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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祭文)
우복선생에 대한 제문 /문인 조광벽(趙光璧)
삼가 생각하옵건대, 철인(哲人)께서 돌아가시매 모두들 사문(斯文)의 하늘이 무너진 것을 애통해합니다. 그러니 못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유도(儒道)가 날이 갈수록 황폐해질 것이 더욱더 걱정스럽습니다. 이에 경건한 마음으로 한 조각의 향을 사르면서 몇 줄기의 슬픈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찌감치 남쪽 지방에서 일어나시어 서애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셨습니다. 시서 예악(詩書禮樂)의 글은 팔대(八代)의 쇠미함을 일으켜서 육조(六朝)의 부박한 풍조를 일소하였고, 염락관민(濂洛關閩)의 통서(統緖)는 여러 유학자들의 앞장을 서서 뭇 성인들의 정미한 뜻을 궁구하셨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맑은 조정에 몸을 허여하셨으며, 평소에 품은 뜻은 실지(實地)에 입각하셨습니다. 경악(經幄)에서 논사(論思)를 함에 있어서는 착한 도리만을 반드시 임금 앞에서 진달하였으며, 전조(銓曹)에서 전형(銓衡)을 함에 있어서는 어진 인재를 뽑되 모두들 어질다고 한 뒤에야만 등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름은 북두성(北斗星)을 우러르는 듯이 높았고, 운수는 규성(奎星)이 밝은 빛을 내는 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찌 자식을 먼저 거두어가는 애통함이 있은 뒤에 잇달아서 간지(干支)에 진(辰)이 든 해를 만날 줄을 알았겠습니까. 입언(立言)을 하고 규범(規範)을 드리운 것은 비록 여러 사람들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었으나, 모난 깃과 둥그런 관은 이미 백대의 사표(師表)를 잃었습니다. 정강성(鄭康成)과 같은 해박한 지식은 여러 경전(經典)의 주소(注疏)를 내는 데에 다 발휘하지 못하였고, 진덕수(眞德秀)와 같은 올바른 토론은 부질없이 《대학연의(大學衍義)》 한 권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저 광벽(光璧)은 외람되게도 수업을 받으면서 스승으로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덕에 감화되어 선량해져서 오히려 더러움을 버리고 물든 것을 새로이 할 수가 있었으며, 재주를 따라 가르쳐 주시매 감히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다시는 덕음(德音)을 받들어 가슴속에 새겨 옛 경전 속에서 절차탁마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직접 묘지(妙旨)를 받들면서 가까이에서 모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혼령이시여, 어서 돌아오시어 초(楚)나라 사람이 불렀던 대초(大招)의 노래에 화답하소서. 조촐한 제수를 올리면서 한자(韓子)가 술잔을 올린 정성을 밝히고자 합니다. 아, 몹시도 슬픕니다.
祭文[門人趙光璧]
伏以哲人其萎。咸慟斯文之天喪。小子何述。益憂吾道之日蕪。焚一瓣之心香。攬數行之危涕。恭惟先生。早起南服。卒業西厓。詩書禮樂之文。起八代 衰而 掃六朝浮靡。濂洛關閩之緖。爲諸儒倡而究群聖精微。自靑年致身淸朝。而素志立脚實地。論思經幄。善道必陳於前。典選銓曹。用賢皆曰然後。名高斗仰。運値奎明。那知收子之哀。仍遘在辰之厄。立言垂範。雖開衆人之蒙愚。方領圓冠。已失百世之師表。鄭康成之該博。未畢諸經註疏。眞德秀之討論。空餘大學衍義。光璧 叨蒙講解。忝侍皐比。薰德善良。猶知棄汚而革染。因才敎育。敢望自卑而升高。更不得敬佩德音。切磋典墳之上。親承妙旨。陪侍警咳之間。庶魂兮歸來。叶楚人大招之詠。欲以菲薄。明韓子祇薦之誠云爾。嗚呼哀哉。
우복선생에 대한 제문 /문인 정영방(鄭榮邦)]
아, 슬프고도 애통스럽습니다. 하늘이 우리 사문(斯文)을 도와줄 뜻이 있다고 여겼는데, 어찌하여 한 분의 노성한 이를 이 세상에 남겨 주어 우리 유교를 뻗어가게 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하늘이 교화를 일으킬 마음이 없다고 여겼는데, 어찌하여 크나큰 임무를 부여해 내리면서 선생님과 같은 분에게 명하셨단 말입니까. 이미 모든 게 다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실로 이런 분을 데리고 가셨는바, 참으로 애통스럽고도 슬픕니다. 우리들은 앞으로 어느 누구를 모범으로 삼아 의지한단 말입니까.
