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반연간 연구지인 <씨즈 라이프>에 투고한 글입니다.
함께 읽고 함께 토론하는 성서 해석 공동체, 아나뱁티스트
1. 뱁티스트에서 아나뱁티스트로
나는 침례교인으로 자랐다.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형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이 침례교회였다. 대나무 밭이 무성한 고향 땅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하얀 예배당에서 침례교회는 참된 교회이자 초대교회 정신과 핏줄의 적자이고, 신사참배를 교단 전체가 거부해서 교단이 해체되고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는 드높은 기상, ‘그 책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Book)이라는 자부심을 물려주었다.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흔치 않는 그리스도인이 침례교인이라는 말에 소수교단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 책의 사람들’이라는 슬로건을 침례교회만이 아니라 장로교와 감리교 등에서도 사용한다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나를 키운 침례교회에 대한 환상에 살짝 금이 생겼지만, “그래, 당연하지.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책의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고, 성서에 대한 확신을 더욱 다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나, 대학원에서 기독교철학과 영미현대신학을 전공하면서도 성서신학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전공 외 과목은 성서신학 쪽을 기웃거렸다. “현대 신약신학 동향”이라는 과목이었지 싶다. 수업을 마치고 걸으면서 교수에게 말했다. “이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주장은 기독교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대답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정당화가 필요 없습니다. 성서는 성서로 충분합니다.”
어쩌면 그날 이후로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인식론적 정당화에 대한 근대의 메타 내러티브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반기초주의’(nonfoundationalism)로 결정되었는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의 권위와 스토리에 기반해서 나를 설명하는 방식의 근대의 인식론이 와르르 붕괴되었다. 실토하자면, 내가 그 교수에게 건넨 말은 내 전공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또는 타 전공자로서의 학문간 연대와 연계의 차원에서 한 말일 뿐, 내 진심이나 확신은 아니었다. 그간 나의 생각이 그르지 않다는 확인이었다.
고심 끝에 학위 논문의 주제는 제임스 맥클랜던(James Wm. McClendon, Jr)과 그의 반기초주의 신학으로 정했다. 그는 위대한, 그러나 문제적 신학자인 존 요더의 영향력을 강력히 받았고, 아나뱁티스트 윤리학자 3인방(요더와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낸시 머피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는 맥클랜던은 내게 그 자신의 신학 보다는 요더와 아나뱁티스트에 이르는 관문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간혹, 출간된 학위 논문을 슬쩍 뒤적거려보면, 지금의 내 생각이 그곳에 담겨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맥클랜던을 통해서 요더와 아나뱁티스트를 만났다.
2. 아나뱁티스트와 성서
나의 성서 읽기와 관련해서 뗄 수 없는 두개의 신학이 있다. 아나뱁티스트 말고도 복음주의가 그것이다. 둘의 공통점은 성서의 권위와 성서에 대한 헌신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경의 사람들이었고, 언제까지나 그 책의 사람들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 실천에 있어서 성서의 최종적 권위에 관해 이의가 없다. 아나뱁티스트의 기원에 관해서 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난무하지만, 아나뱁티스트를 있게 한 것은 ‘성서의 영향’이다.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거나, 복음주의적 인문주의자와 왈도파(Waldeneses)를 거명하더라도,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다른 어떤 집단이나 혹은 그 집단을 모두 다 합한다고 할지라도 성서보다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저 인용문에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아나뱁티스트들보다 성서를 성서로 읽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교회사에서 없었다고.
아나뱁티스트가 성서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외부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도 아나뱁티스트들은 철저한 성서의 사람들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말이다. “오직 성경의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려 했던 종교개혁 진영은 급진적 종교개혁, 혹은 재세례파였다.” 아나뱁티스트들이 “유아세례, 교회와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 그리스도인의 전쟁참가”를 성경에는 없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한 것도 성경에 대한 충실과 충성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 없다.
다른 하나가 복음주의이다.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맥그래스는 복음주의의 가장 도드라진 독특성을 성서의 권위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복음주의의 지배적 확신은 6가지인데, 그 중 첫 번째가 성경이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첫 번째가 아니라 모든 것을 관통하는 만능열쇠와 같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고 속에서 성경의 권위를 확증하는 면에서 일치를 보인다.”
내가 대학시절 만나고 활동했던 친구들은 대개 ‘복음주의’라는 레테르로 자신을 설명했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복음은 복음이지 웬 주의(ism)를 갖다 붙인담.” 그리고 근본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보였다. 지금도 그렇다. 교리는 근본주의, 실천은 복음주의라고 말하지만, 부끄러운 이름인 근본주의를 세탁하고 포장하는 멋진 명명으로 읽혔다.
