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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 고대 중국의 4대 악녀(惡女)
염기영 추천 0 조회 344 15.01.23 17: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국의 4대 惡女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주인공, 달기(?己)

 

 

 


중국 역사에 대한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악녀의 아이콘’
달기의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달기는 중국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애첩으로
미모가 아주 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 나오는 미녀중에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여성중에 하나이다. 

달기를 보고 한 눈에 반한 주왕은 여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다.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는 뜻의 ‘주지육림’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사치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이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잔인한 형벌을 가하는 것을 즐겨

죄인을 독사와 전갈 구덩이에 던져 넣거나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반기를 드는 자가 있으면 ‘포락형’을 내렸다.

 

‘포락형’ 은 구리 기둥 위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여 미끄러져서 타 죽게 하는 잔혹한 형벌인데

달기는 산채로 불에 타 죽는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악행을 보다 못한 한 충신이  자신의 아름다운 딸을 주왕에게 바쳤는데

달기는 그녀를 모함해서 죽이고 그녀를 요리로 만들어

그녀의 아버지에게 주었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달기는 주로 고통을 줌으로써 쾌감을 얻는, 사디스트적인 면모를 보였다.

 

 나중에 은나라가 주나라 무왕에게 망하자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형할 망나니들이 그녀의 미색에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형장의 대장이 90살이 망나니로 처형하려 했으나

늙은 망나니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없었다고...

 

결국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처형했다고 한다

 

 


 
사람돼지를 만든 여태후(呂后)

 

 

 

 

 

여태후의 이름은 여치이며,

녀의 아버지 여공은 비교적 재력을 갖고있는 사람이었다.

 

관상을 볼  줄 아는 여치의 아버지가 유방을 보는 순간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란 느낌을 받아

어린 딸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유방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초한전이 시작되자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 유태공을 모시고 있는 여치와

유방과 여치의 두 아이 혜제(2대황제)와 노원공주를 사로잡아 유방을 압박한다.

여치는 늙은 시부모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유방에게 가랴, 항우에게 잡히랴 온갖 고생을 다한다.

 

그러다 황후가 됐으니 사실 눈에 뵈이는게 없었다.

여치는 개국 최대의 공신인 대원수 초왕 한신을 반란케 만들어 그를 척살하고,

역시 개국 공신인 대량왕 팽월도 모해해 죽게 만든다.

 
여치의 전횡은 태후가 되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여치는 아들 혜제가 즉위하자, 처음에는 아들 혜제를 위해

황제를 위협할 수 있는 유방의 서자들을 모두 척살한다.

 

이 와중에 여치는 자신의 권력을 넘보았던 유방의 애첩 척씨두 팔과 다리를 자르고

눈과 귀도 멀게해 변소에 내던져놓고 인간돼지라고 혜제에게 소개한다.

 

이를 본 혜제는 충격을 받아 사망케 되고,

여치는 혜제의 아들을 황제로 삼고 자신은 태황태후가 된다.

 

태황태후가 된 다음 여치는 유씨를 하나 둘 척결한다.

고조 유방은 죽을때 '유씨가 아닌 왕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여치는 유씨 성으로 왕에 오른 사람은 모두 척살한다.

 

그리고 대신 여씨를 모두 요직에 올린다.

여치는 죽을 때 10년만 더 살면,

이천하를 여씨의 천하로 만들 수 있을텐데..라고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여치가 죽자,

유씨들은, 여치가 살아있을땐 여치의 개가 돼서 유씨를 잡아대던

승상 진평과 주발등과 힘을 합쳐 여씨를 몽땅 죽여 없애고

여치가 세운 4대 소제 홍마저 죽여 버리고 문제를 황제로 세운다.

 

결국 여치 일족의 핏줄은 유방의 딸인 노원공주와 그의 자녀밖에 없게된다.

여씨를 멸문시킨 게 결국 여치 본인이었다.