공손히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천하를 경영할 만한 크나큰 그릇이었고, 오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서애 선생 문하에서 알아줌을 받았으며, 그때부터 이미 낙건(洛建)에서 노닐 뜻이 있었습니다. 화평스러우면서도 침착한 기상(氣象)은 쌓여서는 덕이 되고 발하여서는 말이 되었으며, 응집하고 수렴한 공력(功力)은 얼굴빛을 빛나게 하고 등을 두둑하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명성을 조정에서 드날리매 선학(仙鶴)이 속세로 나온 듯하였고, 아름다운 이름이 온 천하에 퍼지매 상서로운 기린이 이 세상에 나타난 듯하였습니다. 행동하고 읍양(揖讓)함에 있어서 예(禮)로써 하매 울연히 군자다운 의용(儀容)이 있었으며, 시세의 변천에 따라 행동을 함에 있어서 때에 맞게 하매 조물주의 처분에 맡긴 듯하였습니다.
저 미친개가 제멋대로 물어뜯는데, 어찌 난초를 차고 있으면서 반드시 그 향기를 풍기고자 하겠습니까. 고향에 사는 어부와 나무꾼들을 다시 찾아와 그들과 더불어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되었고, 선왕(先王)의 덕과 은택을 노래하면서 장차 종신토록 그렇게 지내려는 듯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영무(甯武)의 어리석음을 본받는 날에 주 선왕(周宣王)의 어진 이를 불러들이라는 명을 갑작스럽게 받을 줄 알았겠습니까. 자신의 몸을 닦으면서 기다린 것은 비록 늘그막에 시골에서 편안히 지내고자 해서였으나, 신하로서의 의리가 있는 바에 어찌 감히 종사(宗社)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정사를 펼침에 있어서는 하소연할 데 없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끼쳤고, 진언을 올림에 있어서는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았습니다. 날마다 세 번씩 접견하는 경연에서는 매번 요순(堯舜)의 일을 개진하였으며, 때때로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곳에서는 늠연하기가 마치 신명(神明)을 대하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내정을 닦고 외적을 방비하는 방도에 이르러서는 고향으로 물러나 있었을 적에 얻은 힘이 어떻다는 것을 더욱더 잘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참으로 임금을 요순의 지위에 올리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끼칠 수가 있었으니 어찌 또 반드시 입언(立言)을 하고 저술(著述)을 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총애가 커지면 커질수록 여러 사람들의 쇠를 녹일 듯한 비방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잠시 풀어 놓을 수가 있었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 온전하게 성취되도록 한 것입니다. 스스로의 분수를 헤아려 보건대 세속과는 잘 어울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어찌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는 것만 하였겠습니까. 이에 장차 경치 좋은 곳을 택해 살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어 드디어 즐거운 일을 다 맛보면서 맑은 시절을 즐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몸을 파고드는 병마(病魔)를 제거하기 어려움이 애통스러웠으며, 백 명의 몸을 가지고도 대신 속(贖)할 수 없음이 개탄스러웠습니다. 이에 빛나고도 밝으며 바르고도 큰 기운은 올라가서 열성(列星)이 되었으며, 임금을 돕고 천하를 경륜할 재주는 거두어서 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서울로 올라가실 때에는 백성들의 희망이 되어서 나라에는 믿고 의지할 바가 있어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 돌아가심에 미쳐서는 세상 사람들의 슬픔이 되었으니 우리 도가 장차 어느 누구를 의지하여 폐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백성들이 비록 복이 없다고는 하지만, 하늘은 어찌 차마 이렇게까지 심하게 한단 말입니까. 아아, 슬프고도 애통합니다.