명칭에 대한 얼마간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친숙했다. 그것은 그 그룹에 속한 벗들과의 관계가 미친 영향이 크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은 ‘성서에 대한 충성’이었다. 성서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모든 행동을 성서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활동하는 선후배들의 모습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고 동조해야지 않는가. “사회 참여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실제적 방법은?”이라는 질문으로 압축될 고민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과 같이 성경 중심적 모습이었다.
이런 나의 확신을 심어준 것은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이었다. 존 스토트가 영국성공회 신부라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라지만, 사이더가 대표적인 아나뱁티스트인 메노나이트라고 하면 다들 당황해 한다. 그는 내게 아나뱁티스트가 복음주의자일 수 있고, 복음주의자는 아나뱁티스트일 수 있다는 하나의 모델이자 샘플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한 논문에서 진정한 복음주의자는 아나뱁티스트이고, 반대로 참된 아나뱁티스트는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복음주의자라면,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따르고자 한다. 그런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사안이 원수 사랑과 비폭력 평화주의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외면하고서 복음주의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제자도는 시쳇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아나뱁티스트라면, 예수 그리스도에 충성된 신자이고자 할진대, 평화주의에 대한 헌신 못지않게 회심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와 만날 수밖에 없다. 제자가 아닌데 비폭력적 제자도는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균형을 잡아줄 수 있다. 복음주의는 아나뱁티스트에게 제자도의 출발점인 회심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고, 아나뱁티스트는 제자도의 일관되고도 전일적인 헌신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3. 교회는 성경 해석학이자 해석공동체
교회가 성경 해석 공동체라는 명제를 내 몸 깊숙이 각인시켜 준 것은 바로 레슬리 뉴비긴이었다. 그는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에서 다종교적, 다문화적 상황에서 기독교 복음의 독특성과 유일회성을 주장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기존 사회의 타당성 구조에 도전하는 복음의 힘을 확인해 주었다. 소명에 충실한 공동체의 두 번째 특징인 진리의 공동체에서 교회는 그 사회의 타당성 구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배적 구조를 의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책의 18장, “복음의 해석자로서의 회중”이 특별히 기억난다.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는 문장이 그 챕터에 있다. “나의 주장은, 복음을 믿고 복음에 따라 사는 남자와 여자들로 이루어진 회중이 복음의 유일한 해석자이자 단 하나뿐인 해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학 훈련을 받은 목회자나 전문신학자만이 아니라 모든 회중이 성경을 해석하고 살아내는 해석 공동체가 되는 것이 그는 ‘단 하나의 해답’이다.
뉴비긴의 말에서 주목해야 할 전제는 두 가지다. 복음을 실천하고 순종하기로 결단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고, 헌신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곧 그 가르침을 살아낸다는 말과 같다. 단지 지적인 호기심의 대상에 머무를 수 없다. 그들이 비록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한 개인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하나의 몸을 이루어 서로를 지지하고 조정하는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신학자나 목회자의 성경 해석을 독점할 수 없고, 성경 해석의 권한을 모든 성도에게 개방한다는 뜻이고, 최고 수준의 한 개별 신학자가 아니라 성도의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성도가 각각 성경을 해석하되,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성경 해석학 공동체가 된다는 말이다. 교회사에서 가장 성경에 충실했던 성경 해석 공동체를 꼽으라고 하면 바로 아나뱁티스트일 것이다.
4. 성경 해석의 권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것이 특정한 시기에 주어진 것이더라도, 그것은 매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렇기에 지금 여기서도 성령의 인도 하에서 읽혀지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은 개혁자들의 양보할 수 없는 초창기의 확신이었다. 보통의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을 읽을 만한 능력만 있다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루터나 츠빙글리도 숨기지 않았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하며, 복잡한 언어학적 이론들에 익숙한 경우에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것은 정확하게는 전 신자 제사장 원칙의 훼손이자, 성경의 평이성과 명료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에서 모호한 성경은 해석이 필요하고, 그것을 아무에게나 내맡길 수 없다는 쪽으로 초점이 이동하였다. 그리하여 ‘성경의 명료성’ 원칙이 주류에 의해 조용히 무시되었고, 급진파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쟁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관주도적 개혁자들은 정치적 접근을 취한다. 아나뱁티스트들과 직접적으로 대결했던 츠빙글리는 교회론과 성례론에 있어서 해석의 권위를 시의회에 위임하였다.
결국 시의회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에 개입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중략) 시의회는 사실상으로 그들이–교황이나 공의회가 아닌 시의회가–쮜리히 시민들을 위해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의도가 있음을 알렸다.
