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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현교회의 역사를 혹자는 여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인물 가운데는 1950년대부터 2011년까지 교회를 지키고 있는 조연순권사와 이주연권사가 있다. 이들은 김사라 할머니를 비롯한 초기 설립자의 신앙생활을 직접 보고 배운 믿음의 후예들이다. 이주연권사는 1940년(?)에 출생하여 1950년대의 풍성하던 주일학교 활동의 기억과 더불어 면면히 이어지는 여성들의 신앙적인 삶에 대한 존경과 회상으로 교회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주연권사의 증언에 의하면 아마도 초대여선교회 회장인 조옥성 권사님과 10년 넘게 서기로 수고하셨던 김공헌 권사(조성일 장로님 어머니), 그리고 일일히 이름을 거명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헌신된 여선교회 회원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먼저 박수남 권사의 귀감이 되는 선교와 봉사활동이 만리현의 여선교회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고 한다. 박권사는 교회 청년들이 마포형무소 위문공연을 하도록 주선하고 그 모든 대원들을 형무소 사택에 초대해서 당시 주리고 힘든 청년들과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정성 어리고 풍성한 애찬을 대접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옥성권사는 음식솜씨가 뛰어나서 교회의 크고 작은 행사에 정성으로 특별히 소문나게 맛있는 식사대접을 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이주연 권사는 또한 생존해 계시는 박설봉 감독님의 사모님 되시는 김가화 사모님이야 말로 교회의 어머니로서 봉사와 희생, 기도의 헌신으로 여성들과 모든 힘든 이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품은 믿음의 어머니로 이야기한다.
그 다음으로 기도의 권사님으로 기억되는 몇몇 분이 있다. 1960년대 6.25 이후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국가와 사회 현실에서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철원의 대한수도원으로 그리고 삼각산으로 기도에 정진하던 유정애권사님이 계시다. 모든 분들이 기도생활에 전념하셨지만 체구가 크시고 음성도 우람하셨던 한복귀권사님도 많은 이들에게 기도권사님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젊은 날부터 늘 연약해 보이셨지만 96세까지 장수하셨던 장원기 권사님도 독특한 개성으로, 기도와 감사의 생활로 자신의 개인적인 모든 희로애락을 뛰어 넘어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의지한 전형적인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다른 곳에서 언급되기도 하였지만 기도와 봉사,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이신 분으로 현존하는 신우희장로님을 주저함 없이 들 수 있다. 남선교회가 조직되어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0년까지 교회의 실질적인 선교와 봉사는 어머니되는 여선교회가 아들되는 청년과 학생들을 그 따듯한 품에 안고 사랑으로 배불리 먹이고 눈물 뿌려 밤새워 위해서 기도한 역사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것이 만리현교회의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도원부 이야기
만리현교회 믿음의 어머니들의 눈물어린 기도는 1966년 교회가 화재로 전소하면서 폭발하였고, 그 눈물로 1970년에 정등운 감독이 시무하던 시기에 새예배당을 봉헌한 후에도 꺼지지 않고 이어져 수많은 영적인 열매를 맺었다. 새예배당 강단과 도원부가 바로 기도의 용사들이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밤새워 기도하던 장소이다. 수많은 기도의 용사가 있었는데 모든 분들의 성함을 누락하지 않고 기억하기는 쉽지 않지만, 김효원전도사와 김덕하 장로와 같은 지도자의 모범적인 헌신도 있었지만, 위에 열거한 한복귀 권사, 장원기 권사, 노임숙 권사, 김춘범 권사, 손성금 권사, 손길순 권사, 황납실 권사, 유재춘권사, 유재춘 권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분들의 대부분 남편을 잃은 미망인으로서 문자 그대로 예수님을 자신의 신랑으로 맞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삶을 산 분들이다.
왼쪽 뒷 줄에 김실월권사님(박양미선생 조모), 양점순권사님, 안순희 권사님, 김춘범권사님(손양백 권사 모친). 그리고 앞 쪽으로송명호 권사님, 송명호권사님, 노임숙 권사님(최정희 권사 모친), 손성금 권사(이남순 집사 시모), 김효원 전도사님(박완/박순 권사 모친), 손길순 권사님, 송재용 권사님(이길종 장로 모친) 등이 보인다. 어느 주일날 아침 일찍 오셔서 예배를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는 예수님의 신부들이다. 촬영장소는 바로 도원부이다.
애찬위원장 이야기
주일예배를 위해서 수고하는 성가대원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한 것은 김광원목사님이 오신 197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교회 근처의 찐빵집, 그리고 가끔 재정이 허락되면 짜장면을 주일 오후에 먹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성가대원 만이 아니고 더 일찍 나와서 봉사하는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도 교회 재정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 애찬위원장을 맡았던 분은 안경모 장로님의 부인되는 이은순권사라고 한다. 그녀는 만리현교회로 시집온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점차 믿음이 자라면서 특히 김광원목사님 재직시절에 교회의 모든 애찬을 정말 구수한 정담과 웃음과 함께 사랑의 애찬을 마련하였다. 이름없이 말없이 설거지나 빨래 같은 허드렛 일에 순서와 조건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손에 물을 담그시던 분 가운데 장애숙 권사, 박동렬 권사 등을 뺄 수 없다.
