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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55편1~23절
제목 : 고통 위에 고통이 더해질 때
다윗의 저작으로 압살롬 반역 때 지은 것입니다.
이 시편은 대적하는 친구들에게서 구원해주실 것을 간구하는 탄식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벌어지는 악인들의 위협과 친구의 배반으로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 모든 상황에서 구원해주시기를 아룁니다.
1. 시인이 간구하는 이유(1~5절)
1) 응답하소서(1~2상반절)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이는, 다윗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다윗은 십 사람들의 밀고로 사울에게 쫓기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바로 이 같은 탄식어린 기도를 하였었습니다(54:2).
*시54: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 '내가 간구할 때에'는 문자적으로 '나의 간구를 '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숨지'는 '스스로 무시하다'로 번역하여 행위 주체의 무관심을 강조함이 타당합니다(신 22:1, 3, 4, NIV).
아무튼 본문과 같은 기도는, 기도하는 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암시합니다(13:1;27:8; 69:17;89:46)
“내게 굽히사”는 더 가까이에서 듣고 살피시기 위하여 허리를 굽힘을 뜻하는 것으로서 자기 사정을 잘 살펴 달라는 호소입니다.
2) 응답하실 이유(2하반절~3절)
“[2]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 여기서 '편치 못하여'(아리드)는 문자적으로 '내가 나자신을 방황하게 하였다'의 뜻입니다.
한편 '근심'(시아흐)은 억울한 일 등으로 인하여 깊은 시름에 잠기는 것 혹은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는 것(142:2;욥 9:27;잠 23:29)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온갖 염려를 하는 등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 '원수'는 자신이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을 위시하여 천재적인 모사 아히도벧(삼하 15:12)과 그들의 군대를 가리킵니다.
한편 '소리'는 위의 두 사람이 군대를 모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청적(可聽的)인 소음을 뜻합니다(Calvin).
또한 '악인'은 근본적으로 앞의 '원수'와 동일하며,
'압제'(아카트)는 '붙들다' 혹은 '억류하다"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앞의 '소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뜻을 나타냅니다.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 '핍박하나이다'(사탐)는 원래 '미워하다' 혹은 '대항하다'의 뜻이지만 문맥에 따라서는 무력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행동까지를 뜻합니다(창 49:23;욥 30:21).
한편 '노'(아프)는 원래 '콧바람을 내뿜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아나프'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3) 고통의 내용(4~5절)
(1) 사망의 위험(4절)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 '마음'이 인간의 내면을 지칭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속'이라는 내면 개념을 또다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 지를 극명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과 중신(重臣)이었던 아히도벧이 자신을 왕에서 제거할 음모 꾸민다는 사실로 인하여 바로 이 같은 내면적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심히 아파하며'(훌)는 원래 '꼬다' 또는 '빙빙 돌리다'는 뜻이며,
여기서 '춤추다', '근심하다', '고통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특히 여기에서처럼 '고통하다'의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마치 해산하는 산모가 당하는 진통과 같이 내장이 뒤틀리는 듯 심히 괴로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 압살롬은 다윗의 왕위를 찬탈할 음모를 약4년 동안 주도면밀하게 꾸며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이 능히 성사될 것으로 믿고 음모를 공공연하게 진행시켜 나갔습니다(삼하 15:1-6).
따라서 다윗은, 모반자들이 자신들의 목숨 보존을 위해서라도 그 음모를 기필코 행동으로 옮기고 만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위험'(에이마)은 '두려움' 혹은 '놀람'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창 15:12;출 15:16)
(2) 두려움에 싸였음(5절)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 '두려움'(이르아)과 '떨림'(라아드)은 모두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두려움'은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의 내면성을 말하고,
'떨림'은 그것의 외적 현상을 강조합니다.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 '공포'(팔라추트)는 사지가 덜덜 떨릴 정도의 심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욥21:6;겔7:18).
한편 '덮었도다'(카사)는 '압도하였다'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시인의 소원과 기도(6~11절)
1) 피난하기를 원함(6~8절)
(1) 광야로 피난을 원함(6~7절)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 '내가...날개가 있으면'은 문자적으로 '누가 나에게...날개를 줄 것인가?'의 뜻입니다.
