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씻을 때는 전통적으로 석유를 씁니다. 삼각뿔의 윗둥을 2/3쯤 잘라낸 듯한 필세통-혹은 붓 씻는 통을 화방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필세통의 가운데는 이중 체가 달려 있어서 물감 묻은 붓을 비비면 물감은 체 밑으로 떨어지고 붓은 깨끗해집니다. 한참 그냥 두면 물감이 가라앉아서 석유는 깨끗해집니다.
필세는 편리하기는 한데, 붓을 체에 비빌 때 붓끝이 닳고 말려 들어가는 불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씻어지지 않은 물감찌꺼기가 다음 그림을 그릴 때 묻어 들어갈 수도 있고, 마르지 않은 석유가 다음 그림의 물감과 섞일 수도 있습니다. 석유통에 오래 붓을 담가두면 붓 밑둥의 접착제가 녹아서 붓과 붓대가 분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초벌씻기로 이 필세통을 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미지근한 비눗물에 씻는 것입니다. 석유로 일차 씻어도 좋지만 빨래비누, 혹은 중성세제에 빠는 겁니다. 대충 물감을 화장지 등에 닦은 후 미지근한 물에 담근 붓에 비누를 묻히거나 비누에 비빈 후 손바닥에 누르고 비벼 물감을 희석시킵니다. 그리고 깨끗한 물에 빨고 천이나 키친타월 등으로 물기를 뺀 다음, 붓통에 자루를 밑으로 세워 말립니다.
석유건 중성세제건 붓을 씻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을 씻고 손바닥이 따가우면 핸드크림을 발라줍니다.
그 다음, 유화물감은 기본적으로 용제에 녹이도록 되어 있는 유성물감입니다. 얀 반 아이크는 유화의 발명자로 소개되지만 최근에는 유화의 개발에 공헌을 했으며 실제로는 이 유성물감의 용매 겸 건조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테레핀입니다. 영어로는 터펜타인(Terpentine)이라고 하죠. 송진을 알코홀에 녹여 만드는데 알코홀이 증발하면 남은 송진이 물감을 굳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테레핀만으로는 그림이 광택이 없고 전색성-색을 펼치는 기능은 좋지만 두깨나 깊이를 줄 수 없기 때문에 린시드 오일-아마인유를 함께 씁니다. 보통 반반으로 섞지만 취향에 따라 다르게 섞을 수 있습니다. 그외 포피-양귀비 기름이나 호도기름 등을 쓰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테레핀 린시드 등은 유화물감을 파는 아무 화방에서도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작은 통으로 몇 번 써보다가 많이 쓸 경우에는 큰 통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공약품상에서도 살 수 있는데... 화방보다는 싸지만 그림용으로는 자신의 제작 스타일, 혹은 그림의 성격과 맞는지 시험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레핀을 쓸 때는 반드시 환기를 잘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폐에 송진이 쌓여서 굳으면 호흡이 곤란해지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대학미술실은 폐쇄하기도 합니다.
유화물감에 기름을 쓰지 않는 경우로는 나이프를 쓰는 경우와 독필禿筆을 쓰는 방식이 있습니다. 나이프는 마르기 전에 덧칠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색이 섞일 수 있습니다. 독필은 몽당붓인데, 거칠기는 하지만 필요한 효과를 위해 찍어 바르거나 두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그림은 마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햇빛에 말리는 것은 균열과 변색이 될 수 있으므로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한가지, 유화는 많은 붓으로 같은 계통의 색만을 따로 분리해서 사용하도록 습관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노랑계열, 빨강계열, 파랑계열, 초록계열.... 그리고 하양과 까망... 등 마다 하나 하나씩 다른 붓을 쓰는 것이죠. 그리고 지정된 색 이외의 색이 섞이지 않도록 합니다. 나중에 붓을 깨끗이 씻어도 어느 정도는 흔적이 남으니까, 같은 붓으로는 같은 색만을 쓰도록 하면 깨끗한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skehfdk@empas.com 의 질의에 대한 답변
좋은 작품 만드세요.
사진은 이한우 화가의 붓과 팔레트입니다. 유화 붓의 색깔이 보이죠? 몽당 붓이 되도록 같은 계열의 색들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팔레트는 찬색과 따뜻한 색으로 구분해 썼군요.
이 글을 쓸 때만 하더라도 화방을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화구를 외상으로 준다거나, 친절하고 아부를 잘 한다거나...또는 갤러리에서 화구를 제공하고 그림으로 변제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화방에 들러서 사람들이 잘 안살만큼만 비싼 붓을 하나 샀더니 할아버지가 바깥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더라고요...인터넷시대의 애환이랄까요...더욱이 아크릴칼라가 주종을 이루면서 유화는 천덕꾸러기가 된 느낌입니다.
인사동 화방에서 프랑스제 낱개 아크릴물감 몇개를 눈물나도록 비싼 가격으로 사곤 괜히 인사동 화방에 갔더라고 후회막급이었는데...웬걸? 그려진 그림의 효과는 환상적이고...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그냥 찍어발라도 튀지 않고, 마르면 다른 색과 섞이지 않고...지구촌에 사는 희열이겠죠...
익숙해지고, 좋은 그림을 원하시면 상응한 투자를 하시죠...그러나 아주 익숙해지고 그림이 자신의 예술이라는 자신이 생기면...화구 욕심은 버리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