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47/171010]‘도둑놈 공화국’을 감시하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회포를 푸는 한가위 명절은 역시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만큼만’ 같았으면 좋겠다. 올해는 월급쟁이들에게는 ‘이게 웬 떡이냐?’ 싶게 장장 열흘의 황금연휴가 펼쳐졌다. 정치인들이 편의적으로 ‘추석민심(秋夕民心)’이라 부르는 명절연휴에 내년 지방선거, 개헌, 박근혜순실 국정농단 등을 이슈로 어쩌고저쩌고 갑론을박하는 집안이 몇 집이나 될까는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시대(時代)가 바뀌어, 어느 집은 아예 ‘디지털 차례’를 지낸 후 가족여행으로 외유(外遊)를 떠나기도 하고, 어느 집은 귀향 교통체증을 우려해 일주일 전에 삼형제 가족이 모여 묵념으로 차례를 대신하고 성묘를 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내려갈수록 뿌리가 벌어진 한 집안은 명절 때마다 순번을 정해 한 자식이 도맡아 지내고, 다른 형제들은 각기 자기 집안에서 총생(손자)들과 명절을 쇠기도 한다. 어떤 형태든, 미풍양속인 명절차례를 차리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니, 특별히 개탄하며 '시대가 어쩌고' '요즘 젊은놈들이 어쩌고' 할 필요는 없겠다.
아무튼, 손위처남이 추석 다다음날 당신의 부암동 저택에서 바베큐파티를 하자며 초대를 했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요즘엔 친가 식구들과 모이는 것보다 처가 식구들을 만나는 게 몇 배 부담이 없고 즐거운 일이다. 손위처남과 함께 서울의 숨겨진 명소 ‘백석동천(白石洞天)’을 구경한 후 백사실계곡을 따라 홍제천 냇길을 2시간여 걸었다. 먼저 세검정(洗劍亭)을 둘러본 후, 조선조 장의사(壯義寺)와 총융청(摠戎廳) 터였다는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명멸(明滅)한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절터를 증명하고 있고, 3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총융청 본부가 있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당시의 그림으로). 등거리외교를 펼치던 광해군(光海君)을 몰아내자며 인조반정(仁祖反正) 공신(功臣)들이 ‘칼을 씻으며 의를 세우자(洗劍立義)’고 했다던 세검정. 실록이 완성될 때마다 사초(史草)를 세초(洗草)했다는 세검정 너럭바위에는 천막을 썼던 흔적인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었다. 영화 ‘사도’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세초된 한지는 인근 ‘조지서(造紙署)’에서 재활용종이로 탈바꿈되었다 한다. 큰비가 왔을 때 계곡 풍경이 장관이었던 모양이다. 다산의 시로, 정선의 그림으로 그때의 풍광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큰 도로 옆에 덜렁 남아있는 정자 하나지만, 유서가 깊은 곳이다.