못난 제가 선생님을 따른 것은 하루아침만을 모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산(牛山)의 야기(夜氣)에 어찌 초목의 싹이 돋아나지 않았겠으며, 기수(沂水)에서 봄바람을 쏘일 때에는 혹 관동(冠童)의 줄에 끼이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보고서 느끼어 무언가를 얻은 것은 없지만, 모범으로 삼아서 귀의할 수는 있었습니다. 장석(丈席)에서 먼지가 일어나매 옷자락을 말아 쥐고 가르쳐 주기를 청하는 일을 다시금 할 수가 있겠으며, 의형(儀形)이 꿈속으로 들어오매 가르침을 받으면서 곁에서 모시기를 예전처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 영원히 먼 길을 떠나갈 날이 이미 임박하였기에 추모하면서 기리는 정성은 전보다 배는 더합니다. 살고 죽는 것이야 이치에 있어서 정상적인 것이니 영령(英靈)께야 무슨 슬픔이 있겠습니까마는,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는 길이 아주 다른바, 이 때문에 어리석은 제가 몹시도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술잔을 들어 전을 올리면서 영결을 하매 옷소매가 장차 피눈물에 붉게 물들며, 상엿줄을 잡고서 길게 탄식하매 하늘의 해마저 어두컴컴해집니다. 말로는 뜻을 다할 수가 없고, 곡하는 것으로는 슬픔을 다할 수가 없습니다. 어둡지 않은 혼령이 계시다면 저의 술잔을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아아, 몹시도 슬프고 애통합니다.
祭文[門人鄭榮邦]
嗚呼哀哉。謂天有意於右文。何不憖一老而壽吾道。謂天無心於興化。何必降大任而命若人。已焉哉天實喪斯。慟矣乎吾將安倣。恭惟先生。經天偉器。間世英才。早受知於厓門。已游意於洛建。雍容沈密之氣象。蘊爲德而發爲言。凝聚收斂之功。睟於面而盎於背。蜚英聲於朝著。仙鶴出塵。播令聞於寰區。祥麟在世。周旋揖讓之以禮。蔚然君子人儀容。消息盈虛之合時。任乎命物者處分。彼猘犬方肆其狺噬。何蘭佩必欲其芬芳。追尋溪山之漁樵。與爲知己。歌詠先王之德澤。若將終身。那知甯武效愚之辰。遽承周宣進賢之命。修身以俟。雖欲安於桑楡。惟義所存。其敢忘乎宗社。立政則惠民無告。納約則格君非心。日三晉接之筵。動必開陳堯舜。時一燕閒之地。凜若對越神明。及至修攘之有方。益見遵晦之得力。苟可以致君澤物。
又何必立言著書。第緣眷注之益隆。衆口金鑠。仍獲負荷之暫釋。天意玉成。自分與世難諧。孰若從吾所好。方將選名區而盡餘齒。遂欲窮勝事而樂淸時。痛二豎之難除。慨百身之莫贖。光明正大之氣升爲列星。黼黻經綸之才斂就一木。昔者去爲民望。國猶有所恃而無憂。今也沒爲世悲。道將何所依而不廢。民雖無祿。天胡忍玆。嗚呼哀哉。自小子之從魚。非一朝之侍燕。牛山夜氣。豈無萌蘖之生。沂水春風。或備冠童之列。雖未觀感而有得。庶幾矜式而依歸。丈席生塵。摳衣請益之可再。儀形入夢。承誨侍湯之猶前。嗚呼。卽遠之期已臨。追慕之誠倍切。死生常理。在英靈其何悲。幽明殊塗。是愚昧之偏痛。布奠觴而永訣。衣袂將殷。秉紼翣而長吁。天日爲黑。言不盡意。哭不盡哀。不昧者存。庶歆菲薄。嗚呼哀哉。
우복선생에 대한 제문 /문하생 김추임(金秋任)
아아, 제 맘 슬프고도 애통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지금 이미 한 해가 지났는데, 못난 소생의 애통한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만 갑니다. 대개 지난해에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우리 유도(儒道)는 전해지지 않고, 정학(正學)은 황폐해져만 가는바, 나라는 기운이 시들어 초췌해지고, 후학들은 스승으로 삼아 의지할 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끝없이 애통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으나, 누구와 더불어서 따져 보겠습니까. 하늘은 막막하기만 하여 물을 길 없고, 귀신은 아득하기만 하여 따질 길이 없습니다. 이를 시대 탓으로 돌리겠습니까, 아니면 운수 탓으로 돌리겠습니까.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곡하는 애통스러움을 밝은 데서는 듣지 못하고 어두운 데서는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 저의 이 애통스러운 마음은 어느 때나 다 없어지겠습니까.
