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창(詩唱) 관산융마(關山戎馬) ▶ 노랫말
추강(秋江)이 적막어룡냉(寂寞魚龍冷)허니 인재서풍중선루(人在西風仲宣樓)를
매화만국청모적(梅花萬國聽募笛)이요 도죽잔년수백구(桃竹殘年隨白鷗)를
오만낙조의함한(烏蠻落照倚檻恨)은 직북병진하일휴(直北兵塵何日休)오
춘화고국천루후(春花故國濺淚後)에 하처강산(何處江山)이 비아수(非我愁)오
신포세류곡강안(新蒲細柳曲江岸)이요 옥로청풍기자주(玉露淸風虁子洲)를
청포(靑袍)로 일상만리선(一上萬里船)하니 동정여천파시추(洞庭如天波始秋)라
무변초색칠백리(無邊楚色七百里)에 자고고루(自古高樓)가 호상부(湖上浮)를
추성사의낙목천(秋聲徙倚落木天)이요 안력초궁청초주(眼力初窮靑草洲)를
풍연(風烟)이 비불만안래(非不滿眼來)로되 불행동남표박류(不幸東南漂泊類)를
중원기처전다고(中原幾處戰多鼓)러냐 신보선위천하우(臣甫先爲天下憂)를
청산백수과부곡(靑山白水寡婦哭)이요 목숙포도호마추(苜蓿葡萄胡馬啾)를
개원화조쇄수령(開元花鳥鏁繡嶺)하니 읍청강남홍두구(泣聽江南紅荳謳)를
서원오죽구습유(西垣梧竹舊拾遺)는 초호상침여백두(楚戶霜砧餘白頭)를
소소고도범백만(蕭蕭孤棹泛百蠻)하니 모년생애삼협주(暮年生涯三峽舟)를
풍진자매누욕고(風塵姉妹淚欲枯)요 호해친붕서불투(胡海親朋書不投)를
여평천지차루고(如萍天地此樓高)하니 난대등림비초수(亂代登臨悲楚囚)를
서경만사혁기장(西京萬事奕棊場)에 북망황옥평안부(北望黃屋平安否)아
파릉춘주불성취(巴陵春酒不成醉)하니 금랑무심풍물수(錦囊無心風物收)를
조종강한(朝宗江漢)이 차하지(此下地)러냐 등한소상루하류(等閑瀟湘樓下流)를
교룡재수호재산(蛟龍在水虎在山)하니 청쇄조반년기주(靑瑣朝班年幾周)를
군산원기망창변(君山元氣莽蒼邊)이요 일렴사양불만구(一簾斜陽不滿鉤)를
삼성초원환수생(三聲楚猿喚愁生)하니 안천경화의두우( 眼穿京華倚斗牛)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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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
가을 바람이 적막하니 물고기도 찬데
쓸쓸한 가을 바람에 한 나그네 중선루에 오르는구나
황혼에 옛소리 담은 피리 소리 들려오고
지팡이 짚은 늙은 나그네 갈매기 따라 흐르네
서쪽으로 지는 해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어 생각하네
북녘 땅 전쟁은 언제나 그칠런고
고향 봄꽃에 눈물 뿌리고 떠난 뒤에
어느 곳 강산이 근심 아니었나
곡강(曲江)에는 가는 버들 강가에 늘어졌고
기주(虁洲)에서는 이슬비에 시원한 바람도 맞았느니
이제 청포(靑袍) 입고 만리선(萬里船)에 올라
동정호에 이르니 물빛 하늘과 같아 물결이 가을을 알리는구나
끝없는 초나라 풍경이 칠백리나 흐르고
높은 누각은 호수 위에 둥실 떠있네
가을 바람 소리에 떨어지는 낙엽
저 멀리 강가의 기슭은 아득하기만 하네
지난 날,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가득 다가와
슬프라 동남으로 떠돌기만 한 것을
중원에는 여기저리 전란의 북소리 요란하니
시인 두보 먼저 천하의 근심을 읊노라
청산백수(靑山白水)에는 과부가 슬피 울고
말먹이는 풀 우거진 곳에는 호마가 우는구나
좋은 시절에는 궁중에 꽃향기 새소리 가득했거늘
이제는 슬픈 강남노래를 듣는구나
서울에서 벼슬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는 초나라 땅에서 백발이 되어 슬픈 다듬이 소릴 듣네
소소히 외로운 돛배 남쪽으로 떠가노니
늙은 인생은 험한 물길 속의 쪽배로다
세파에 시달린 인생 눈물 마르려 하나
넓은 세상에 흩어져 소식 한 자 못 전하네
하늘에 뜬 구름 같은 높은 누각에
난세에 올라 인생을 슬퍼하노라
옛 서울 모든 일들이 어지럽기만한데
북쪽 바라보며 임금의 평안하심을 궁금해 하노라
강남 좋은 술로도 취하지 못하니
좋은 시 한 편 취할 마음이 없구나
강남 땅이 어떤 땅이길래
다락 아래 강물만 유유히 흐르는가
용은 물에 있고 범은 산에 있는데
궁중에서 임 본 날은 몇 해나 지났는고
동정호안 섬에는 이내가 가득한데
지는 해는 뉘엿뉘엿하여라
세 마디 잔나비 우는 소리 슬피도 들리누나
눈은 북쪽 하늘 별빛 넘어 서울만 뚫어지게 바라보누나
해설
「관산융마」는 서도시창(西道詩唱)이다. 시창(詩唱)은 시를 창으로 부른다는 뜻이다. 서도시창에는 「관산융마」가 유일하다.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소리이다.
