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지난 5월 31일 성모성월 마지막 날 수지성당 성 베르뇌 성가대는 주일 교중 미사를 마치고 성지순례를 다녀 왔다.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에 위치한 천주교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를 시작으로 신리, 솔뫼, 공세리 성당을 다녀 왔다. 개인적으로 저는 다 다녀온 곳이지만 성가대원 모두와 하루를 함께 한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동행 하였다. 하루 반나절을 주님이 주신 자연과 벗하며 임원들이 수고하며 준비한 맛있는 점심과 간식을 어린아이들 처럼 받으며 즐거워하는 우리 성가대원들이었다. 짧은 시간에 4곳을 다니며 우리 신앙의 선구자들인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뜻깊은 날이었다. 1. 성거산 성지 성거산 성지는 한국의 성지 중에도 보기 드문 해발 579미터로 차령산맥 줄기의 높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천연(天然)성지이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의 이주기(移住期)에 형성된 성거산 소학골 교우촌과 1830년대에 형성된 서들골(일명 서덜골) 교우촌은 박해시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피신처요 은신처였다. 특히 소학골은 한 때 칼래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로 삼아 활동하기도 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서들골 교우촌은 최양업 신부님의 큰 아버님인 최영렬씨가 1827년 고향 청양 다락골을 떠나 서울 낙동으로 이주해 살다가 다시 목천 서들골로 이주하여 살았고, 1839년의 기해박해 직후 최양업 신부님의 둘째 동생인 최선정(안드레아)가 백부 최영렬의 집으로 보내져 이곳에서 잠시 성장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 교우촌을 중심으로 병인박해 이후부터 계속 생겨난 교우촌들은 점점 통 폐합 되었다가 1920년에 와서는 7개의 교우촌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최양업 신부의 첫째 아우인 최의정(야고보)가 겨우 13살로 부친 최경환(프란치스코)과 모친 이성례(마리아)가 모두 순교하면서 어린 동생들의 양육을 담당할 수 없게 되자 모두 친척에게로 보냈다고 한다. 이후 성거산 교우촌은 오랫동안 교회사에서 그 이름을 감추게 되는데 그 이유는 소학골이나 서들골 두 마을 모두 외딴 산간 지대에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보다 비밀 공동체가 철저하게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 성거산 자락의 교우촌들(1800년부터 1920년까지 무려 7개의 교우촌 형성) ① 소학골 교우촌(현 천안시 목천읍 납안리 ) ② 서덕골(서들골) 교우촌: (현 천안시 목천읍 송전리의 서덕동) ◈ 먹방이 교우촌(1884년, 두세신부) 공소 신자수가 128명; 현 목천면 석천리) ◈ 매일골 교우촌(1895년, 퀴를리에 신부; 현 목천면 송출리) ◈ 사리목 교우촌(1901년, 드비즈) ◈ 석천리 교우촌(1913년, 공베드로 신부); 112명(현 목천면 석천리)수 ◈ 도촌 교우촌(1919년, 공베드로 신부); 110명(현 북면 납안리) ◈ 납안리 교우촌(1920년, 공베드로 신부) 51명 버스에서 내려 성지로 향하는 첫 길목에는 늘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 상이 꽃 화관을 쓰시고 우리를 영접해 주셨다. 성모님 상 앞에는 옥잠화, 애기 똥풀 꽃, 금낭화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첫번째로 줄부덤과 교우촌 터를 찾았다 이곳은 순교자의 길이다. 이곳을 지나 성모님 상 앞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성당과 십자가의 길이 있다. 모든 길목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로 아름다운 길을 조성하고 있다 이곳은 둥굴레 밭이다. 둥굴레의 뿌리는 다려서 차로 마신다 역시 둥굴레 길이 온통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져 하얗게 덮여 있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의 하이라이트 ~ 아름다운 자연경관 곳곳에 순교자들을 형상화한 동상이 놓여있다. 아름다운 숲길 사이로 여인들이 역시 아름운 자태로 성지를 향하여~~ 때죽나무 꽃이 넘 예쁘게 피어있다 때죽나무와 어울린 아름다운 숲 병인박해 목천 순교자들 병인박해의 목천 순교사를 보면 1866년 10월(음력) 소학골과 서들골, 주위의 교우촌이 발각이 되기 시작하면서 계속 포졸들이 덮쳐 이 곳 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잡혀 모두 23명이나 순교하게 되었다. 소학골 교우촌 9명, 서들골 교우촌 4명, 복구정 교우촌 2명, 베장골 2명, 장자동 4명, 공심리 1명, 목천 1명 모두 23명이나 된다. 이들은 서울 좌포도청(11명), 공주감영(6명), 청주(2명), 죽산(3명), 미상(未詳 1명)에서 순교하였다. 현재 병인년 10월 소학골에서 체포되어 공주 감영에서 순교 한 배문호(베드로)와 최천여(베드로). 최종여(나자로). 고요셉과 최씨 며느리 등 5명의 시신만이 성거산 성지 제1줄 무덤에 묻혀 있다. 이 이외도 순교자들의 시신을 현재 이 곳 성지에 이전(移轉)한 여섯분들의 증언과 순교자들 후손들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에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이 곳에 묻혀 계신다고 한다.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증거한 장한 순교자님들은 그 동안 오랫동안 오고가는 사람 없이 들꽃들과 벌, 나비, 짐승들만이 함께 했던 성거산성지의 교우촌과 무명 순교자 묘소는 침묵의 역사 속에 숨겨져 있었다. 소학골 교우촌으로 가는 길과 순교자의 길로 나뉜다. 교우촌의 집터를 방문한 후 다시 올라와 순교자의 길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꽃길과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월초 봄 꽃이 한참 필 때는 야생화꽃 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성거산 성지 담당 신부님께서 야생화에 대한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전에 왔을 때는 야생화 전시회가 한창인 때여서 너무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은 이미 봄꽃들이 거의 다 져버린 후이므로 몇 종류만 피어있다. 줄무덤 산자락을 예수님이 내려다 보고 계신다. 영혼은 함께 하시리라 소학골 교우촌으로 넘어가는 언덕 소학골 교우촌 터 교우들이 살던 마을에는 집 한 채 없지만 그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을 법한 곳에는 <집터>라는 팻말이 꽂쳐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골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옛날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찾아왔을 때는 첩첩산중의 깊고도 깊은 산골이었으리라 지금은 자연의 품에서 흔적만 남아 5월의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모습만 보여준다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힘들게 올라가는 우리 성가대원들의 뒷모습 가는 길목마다 우리성인 호칭기도를 올리도록 등잔 형상으로 조형되어 있다. 우산나물이 꽃을 피우고 있다 신앙의 증거자들의 손, 노랑 붓꽃이 조형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 역시 순교자들의 흉상들을 조가각한 조형물 동의나물꽃이 주위에 잔뜩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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