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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0 회
해후(邂逅). 우연히 만남.
괴노인이 효야의 시야에 드러난 것은 적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효야는 아직도 사건이 어떻게 전개 될지 모른다. 괴노인도 이 밤에 부른 노래 가락이 어떤 사단을 놀고 올지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효야는 궁금증을 가지고 운명이 만들어 놓은 사닥다리를 한 계단 두 계단 오르고 있었다.
노인은 효야가 보기에 옆으로 서 있었기에 그 모습이나 표정은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효야는 노인이 몸을 돌릴 때를 기다리며 잠시 지켜보아야 했다. 그런데 노인에게서 풍기는 외형이 어쩐지 낯에 익은 모습이었다. 효야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고개를 들어서 갸웃거리기를
‘이상하다. 참 이상타. 어디선가 분명 본 사람 같은데... 그런데...’
이때 노인이 부르던 노래를 멈추며 무겁고 낮은 음성으로 호통을 치기를
“어디서 온 웬 놈이냐? 나는 여자도 아니거늘 네 놈은 무엇 때문에 그리 훔쳐보고 있단 말이냐?”
노인은 여전히 똑 같은 상태를 유지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먼 하늘로 눈길을 주시하며 뒷짐을 진 그대로였다. 효야는 철렁~ 하고 가슴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노인과 효야의 거리는 7m이내였고 효야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인은 효야의 접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홀로 생각하기를
‘저 노인은 강호의 고강한 무림고수가 아니겠는가! 무림의 숨은 기인이 아니겠는가!’
효야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용기를 내어야 했다. 그래서 당장 몸을 드러내며 노인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굴을 붉힌 채로 노인의 앞으로 걸어 나가 공손히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고 나직이 묻기를
“노인장은 뉘시오? 왜서 늦은 밤에 이리 황량한 곳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거요?”
효야가 거기까지 말 했을 때 노인은 훌쩍 몸을 날려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효야를 향해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야윈 얼굴에 은빛 수염이 가슴 앞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야릇하게도 두 눈의 가장자리에만 잔주름이 보일 뿐 다른 데는 주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살결이 팽팽하여 마치 4~50대 중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효야는 그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고는 흠칫 놀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탄성을 지르기를
‘아아! 노인은 바로.. 바로...’
노인은 흰 눈썹을 약간 찌푸리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효야를 살피는 일을 게으르게 하지 않았다.그러나 노인은 효야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매우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묻기를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 ...”
효야는 얼른 대답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어떻게 정노인에게 접근해야할지 고뇌에 빠졌다.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효야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되돌려 생각하면 정노인과의 인연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해뢰고도에서 효야는 무정하기 비길 데 없는 정노인을 본 것이다. 정노인은 그때 공학의 아버지를 중상을 입혔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그를 납치해 갔다. 이런 잔인무도한 정노인을 알아보자마자 효야는 머리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공학의 기구한 운명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효야는 증오심에 불타서 당장이라도 정노인을 쳐 죽이고도 싶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정노인은 강호 무림에서 다 아는 어느 누구도 상대하기 힘든 고수중의 고수란 사실이었다.
효야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정노인의 곁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다가갔다.
“아 아니,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았군요.”
이리 지어서 말하며 웃음까지 스스럼없이 지어 보였다. 그러자 정노인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대꾸하기를
“허허허. 그랬군 그래.”
노인은 효야를 한 차례 훑어보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나의 생김새는 워낙 괴이하여 강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를 한 눈에 알아보지. 그런데 네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하니 그래. 네가 안다는 그자는 어떻게 생겼느냐? 설마 아는 사람이 나와 방사(倣似)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정노인의 말은 온화하면서도 말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는 듯하였다. 효야는 노인과 시선을 마주치기조차 거북하여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겨우 입을 열하기를
“모르오. 나는 노인장을 전혀 모르오.”
효야는 노인의 물음과는 상관없이 고개까지 흔들며 그리 말했다. 노인은 효야를 다시금 쏘아보며 훑어보더니 갑자기 크게 웃어젖히기를
“하하하.”
이에 효야는 그 웃음에 말없이 오금을 펴지 못한 듯 행세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말하기를
“이놈 봐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네가 나를 알든 모르든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너는 젊은 나이에 왜서 이런 곳에서 홀로 밤을 새운단 말이냐?”
“... ..”
효야는 고개를 쳐들어 정노인을 한 차례 째려보듯 바라볼 뿐 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오인은 속 마음을 보이지 않고 곁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더니 미소 어조로 말을 하기를
“자. 너무 딱딱하게 그리 굴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서 안자라. 내 마침 홀로 이 밤을 보내게 되어서 몹시 마음이 쓸쓸했는데 말이다. 이제 네가 나의 말벗이 되어주니 무척 마음이 흥분이 되고 기쁘구나. 내가 근래에 사람이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지.”