이은순 권사 같은 분이 솔선해서 10년도 넘게 애찬위원장으로 봉사하였고 손한숙 권사도 봉사하는 등 만리현교회의 여선교회가 교회의 모든 애찬과 미화 등 봉사에 앞장서던 중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이 1980년 안경철 목사님 재임시절이다. 저녁예배를 오후 2~3시의 석양예배로 전환하면서부터는 전교인을 대상으로 주일 오찬을 준비하게 됨으로 해서 경비와 봉사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새롭게 정착된 제도가 바로 시무장로의 부인들이 돌아가면서 1년씩 애찬위원장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윤혜진 권사, 김금숙권사, 안혜경 권사, 전순애 권사, 장영순 권사, 박 순 권사, 임인경 권사, 박금례 권사, 전순희 권사, 김경모 권사 등이 2009년까지 봉사하였고 2010년부터 새롭게 바뀌어서 음식솜씨가 뛰어나고 말없이 봉사하는 이연숙 권사가 2010년과 2011년에 애찬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모두 훌륭하지만 교회의 큰 행사인 담임목사님 생신, 창립기념일 행사 등에 그 시대에 앞서가는 상차림으로 교회의 위상을 높인 위원장으로서 조성일장로의 혁혁한 외조를 받은 안혜경권사, 전순애 권사, 장영순 권사 등을 들 수 있다. 지금의 만리현교회의 애찬당번은 속회별로 돌아가며 봉사하고 있는데 점차 남선교회 회원들이 설거지와 배식에 참여하는 참여도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건축을 위한 여선교회 바자회
안경철 목사는 여선교회의 확장과 발전의 노우하우를 갖고 있었다. 부임시에 2개의 여선교회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9개의 여선교회로 분할하였다. 안나, 유니게, 루디아, 룻, 다비다, 에스터, 마르다, 드보라, 마리아. 할렐루야, 시온, 호산나, 임마누엘, 갈보리 -5개의 찬양대 이름과 함께 모두 안경철 목사가 기도하면서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렇듯 9개의 여선교회는 교회건축을 위해서 꾸준히 적금을 드는 한편, 가을마다 바자회를 열어서 그 수익금을 전액 건축헌금으로 봉헌하곤 하였다. 어느 해인가는 교회에 차량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여선교회 열성회원들의 제안으로 바자회를 봄에도 열어서 800만원 이상의 수익금을 차량헌금으로 바쳐서 만리현교회 최초로 15인승 밴 이스타나를 구입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바자회를 위해 선교회 별로 품목을 정해서 직접 만들기도 하고, 또는 사오기도 하면서 정성으로 준비하였고, 남선교회 교회들을 바자회장 설치를 위해서 늘 봉사해 주었다.
새성전 건축 전 까지는 여선교회 주관으로 바자회를 하다가 2005년 새성전을 봉헌하고 나서 남선교회도 협력하여 2006년도에 전교회적으로 '이웃돕기 바자회'를 개최하여 큰 성황을 이루어서 그 결과로 지역민에게 봉사하는 바자회로 변천하였다. 이런 전통을 이어서 100주년 기념바자회를 2010년 10월 9일에 대성황리에 개최하였다.
까페 봉사
까페 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전교인 식사가 시작된 1990년경부터이다. 이전 예배당 애찬실 한 옆에 있는 아주 작은 방에서 커피와 음료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하였는데, 최초에는 이풍자권사, 박완 집사 등이 봉사를 시작하였다. 1995년 경 조영순 권사가 수고하던 즈음에는 새로나 백화점에서 치킨과 커피를 팔던 김칠순 속장이 원두커피 내리는 기계를 기증함에 따라서 설비와 서비스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장로님들 사이에는 그 주일에 대표기도를 한 장로님이 그 날의 차를 접대하는 전통도 여러 해 지켜지기도 하였다. 2005년도 새성전 봉헌 이후에 이유숙 권사가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 봉사하였으며 장효순 권사는 이유숙권사도 도왔고 2011년 현재 수고하고 있는 이경순 권사도 돕고 있다. 오늘날에는 새성전 로비에서 교회에 오는 모든 이를 영접하고 친교와 담소를 나누게 하는 보금자리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사회사업부 판매 사업
한국교회의 전통인 성미 바치기가 성미헌금으로 변형되던 1990년대에 이와 함께 시작된 것이 사회사업부 판매 사업이다. 바자회는 1년에 한 번 하지만 사회사업부는 연중 계속해서 참기름, 돈까스, 미역, 보리쌀, 등의 각가지 음식과 식재료를 등을 팔아서 그 수익금으로 여선교회 사업을 부요하게 하였다. 초창기에는 이은순권사, 안혜경 권사, 이풍자 권사 등이 수고하였고 후에 김금숙 권사가 맡아서 정확하고 성실하게 수 십년 봉사하였으며, 현재는 김혜숙 권사, 홍영자 권사 ,김희숙 권사 등이 이 일에 매주 헌신하고 있다. 2009년에는 사회사업부 판매 이익금으로 500만원의 장학금을 헌금하기도 하였다.