원래 이 시는 영조 때의 문인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 1713~1775)의 공령시(功令詩;科詩)로써 모두 44구의 칠언(七言)으로 되어 있다. 원 제목은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嘆關山戎馬: 악양루에 올라 관산의 전쟁을 탄식함)」이었고 1746년(영조 22년) 가을 한성시(漢城試)에 응시하여 2등에 오른 작품이다. 이 시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杜甫)가 만년에 천하를 유랑하다가 악주(岳州)의 악양루에 올라 안녹산의 난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한탄하며 지은 오언율시인 「등악양루(登岳陽樓)」와 시인 두보의 유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내용은 신광수가 동정호 악양루에 오른 두보를 상상하며 두보의 입장에서 전란에 휩싸인 나라의 불행과 두보의 불우한 처지, 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당대에 평양 기생 모란에 의해 곡이 붙여져(1750년 경)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석북 신광수는 평양으로 가서 기생 모란이 자신이 지은 가사로 소리하는 것을 들었으며, 만년에 모란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관상융마」를 시창했다. 신광수의 『석북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시와 기록이 보인다.1)
余之西遊(여지서유) 每携丹妓於湖樓畵舫間(매휴단기어호루화방간) 燈前月下(등전월하) 丹妓輒唱余關山戎馬舊詩(단기첩창여관산융마구시) 響遏行雲(향알행운): 내가 일찍이 평양에서 놀 때 매양 모란과 함께 경치 좋은 누각이나 멋진 배를 타고 등잔불 앞과 달 아래에 있었다. 모란이 문득 관산융마를 노래하면 그 목소리가 지나가는 구름도 멈추게 하는 것 같았다.
두백명이입한경 頭白名肄入漢京 명기 모란이 머리 희어 소리하러 서울에 왔네
청가능사만인경 淸歌能使萬人驚 그 노래 솜씨 만인을 놀라게 한다네
연광정상관산곡 練光亭上關山曲 평양 연광정 위에서 듣던 관산융마
금야하인청구성 今夜何因聽舊聲 오늘밤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청류벽하목란주 淸流壁下木蘭舟 청류벽 아래 모란배 타고
억청릉가기도유 憶聽蔆歌幾度遊 노래 소리 듣고 놀기를 몇 번이나 하였던고
만호장안금석월 萬戶長安今夕月 서울 장안 오늘밤도
가련유사패강추 可憐猶似浿江秋 그때 가을 대동강 밤같이 소슬하다
이원남접광통교 梨園南接廣通橋 이원은 남으로 광통교에 접하고
지척선군약수요 咫尺仙裙弱手遙 지척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하지만 신선은 멀다
청설가성의구호 聽說歌聲依舊好 들으니 그대 고운 노래 소리 여전히 좋은데
지응안색도금조 秪應顔色到今凋 아름답던 홍안에는 주름이 잡혔네
聞浿妓牧丹肄樂梨園 戲寄 聞浿妓牧丹肄樂梨園 戲寄(평양기생 모란이 이원에서 소리함을 듣고 붙임)
위의 내용을 보면 모란은 18세기 중반 당시에도 당대의 명창이었으며, 또한 「관산융마」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던 매우 유명한 소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원’은 당시 장악원의 별칭으로 평양기생이 장악원에 와서 노래했다는 것을 볼 때 18세기 말 서도와 중앙의 음악적 교류 현장을 살필 수 있기도 하다. 모란의 창은 여러 명창들에 의해 현대에까지 대표적인 서도창으로 전승되어 왔다.
석북의 시는 현재 부르는 「관산융마」의 작사와 작곡자, 또한 작곡과 작사 시기까지 알 수 있는 자료여서 우리 국악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국악 성악(聲樂)에서, 「수심가」 중 가장 많이 부르는 “약사몽혼(若使夢魂)으로 행유적(行有跡)이면 문전석로(門前石路)가 반성사(半成砂)로구나”(이옥봉), 가곡과 시조창 노랫말의 작자가 알려진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작사가가 거의 없다는 것과, 한 노래의 탄생에 관한 여러 가지 사료가 완비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산융마」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
소리 「관산융마」는 대개 1, 2구 길어야 3, 4구까지만 시창되는 관계로 그 동안 전체 노랫말 중, 후의 6구가 낙구(落句) 되어 전해 왔다. 김정연의 『서도소리대전집』,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를 비롯한 거의 모든 가사집에는 38구만 나와 있어 그 동안 국악계에서는 그것이 끝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사실 이 시는 원래가 44구이다. 석북 신광수의 후손인 시인 신석초(1909~1975)가 펴낸 『석북시집』에 원래의 「관산융마」가 원본 그대로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