노인은 자문자답까지 섞어서 효야를 향해 호의를 베풀어 말했으나 효야는 그만 입을 봉한 채 묵묵히 노인의 곁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조용히 입을 열기를
“네 이름은 무엇이라 하느냐?”
효야는 이때만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답을 하기를
“남들이 나를 효야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은 정이라고 들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남들이 그리 부른다고...? 성자인 정자를 빼고 효야라고 그리 부른다고... 참 재미있는 이름이구나! 정 효만이구나. 너의 본명이 말이다.”
노인은 낭랑하게 웃으며 효야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그러자 효야가 대답하기를
“노인장! 저는 정자는 싫어요. 긎냥 그냥 효야 라고 만 불러 주세요.”
“아하하하. 참 재미있어. 정자를 빼버리고 효야 라고만 불러 달라고...‘
“예 그렇습니다. 정효야 이게 뭡니까? 나는 그게 싫다고요.”
“그렇기도 하겠구나. 효야야! 내 앞으로 성은 말하지 않고 너를 효야 라고 부르지 뭐...”
노인은 그리 말하고 다시 천진스럽게 말을 잇기를
“아하하. 정말 우연이라 할 수 있겠구나! 참 말로 신기하기도 하지.”
노인이 호들갑스럽게 그리 말하자 효야는 처음으로 반색을 하며 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장은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미가 있단 마씀이세요?”
노인은 효야의 말에 한 동안 말을 잃은 듯 달빛에 어린 효야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나서 말을 잇기를
“정말이지. 이건 우연일거야. 사실 나도 정가거든. 그런데 숨기고 사는 너의 성자가 정가라니 말이다.”
노인은 여기까지 단숨에 말해 버리고 나서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아주 날카롭게 정효야를 주시했다. 그러나 효야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당당했다. 그도 역시 당3하게 두 눈을 크게 뜨고 노인을 주시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어 주었다. 노인을 향한 호감의 표시를 그리 한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묻기를
“그렇습니까? 노인장도 성씨가 정가란 말이신가요?”
노인은 효야의 물음에 잠시 주저하더니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나서 비로소 고개를 크게 끄덕이었다. 그리고 무겁게 다시 입을 떼어 말하기를
“그렇다. 내 성이 정가란다. 5백년 전만하더라도 우리는 모두가 한 집안 식구였겠지. 하하하.”
효야는 고개를 끄덕이어 보였다.
제 121 회
인(因) 인할 인. 원인을 이루는 근본
어느 성씨를 막론하고 처음 시작한 이기 있기에 그 시작한 글자를 따르고 따라서 성씨라고 하는 것이 발전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귀화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한글식 혹은 한국식 성자를 사용하여 그의 자손들이 그 성씨를 이어가며 생을 누릴 것이다. 정씨라는 성씨도 마찬가지이다. 효야는 근런 노인이 관심을 가지고 말하는 정이라는 성씨에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의 길이 끊어지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고개를 깊숙이 빠뜨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정 노인이 갑자기 눈을 홉뜨며 말문을 열기를
“그래, 효야야! 너의 스승은 누구시지? 버아하니 너의 무공도 상당한 것 같은데....”
이에 효야는 깊은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둘러 붙이기를
“스승님은 효씨셨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효선생이라 불렀고 그런 연유로 해서 기실은 나도 효야가 된거지요.”
이에 정노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을 굴리더니 다시 묻기를
“혹시 너의 스승님의 함자가 효신송이 아니더냐?”
그리 묻고는 효야의 얼굴을 빤히 드려다 보았다. 효야는 속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어 부정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개구쟁이처럼 생각하기를
‘흐흐. 나는 아무렇게나 꾸며서 지어낸 말인데 뜻밖에도 강호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이가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노인은 그런 효야의 장난 끼 어린 말에 주목하여 다시금 한 차례 깊은 생각을 하고나서 입속말로 중얼거리기를
‘효야가 효신송의 제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의 자손일지도 모르겠구나.’
노인은 거기까지 중얼거리다 말고 고개를 쳐들어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한 차례 우러러 보고나서 약간 실망스런 빛을 얼굴에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효야를 향하여 속삭이듯 가만히 말하기를
“너는 별로 대단한 무공을 터득하지 못했겠구나?. 거 참!”
효야는 노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귀찮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어 맞장구를 쳐 주며 대답하기를
“그렇소. 저는 다만 몇 년간 무공을 배웠을 뿐인데 아직 사부님을 따라가기에는 멀었지요. 그런데, 노인장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요?”