 

다만 여치의 이 같은 전횡은 권력 층 내부에서만 끝이났다는 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치가 황태후로 군림하던 시절, 한나라는 매우 위태롭던 시기었다.

 

일개 농민 출신이었던 유방이 황제가 되니 그간의 명문세가가 이를 아니꼽게 여겼고,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부하들.

특히 한신, 팽월, 경포 등 유방의 객장들은 쉽게 승복하지 않았다.

 

이 때 여치가 반란을 일으킬 만한 세력을 모두 죽여버리니,

실제 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외적들도 쳐들어오지 않아

평민들은 오히려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권력을 위해서 친자식도 살해한 측천무후(則天武後)

 

 

 

중국에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황제가 된 측천무후는
일개 궁녀에 불과했었다.

 

측천무후는 남편인 태종이 죽은 후 당시 관례에 따라
다른 궁녀들처럼 비구니가 되었지만,
태종의 아들인 고종과의 은밀한 관계 덕분에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 궁으로 돌아온 그녀는 고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측전무후의 야심은 끝이 없었다.

 

왕황후가 자신의 아이를 보러 왔다가 돌아가자,
생후 몇 개월도 채 되지 않은 자신의 딸을 목 졸라 죽였다.
왕황후를 모함하기 위하여 자식을 도구로 삼은 것이다.

측전무후는 결국 황후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황후의 자리를 차지했다.
황후가 된 측천무후는 고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천후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실권은
사실상 측천무후에게 있었다.

 

황태자를 책봉하는 일에서도 고종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측천무후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자신의 친아들이라도 죽이고야 말았다.

황태자를 몇 번이나 갈아치운 끝에 여덟 번째 아들 단이 황제에 올랐다.
측천무후는 황제가 된 아들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바꾸고,
당나라 이름을 주나라로 바꾸며 자신이 최고 황제라고 선포했다.
측천무후는 냉철했다.

그간 악명 높은 ‘악녀’들이 질투 등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움직였다면,
이 여인은 철저하게 권력을 위해 움직였다.
또한 측전무후는 인재등용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신분제도에 대하여 한(恨)이 서려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신분보다 능력을 우선시 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역사는 그녀를 권력에 눈이 멀어, 친자식도 살해하는
냉혹한 여인으로 기억하지만,
비천한 궁녀가 황제에 오르기까지 겪었을 수 많은 역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또한 자신의 치세 동안에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최고의 황제로 여겨졌다고 한다.


 

 

청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 서태후

 

 

 

몰락한 관리의 딸로 태어나 16세에 궁녀가 된 서태후는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함풍제의 눈에 들어 후궁으로 간택된 후부터
그녀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함풍제의 본처 ‘동태후’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아이가 없어서

함풍제가 죽은 뒤 서태후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서태후의 아들 동치제는 동태후를 더 좋아했고
황후 간택 문제에서 조차 동태후의 선택을 따랐다.

 
서태후는 그 ‘억울함’을 사치스러운 생활로 보상받으려 했다.

 

그녀의 사치스러움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이화원』이다.
이화원의 인공호수는 바다를 연상케 할 만큼이니
그녀에게는 동양의 ‘마리 앙투아네트’ 라는 칭호가 걸맞겠다.

이 여인은 오로지 자신의 ‘사치’를 위하여 청일 전쟁 중에
함대를 만들 돈을 빼돌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고,
국고를 탕진하여 청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이 뿐만 아니라, 나라는 몰락하건 말건 외간 남자를 궁에 들여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자기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곧바로 죽여버렸다.

결정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청나라를 궁지에 빠지게 하면서
역사는 그녀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서태후에 대한 평가는 중국 내에서도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서태후를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외로운 여인’ 으로 보기도 하지만

청나라를 망친 장본인으로 악녀의 화신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 했지만, 녹록하지 않았을 이 여인의 개인적인 삶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날마다 진수성찬을 즐기고 값비싼 옷을 입었지만,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외로웠을 수도 있겠다.
역사의 평가가 때로는 너무나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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