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온 자리에 남긴 것들
이지원
먼 나라로 긴 여행을 다녀왔다.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는데 오랜만에 나가는 해외여행이라 설레는 마음이 컸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볍게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짐을 최소화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는 않았다. 몇 날 며칠을 펼쳐 놓은 가방에 옷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으나 10박12일의 짐 가방은 10kg이 살짝 넘었다. 줄인다고 줄였지만 더 이상 가벼워지지 않았다.
짐 가방은 수하물로 부치고 여권과 중요 물품이 든 가방 하나만 메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6시간의 비행이라 기내식이 두 번 나왔는데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든 용기 모두가 일회용품이었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 유럽의 어느 환경운동가가 우리나라에 초대 받아 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소비되는 일회용품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불편하여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뭐야? 좀 지나친 거 아냐?’ 라고 생각 했었다. 기후 위기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나날이 끓어오르는 지구를 보면서 그때 환경운동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먹고 난 기내식 빈 용기와 비닐 등은 승무원이 수거해 간 탓에 내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한끼의 식사를 위해 버려지는 쓰레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리 제로 웨이스트를 외쳐 보지만 사람이 움직이는 곳에는 쓰레기가 넘쳐 난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맞이한 여행 첫 날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만년설이 눈부셨다. 탄성을 지르며 아침 산책을 나갔다. 파란 하늘에 예쁜 구름, 순도 100%의 맑은 공기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기분 좋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판필로바 28인 전사공원과 러시아 정교회 젠코바 성당, 중앙아시아의 그랜드 캐년이라는 차린 협곡을 거쳐 콜사이 호수까지 하루 일정이 끝났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는데 수저를 비롯해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테이크아웃 가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 것일까?
비닐봉지에 담긴 빵, 조악한 플라스틱 수저로 플라스틱 용기에 나온 만둣국 같은 뜨거운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말이라도 통한다면 한 마디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도 편하다고 일회용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오래지 않아 환경이 나빠질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저녁 늦게 이국의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한 부모를 돕기 위해 나와 있던 소녀의 샛별 같은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도 지금처럼 아름다워야할텐데…….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어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리며 이식쿨 호수를 품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한국말이 유창한 가이드는 키르기스 사람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을 넘었다. 장거리 버스를 타면서도 유난히 맑고 아름다운 중앙아시아의 하늘과 들판의 야생화, 그 속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가축들을 볼 수 있어서 지겨운 줄 몰랐다. 소음도 매연도 없는 자연 환경이 부럽기만 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 향하는 길에 가이드가 설명하기를, 비슈케크는 공기가 썩 좋지 않다고 했다. 그것은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인데 가격이 저렴해서 사람들이 선호 한다는 것이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비슈케크의 대기 질이 좋지 않다고 말을 한다고 했다. 지나는 길에 화력 발전소가 여러 개 보였다.
키르기스스탄 일정을 마무리하고 비슈케크에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날아갔다. 카자흐와 키르기스와 달리 이곳은 무척 더웠다. 남은 일정 동안 더위와 싸워야 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고대도시 히바에 갔을 때 낮 최고 기온이 섭씨38도, 체감 온도는 40도가 넘었다. 물을 얼마나 마셔댔는지 모른다. 하루에 우리가 배출한 생수병 폐플라스틱은 족히 백여 개는 되었을 것이다.
부하라로 가는 길, 아무다리아 강을 지나 키질쿰 사막을 가로질러 아야즈 성채까지 30분을 걸었는데 건조한 사막의 열기는 대단했다. 유르트(yurt)에서 현지 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잠시 동안이지만 유목민의 삶을 체험해 보았다. 이곳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날 이곳은 섭씨 47도,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은 이곳도 예외가 아닌 것 같았다.
‘지붕 없는 박물관’, ‘박물관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부하라, 레기스탄 광장이 랜드 마크인 사마르칸트를 거쳐 고속열차로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로 다시 왔다. 타슈켄트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고 중앙아시아 탄탄탄3국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10박12일의 여정은 힘들었으나 그것을 상쇄할 만큼 잊지 못할 여행이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고대도시를 거닐며 시간 여행자가 되어 보기도 했고, 광활한 평원에서 만난 초록의 평화와 사막의 모래 바람과 길 위의 등대 미나레트와…. 하여 미지의 세계에서 견문도 넓혔지만 돌아온 지금, 발 디딘 곳마다 우리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