“핫하하...”
노인은 효야의 물음에 호탕하게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대답하기를
“녀석아! 너는 강호를 떠 돌아 다닌다는 놈이 이 정가의 명성도 들어 본 적이 없단 말이더냐?”
“글쎄요?...”
효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 갑자기 정노인이 번개같이 한 팔을 뻗어 효야의 손을 움켜쥐며 웃음 띤 어조로 말하기를
“나는 너의 공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한 번 떠 보아야겠다.”
이에 효야는 흠칫 놀라며 공력을 끌어 올려 대항하려다 말고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끌어 올리던 공력을 해소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가벼운 심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목청을 돋우어 외치기를
“노인장, 아...아 어서 6서ᅟᅩᆫ을 놓아 주십시오. 아파서 견디지 못하겠어요.”
노인은 효야의 얼굴 변화를 주시하면서 괴이한 웃을 흘리며 짧게 뒤 여운을 남기기를
“흐흐... 녀석.”
순간 효야는 한 줄기 불가항력적인 힘이 몰아 쳐 오는 것을 느끼고 입을 딱 벌린 채 몸의 균형을 잃었다. 지금이라도 재빨리 진력을 끌어 올린다면 몸의 균형을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효야는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녀석이... 흠..”
가볍게 떨치는 노인의 손길을 따라 효야의 몸은 허공에 둥실 떠서 4m 쯤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쿵!”
“아이쿠, 나 죽네.”
쿵 소리와 동시에 효야의 심음을 뒤로 하여 노인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검은 밤공기를 갈라놓았다.
“흐흐흣... 이놈아, 너는 정말 교활한 놈이구나! 너는 내가 너의 진실한 공력을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더냐? 아까 내가 너의 손목을 잡았을 때 너는 공력을 끌어 올리다 말고 이를 해소 시켰지? 이 녀석아, 네 놈이 그리 신속하게 공력을 끌어 올려 운용하는 것만 보아도 너의 공력을 알 수 있단다. 네가 지닌 현재의 공력은 보통고수의 공력을 뛰어 넘고 있어. 내 놈이 아무리 나에게 연극을 꾸민다 해도 나의 눈을 결코 속이지 못한다. 알겠나.”
효야는 노인의 말을 듣자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내친 김에 계속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효야는 땅바닥에서 일어나 아파하는 표정을 계속 지으며 일부러 화난 모양까지 지어내며 말하기를
“노인장은 너무 하시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왜서 나를 이리 내어 던지는 거요?”
“핫하하하... 그래도 이 녀석이...”
노인은 그리 말하자마자 몸을 솟구쳐 효야 앞으로 날아오더니 사납게 뇌까리기를
“꼬마아! 너는 끝까지 시치미를 땔 작정을 했느냐?”
효야는 일이 이리 돌변하게 되자 적잖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생각하기를
‘이 노인은 정말이지 무서운 노인이구나!’
효야가 거기까지 생각하는 사이에 노인의 행동은 개시 되었다. 번개같이 몸을 빠르게 움직이더니 두 손가락이 효야의 등 뒤로 돌아서 어깨 위를 내리치고 있었다.
“흐읍!”
효야는 별안간 어깨가 뻐근해 오는 통증을 느끼며 가벼운 신음소리를 풀어놓았다. 효야의 그런 신음소리와 상관없이 노인의 두 손가락은 정확하게 효야의 어깨의 요혈로 내려진 채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이에 효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공력을 끌어 올려 항거하려했다. 그러나 이 때도 효야의 머릿속은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르기를
‘가만히 생각하니 이 노인이 두석천에게 대했던 상황으로 보아 결코 잔인한 사람인 것 같다. 아마도 몹시 음험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혈도를 짚은 것에도 또 다른 별난 계책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효야는 그리 계산해 보며 일부러 놀라움에 쌓인 표정을 지으며 노인의 얼굴을 순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련해 보인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노인장께서 진실로 나에게 손을 쓰시겠단 말인가요?”
노인은 입을 꾹 다물며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잔인한 그 표정에서 냉혹하기 짝이 없는 말소리가 흘러 나오기를
“그렇다. 나는 지금부터 좌근대법을 펼칠 것이다. 그러니 너는 자신의 진력으로 고통을 해소시켜 보아라. 흐흐흐.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목숨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겠지.”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노인의 말이었다. 좌근대법이란 지력으로 전심의 맥을 흩트려 놓는 무서운 형벌이다. 공력이 고강한 자라면 몰라도 만약 공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이 형벌을 받으면서 죽게 되는 것이다.
