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화1 정주영 조선업 시작!
정주영(鄭周永) 회장
1970년 5월초, 어느날 밤 정주영은 청와대 뒤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오랜시간 흘렀습니다... 박 대통령이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더니 정주영에게도 한 대를 권했습니다. 정주영은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과묵한 박 대통령이지만 이 날은 더욱 말이 없이 시간만 흘렀습니다. 정주영은 박 대통령이 불을 붙여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는데, 드디어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총수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그거 하나 못하겠다고 여기서 체념하고 포기를 해요? 어떻게 하든 해내야지 .. 임자는 하면 된다는 불굴의 투사 아니오?”
실은 정주영도 조선소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제반 여건상 지금은 아니고 나중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압박 아닌 압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있었습니다. 곧 포항제철이 완공되는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 줄 산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당시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먼저 삼성 이병철에게 조선 사업을 권유했습니다. 정주영은 삼성 이병철에게 거절당한 뒤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은 그날 박대통령에게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각하의 뜻에 따라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못할 것도 없지! 그까짓 철판으로 만든 큰 탱크를 바다에 띠우고 동력으로 달리는게 배지!! 뭐, 배가 별건가? ”
어렵고 힘든 일에 부딪치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정주영의 특기가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주영은 조선업자로 조선소 건설을 생각한 게 아니라 건설업자로서 조선소 건설을 생각한 것입니다.
배를 큰 탱크로 생각하고 정유공장 세울 때처럼 도면대로 철판을 잘라서 용접을 하면 되고 배의 내부 기계는 건물에 장치를 설계대로 앉히듯이 도면대로 제자리에 설치하면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조선소를 지을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대형 조선소를 지으려면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와야 하는데 해외에서 차관 얻기란 하늘에 별따기였지요. 그래서 일본에도 가고 미국에서 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정주영을 상대해주지 않았지요. 오히려 미친 놈 취급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너희같은 후진국에서 무슨 몇십만톤의 배를 만들고 조선소를 지을수 있느냐? ”는 식이었습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정주영이었지만 속으로 울화가 치밀면서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그때부터 '하면된다'는 모험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된다고?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는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
당장 필요한건 돈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차관을 얻으려면 3번에 걸친 관문을 뛰어넘어야 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외면당한 정주영은 영국 은행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행 버클레이즈와 협상을 벌였으나 신통한 반응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돈을 빌리기 위해선 영국식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정주영은 1971년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에 사업계획서와 추천서를 의뢰했습니다. 타당성 있는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있어야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후 사업계획서는 만들어졌지만 추천서는 해줄 수 없다는거였습니다. 정주영은 영국의 유명한 조선회사 A&P애플도어 회장의 추천서를 받기 위해 직접 런던으로 날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조선소를 지을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모래사장을 찍은 흑백사진 한장이 전부였습니다.
런던에 도착하여 일주일만에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그러나 롱바톰 회장은 비관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배를 사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고 또 현대건설의 상환능력과 잠재력도 믿음직스럽지 않아 힘들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도 안 됩니까?"
그러자 그는 "한국 정부도 그 많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궁하면 통한다는 정주영식 기지(奇智)가 발동했습니다.
정주영은 문득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났습니다. 지폐 그림은 바로 거북선이었습니다. 정주영은 주머니에서 거북선 그림의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펴놓으며,
"회장님! 이걸 잘 보시오! 이 지폐는 자랑스런 우리나라의 역사를 그려낸 지폐인데, 이 그림은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이지요. 당신네 영국의 조선역사는 1800년대부터이지만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본의 함선을 괴멸시킨 역사적인 철선입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다시 한번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롱바톰 회장은 의자를 당겨앉으며 지폐를 들고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앞 면에는 한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있고 뒷면에는 바다에 떠있는 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거북이와 많이 닮았습니다.
"정말 당신네 선조들이 실제로 이 배를 만들어 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그렇구 말구요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만든 배입니다. 한국은 그런 대단한 역사와 두뇌를 가진 나라입니다. 불행히도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로 인해 좋은 아이디어가 묻혀 있었지만 잠재력만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 현대도 자금만 확보된다면 훌륭한 조선소와 최고의 배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회장님! 버클레이 은행에 추천서를 보내주십시오."
정주영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습니다. 롱바톰 회장은 잠시 생각한 뒤 지폐를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조상을 두었소. 당신은 당신네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롱바톰 회장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거북선도 대단하지만 당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당신이 정말 좋은 배를 만들기를 응원하겠소!!"
그러면서 롱바톰 회장은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축하 악수를 청하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프레젠테이션과 완벽하게 만든 보고서에도 'NO'를 외쳤던 롱바톰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500원짜리 지폐 한장이었으며 이는 정주영의 번뜩이는 기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날 롱바톰회장은 현대건설이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시공하고 있고 발전계통이나 정유공장 건설에 풍부한 경험도 있어 대형조선소를 지어 큰 배를 만들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버클레이즈 은행에 보내주었습니다.
정주영의 기지(奇智)로 첫 번째 관문이 통과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며칠 뒤 버클레이즈 은행의 해외 담당 부총재가 점심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점심약속 하루전 정주영은 호텔에서 초조와 불안 속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만사 제쳐놓고 관광이나 하는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현대건설 수행원들과 셰익스피어 생가와 옥스퍼드대를 둘러보고 낙조 무렵에는 윈저궁을 관광했습니다. 이튿날 정주영은 우아한 영국 은행의 중역 식당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버클레이즈 은행의 해외담당 부총재가 물었습니다. “정 회장의 전공은 경영학입니까? 공학입니까?” 소학교만을 졸업한 정주영은 짧은 순간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태연하게 되물었습니다.
“아 ~ 제 전공이오? 그 이전에 우리가 당신네 은행에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보셨는지요?”
“아! 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