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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향한 ‘감각의 착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16세 때 처음 시를 발표하여 4년 만에 중단했다. 그리고 3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17세 때 폴 베를렌에게 8편의 시를 보냈고, 그중 [모음들]등이 발표됨으로써 랭보는 [모음들]을 통해 불어의 모음에다 색깔을 부여해 ‘소리의 시각적 이미지’를 창안해냈고, 그의 독창적인 시세계의 출발점을 알렸다.
A 까만색, E 백색, I 빨강색, U 초록색, O 파랑색:모음들이여,
내 언젠가 너희들의 은밀한 탄생을 말하리.
A, 코를 찌르는 악취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빛나는 파리떼의 가는 털에 덮인 시커먼 콜셋,
어두운 검은 만E, 아지랑이와 천막의 눈부신 백색,
자랑스럽구나 빙하의 창, 백발의 왕, 산형화의 떨림,
I, 주홍빛 옷감, 내뿜는 피, 참회의 황홀함
혹은 분노를 머금은 아름다운 입술의 미소,
U, 파도, 청록색 바다의 신성한 전율,
가축들로 뒤덮인 목장의 평온함, 넓고 학구적인 이마에
신기한 힘이 새겨놓은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하게도 가슴을 후비는 듯한 수고한 나팔 소리
온 세상과 천군 천사가 지나간 뒤의 정적
-오오, 오메가, 그녀 눈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광채!
이 시를 쓰고 난 뒤, 랭보는 그의 시 [착란 2-언어의 연금술]을 통해 “나는 자음의 형태와 운동을 조절했고, 본능적인 리듬으로 나는, 언젠가는 온갖 감각에 모음들의 색깔을 발명했다. 검은 A, 하얀 E, 붉은 I, 파란 O, 초록의 U, 나는 각 이를 수 있는 시어를 발명하리라 자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다섯 개의 모음에 감각은 물론 시공간의 의미까지 부여해 ‘감각의 착란’과 ‘의미의 마술’ 그리고 ‘언어의 연금술’을 꾀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뒤 후고 프리드리히는 “시 속에 나타나는 이국의 바다와 지방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이다. 시는 그 어떠한 실제 사실들과도 연관을 갖지 않는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상상력은 드넓게 소용돌이치며 확장되는 비실재적인 공간들의 영광에 찬 환영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이 작품은 가히 혁명적인 작품이었고, 훗날 전위적인 실험시의 본보기가 되었다.
랭보는 당시 평단의 반응에 힘입어 곧이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취한 배](1871)를 발표했다. 이 시는 전통적인 작시법을 따르고 있지만, 언어 구사의 기교가 놀랍고, 상징과 은유의 선택이 파격적이어서 당대 최고의 문제작이 되었다.
17세의 불량소년, ‘견자의 편지’를 쓰다
랭보의 ‘창작시론’은 이른바 ‘견자(見者)의 편지’로 불리는 두 통의 편지에 집약되어 있다. 그 하나는 그가 샤를빌중학교 재학 시절 담임교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보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승의 친구이자 저명한 시인인 폴 드므니에게 보낸 것이다. 1871년 발송한 이 편지들을 통해 랭보는 ‘견자(voyan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랭보는 “이(견자가 되려는 노력)는 모든 감각들의 착란을 통하여 미지에 도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때의 ‘미지’는 보들레르나 말라르메가 추구하던 공통의 목적지로서, 정신과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스스로 ‘불량소년’이 됨으로써 정신의 해방을 도모해야 하고, 불량소년은 기존의 역사나 종교, 윤리 등 인간의 정신과 감각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파괴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질서와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구속감, 일상적안 행복과 사랑, 윤리 의식 등 인간 정신의 퇴적층으로부터 벗어나는 내적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랭보가 이와 같은 생각을 굳히게 된 이유는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견자의 두 번째 편지’라고 불리는 폴 드미니에게 보낸 편지글에 그 내용이 소상하게 나타나 있고 랭보는 이 편지글을 통해 지난 2천 년 동안의 시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랭보는 “조화로운 삶을 노래한 ” 고대 시에서부터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시를 “운을 붙인 산문”이라고 통박하면서, 그것은 “우둔한 세대들의 장난이며, 무기력함”이라는 비난을 퍼붓는다. 그리고 이 편지글을 통해 “구리쇠가 잠깨어 나팔이 된다 하여도 구리쇠의 잘못은 아닙니다.”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여기서의 ‘구리쇠’가 지난 2천 년 동안의 시문학이라면, ‘나팔‘은 랭보 자신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그는 “나는 새 사상의 개화를 목도합니다.”라고 천명하면서, 견자를 향한 의지를 다짐한다.