정노인은 바로 이런 무지막지한 악독한 수법으로 효야를 고문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인의 지력이 어깨의 경맥을 트고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노인은 벌써부터 손을 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좌근대법의 형벌을 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효야는 입술을 크게 깨물고 가벼운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어깨가 뒤틀어지고 오장과 육부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효야는 처음 당해보는 이 형벌 앞에서 중얼거리기를
‘음, 대단한 형벌이구나. 그러나... 그러나...’
하지만 효야의 고집은 대단했다. 이 잔혹한 형벌을 견뎌 내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암암리에 진기를 조절하여 웬만하게 오장과 육부를 보호하고 그 외에는 순양진기는 운용하지 않았다.
제 122 회
인고(忍苦) 그건 어쩜 인생이다.
효야는 정노인을 상대로 목숨을 건 인고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좌근대법의 형벌을 스스로 받으면서...
그런 효야를 예의주시하던 정노인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잔혹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 이놈아, 고집이 너무 심 혀. 살고 죽은 문제는 오로지 너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를 무정타고 탓하지 마라. 네 놈이 나를 상대로 뭘 하자는 거야, 빌어먹을....”
노인은 그렇게 표독한 말을 풀어 놓고는 혈도를 짚은 두 손가락에 맹렬하기 짝이 없는 힘을 더해 갔다. 부르르 손가락이 떨렸다.
“흐음. 흠...”
효야는 노인의 손끝에서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두 줄기 싸늘한 기운이 체내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심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또 온 몸이 마비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제멋대로 꿈틀 거리며 뼈마디가 각기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마도 노인이 쏘아 대는 두 줄기의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여 이러난 현상이 아닌가 싶었다. 이와 같이 음양이 효양의 체내애서 상충되어 충돌하자 심신이 괴롭고 울렁거렸다. 이것은 그냥 고통이 아니었다. 심신이 다 함께 당하는 고통이었다. 이 고통 이 고초를 ㄹ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효야는 무쇠같이 단단한 체격을 지녔지만 온몸을 뒤집어 놓은 음양의 상충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굮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너무 아파요. 죽이려면 어서 죽여요!”
비명을 질렀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나와 흘러내렸다. 이런 고통ㅇ의 시간이 얼마간 자나자 정노인은 등에 움켜쥐었던 손을 약간 늦추어 주었다. 그리고 냉혹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효야의 인내심에 혀를 내어 둘렀다. 그리고 혼자 말처럼 지어내어 말하기를
“과연 너는 보통녀석이 아니구나! 아직도 공력을 끌어 올려 자신의 혈도를 보호하지 않다니... 정녕 네놈은 바보가 아닐 텐데. 왜서 그런 고초를 자초 한단 말이냐? 흥! 하지만 나는 인정이란 모르는 늙은이야. 너는 스스로 고통을 자청한 것이니 어디 한 번 더 견뎌 봐라. 결과가 어찌 될지...? 이늙은이는 한ㅂ JS 먹은 마음을 중도에서 고쳐먹을 생각은 없으니까.”
이에 효야는 된 숨을 몰아쉬면서 급히 대꾸하기를
“무슨 소리요! 노인장! 어서 나를 놓아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인이지만 후회할거요.”
노기가 극에 이른 목소리로 비명처럼 말했다. 그리고 당장 효야는 변화를 보였다. 양손에 진기를 모아 내밀어 노인의 얼굴을 향하여 날카롭게 공격을 시도했다. 이에 정노인은 가볍게 몸을 뒤로 젖히며 효야의 불의의 기습을 피해버렸다. 그리고 오히려 혈도를 짚고 있던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이에 효야는 그 충격을 견디기 어려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 아....악!”
효야는 일시적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여 자신이 가진 절기를 펼쳐내었지만 그 후로는 더는 손을 쓰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잔인한 정노인의 손에서는 공력이 한 층 더 증가되고 있으니 효야의 고통도 더해 갈 수밖에 달리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효야의 온 몸이 목욕탕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물에 흠뻑 젖었을 때서야 비로소 정노인은 비로소 잔혹한 자기 손을 거두어 드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노인의 마음이 어떤 변덕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다시금 효야의 어깨를 아까보다 더 힘차게 움켜잡고 외치기를
“꼬마야! 너는 도대체 누구냐? 처음 보는 나에게 연극을 제법 쓸모 있게 해대는 너는 누구냔 말이다. 도대체 너가 하는 연극의 의미는 또 무엇이란 말이냐?”
“... ...”
그러나 효야의 입은 천금처럼 무겁기 만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에 정노인은 몹시 흥분했다. 자신에게 분기가 탱중하게 행동하는 젊은이가 위험인물일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무공을 애써 감추고 무저항으로 일관하는 그 심보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정노인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효는 그제 서야 비로소 길게 한숨을 토해내며 참아 왔던 말을 응대하기를
“당신에게 어떤 무서운 수단이 더 있는지 더 두고 보아야하겠소. 지켜본단 말이요.”