연산군(燕山君)이 운평(運平.기생)들과 질펀하게 놀았다는 탕춘대(蕩春臺)가 표지석으로만 남아있고, 숙종때 지었다는 홍지문(弘智門)과 오간수문이 복원돼 있다. 탕춘대성은 숙종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이은 성이다. 보물로 지정된, 마애석불이 새겨진 엄청 큰 바위 위에 누각을 지어 만든 ‘보도각(普度閣)’은 기도빨이 잘 받는지, 불자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서울 거의 한복판에 이런 또랑(홍제천)이 있었을까, 싶게 깊은 산속 분위기이다. 몇 백년이나 된 징검다리일까? 넙적넙적한 자연석으로 만든 징검다리는 괜히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조형미가 있다. 내처 유진상가 재래시장까지 걸어 미니족발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니 2시간여 걸은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트레킹의 묘미는 이런 데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걸으면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놓고 심도있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노후(老後)이야기이다. 형님(손위처남)은 5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63, 나는 61. 대학교수인지라 정년까지는 아직 만3년이 남았다. 65세이면 최소한 15년 내지 20년은 사회생활할 것이 틀림없는 사실, 무엇을 할까? 사회에 기여할 만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나에게 고백(告白)을 한다. “최서방, 얼마 전부터 어떤 사회적인 사건이나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무슨 도(道)를 터서 그러는지, 다 보여” “뭐가 보여요?” “누가 도둑놈인지 말이여. 민주화가 제법 됐다고 생각한 우리나라가 알고보니 완전히 ‘도둑놈 공화국’이더란 말이시” “‘사찰공화국’ ‘군사독재 잔재’의 나라가 아니구요? 그래서요?” “그래서 정년 후에 그런 도둑놈들을 때려잡는 일, 말하자면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바로세우는 일을 하려고 해” “어떻게요?” “한국국토정보공사(한국지적공사의 후신)라는 기관을 통해서 도둑놈들이 은근슬쩍 강탈해 자기 소유로 만든 국유지(國有地)를 찾아 나라에 돌려주는 거야. 엄청나게 많을 거야. 아니, 넘쳐날 거야” “국유지 환원 ‘사설(私設) 탐정단’인 셈이네요” “맞아, 맞아. 사설 탐정단이 되어 불법적으로 재산을 불린 놈들을 찾아 소송을 걸고 갖은 압박을 가해 법적으로 내놓게 만드는 거지. 그들은 죽어도 자진해서 내놓지 않을 거니까” “아니, 공대 교수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최서방이 도와줘야지. 언론을 통해 이런 활동을 널리 알려야 해. 이 일을 위하여 가장 먼저 정년 후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닐 거야. 일단 법에 대해서 빠삭해야니까” “근데, 그런 케이스를 어떻게 찾아요?” “아까 말했잖아. 어떤 사람을 딱 보면 도둑놈인지 아닌지를 알게 됐다고, 보인다고. 내가 찍어주면 그런 일을 추적할 맞춤한 인물이 내 주변에 있어. 자네도 알지, 내 동서. 그리고 나와 법률적으로 검토를 잘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있지, 자네의 동서. 그러니까 나의 자형이지. 흐흐, 그리고 최서방은 홍보담당”
“와우-기발한 플랜인데요. 평생 몇 건을 성사시킬지 몰라도. 의로운 일인데요”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내가 로스쿨(LEET)에 입학할 수 있을까? 그게 문제야”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하의 공학박사가 로스쿨 하나 못들어가겠어요? 일단 어플라이해 보세요” “암만 생각해도 그게 민주화를 앞당기는 게 아니고, 완성시키는 일인 것같아. 이승만이 반민특위(反民特委)만 해체하지 않고 제대로 식민지 역사청산만 했어도, 오늘날 이 나라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 “그거야 그렇지요. 첫단추를 잘 꿰었어야 했는데” “아무튼, 내 노후설계는 이거야. 자네는 어떤 계획을?” “저야, 뭐, 부모 계시는 고향에 가 책이나 읽으려구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쥐꼬리연금으로 기신기신 살지요. 뭐. 집도 하나 자그마하게 짓고” “그 소박한 꿈도 좋지만, 언론을 잘 아는 자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사실은 이런 작업은 국가가 해야지만, 안하니까 누군가는 해야지. 배운 사람이 할 일이야. 보람도 클 것이고” “쉽게 말하면, 아무 상관도 없을 민간인이 의롭게 ‘도둑놈 때려잡기’에 나선다는 말이잖아” “그래, 그래. 그놈들의 마인드는 100% 재산증식밖에 없는 없어. 그들은 1년에 자본의 10분의1은 늘려야 발을 뻗고 자는 속성의 인간들이야. 일례로 전전대통령을 봐. 가장 큰 도둑, 즉 대도(大盜)잖아. 재산이 몇 조(兆)가 되는지 몰라. 그 재산을 환수해야지. 국회에서 특별법도 만들고, 민간인들은 민간인들대로 추적, 폭로하고, 소송을 걸고...”