세브란스병원 찬양봉사 30년
매월 4째 주일 4시에 바쁘게 교회를 떠나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있다. 이들은 신촌세브란스 병원의 오후 5시 예배에 찬양을 맡았기에 부지런히 향한다. 현재는 박완권사가 대표로 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박 순권사, 손한숙권사, 손영준 권사 이렇게 넷이서 중창으로 병원의 주일오후 예배를 돕고 있다. 이 봉사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1979년 당시 세브란스의대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임인경 집사이다. 그녀의 제안에 따라서 여선교회 드보라 중창단의 정준선, 박순, 박완, 안혜경, 김주연, 임경희 등이 봉사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다섯째 수요일의 예배에 봉사를 맡아오다가 몇 년전부터 매월 넷째주일 오후예배에 찬양봉사를 하고 있다. 때로는 오희영권사 등 찬양율동 팀이 동행하기도 하였다.
여선교회 예술제와 연극공연
여선교회 회원들이 흥이 많고 노래와 춤, 만담과 연극 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제를 즐겨운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가운데 1991년에 새로운 발전이 있게 되었으니 바로 여선교회 예술제의 개최이다. 당신 선교부장이던 김옥수 권사님의 제안과 후원으로 오희영문화부장이 준비하여 제1회 여선교회 예술제를 안나선교회부터 9개 여선교회가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몇 달 간 준비하여서 오후예배에 발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전교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안나선교회 회원들은 성경암송을 하였는데, 성경을 혼자 몇 장씩 줄줄이 외우는 회원도 있어 모두 놀라기도 하였다. 제일 어린 마리아선교회까지 각기 정성으로 준비하였고 회원 친목과 선교의 커다란 힘이 되었다. 예술제는 그후 여선교회 합창경연대회로 바뀌기도 하였고, 후에는 교구찬양경연대회로 발전되어 전교인이 무대에 서는 커다란 축제로 확대되었다.
1991년에 1회 예술제를 정성스럽게 거행한 여선교회는 그 이듬해에 연극반을 조직하여 6개월간의 맹연습 끝에 1992년 12월 27일 밤에 바바라 유르겐센 원작의 '오 하나님' 이라는 작품을 한양대연극영화과를 나오신 김보경 선생님의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당시 여선교회 연합회장 차봉자 집사를 비롯한 모든 분들의 후원에 힘입어 공연한 이 작품은 여선교회 회원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신앙예술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박순 집사가 연극반 반장으로서 박복례, 이지영, 류호슥, 이복원, 손한숙, 오희영집사등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4년 7월에 여성신학적 해석에 의한 "성서 속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을 다시 한 번 김보경 선생님의 연출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여선교회 연합회장 한명희 권사의 적극적 후원과 온 교우들의 성원아래 여름밤의 공연을 큰 호평을 받았다. 박순 집사가 다시 연극반 대표를 맡아서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였으며, 이경순, 박복례, 홍난영, 정순의, 서명숙, 김미라, 김미희, 이지영, 손한숙 집사 등이 이번 에도 다시 6개월간 땀을 흘려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 후 다시 여선교회 연극의 열정이 불타올랐는데 이번에는 송주선 전도사님이 직접 각본, 연촐, 감독을 맡아 지도하여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각색된 작품 "천성을 향해가는 성도들"를 교회에서 공연한 후 2007년 10월 9일 중구용산지방 여선교회 예술제에 출연하였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위문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순례자역을 서영봉권사, 선지자 이경순권사가 맡았으며 전순희권사, 손한숙권사, 김희숙권사. 박일남권사, 이강희집사, 박완권사, 황금숙권사, 김희정집사, 이춘자 집사, 이은숙 장로 등이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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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주연권사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경찰에 투신하여 1967년5월 소년경찰 전문요원으로 특채, 2001년 경찰은퇴, 2005년 5월 제12대 여자경찰회장, 여경재향경우회장을 지냈고 한국여자경찰60년사를 집필하였다.
2) 박수남 권사는 당시 마포형무소장의 부인으로서 당시 이강훈 장로의 부인이고 여선교회 활동의 주역이던 조옥성권사와 콤비를 이루며 봉사하던 여선교회의 인물이다.
3) 한복귀 권사는 김병욱 장로님의 부인되시고 현재 여선교회 총회장인 손순희 권사의 시모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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