이런 폭탄선언 같은 것을 효야는 노인을 향하여 쏟아 놓았다. 그토록 심한 고통을 감내하며 내 뱉은 한마디가 고작 그런 항거란 말인가? 정노인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한 뼈가 있는 선언이었다. 이에 정노인은 불 같이 끓어오르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대뜸 손을 들어 효야의 뺨을 향해 호되게 후려갈겼다.
“으윽....!”
효야는 갑작스런 따귀 한 대를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따귀가 어찌나 강했던지 효야로 써도 골치가 띵~하니 울리고 속이 미식거운 가운데 물러나면서 생각하기를
‘낯선 이에게 이 같이 흉악하게 대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 노인은 정말로 음험한 인물이구나. 음, 그래 내가 더욱 몸조심해야지...’
효야는 이를 악물고 마음가짐을 더욱 굳건하게 가졌다. 노인은 자신이 그리 악독하게 굴어도 효야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외치기를
“좋다. 네놈이 사실대로 실토하지 않는다면 내가 반드시 실토하도록 만들어 주지. 어디 얼마나 더 견디나 두고 보자.”
그리 오만상을 찌푸리며 뇌까리고는 효양의 어깨를 다시금 힘껏 낚아챘다.
“아앗!~”
갑작스런 노인의 손놀림에 효야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노인은 인정사정도 없이 효야의 아랫배를 향하여 짓밟아 갔다. 그리고 얼음처럼 냉 차게 말하기를
“쳇! 이 놈아! 이래도 입을 열지 않겠어. 정말로 죽고 싶으냐? 어서 말해라! 말을 혀! 왜서 너는 내 앞에서 전혀 이익이 되지 않을 연극을 해 댄단 말이냐?”
“아, 아... 노인장 너무하시오. 나는....”효야의 신음소리가 힘겹게 터져 나오고 이와 동시에 노인의 노기에 찬 외침이 밤공기를 타고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어서 입을 열어. 실토를 하란 말이다. 너는 누구의 명령을 받고 이러느냐? 사실대로 말해라. 만악 이리 달래어 말해도 듣지 않고 연극을 계속한다면 ...”
노인은 여기까지 표독스럽게 그리 말하고 다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오른발로 효야의 아랫배를 잔혹하게 짓눌렀다.
아랫배란 곳이 어떠한 곳인가. 무림인이면 다 아는 바로 단전이 있는 자리가 아니던가. 아무리 문외한이라 활지라도 그곳은 치명적인 급소였다. 그런 급소를 고강한 고수에게 당한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만약 단전에 효야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면 다시는 진기를 운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노인은 효야의 아랫배 부근을 그것도 단전 급소를 정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효야는 상대방 정노인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흉악한 수법으로 자기를 대하는 것이 짐승이 아닐까 싶게 두려움이 다가왔다. 그래서j 지금까지 벌리고 있던 연극을 일단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달리 먹기를
‘음, 이대로 죽을 수야 없지. 할 수 없이 진력을...’
효야는 마침내 공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력이 제대로 작동하자 단전에서 뻗어 나오는 힘의 기류를 서서히 두 손에 모았다. 효야는 누운 채로 가만 가만히 단전에 기를 모아가자 양손으로 보내자 사지가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후둘 둘둘...”
솜털 같이 순양한 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를 기다리던 효야는 두 손을 움직여서 노인의 발목을 움켜잡으려고 하는데 별안간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흔들며 들려왔다.
“정노인! 어서 손을 멈추시오. 낯선 젊은이에게 그토록 악독한 수법을 써 먹다니...”
제 123 회
륜(輪) 바퀴 륜. 인연은 돌고 돌아
효야가 강호에 연분홍 꽃그림을 그리고 나와서 당한 일은 적지 않지만 오늘밤과 같이 잔인무도한 정노인을 만나서 사경에 이르도록 호되게 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원의 여신이 다가온 것이다. 여인은 다시 외쳤다.
“정노인! 어서 독수를 거두어요!”
이 여자의 옹골찬 외침에 노인은 흠칫 놀라며 급히 발길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났다. 효야는 이때다 싶어 날래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정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괴 여인의 음성을 쫓아 눈길을 돌렸다.
우뚝 솟은 바위위에 흑색 그림자가 흐릿한 달빛을 받으며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었다. 젊은 여인으로 느껴졌다. 어둡지만 유난히도 빛나는 흰 얼굴에 두 눈이 샛별처럼 빛나 보였다. 효야는 그 여인을 보자마자 마음속에서 절로 탄성(歎聲)이 터져 나왔다.
