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의 고향 전문-
20대 초반의 시인, 정지용..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떠나기 전
고향의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한 것이 '향수'다. 고향은 그렇게 마음속을 휘돌아 지용의 가슴속에 융해되어 보석으로 태어난 명시가 된 것이다.
그러나 훗날 고향을 찾은 그는 옛날의 그 정겨운 고향이 아님을 알고 그리던 고향이 아니라고 외쳤다. 술잔이 한 순배 돌아가면 그는
'향수'와 '고향'시를 번갈아 낭송했다고 한다. 그의 시낭송은 범인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고 했으니 꿈속에서나마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시에
젖어보고 싶다는 꿈을 그려본다. 검정두루마리 차림의 낭만적인 멋쟁이, 그러면서 곧은 신념을 가지고 일제에 저항했던 민족시인이었다.
정지용은 1902년 5.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약종상을 하는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향의 죽향초등학교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도시샤 대학을 졸업했다. 휘문고보 재학시절 박종화, 홍사용, 김영랑과 만나 글쓰기를 시작했고 일본유학시절 '신민'과
'문예시대'에 '홍춘' '산엣색시 들녘사내'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1950년 6.25전쟁과 더불어 더 이상
우리들의 친근한 벗이 될 수 없었다. 언어와 감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며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믿었던 그가 표출해 내었던 시어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하다.
추석명절을 맞아 부모님이 살고계신 고향땅을 찾았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서 만나는 친구 3명... 고향을 떠나 사는 그들도 우리들의 옛추억과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와 대전에서 단숨에 달려와 대둔산 자락 '수락계곡'의 시골풍경이 물씬 풍기는 그 음식점의 들마루에 앉아 손두부와
막걸리... 한 잔, 두 잔 그렇게 그리움을 토하며 '향수'에 젖는다.
찾아올 고향,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준 고향, 친구들...
그래도 남아 있는 산야, 저 푸른하늘, 맑은공기, 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 벌거숭이 산에서 울창한 숲으로 변한 고향산,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고향이 있기에 행복함을 노래한다.
지용이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향수'에서 일깨웠듯이 우리들 저
밑바닥에서 흐르는 절절한 '그리움'의 조각들이 서로를 애타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옥천.. 그 고향을 두고, 부모님을 두고
멀리 캐나다로 이민간 친구는 어떻게 '향수'를 견디며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