랭보는 “감각의 착란”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착란이란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라고 말한다. 결국 시인은 그러한 착란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어야 하며, 그러하여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받은 자” “최상의 박식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시인은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고, 그곳이 바로 ’시인이 태어나는 자리‘이며, ’견자로서의 시인‘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이 견자란 어떤 존재인가?
일반적으로 ’견자‘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투시자‘ ’깨달은 자‘ ’초자연적 본질의 세계를 파악한 자‘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를 의미하는데, 랭보의 ’견자‘는 이를 뛰어넘는다.
시인은 ’나‘를 버리고 ’타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견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타자’가 되어야 한다. 시인, 즉 시 창작의 주체인 ‘나’가 ‘타자’가 되다니! 이는 “의도적으로 국외자가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적인 추진력은 신의 자기 훼손, 고의적인 추화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랭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맞서는 코기토를 제안한다.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가 아닌, ’나는 생각되어진다‘이다
.또한 “나는 하나의 타자”라는 말은 ’시의 화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발언이다. 이때의 ’타자‘는 ’1인칭 주체‘, 즉 ’경험적 자아‘로부터 이탈된 자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제3의 자아‘를 칭하는 말인데, 이 자아는 일상적이고 주정적이고 논리적인 자아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현대시는 ’전기적 진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랭보의 ’타자론‘은 당시 시인들이 내세웠던 ’시의 화자‘, 즉 ’경험적 자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앞서 살펴본 “구리쇠가 잠깨어 나팔이 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즉 ’구리쇠‘와 ’나팔‘을 ’나‘와 ’타자‘의 관계로 바꿔보면, ’구리쇠‘가 ’나팔‘을 깨어나야 ’악기‘가 되는 것처럼, ’경험적 자아‘인 ’나‘의 존재가 ’타자‘가 되어야 ’미지의 것‘을 직관하는 시를 쓸 수 있다는 의미를 추출해낼 수 있다.
이처럼 랭보는 ’미지의 것에로의 도달‘을 시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랭보는 “시인은 그 시대의 만유혼 속에서 움직이는 미지의 것을 척도로 정의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들음”이다. 따라서 그 실질적인 내용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 개념은 보들레르에게서 나온 것인데, 랭보는 [악의 꽃]에서 발견되는 ’공허의 초월‘의 이론적 구상을 무질서한 의식의 파편으로 형상화해냈다.
랭보는 ’무의식의 꿈‘을 자기 정신의 총체로 파악했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가 아닌 ’나는 생각되었노라‘는 명제를 던지게 된 것이다. ’무의식의 혼돈‘은 ’얼굴에 온통 사마귀를 심어서 가꾸는’ 것처럼 영혼을 기괴하게 만들어 ‘감각의 착란’을 도모한다. 이러한 ‘정신적 실존의 긴장’이야말로 새롭고 진정한 시의 정신이며, 시인은 ‘미지의 것을 직관하는 견자’가 된다는 것이다.5891
거대한 비약의 과정에서 파멸해도 좋다
랭보는 그의 시 [취한 배]를 통해 ‘감각의 착란’이 만들어내는 ‘혼돈의 지표’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별들이 우러나와, 젖빛으로 빛나고,
초록 창공을 집어삼키는, 바다의 시에
몸을 담갔다, 거기, 창백하고 넋을 잃는 부유물,
사념에 잠긴 익사자 하나가 이따금 떠내려가고,
거기, 대낮의 광채 아래 착란과
느린 리듬, 갑자기 그 푸름을 물들이며,
알코올보다 더 강하고 우리의 리라보다 더 광활한,
사랑의 쓰디쓴 적갈색들이 발효한다!
나는 안다, 번개로 갈라지는 하늘을, 회오리 물기둥과
되밀려오는 파도와 해류를. 나는 안다, 저녁을,
비둘기 떼처럼 솟구치는 새벽을, 그리고
나는 때때로 보앗다, 인간이 본다고 믿었던 것을!
나는 꿈꾸었다, 바다의 눈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입맞춤,
눈부시게 눈 내리는 초록의 밤을,
전대미문의 정기의 순환을,
노래하는 인광들의 노란 그리고 푸른 깨어남을!
이 시의 화자는 배의 닻줄이 풀리고 선원도 없이 강을 E라 내려와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모티프가 겹쳐 있다. 그 하나는 여행, 다시 말해 세상으로부터의 탈주이고, 다른 하나는 화자의 내적 경험을 열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상황이 ‘착란’처럼 뒤섞인다. 그러니까 시인의 시적 주제인 자유와 도취, 영광과 환멸 등이 “넋을 잃은 부유물”이 되어 “”느린 리듬“으로 흘러가는 상태다. 외부의 풍경과 내면적 자아가 ”번개로 갈라지는 하늘“이 되고, ”회오리 물기둥“으로 뒤엉켜 마침내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는 ”전대미문의 정기“ ”노래하는 인광“으로 변하고 만다.