‘아, 저 여인은 백녀야...’
그녀는 효야가 하루 종일토록 찾아 해매이었던 백녀다. 노인은 약간 놀라운 빛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며 나직이 묻기를
“너는 또 누구냐? 이 놈과 같은 동패란 말이냐?”
백녀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를
“흥, 나는 지나가던 사람이오. 원래 이 일에 백안시 하려고 했으나 정노인이란 별호를 생각해서 한마디 충고를 하는 거요. 단순히 상대의 공력을 염탐코자 한다면 왜서 좌근대법까지 동원한단 말이오. 그런 무시무시한 독수를 쓰고도 그것마저도 모자라서 단전을 밟은 거죠? 그건 생사람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잔인함이 아닌가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강호에서 이름 있는 정노인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시겠지요? ”
백녀는 부드럽게 차근차근 이야기 한 것 같았지만 말마다에 인간으로써 지켜야할 도리를 절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여자의 독특한 음성이지만 그 음성에는 위엄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노인의 백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곁의 널바위에 걸터앉으며 냉소를 날리기를
“너 오늘 말 참말로 잘 했다. 그래. 더 할 말이 있다면 밑으로 내려와서 이야기해라! 높은 곳에서 그리 말하는 것은 늙은이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에 백녀는 몸을 가볍게 날ㄹ려 정노인의 3m 전방에 내려섰다. 갑자기 밝아진 달빛 앞에 선 그녀의 모습은 비록 병세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낮에 만났을 때 보다는 한층 활기 차 보이는 자태였다. 이런 백녀를 바라보면서 효야는 들뜬 마음에 생각하기를
‘백녀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가고 있구나! 그리고 나를 도와주려고 나서는 것을 보면 나에게 차디 찬 것만 아니라 호감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효야는 이런 생각이 들자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희죽이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백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바위위에서 내려와 노인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열기를
“정노인, 나는 저 효소협을 잘 모르는 사람일고 따지고 보면 이 일에 간섭할 아무런 자격도 없어요. 하지만 효소협은 순박한 청년인 것만은 확실해요. 그러니 내가 판단하기에 당신의 소행은 너무나도 지나친 처사라 할 것이오.”
이에 정노인은 간특하기 짝이 없는 노련한 자라 백녀의 말에 노기는 여우가 긴 꼬리를 감추듯 감추어 버리고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는 백녀에데 대꾸하기를
“하하... 좋다. 네가 나에게 훈계를 하는구나!”
노인이 이렇게 말의 실마리를 빼는데 백녀는 고질인 병이 도지는지 갑자기 두어 번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백녀의 기침소리를 예의 주시하던 노인은 잠시 정광이 번쩍이는 눈초리로 백녀를 쏘아 보더니 싸늘하게 입을 열기를
“아... 이제 보아하니 하하하...”
노인은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그리고 뜸을 잠시 드리고 나서 다시 말을 잇기를
“최근에 강호의 협의를 위해 싸우는 여걸이 출현했다고 알고 있다. 별호는 병미인 이라고 전해 들었는데 아마도 그게 바로 너 지. 그렇지?”
이런 악담에 견줄만한 노인의 말에 백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말을 받기를
“그건 강호의 친구들이 과분하게 이름을 지어준 덕분이지요.”
“하하하... 좋다. 좋아....”
정노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다시 밤공기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백녀에게 노골적으로 묻기를
“그래.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건 아니군. 너는 효소협과 무슨 관계지?
백녀는 노인의 말에 서슴지 않고 효야를 한 차례 바라보고는 즉답을 하기를
“단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이요.”
“그래. 그것도 좋다고....”
노인은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며 다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효소협은 나와는 처음 만났으니 원한관계가 있을 수 없지. 그렇지만 내 앞에서 무공을 숨겼기 때문에 의혹을 갖게 한 거다. 그리고 나는 기어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캐 내어야 하겠으니 백녀 너는 당장 이 자리를 떠나 주기 바란다.”
노인은 이 같이 말하고 당장 효야에게로 다가가려고 하자 백녀가 가만있지 않았다. 뜻밖에도 날래게 몸을 솟구쳐서 노인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백녀는 엄중한 표정을 지으며 침중하게 말하기를
“정노인, 정말로 당신은 효소협에게 손을 쓸 셈이요?”
따지듯 묻자 노인은 순간 온 얼굴에 노기로 팽배했으나 이내 노기를 지우고 평정심을 되찾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호기에 찬 목소리로 외치기를
“호오~ 너는 정말 대단한 여자로구나! 그래 나를 상대로 한판 부딪쳐 보겠단 수작이냐?”