종교개혁자들과 급진개혁자들과 결국 갈라섰던 지점은 성서의 해석과 교회의 실천에 있어서 국가 혹은 영주와 시의회의 권위와 도움을 인정할 것이냐의 여부이었다. 당시 전일적인 기독교 왕국(Christendom) 체제 하에서 교회 개혁은 필연적으로 사회 개혁과 연동되어 있고, 권력자들을 배제하고 오롯이 교회 내부의 논리와 잣대를 따라서 운동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라는 슬로건을 철저히 수행하기를 요구하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설 자리는 애초부터 협소했다.
이런 차이는 각 개혁 운동의 청중이 누구냐, 라는 사회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류의 대상이 교육 받은 평신도들이었다. 반면, 아나뱁티스트들의 청중은 교육받지 못한 평범한 대중이었다. 따라서 사적인 해석의 위험성을 간파한 그들은 해석의 권한을 해석할 능력이 충분한 사람으로 제한했다. 원어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원어로 직접 독해할 수 없는 이들을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배제이고, 다른 한편, 이것은 교육 받지도 못하면서도 성서를 함부로 해석하는 것의 위험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특정한 소수 그룹의 것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그 소수는 일부 엘리트, 부자, 권력자, 학자일 수밖에 없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성서를 해석할 때에 성서로만 충분하다. 물론 여기에 성령의 개입과 간섭을 당연히 전제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그분을 따르기로 헌신할 때에 받았던 그 성령께서 성경과 성도에게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그들은 “나는 성령에 의해 스스로 해석되는 방법으로만 성서를 이해한다. 성서는 다른 어떤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지 않다.”는 츠빙글리의 말에 어떠한 열광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5. 함께 토론하며 읽는 성경
로고스교회의 성경 읽기 방식의 독특성 중의 하나는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는 것과 함께 각자의 질문과 묵상을 모든 교우가 말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인원이 적을 때는 전체가 둘러 앉아 모두가 돌아가면서 나누었다. 지금은 참여자가 많아져서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토론을 한다. 각자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 또한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하고, 아낌없는 공감과 칭찬을 받는다. 이런 방식을 진행할 때의 전제는 각각이 준비를 해서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방식의 장점은 속담으로 말하면, 백짓장도 마주 들면 낫다는 말이 제격이다. 한 사람이 본 것보다 여러 명이 본 것이 훨씬 풍성하고 깊다. 한편으로 내가 못 본 것을 타인의 읽기를 통해 배우고, 내가 본 것을 타인도 보았다는 것을 통해 안심과 확신을 얻는다. 묵상의 확장과 심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이 성경 읽는 방식의 특징은 토론이었다. 그들은 설교자 혼자서 일방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한다. 아무도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되고, 오직 한 사람, 설교자만 말한다. 그리고 모든 회중은 그 설교자의 해석 관점에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형태를 두고 탄식하며 묻는다. “누가 영적 공동체로 그것을 간주할 수 있으며 고백할 것인가?” 회중의 입을 막는 것은 그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마저 침묵케 하는 것이고, 단 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함께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견해를 기탄없이 밝히는 토론을 진행했다. 좀 더 풀어보자면, 같은 본문을 다 함께 읽는다. 지도자 외에도 모든 성도가 각자가 이해한 대로 말한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해석에 대해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서로 가르치고, 서로에게 질문한다. 각 사람이 배우고 느낀 것을 말함으로 서로에게 배운다. 또한 나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서로 능동적으로 성경을 읽을 것을 격려하고 고무하였다.