아, 못난 소생은 다행스럽게도 친절하게 직접 일러 주시는 가르침을 받아서 금수(禽獸)가 됨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서찰과 시문 속에는 정녕스러운 말이 수천 마디나 들어 있는데도 오히려 평소에 들은 바를 익혀서 저버리지 않기를 구하지도 못하였는바, 은혜는 지극히 두터운데 반해 죄는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 이에 감히 몇 줄의 거친 말로 제문을 지어 비로소 한 조각의 마음의 향을 사릅니다. 제수와 예법 모두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니, 만고토록 남은 애통이 있을 것입니다.
祭文[門下金秋任]
嗚呼痛哉。先生之沒今已期。而小子之痛日益深焉。蓋自去年易簀之後。吾道無傳。正學蓁蕪。邦國殄瘁。後學無師。抱此罔涯之痛而誰與之究也。天茫茫而莫問。鬼冥冥而難詰。其將謂之時耶。抑將委諸命耶。嗷嗷乎哭之慟。而明不聞幽不知。斯痛也何時而可已也。嗚呼。小子幸蒙提命之勤。得免禽獸之歸。書疏筍束丁寧數十百語。而猶不能習其所聞以求其不負。恩則至厚而罪乃深矣。敢以數行之蕪語。始薦一瓣之心香。物儀俱欠。萬古餘痛。
조카에 대한 제문 /동계(桐溪) 정온(鄭蘊)
이름은 창세(昌世)이며 자는 희주(希周)이다.
아, 슬프도다.
하늘이 너를 탄생시킨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한데, 하늘이 너를 죽게 한 것은 또한 무슨 의도인가. 너의 얼굴은 옥과 같고 너의 마음은 물과 같으며, 너의 말은 법도에 맞고 너의 행동은 구차하지가 않았다.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5년 동안 슬퍼하니, 사람들은 너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숙부(叔父)인 나를 아비처럼 섬기고 아우들을 수족과 같이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너의 온순함에 감복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글 읽기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듯이 하여 과정을 독려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하였으며, 총명하고 기억을 잘하여 고금(古今)을 두루 통달하였으니, 대개 타고난 성품이 그러하였던 것이다. 향시(鄕試)에서 세 번이나 장원하고, 문과 회시(文科會試)에서 두 번이나 급제하니, 그 명성이 자자하여 한 세상의 훌륭한 인재로 발돋움하였다. 마치 붕새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장차 날아오르는 듯하였는데, 빈 골짜기에 돋은 난초가 서리를 맞아 먼저 꺾여 버렸구나. 하늘이여, 하늘이여! 왜 이렇게 하였는가.
아, 슬프도다.
사람에게 어느 누가 조카가 있지 않겠느냐마는 나에게는 유독 네가 있었고, 사람에게 어느 누가 숙부가 있지 않겠느냐마는 너에게는 유독 내가 있었다. 은혜는 부자와 같았고 정은 형제와 같았으며, 10년 동안 과장(科場)에서 매번 붓과 먹을 함께 썼고 반평생 동안 산방(山房)에서 항상 잠자리를 함께하였다. 서로 절차탁마(切磋啄磨)하는 도구가 되고 서로 우익(羽翼)이 되었는데, 네가 먼저 나를 버리니, 나는 다시 누구를 의지하란 말이냐.
아, 슬프도다.
지난해 봄여름 경에 내가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할 때에 너의 병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 선뜻 사직하고 돌아가려 했더니, 네가 서신을 보내 만류하기를, “만약 병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면 이별을 생각하는 정이 어찌 조카가 숙부보다 못하겠습니까.” 하였더구나. 내가 돌아가지 않은 것은 이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 영예를 안고 돌아와 다행히 서로 만나기는 하였으나, 금년 봄에 소명(召命)을 받았을 적에 너의 병이 날로 악화되고 있었으므로 서로 이별할 때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떠나는 나나 남아 있는 너나 울먹이면서도 오히려 신명의 도움으로 장차 쾌차할 것으로 믿었는데, 어찌 이별한 지 열흘도 채 못 되어 이런 흉한 소식이 갑자기 이르러 올 줄 생각이나 했겠느냐.