“그래요. 결심한 바 있어요. 한판 붙지요 뭐.”
백녀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알 수 없는 노릇이군...?”
“아니요. 알 수 있는 일이 되게 해 주지요. 정노인이 그토록 인정머리가 없는 위인이라면 선배 대접을 받을 생각은 예 저녁에 버리세요. 저도 체면 같은 것을 가리지 않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명성에 때가 묻을까 두렵지 않으세요?”
이들 두 사람 사이에는 즉시 냉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효야는 정노인의 악독한 수법을 잘 알고 있는지라 백녀의 안위가 몹시 걱정이 되어 생각하기를
‘이거 일판이 벌어졌구나! 야단났어. 백낭자가 정노인과 싸운다면.... 아냐. 이대로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어. 내가 이제 손을 쓸 때야.’
이때 갑자기 노인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크나 큰 외침이 울려 퍼지기를
“하하하... 가소롭구나. 나는 결코 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 사실 너와 싸우게 된다면 사실 내 명성에 먹칠을 하는 일이 되지. 그러니 나는 지금 육성의 공력으로 너의 십초를 받아 보겠다. 그 동안에 너를 격퇴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두말없이 이 자리를 뜨겠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나의 분부를 따라야 한다. 하하하... 어떠냐?”
노인의 자만에 가득 찬 말에 백녀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차분히 대답하기를
“좋아요. 이것은 내가 스스로 뛰어든 일이니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네요.”
백녀의 그런 말을 들은 효야는 조급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급히 앞으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백녀를 향하여 외치기를
“안 돼요! 낭자는 물러서시오. 정노인은 내가 이제 상대하겠소. 추한 노인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소.”
노인은 노골적으로 자심을 공격하겠다고 나서는 효야를 향하여 낭랑하게 웃으며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 124 회
실전(實戰)을 구경하다.
“하하하. 하하하..... 꾸물대지 말고 처음부터 그리 나올 것이지.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이 난다더니... 처음부터 사내답게 그리 나왔다면 너나 나는 다 같이 귀찮은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게야.”
“쳇! 노인이라고 접어 드렸더니 몹시 말이 많으시군요.”
효야가 이같이 빈정거리자 노인은 다시 껄껄 웃으며 효야를 상대로 몸을 돌렸다. 효야의 도전을 달갑게 받아드린다는 암묵적 태도였다. 그러나 백녀는 효야를 향해 몸을 돌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하기를
“아니에요. 지금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 나와 정노인인이 먼저 해결을 봐야할 문제에요. 당신에게 볼 일이 있다면 나의 일이 마무리 진 뒤에 해결을 짓도록 하세요.”
백녀의 냉랭하고 완강한 태도는 효야로 하여금 분기를 가라앉히고 맣걸음 뒤로 물러 설 수밖에 만들었다. 그래서 효야는 독한 결심을 하고 물러서면서 말하기를
“그러면 백낭자께서 먼저...”
효야는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몇 걸음 물러섰다. 노인은 약간 눈살을 찌푸린 채 백녀를 향해 묻기를
“너는 정말 이상한 계집이구나! 나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니 그게 뭐란 말이냐? 어서 말해 보아라! 그래야 나도 다음 준비를 가지고 손을 쓸 수 있을 게 아니겠느냐?”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녀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하기를
“흥!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나는 단지 당신의 삼십육산수 절기를 구경해 보고 싶을 뿐이에요.”
대답치고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당돌한 것이었다. 강호에 명성이 쟁쟁한 노인에게 공력의 우열을 가려보자는 도전이었다. 정노인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노기 찬 음성으로 외치기를
“좋다! 네 소원이라면 이 늙은이도 피하지 않겠다. 하하하. 삼십육산수의 절기를 십 년간이나 사용해 본 적이 없었는데 네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이냐?”
이에 백녀는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노인의 말을 받기를
“정노인께서 삼십육산수의 절기로 강호에 명성을 떨쳤는데 어찌 모를 리가 있겠어요.”
“됐다. 됐어!”
노인은 손을 내어 저어 말을 중단시키고 급히 싸우기를 재촉하기를
“계집년이 제법 똑똑하구나! 이제 그만 말은 접고 어서 손을 써라!”
그러나 백녀는 손을 쓸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기침을 했다. 언 듯 보기에는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하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백녀를 지켜보는 효야의 눈은 불안 불안했다. 그녀의 안위가 몹시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 그러나 이 마당에 섣불리 나설 수도 없는 형편이 되어 있었다. 정노인의 말에 으ㅏ하면 그녀는 이미 젊은이들 중에서 혁혁한 명성을 얻고 있는 무림고수가 아닌가. 더구나 그녀의 별호가 병미인이라 했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기에 병미인이지 탁월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어찌 감히 정노인에게 도전할 수 있단 말인가! 효야는 이런 생각이 들자 잠시 한 쪽으로 물러나서 둘의 무공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정노인이 양다리를 벌이고 고정된 자세를 취한 채 불쑥 입을 열기를
“백가 계집애야, 내 손 속에서 십초를 넘기기는 매우 드문 일이니 너는 특별히 조심하도록 하려라!”
