 삼매는 끝
정념(正念)은 나의 쟁기날과 몰이막대
몸가짐을 삼가고 말을 삼가고
알맞은 양으로 음식을 절제하며
진실함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낫을 삼고
온화함으로 멍에를 내려놓습니다.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끄는 정진
그것이 내게는 짐을 싣는 황소
슬픔이 없는 열반에 도달하고
가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밭을 갈아
불사의 열매를 거두고
이와 같이 밭을 갈아
모든 고통에서 해탈합니다.
먼지를 잠재우는 이슬비처럼 노래는 가슴에 스며들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게으르고 볼품없는 사문으로만 알았는데 운율이 갖춰진 그의 게송은 너무도 감미로웠다.
이런 지혜와 재능이라면 굳이 쟁기를 잡지 않더라도 한 그릇의 공양을 받기에 충분햇다. 까씨바라드와자는 청동 그릇에 우유죽을 듬뿍 담아 내밀었다.
“ 자, 우유죽을 받으십시오. 맞습니다. 당신도 밭을 가는 사람입니다. 당신 말대로 불사의 과보를 가져다주는 밭을 가는 사람입니다.”
바라문의 호의에도 부처님은 음식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게송을 읊고 음식을 얻는 사람 아닙니다.
그건 지견(知見)을 갖춘 이가 하지 못할 짓
깨달은 이 가르침의 대가 바라지 않나니
그저 진실에 머물며 법을 실천할 따름
사랑스럽고 안까깝고 불쌍한 이들
바라문이여, 그들에게 음식을 베푸소서
모든 번뇌 잠재운 고요한 성자
바라문이여, 그 밭에 씨를 뿌리소서
호의를 거절당하자 바라문은 꽤나 심기가 불편했다.
“그럼, 이 우유죽은 어떡하란 말이오?”
부처님은 시선을 바로 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 바라문이여,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바라문과 사문의 후예들 그리고 왕과 백성들의 세계에서 그 우유죽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바라문이여, 이 우유죽은 벌레가 살지 않는 물에 버리십시오.”
그런 음식을 먹을 사람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는 건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잡숫기 싫다면야...”
바라문은 보란 듯이 우유죽을 근처 도랑에 부어 버렸다. 그때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유죽은 물에 버려지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끓어 올랐다. 마치 뜨겁게 달궈진 호미를 물에 던졌을 때 쉭쉭거리며 거품이 일 듯 도랑이 온통 거품으로 뒤덮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누구도 먹지 못할 음식이라는 고따마의 말은 조금도 허황되지 않았다. 까씨바라드와자는 두려움에 떨며 부처님 곁으로 다가갔다.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사람은 보라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히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저에게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저는 이제 그 법에 귀의합니다. 저는 이제 승가에 귀의합니다.”
까씨바라드와자는 그 자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게으르지 않았던 그는 오래지 않아 출가의 목적인 최고로 청정한 삶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였다.
아!!
부처님.
일화 합장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일화보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