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니 쌀창고 안에 쌀이 걱정이다.
더워지면 쌀벌레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름마다 겪는 일인데 올해도 겪겠지란 생각에 매우 곤혹스럽다.
벌레가 한 마리만 생겨도 순식간에 퍼진다. 올해 도정한 맛있는 쌀마저 벌레 때문에 밥맛이 떨어지고, 수분도 다 빼먹고, 위생적이지도 못한다.
매일 벌레를 솎아내는 수고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를 정도로 괴롭다.
어떤 땐, 밥을 짓고도 벌레시체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 노이로제 혹은 트라우마가 생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창고형 저온 냉장고”가 필요한데 상당히 비싸서 구입할 엄두를 못냈다.
그런데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나보다.
그냥 뒷감당은 어떻게 됐든 간에 "이번 여름에는 더이상 못견디겠으니 꼭 구입하리라"라는 이글거리는 결심만 생겼다.
살면서 내가 나한테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이 또 있었을까. 아마 분노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오고 눈에선 레이져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저온창고를 인터넷으로 알아봤다.
2평짜리 저온창고가 400만원, 3평짜리가 480만원에 기반시설공사와 제작, 그리고 설비까지 해주는 것으로 나왔다. 이게 인터넷 최저가 같다.
물론 중고는 더 저렴하다.
중고나라에서 250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지만 지게차로 들어 옮기는 게 아니고 분해한 다음 급식소에 와서 재조립하는 형식이라 조립한 틈에서 냉기가 셀 수도 있고, 전문기사를 불러야 하는데 인건비 포함하면... 무엇보다 오래오래 쓰고 싶어 새 제품을 구입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돈이 있는 게 아니다.
돈이 있어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기"가 생겨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카드 할부가 되면 그걸로 하고, 그게 안 되면 나눠서 드린다고 사정해 볼 생각이다. 적어도 열 달 안에는 갚을 수 있겠지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우리 급식소에서 가장 비싼 물품을 구입하는 건데 말썽 부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쌀 뿐 아니라 묵은지, 나물, 채소, 과일 등도 보관할 수 있어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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