아, 슬프도다.
내가 서둘러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의도한 바가 있어서인데, 묏자리를 잡지 못해 너의 장례를 제 날짜에 치르지 못하였고, 두어 달 사이에 은명(恩命)이 두 번이나 이르니, 왕정(王程)은 기한이 있는 것이어서 또 묘지에 임하여 통곡하지 못하였다. 너는 나를 아비처럼 여겼는데 나는 너를 자식으로 대하지 못하여,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너를 저버린 일이 참으로 많았으니, 훗날 지하에서 무슨 낯으로 너를 본단 말이냐.
아, 슬프도다.
네가 운명하려 하던 날에 사적인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니,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금도 아쉬움이 없었다 하겠다. 오히려 나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남은 한을 삼았다고 하니, 네가 나를 사랑한 것이 이와 같은데 나는 너를 대하기를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내가 어찌 마음을 가눌 수 있겠느냐.
아, 슬프도다.
사람이 죽고 나면 과연 지각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지하(地下)라고 하는 곳은 서로 따를 수 있는 곳일까, 아니면 따를 수 없는 곳일까. 다행히 지각이 있고 또 서로 따를 수 있다면, 단지 선후(先後)가 있을 뿐이니, 내가 또 어찌 섭섭해하겠느냐.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각이 없고 또 서로 따를 수 없다면 어느 해 어느 곳에서 훌륭한 내 조카를 만나 본단 말이냐. 떠나기에 앞서 글을 쓰다 보니 말로는 그 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구나. 단지 조촐한 제수에 의지하여 네가 와서 흠향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 슬프도다.
祭猶子文 名昌世。字希周。
嗚呼哀哉。天之生汝也。若不偶然。而天之死汝也。抑又何意。汝貌如玉。汝心如水。汝言無擇。汝行不苟。九歲失恃。五載哀毀。而人稱汝孝。事叔如父。愛弟如手。而我服汝順。自小志學。劬書嗜炙。不待程督勤也。聰明強記。博達古今。蓋其所性然也。三捷發解。兩魁文會。聲名籍甚。巨擘一世。九萬之翼。若將搏風。而空谷之蘭。遇霜先摧。天乎天乎。此何爲者。嗚呼哀哉。人孰不有姪而我獨有汝。人孰不有叔而汝獨有我。恩同父子。情若兄弟。十載擧場。每同筆硯。半世山房。常聯枕席。互爲磋切。相資羽翼。而汝先棄我。我復依誰。嗚呼哀哉。去歲春夏。余從仕于京。聞汝病深。徑欲辭歸。而汝書以止之曰。病若日重。思別之情。
姪豈下於叔主乎。余之不歸。恃此言也。其後榮歸。幸得相見。今春被召。汝病日劇。相別潸然。去留呑聲。而猶恃神扶。庶將無虞。豈意別未浹旬。而凶聞遽至也。嗚呼哀哉。余之汲汲南還。意有在也。而因山未卜。葬汝失期。數月之聞。恩命兩至。王程有限。又失臨穴之痛。汝視我父。吾未汝子。明幽之間。負汝誠多。泉路他年。何顏見汝。嗚呼哀哉。聞汝將死之日。言不及私。則其於處死生之際。無一毫介念。而猶以未見余爲遺恨云。汝之愛我如此。而我之待汝不相稱。言念及此。我何以爲心。嗚呼哀哉。人死而果有知耶。抑無知耶。地下焉可相從耶。不相從耶。幸而有知而相從。則只有先後。吾又何憾。不幸而無知而不相從。則何年何處。更見賢姪。臨發草詞。辭未盡情。只憑薄脩。冀汝來歆。嗚呼哀哉。
동계 정온에 대한 성신계(誠信契) 제문 /신탁(愼)ㆍ유홍갑(劉弘甲)
성신계(誠信契) 제문
계원(契員) 신탁(愼)ㆍ유홍갑(劉弘甲)
아, 슬프도다. 정련된 금과 아름다운 박옥(璞玉)에 한 점의 흠도 보이지 않는 것은 선생의 기국(器局)이었고, 매서운 송골매가 홀로 날아오르듯이 곧은 소나무가 눈을 떨쳐 내듯이 벽처럼 우뚝 서서 만 길의 골짜기로 쏟아지는 물살에도 굳건히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선생의 지절(志節)이었습니다. 