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신타 이야기
제신타(Jacinta Umechukwu)는 서부 아프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이지리아(Nigeria) 사람이다. 그녀는 가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에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의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 한기 공부하기 위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처음으로 봉평교회를 찾아온 때는 2024년 10월 13일 주일이었다. 핸드폰 지도를 보면서 본인이 찾는 곳이 맞는지를 연신 확인하느라 교회 정문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외국인이 교회를 찾는 적은 없었으므로 안내위원들도 적잖게 당황했지만 말이 안 되면 몸으로라도 의사를 소통해 보려고 최숙희 사모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구글(Google) 지도의 안내를 받고 교회를 찾아 왔다면서 낯선 땅에서 첫 예배에 참석했다. 한국말은 전혀 할 줄 모르는 그에게 예배는 내내 답답했을 것이지만 예배 태도는 진지했고 집중하는 게 보였다. 예배 후에는 애찬을 나누면서 번역기의 도움으로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그의 봉평교회 아니 한국에서의 첫 예배는 잘 끝났다. 그런데 제신타는 그다음 주일(20일) 예배에도 참석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그녀는 신앙생활을 잘했구나 싶었다. 그날도 이방의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일(27일)에도 제신타의 예배 참석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등록을 권유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제신타는 봉평교회 역사상 제1호 외국인 등록자가 되었다. 그 후 주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낯선 땅에서의 그의 신앙생활이 계속되었다.
제신타는 올해 47세의 중년 부인이다. 나이지리아에서도 대학을 나왔고 이번에는 가나대학교 대학원 장학생으로 농업경제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그녀는 부모의 신앙에 따라서 나이지리아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한 모태 신앙인이다. 그의 예배 태도는 경건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어도 아는 찬송가를 부르고 영어로 성경을 읽으며 설교를 듣는다.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이지만 그는 영적인 터치를 느끼는 듯이 예배의 기쁨이 그의 얼굴에 차 있다. 유학생으로 이방 땅에 와서 공부하는 상황이지만 매달 빠지지 않고 십일조를 드린다. 한 푼이 아쉬운 이방 생활이 아니던가? 또 한시적으로 다니는 임시 교회이니까 십일조는 본 교회에 돌아가서 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당연히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십일조 봉헌을 칭찬했더니 오히려 그게 왜 칭찬의 대상이 되는지 반문했다. 그에게 십일조는 성도로서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에게 예배 중에 독창으로 찬양을 부탁했다. 하나님께 드릴 찬송이니까 기쁘게 받아들이고는 평소 좋아하던 찬송가 악보를 꺼내 들었다. 2024년 송년주일(12월 29일)에 그는 ‘Send the Light’(복음의 빛 보내소서)를 열창했다. 복음 증거에 대한 그만의 신앙고백처럼 들렸다. 또한 그녀는 늘 성경을 묵상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많이 아프다고 하니까 그녀는 성경을 꺼내들고는 치유의 말씀만을 골라서 읽어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 안에서 절망하기보다는 소망을 가지라고 위로해 주었다.
제신타는 가나대학교에 재학 중인 19세 아들(Princewill)이 있다. 고향 나이지리아에 비해 무척 추운 한국의 날씨를 잘 견디고 새봄을 맞이하자 제신타는 어느새 한 학기 과정을 마치고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가나에 가면 아들을 볼 수 있어서 돌아갈 날을 기대한다. 혼자 이역만리 타국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그리운 남편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소식이었다. 현재 그의 남편 존(John Missouri)은 미국에서 우체국에 근무하고 있으며 아내와 함께 출국하기 위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남편과 여행하면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된 것이다.
제신타는 가나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으면 국제금융기관인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자신의 전공과목인 농업경제학을 바탕으로 일하고 싶어 한다. 이 은행의 설립 및 운영의 공식 목표는 ‘빈곤해소’(Working for a World Free of Poverty)다. 현재 빈곤해소가 절실한 나라는 아프리카의 제 국가들이다. 그런 면에서 제신타의 마음에는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승화되어 애족의 마음은 그의 심령에 더욱더 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이제 3월 25일 그녀는 한국을 떠난다. 현재로서는 언제 다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처럼 제신타와 우리는 유대인과 헬라인처럼 서로 하나 되기 어려운 남남이지만 믿음 안에서 만난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저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로 교제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태평양을 건너 바람결에 날아온 기쁜 소식 나누면서 감사할 뿐이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한국을 많이 알 수는 없었지만 좋은 일만 가슴에 남기를 바랄 뿐이다. 봉평교회를 통해서 한국교회를 안다는 것 역부족이지만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가서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로서의 역할도 기대해 본다. 제신타와의 짧은 시간이지만 폭삭 들어버린 정 때문에 아쉬움은 진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그녀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로마서 16:20).
2024년 10월 27일 등록 기념 사진
2025년 2월 9일 정월 대보름 맞이 척사대회에서 경품을 받고 즐거워하는 제신타
제신타의 가족
2025년 3월 9일 남편 존이 봉평교회 예배에 참석한 기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