백녀는 노인의 말을 이어 기침을 한 번 더 하더니 몸을 한번 꿈틀 거렸다.
“첫 번 째 초식 이 닷!”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을 때 백녀의 몸이 이미 물 찬 제비처럼 비스듬히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별안간 백녀의 몸이 가볍게 뒤집히더니 오른손을 휘둘러 곧장 정노인의 정수리를 덮쳐갔다. 날다람쥐보다 더 빠른 동작이었다. 그런가하면 백녀의 손에서는 강맹한 장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백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효야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를
‘병중에도 저런 고공의 무공을 펼쳐 내다니...!’
효야는 기적 같은 백녀의 고강한 무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얼굴에는 분명코 병색이 완연한 데 그런 그녀의 몸에서 이토록 심후한 공력을 쏟아 낼 줄은 상상도 못했던 효야였다. 그때 정노인의 냉혹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기를
“이히히히... 그렇군, 너도 산수를 할 줄 아는구나!”
정노인은 괴이한 웃음을 한바탕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끔찍하리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는 호방한 노인의 외침이 계속되기를
“됐다. 됐어! 산수를 하는 사람끼리 마주치게 되었으니 정말 오늘은 운 좋은 날이로다.”
산수란 어떤 무공인가? 이게 궁금하지 않는가? 그리고 정노인이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효야는 지난 날 스승을 통해서 강호에는 일종의 움켜잡거나 혈도를 찍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바로 산수란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정노인이 말한 운 좋은 날이란 말은 자신의 산수를 알아주는 백녀가 있어서 좋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산수란 일정한 규칙이 없이 무질서의 초식이다. 그러나 그 수법에는 변화의 연관성은 없다고 말 수 있다. 하지만 무질서라는 손놀림 속에서 때때로 상대방의 의중을 뛰어 넘어 헤아리지 못하게 할 때가 많다. 생각만해도 두려움이 앞서는 독수가 숨어 있는 무서운 수법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노인과 백녀의 대결에서 효야는 운 좋게도 산수의 결투를 구경하게 된 것이다. 효야는 이런 희한한 결투를 바라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이 기회ㅏ를 놓치지 말고 견식을 넓혀야 하겠구나! 산수의 고절함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단단히 기억해 둬야지...’
이때 였다. 정노인의 외침소리가 울려 퍼지며 눈앞에서 두 사람의 인형이 엇갈렸다.
“히얏! 얍....!”
앙칼진 백녀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옷자락이 심하게 나부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손길은 끝내 마주치지는 않았다. 서로 상대방의 혈도를 찔러가는 초식이 끝나기도 전에 거두어졌기에 그랬다.
정노인의 두 팔은 양 옆으로 돌아 백녀의 옆얼굴을 노리고 찌르려고 했다. 그리고 왼손 다섯 손가락은 너인의 턱밑 혈도를 정면으로 찔러갔다. 두 사람이 다 같이 방어 보다는 공격 일변도의 위험스런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대로 둘의 싸움을 방치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 중상을 입고야 말 어리석은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였다. 두 사람이 함께 죽음을 당할지도 모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순간에 갑자기 노인의 몸이 옆으로 비켜지면서 기다란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구 구 억~! 희 얏~”
한 마리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듯하였다. 이에 정노인의 몸은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백녀가 갑자기 크게 긴장한 빛을 띠며 땅으로 내려와 2m가량을 물러났다. 그리고 이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바짝 몸을 웅크리고 사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둘은 모두 동작을 멈춘 채 서로가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었다. 싸늘한 밤공기가 적막을 지배하며 아래로 깔리는 가운데 긴장된 분위기로 잠시 정적(靜寂)이 흘렀다.
백녀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라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정신을 긴장하고 있었다. 노인도 또한 마찬가지로 매우 신중한 태도를 드러냈다. 다만 효야만은 달랐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의혹에 잔뜩 쌓인 빛으로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설마, 저 노인이 백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정노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어찌 효야가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마는 정노인도 1m쯤 물러난 뒤로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무검운 침묵 속에 두 사람의 대치상태는 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도 시간은 그침이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덧 뜨거운 차 한 잔 쯤 마실 수 있는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갑자기 정노인의 입이 열리며 커다란 힘찬 외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