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3~4시간을 달려 출장지에 도착하여 업무특성상 약1시간정도 업무를 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토목쟁이기에 전국팔도 안다니는곳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 먼곳까지 갔다 그냥 오기에는 너무 아까운 동네가 많이 있다. 그럴때엔 근처 관광지를 혼자지만 둘러볼때가 가끔있다. 양복을 입고도 멀쩡히 나즈막한 산도 오르고 박물관도 들어가 보고 일종의 가족여행을 위한 사전답사인 셈이다.
요즘 자주 가고 있는 봉화출장길에 유명한 맛집은 둘러보았고 이번엔 관광명소를 찾아보기로 했는데 아쉽게 봉화 명소중 다덕약수탕은 닫은지 오래되었다 하여 약수만 한모금 먹고 영주로 향한다. 지난번엔 풍기온천에 가보았으니 오늘은 왠지 가을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차에 단양나들목하고도 멀지않은곳에 죽령옛길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찾아간다.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96m의 죽령.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고 엎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기도 했으니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 만하다.
서기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이며,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다.
죽령(竹嶺)옛길은 장장 2천년의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 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길이었는데 이후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끊겨 수십년 동안 숲과 덩굴에 묻혀 있었다.
역사의 애환을 간직하며 2천년 가까운 세월, 영남 내륙을 이어온 죽령의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려는 뜻에서 1999년 영주시가 희방사역에서 죽령주막까지 1시간 정도(2.5km)걸리는 길을 복원하였다. 울창한 숲의 나무과 산새, 다람쥐 등이 반기는 산길을 걸으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http://tour.yeongju.go.kr 참조)
소백산 희방사역이 죽령옛길의 시작점 마을이다.
다음엔 이 기차를 타고 와야겠다.
마을길을 지나 기차길을 걷다보면 옛길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옛길이라고 하는게 무색하게
기차길 전깃줄이 보이고 중앙고속도로 교각이 떡하니 보인다.
이런것이 역사의 흐름인지..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지날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인간은 편해지고 높은 곳에 살아 좋을지언정 건물이 너무 높아 괴기스럽고 흉물스럽게 느껴지는데
이곳도 고속도로로 인해 빠르게 소통할수 있게 되었지만 토목쟁이인 내가 봐도 곱게 보아지지는 않는다.
여기도 일종의 길이니 제주 올레길마냥 파란 화살표로 방향을 교각에 그려놓았다.
그런데 이후에는 아쉽게 화살표를 보지는 못했다.
죽령옛길 초입에는 생각보다 옛스럽지는 않았다. 먼지나는 돌길에 전봇대도 보이고..
결정적으로 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차가 지나다닐때마나 나는 먼지 때문에 상당히 불쾌해진다.
오르는길 내내 사과밭이 참 많았다. 한참 마무리 수확중인 사과밭들이다.
꽤 올라왔는데 이제야 제대로된 죽령옛길의 시작인가 보다. 이정표가 있는걸 보니..
약 1.4km 지점이 이 지점이고 2km 오르면 죽령주막이 있다고 한다.
눈이 좀 어색한 두분이 죽령옛길을 안내한다.
봉평 이효섭 문학의 숲에 있는 그런 캐릭터였음 어떨까 싶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걷는이는 나혼자이다.
산속 좋은 공기를 마시며 가을 숲길을 걷는 이기분~ 최고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도 참 정겹고 크게 들린다.
한참 올랐는데도 이곳까지 차가 다닌 흔적이 있고 과수원이 있었다.
이곳이 마지막 사과밭인거 같다.
아마도 주인께선 사과를 따고 계시고 이렇게 탐스런 사과를 연락처만 남긴채 팔고 계셨다.
깊은 산속에서 키운것이라 그런지 초입에 있는 사과보다 휠씬 빨갛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갑을 차에 놓고 와 살수는 없었다.
사시고 싶으신분은 연락처로~ 절묘하게 마지막 번호가 가려졌으니 문의바랍니다. ㅎㅎ
이제 차도 오를수 없는 좁은 길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나는 이쯤에서 돌아가려한다. 더 높이 올라가면 혼자여서 산짐승도 무섭고(?)
양복입고 여기까지 오른 날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볼것도 같고..ㅎ
탐스런 사과가 찬서리에도 괜잖을런지..
하나 따먹고 싶어지는데~~~~ 그때,,
ㅋㅋㅋ. 절묘한 문구이다. 길가다 아무도 없을때 하나쯤은 따먹고 싶어지지만
아이들이 보고 있다..내 양심은 아무도 없을때 발휘되는거..
결국 얌전히 산을 내려갔다.
이제 조금씩 어둠이 산자락에 내려오기 시작한다.
중간지점에서 인증샷하나 찍고. 그림자가 시간을 이야기 해준다. 복장도~ ㅋ
갈대사이로 보이는 철길과 철길을 따라 퇴근하시는 철로보수원 아저씨의 뒷모습이
너무도 낭만스러운 풍경이 된다.
이제 다 내려왔다.
내려와서 보니 풍기온천도 11월중 새롭게 단장하여 오픈한다고 한다.
여기 죽령옛길도 걸어보고 물좋기로 소문난 풍기온천을 하고
풍기 서부냉면을 먹으면 제대로된 영주여행이 될거 같다.
옛 정취는 찾아볼길 없었지만 세월을 가슴으로 느끼며 호젓히 걸을수 있는 죽령옛길이었다.
첫댓글 시간대 별로 사진을 올렸나봐요 ^^ 오전부터 해질력 ㅋㅋ
죽령고개는 정말....ㅡㅡ;;
어릴 때 이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며 얼마나 멀미를 많이 했는지,
그 생각만 하면 큰집 가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지금이야 길이 뚫려 편하게 가지만 그때 어린 나이에 정말 공포의 길이었어요.
언제 가 볼 수 있을까? 이제 발마저 시원찮아서 가더라도 구루마타고 통과를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