철석(鐵石)의 간장(肝腸)도 부드럽게 여기고, 난간을 부러뜨린 손도 밀쳐 내며, 일월(日月)을 꿰뚫고 해악(海嶽)을 흔들면서 백대(柏臺 사헌부(司憲府)) 천추(千秋)에 추상(秋霜)처럼 열렬했던 것은 선생의 필설(筆舌)이었으니, 이는 모두 선생의 학문이 근본한 바가 있고 양성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백세 뒤에도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생을 통해서도 다시 얻기 어려울 것이므로, 선생이 세상을 떠나가시자 원로(元老)를 잃은 애통함과 선인(善人)을 잃은 탄식이 위로 성상으로부터 아래로 하례(下隷)와 서리(胥吏)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같은 고향의 같은 계원(契員)으로서 바로 선생의 곁에서 보살핌을 입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야 어찌 통곡하며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선생이 강상(綱常)을 부식(扶植)하여 나라로 하여금 오늘이 있게 한 공로는 해와 별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빛나서 오랠수록 더욱 밝을 것이고, 그 기절(氣節)은 죽고 삶으로 인해 보존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또 무엇을 슬퍼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저희들이 슬프게 소리 내어 눈물 흘림은 다만 사사로운 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삼가 향을 사르며 변변찮은 제물을 영전에 올리나니, 지극한 정성이 지하에 통하여 아마 넉넉히 흠향하실 것입니다.
誠信契祭文[契員,愼,劉弘甲。]
嗚呼哀哉。精金美璞。不見其瑕者。先生之器也。霜鶻獨擊。貞松拂雪。壁立屹屹。植脚不動於頹波萬仞之壑者。先生之節也。軟鐵石腸。排折檻手。貫日月撼海嶽。而柏臺千秋。秋霜烈烈者。先生之筆也。則此莫非先生之學有所本而有所養也。蓋百世不再出兮。伊一生難再得。則其亡也。不憖之慟。云亡之歎。上自宸極。下及臺胥。矧惟同鄕黨簿金蘭。而荷顧眄奉下風於衣塵几席之側者。安得不哭之慟而懷之緬也。雖然。先生之扶植綱常。使之國有今日者。炳若日星之在乎天也。久而愈明。其氣節有不與死生而存亡者則其又何悲。然則生等之所以噭噭然聲發而涕隨者。特出於私也。敬爇一瓣。蕉荔矢前。心香徹幽。想紆歆止。
동계 정온에 대한 사림 제문(士林祭文) /[조경(趙絅)]
아, 천지간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센 기운은 고금(古今)을 통하여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에 이러한 기운을 얻은 이가 대개 적고, 혹 얻었더라도 곧은 것으로 길러 해침이 없는 이는 더욱 적으니, 선생과 같은 분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센 기운을 얻었다고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성동(成童) 때부터 시서(詩書)와 육예(六藝)의 글을 읽었고 도를 믿음이 돈독한 것은 노년까지 한결같았으니, 곧은 것으로 길러 해침이 없었던 분이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지난 만력(萬曆) 계축년(1613, 광해군5)에 임금은 위에서 혼암하고 권병(權柄)은 아래에서 전도(顚倒)되어 오직 동궁(東宮)을 폐위하고 영부(佞夫)를 해치는 것으로써 환란을 제거하고 나라를 보위하는 지극한 계책을 삼았습니다. 그 당시 조정에 벼슬하던 사람들은 비록 평소에 강직하다고 일컬어지던 이들조차 모두 그 흉포한 기염(氣焰)을 두려워하여 겁에 질려 벌벌 떨며 입을 다물고 피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만이 홀로 붓을 휘둘러 수백 자의 상소문을 지었으니, 거리낌 없이 내뱉은 곧은 말은 마치 맨손으로 범의 이빨을 잡고 용의 역린(逆鱗)을 치는 듯하였습니다. 몸과 뼈가 부수어지는 것을 애당초 생각하지 않았고 도리어 충성과 용기가 쇠퇴하지 않아서 감옥에 갇혔던 반 년 세월이 선생의 한 터럭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고, 바다에 유배된 10년 세월이 선생의 한 눈썹을 찡그리게 할 수 없었으니, 이것은 바로 굳세고 큰 기운이 위태롭고 어지러운 나라에 드러난 것입니다.