이 기발한 노후계획을 듣자니, 몇 년 전 종편 JTBC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각나라 젊은이들이 출연하여 한 주제를 놓고 방담을 하는 ‘비정상회담’. 독일청년이 말했다. 2015년 독일의 베스트셀러 10위중 네 가지가 모두 법전(法典)이라고. 1위 민법, 2위 상법, 4위 주요 세법사항, 7위 노동법. 그게 무슨 말일까, 의아했었는데, 독일인들은 각종 법전을 보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믿기 어려웠으나 사실인 모양이다. 모든 집에 법전이 있다고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성인(成人)된 기념으로 ‘법전’을 선물한다고 한다. 그렇지! 법전 선물. 그거야말로 살아가는데 사실 최상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그러는 줄 모르겠으나, 우리 초등학교 졸업 우등선물은 ‘국어사전’이었다. 아이들 키우는 집에는 그래도 국어사전 한 권씩은 있을까? 국어사전을 보는 게 생활화만 되어 있어도 우리의 언중(言衆)생활이나 수학(修學)능력이 배가(倍加)될텐데. 거기에다가 법전(法典)이라니? 언쟁(言爭)을 벌이다 흔히 하는 말이 “법대로 해!”이지 않던가. 현대생활에서 법을 잘 아는 것이야말로 필요불가결한, 살아있는 지식(知識)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터. 우리 중에 누가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법은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이었을뿐, 한번도 나의 생활에 얼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법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왜 몰랐던가. 그런데, 나의 형님(동서)은 어떤 법이든 한번만 듣거나 보면 금방 머릿속에 입력이 되고 이해가 되며, 어떤 일을 해결하는데 제대로 법적인 논리가 선다고 한다. 사법고시 공부를 한번도 한 적이 없는데도. 3대에 걸쳐 변호사 활동을 하는 친척들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그 집안에는 법에 대한 DNA가 있는 모양이다. 통신법, 건축법, 부동산법, 형법, 민법, 형사소송법…… 법이 어디 한두 가지일 것인가. 발에 채이는 모두가 법일텐데, 우리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분명히 ‘잘한 일’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 비비 꼬이고 꼬인 모든 것들이(하다못해 부부관계나 효도문제 등도) 사실 법적으로 쉽게 쉽게 해결만 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가. 기득권 고수, 갑질 남발, 저임금 중노동 등 ‘천민(賤民) 자본주의’의 표상(表象)처럼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여러 경제적인 갈등 등이 법으로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일은 그래서 선진국인 모양이다. 히틀러의 2차세계대전 ‘미친 학살’도 솔직하게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면 사과할 줄 아는 나라, 베를린장벽을 꿈속처럼 허물어뜨려 통일을 이룩하는 나라, 통일도 법대로 했을까? 그래서 선진국인 모양이다. 부럽다. 독일!
이제 마무리를 하자. 손위처남의 노후생활 플랜, 100% 박수를 보내며 격려하고 응원을 한다. 교수 정년퇴직 후 로스쿨 입학, 그 입학 동기,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법(法)공부. 신문에, 방송에 나올 일이 아닌가. 국유지가 몇 평이든, 부도덕한 기득권들이 틀림없이 무도한 방법으로강탈했을 재산의 환수를 위한 ‘시민운동(市民運動)’, 정말로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팔 벗고 나서리라. 도둑놈들, 너희는 이제 죽었다! 참고로 전라북도에서는 ‘도둑’이라고 잘 하지 않고 꼭 ‘도족놈들’이라고 한다. '도족놈'이라고 힘있게 말해야 도둑놈(도적놈)의 뉘앙스가 훨씬 더 나쁜 놈으로 다가온다. 이 나라가 진정 ‘도족놈 공화국’인가? "형님, 그나저나 도둑이고 천사고간에 우리 시장하니 빨리 가서 바베큐파티 합시다" "그래, 그것도 좋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