너나없이 참여하는 공동체적 읽기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부작용이 없지 않다. 확실히 지도자에게 많이 의존하였고, 그들 사이에도 언쟁이 벌어지고 감정이 상하는 일도 왕왕 벌어졌다. 준비되지 않은 말들이, 절제되지 않은 말들로 예배는 혼란했을 것이다. 게다가 성서적으로 엉뚱한 말을 하거나, 교리적으로 위험한 말들도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아나뱁티스트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성도의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교정하였다. 토론 자체가 상호 교정일 수밖에 없다. 오래 성경을 연구한 학자라 할지라도 성경 이해가 완전하지 않을진대, 베드로가 바울에 의해 교정 받았던 것처럼, 지도자이든, 회중이든 간에, 각자의 성서 이해는 공동체 안의 타자와의 토론을 통해 제한 받는 것은 마땅하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각자의 묵상과 발견을 맞추고 합하여 보다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도자의 역할이다.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의 리더는 자신의 해석과 관점을 회중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 점이 잘 드러나는 것이 강대상이다. 그들의 예배에는 강대상이 처음부터 없었다. 화려하고 세련된 건축물에서 드리는 예배와 숲과 동굴, 그리고 집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강대상은 없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이는 예배 공간이라는 외적인 측면으로만 볼 수 없다. 그들도 가톨릭이나 주류와 같은 신학을 지녔다면, 그러한 예배 공간에서도 볼품없더라도 강대상을 만들었을 터. 신학이 설교자의 정교한 신학과 설교 보다는 모든 회중이 참여하는 투박하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나눔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강대상의 부재는 지도자의 공동체 내의 역할을 잘 반영한다. 그의 역할은 일차적으로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직접 읽고 해석하고 토론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코치와 비슷하다. 그러기에 한편으로 지도자의 권위는 존중을 받았고, 성도의 한 사람인 동시에 성도의 리더로 그의 권위는 인정되었다. 지도자는 성령과 형제에게 배우는 자세를 취했고, 바로 그러한 모습이 공동체 안에서 존경을 얻게 하였던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 성경과 리더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실제로 아나뱁티스트들 일부는 단 하나의 타당한 해석이 있고,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을 출교시킬 것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개는 해석의 정확성을 체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에 베른하르트 로트만(Bernhard Rothmann)은 나 혼자는 성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공동체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리스도의 삶과 말에 일치하는지를 주의하라고 권면한다. 그 자신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지나친 이상과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너무나 다른 지역과 맥락에서 각기 다르게 출발한 이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가 아나뱁티스트이다 보니, 공동체적 읽기 방식도 같지 않다. 실제로 모든 아나뱁티스트 공동체가 저런 방식으로 예배한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시행하지 않았다. 지도자에 따라서, 구성원에 따라서 달랐던 것이다. 지도자와 회중 사이의 긴장도 있었고, 회중들 사이의 해석을 두고 불필요한 논쟁도 생겼다. 그 외에도 신학자와 전통의 중요성을 약화한 면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개인의 판단을 공동체 위에 두었다는 맥그래스의 말은 수정해야 하겠다. “개인의 사적 판단이 교회 공동의 판단 위로 높아지면서 이렇게 개인주의를 향한 길이 열렸다.” 그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각 사람이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는 것과 성령의 인도에 복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사적인 해석을 공동체 위에 두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는 걸까?
물론, 맥그래스는 ‘각 사람이 원하는 대로’라는 조건을 붙이기는 했다. 바로 이런 위험을 알기에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읽도록 장려했고, 상호간의 질문과 가르침을 통해 교정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느 한 사람의 견해가 공동체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각자가 제 입맛에 맞게 성서를 해석하거나 자기 정당화에 사용하는 것을 공동체 안에서 분별하고 판단 받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이 완전히 성공했느냐의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불완전하나마 그런 노력을 중지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시도와 도전을 감행했다는 것만으로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서의 사람들이다.
6. 뱁티스트(Baptist)이자 비블리스트(Biblist)
사건이 먼저이고, 말씀은 다음이다. 내가 이 문장을 읽은 것은 아마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어느 책에서 일 것이다. 민중신학을 탐독하면서도 뭔가 모르는 거리감을 스스로 조성하던 내게 그 문장은 찜찜했고, 음산했다. 민중신학자의 말이니 덮어놓고 의심부터 했고, 말씀 중심이어야지 않는가? 라는 반문으로 나 스스로를 자위했다. 그러나 그 이후 접한 수많은 성서신학자들의 글에서 숱하게 접하면서 쑥스러웠다. 창조가 먼저이고 창세기는 다음이고, 출애굽 사건을 경험한 다음 기록이 등장한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니까 말이다.
스튜어트 머레이의 「아나뱁티스트 성서 해석학」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바로 저 문장이다. “사건이 먼저이고, 말씀은 다음이다.” 왼고 하니, 목회자로서의 로고스교회의 성경 읽기 방식은 머레이가 설명한 아나뱁티스트들의 공동체적 성경 읽기 방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발췌독을 했었는데, 하필이면 7장, “공동체가 함께 하는 성서해석학” 부분은 건너뛰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꺼내들고 읽으면서, 탄성과 감탄이 연달아 터졌다. “바로 이거다, 내가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그러나 그건 그때 그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읽어내는 일반적 방식이 되어야 하겠다. 공동체적 읽기는 1세기의 초대교회의 모습이고,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의 초창기 이상이었고, 아나뱁티스트들이 실천한 것이고, 21세기 한국교회가 지향하고, 일반 성도들이 꿈꾸는 성경 해석학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침례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간에, 그 모두의 공통 이름은 비블리스트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읽고 토론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성경 공동체, 성경 해석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아나뱁티스트가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