성명(聖明)한 임금을 만났을 때에는 나이가 이미 많아져서 머리카락이 성글어지고 하얗게 세었으니, 응당 옥기(獄基)에 묻혔던 검이 북두성과 견우성을 범함이 조금 둔해졌을 것이고, 질풍처럼 달리던 천리마가 남은 걸음을 거두려고 할 것이건만, 직무를 당하면 피하지 않고 일을 만나면 곧바로 발언(發言)함이 옛날보더 더 늠름하였으므로 대각(臺閣)에 기풍이 수립되었습니다. 회남왕(淮南王)의 유배와 복묘(濮廟)의 의논과 끝없는 화의(和議) 등의 문제로 조정 의논이 분분하여 옳고 그름이 전도되었으나 선생의 한마디 주장에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굳세고 큰 기운이 청명(淸明)한 조정에 드러난 것입니다.
청나라 오랑캐가 탐욕스럽고 포악한 돼지와 큰 뱀처럼 우리나라를 거듭 삼키려고 광주(廣州) 남한산성 아래에 벌 떼같이 몰려들었으나 밖으로는 온태진(溫太眞)처럼 분기(奮起)하는 사람이 없고 안으로는 동안우(董安于)처럼 난리를 다스리는 사람이 없는데, 묘당(廟堂)의 계책은 오직 우리 임금을 석진(石晉)으로 만들고 우리 사직(社稷)을 정강(靖康)처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께서 결사 각오로 오랑캐를 공격하려던 계획이 이에 외면당하여 충성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한 치의 아교(阿膠)로는 범람하는 흐린 강물을 맑게 할 수 없고, 한 개의 나무로는 기우는 큰 집을 지탱할 수 없음은 필연의 이치라 할 것입니다. 거우(車右)가 목을 찌르고 추신(鄒臣)이 칼에 엎어져 자결한 충정이 선생의 가슴에 열렬히 빛났으니, 이것은 바로 굳세고 큰 기운이 위급한 날에 드러난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부(君父)는 지극히 높고도 친하지만 마지막을 보내 드리는 상례(喪禮)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끝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병자년으로부터 지금까지 몇 해가 지났으니, 경대부(卿大夫)는 조정에서 편안하고, 사서인(士庶人)은 농토에서 편안하고, 상고(商賈)는 시장에서 편안하여 모두 다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만, 어찌 선생께서는 형제와 이별하고 처자를 물리치고서 우두커니 홀로 궁벽한 산속에 살며 나쁜 옷과 거친 음식으로 겨울과 여름을 보내고 아침과 저녁을 지내며, 많은 피만 흘리고 남한산성에서 즉시 죽지 못했던 일을 자신의 죄로 인책하여 감히 잠시도 잊지 못했단 말입니까. 이는 천백년 사이에 선생 한 분뿐일 것입니다. 옛사람으로서 30년 동안 수레 위에서 절의를 지키다가 죽은 자가 어찌 곧바로 선생과 짝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굳세고 큰 기운이 위미(委靡)한 때에 드러난 것입니다.