랭보는 ”시인은 전대미문의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물들을 통한 거대한 비약의 과정에서 파멸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다른 무시무시한 일꾼이 나타나서 그 자신이 좌초해버린 저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
보들레르를 ‘현대시의 기원’으로 본다면, 랭보는 ‘현대시의 혁명이었다. 혁명적 이단아답게 ”국립도서관을 불태워야 한다.“고 소리쳤던 그는 ”나는 표현 불가능한 것을 기록했고, 소용돌이를 움켜쥐었다.“고 회고했는데, 랭보에게 이를 묻는다면, 랭보는 아마도 ”시인은 아직 태어나지 않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논평들
스테판 말라르메는 랭보가 행한 언어 운용 방식을 주목했다. 낯설고 주술적인 단어를 재구성하여 시적 대상을 전혀 다른 분위기 속으로 띄워 올린다는 것이다.
랭보의 시구는 일상적인 표현법의 이런저런 단편을 그야말로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의외성을 가지며 언어체계를 낯설고 주술적이며 새롭고 전체적인 단어로 재구성하여 당신에게 이야기하며, 그와 동시에 지칭된 대상의 어렴풋한 회상이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부유한다.
프랑스의 문예이론가인 G. 랑송은 랭보가 초현실주에 미친 영향을 논했다. 그는 ”시인은 불의 도둑“이라는 랭보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적 대상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시인의 ’직관‘을 시의 중심부에 옮겨온 점을 주목했다.
그는 또 특히, 초현실주의자들보다도 전에, 시가 알 수 없는 것의 탐색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표현이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인은 정말 불을 훔치는 사람이다. 그가 거기서 가져오는 것이 형태가 있으면, 그는 형태를 준다. 그것이 형태가 없으면 그는 형태 없는 것을 준다.‘ 직관에서 얻어진 그대로의 것들이 이렇게 하여 시 속에서 시민권을 얻게 된 것이다.
후고 프리드리히는 랭보 시의 상상력과 시문학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특히 1955년 파리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회의 카탈로그에 수록된 랭보의 말이 새삼 새롭게 주목된다.
전체적 상상력은 인지하고 묘사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무제한의 창조적인 자유로서 작용한다. 자신의 내용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창출하려는 주체의 명령에 따라 현실세계는 조각이 난다. 파리 시절의 랭보가 한 발언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회화를 지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 오랜 관습인 모방을 추방해야만 한다. 대상들을 복제하는 대신에 회화는 선, 색채, 그리고 외부 세계로부터 차입되었긴 하지만 단순화되고 제어된 윤곽들을 사용하여 자극들을 강제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20세기 회화의 개념에 접근함에 있어서 이 발언이 참고가 되어 왔는데(1955년, 파리 피카소 전시회의 카탈로그),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랭보의 시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 발언은 구상성을 기준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는 현대 사회의 정신을 선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랭보의 시는 무엇보다 보들레르의 저 이론적인 구상들의 실현으로 볼 수가 있다. 1871년 이래로 그의 시는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어떠한 의미도 제시하지 않고, 파편들, 단절된 선, 극히 감각적이긴 하지만 비실재적인 형상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혼돈이 저 통일-의미 초월적이며 모든 불협화음과 화음을 두루 포괄하는 음향의 통일-속에서 진동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와 자아를 동시에 탈형상화키는 그의 시가 스스로를 파괴시키기 시작하는 경계에 도달했을 때, 이제 19살의 랭보는 지조 있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침묵 또한 시인 존재로서의 행위다. 종래의 시 안에서의 극단적인 자유는 이제 시로부터의 자유가 되었다.
옥타비오 파스는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의 시문학사적 의의를 논하면서, 현대시의 변증법적 상호 투쟁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탁월한 인식력과 예지력으로 작금의 현실을 쳇바퀴처럼 맴도는 지옥의 모습으로 꿰뚫어본 최초의 시인은 어쩌면 랭보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사회에 대한 처형이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인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동시에 시에 대한 단죄이기도 하다. (중략)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후엔, 우리의 위대한 시인들은 시의 부정을 통하여 최상급의 시를 창조해 왔다. 그들의 시는 시적 경험에 대한 비판이며, 언어와 의미에 대한 비판이며, 시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시적 언어는 언어의 부정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원은 닫히고 만다.
이렇듯 랭보는 ”시에 대한 단죄“를 선언하면서 그의 시를 시작했고, 현대시의 위대한 금자탑을 떠받히는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