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과 순수시 우리 나라의 순수시는 1930년대 박용철이 주재한 <시문학>(1930)을 중심으로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에 의해 지향되었다. 이 중에서도 박용철과 김영랑이 중심 인물이었다. 박용철은 그 자신이 적지 않은 시를 쓰기도 하였지만 작품보다는 순수시 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론에서 더 중요한 활동을 보였다. 그가 내세운 이론에 어울리는 작품으로서의 뛰어난 성과는 김영랑에 의해 이루어졌다. 김영랑은 우리말을 다루는 언어 감각에서 김소월 이후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서,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이로 인하여 '북도에 소월(평북 출생), 남도에 영랑(전남 출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주장한 순수시란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란 뜻이었다. 그 결과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편중되면서 말을 다듬는 데에 빠졌다는 결함은 있으나, 이들에 의해 우리의 현대시가 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좀더 세련된 차원으로 나아갔다는 점은 우리 시사(詩史)에 빛나는 업적이라 하겠다. 한편 <시문학> 동인들에 의해 주도된 순수시 문학 유파를 '시문학파'라 이르는데, 이들은 문학에서 교훈적 계몽주의나 정치적 목적 의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언어의 기교, 순수한 정서를 중시하였으며 특히 정지용에 와서 우리 시는 완전히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