아, 살아평생 70여 년 동안에 그 기운은 우주에 가득 차서 위협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욕에 굴하지 않았으며, 성패(成敗)ㆍ이둔(利鈍)ㆍ험조(險阻)ㆍ간난(艱難)에 조금도 꺾이지 않았으니, 어찌 생사(生死)가 있는 만물과 더불어 진멸(盡滅)하는 곳으로 돌아가겠습니까. 그렇다면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제가 알건대, 송추(松楸)도 그 혼백을 거둘 수 없고 중천(重泉)도 그 기운을 가릴 수 없어서 태공(太空)의 명명(冥冥)한 곳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만약 혹 우레가 되고 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그 분기(憤氣)를 쏟아 낸다면 중국의 사방 만리 안에 오랑캐의 누린내를 깨끗이 쓸어 낼 것이고, 혹 광채를 드날려 긴 밤을 밝힌다면 자미원(紫微垣)의 천원황제(天元皇帝) 자리 곁에서 보필하는 성좌(星座)가 될 것이니, 누가 선생께서 이제는 계시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볼 수 없는 것은 선생의 쟁영(崢嶸)한 얼굴과 신밀(愼密)한 위의(威儀)이지만, 사라지지 않는 선생의 기운은 우주와 함께 길이 존재할 것입니다. 제가 짐짓 일반적인 애도의 글로써 선생을 위한 제문을 짓지 않고, 이 굳세고 큰 기운을 서술하는 것으로 말을 삼았으니, 선생께서는 아마 하늘의 문에서 껄껄 한 번 웃으시지 않겠습니까.
士林祭文[趙絅]
於乎。天地之間。至大至剛之氣。亘古今而不漓。然而人之生也。得之者蓋寡。其或得之。而以直養而無害者尤寡。若先生。可謂得至大至剛之氣者非耶。爰自結髮。讀詩書六藝之文。信道之篤。白紛如也。則謂之以直養而無害者卽宜。往萬曆之癸丑。君昏於上。柄倒於下。惟以閉東朝賊佞夫。爲祛患保國之至計。當時之立于朝者。雖素稱骨鯁。無不畏其兇焰。戰掉悼慄。咋舌而辟之。先生獨奮筆草疏累百言。謇謇諤諤若赤手探虎之牙。批龍之逆鱗。糜身粉骨。曾莫之顧。而忠勇不衰。若盧半載。不足動先生一髮。海棘十霜。不足嚬先生一眉。此則剛大之氣見乎危亂之邦者也。曁遭遇聖明。年考已大。髮種種而皤皤。宜其埋獄之劍少頓干斗。
歷塊之驥欲斂餘足。當官不避。遇事輒發。視疇昔有加而凜凜。風立臺閣。淮南之遷。濮廟之議。無終之和。廷議紛挐。顚倒是非。先生一言之柱。人皆動魄。此則剛大之氣見於淸明之朝者也。翟爲封豕長蛇。荐食我國。魚鱗雜襲於廣南之下。外無溫太眞之投袂。內無董安于之治公。宮廟堂之所籌畫。惟欲石晉我君父。靖康我社稷。先生之背城借一宵攻王舍之策。於是乎外焉而不以爲忠。寸膠不能淸橫流之丈渾。一木不能支大廈之傾頹固也。車右刎首。鄒臣伏劍。烈烈皎日乎先生之胸。此則剛大之氣見乎顚沛之日者也。古語曰。君父至尊親也。送其終也。有時而旣。自丙子至于今凡幾年所。卿大夫安於朝。士庶人安於野。商賈安於市。擧皆婾衣甘食而嬉娛。胡先生離兄弟屛妻子。塊獨處乎窮山之中。惡衣糲食。冬夏而朝夕。以糢糊斗血。不能卽瞑於圍城。爲負罪引慝。不敢忘於須臾。此則千百載先生而已矣。
古之人三十年終於車上者。奚遽不能與之爲徒。此則剛大之氣見乎委靡之時者也。嘻戲。自始至卒。其氣之七十餘年。充塞宇宙。不爲威惕。不爲利屈。成敗利鈍。險阻艱難。不少挫焉。則其肯與萬物之有生有死者。同歸於盡乎。然則先生之卒也。吾知柏楸不能斂其魄。重泉不能掩其氣。歸之於太空之冥冥。其或爲雷爲霆爲豐隆爲屛翳而洩其憤。則神州赤縣四方萬里之內。淨掃犬羊之羶腥。其或揚光彩炳烺長夜。則廁近紫微垣天元帝座爲輔弼之星。孰謂先生今也則亡。所不見者。崢嶸眉宇。抑抑威儀。而其不亡者。與宇宙長存。吾故不爲世俗弔死之哀以誄先生。敍此剛大之氣以爲言。先生其不一噱於匀天之門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