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 추모제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30년이 흘러서야 소원을 이뤘어요. 저는 스무살 때 연애시, 사랑시의 시인으로 고정희 시에 입문했었죠. 이후 다른 시집들을 접하면서 시인이 민중과 세상을 품는 도저한 언어에 반했습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던 분. 일찍이 52년 생 62년 생 구자명 씨를 시로 살려내주어서, 저는 시인을 통해 ‘72년 생 구자명과 같은 삶을 글로 써도 된다’는 믿음과 격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간 해남. 금요일엔 해남도서관 강연에서 고정희 시를 낭독하고, 토요일엔 고정희 묘소 앞에서 진행된 문화제에 가보았죠. 해남고 학생의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낭송, 시노래 합창단 분들의 멋진 노래를 듣고, 꽃과 술과 절을 올린 후 생가에 둘러앉아 맛있는 밥을 먹고 왔습니다. 시인을 중심으로 세대와 정신과 마음이 연결되는 자리가 3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졌습니다. 시인의 집 곳곳에 가훈처럼 걸린 글자들 ‘고행 묵상 청빈’의 잔상이 강렬합니다. 시인처럼 살지는 못해도 시인의 삶에서 너무 멀어지지는 말자고, 다짐을 좋아하는 저는 또 마음을 먹었답니다.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를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에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듯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이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을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르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열러지나물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시집 <아름다운 사람하나>에서
첫댓글 전국 곳곳 다니시네요 먼 길이었을텐데 애쓰셨어요
'생가' 라는 말, 여러모로 참 좋네요 ^^ 따뜻한 느낌
그쵸. 태어난 집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참 소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