결국 이는 그 당시에 다윗이 어떤 방법으로도 모반의 위험, 즉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화급(火急)한 상황이었음을 말해줍니다(Calvin).
그는 이같이 말함으로써, 자신의 애처러운 신세를 한탄할 뿐만 아니라 오직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피신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편 비둘기는 팔레스틴에 많이 서식하던 새입니다.
다윗이 많은 새 중에서 하필 비둘기가 되고 싶다고 한 까닭은,
그가 자신을 '압살롬'이라는 '매'(hawk)에 쫓기는 신세로 여기고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Calvin).
뿐만 아니라 비둘기가 멀리 날아갈 수 있고, 사람들에 의해서 쉽사리 잡히지도 않는다는 점 또한 이러한 표현으로 나타나게 된 한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광야에 거하리로다. '광야'는 핍박을 받는 자들이 핍박을 숨는 곳으로서 흔히 이용되었습니다(삼상 24:1;렘 9:2).
구체적으로는 '유다 광야'를 가린킵니다.
'거하리로다'(룬)는 '숙박하다' 혹은 '머무르다'의 뜻으로서,
단기적으로 외지에서 머무는 것을 가리킵니다(삿 19:13;룻 3:13; 사 21:13).
(2) 피난처로 피하기 원함(8절)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본절은 비둘기가 폭풍우를 피하여 바위 밑의 둥지로 안전하게 숨는 광경을 연상시킵니다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여기의 '폭풍'은 그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빠른 바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풍'(사아르)은 '회오리 바람'을 가리킵니다(램 23:19;30:23).
중근동 지방에서는 이 같은 바람들이 빈번히 발생하여, 그 강력한 파괴력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필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압살롬의 모반을 염려하던 다윗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피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2) 행악자의 죄악상(9~11절)
(1) 강포와 분쟁(9절)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이는 압살롬 일당의 음모가 결코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지 않았음을 암시해 줍니다(Calvin).
'강포'(하마스)는 '포악 행위', '부정' 등을 가리킵니다(출 23:1;욥 15:35).
그리고 '보았사오니'(라아)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세심하게 주시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 여기의 '그들'은 다윗에 대한 모반을 꾀하던 압살롬 일당을 가리킵니다(Keil).
한편 '멸하소서'(발라)는 '삼키다'의 뜻(민 16:30;사 28:4)으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상황에 대한 독특한 표현 양식입니다(21:9).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 여기서 '잘라 버리소서'(팔라그)는 하나님께서 바벧탑을 쌓던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 사건과 관련하여 사용됐던 '발랄'과 동의어입니다.
특히 다윗은 독자로 하여금 본절에서 그같이 언어가 혼잡케 된 사건을 회상시키기 위하여 앞에서 '발랄'과 비슷한 '발라'라는 동사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Keil).
그렇다면 다윗은, 압살롬과 아히도벧의 모반 계획이, 마치 바벧탑을 쌓던 인류의 계획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무산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다윗의 이러한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즉, 모사 아히도벧의 계략이 압살롬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압살롬과 아히도벧은 결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에 의해서 패퇴되고 만 것입니다(삼하 15:31;17:1-14).
(2) 성벽 위에서 행악함(10절)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 '두루 다니니'(사바브)는 파수꾼들이 살피며 돌아다니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왕하9:18;아 3:3;5:7). 따라서 본 문구는, 압살롬 일당이 파수꾼처럼 성벽 위를 돌면서 간첩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Cheyne, Keil).
결국 다윗은, 왕권(王權)과 국권(國權)을 지킬 목적으로 건축된 성벽을 압살롬 일당이 오히려 그 반대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사악성과 부도덕성을 생생하게 고발하려고 합니다(Calvin).
성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 '성중에는'(베키르바)은 문자적으로
'그녀의 안에는'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그녀'에 대한 해석은 압살롬과 아히도벧이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성(城)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본 문구의 내용은 압살롬과 같이 불의하게 왕권을 탈취하려던 자들이 성내를 누비고 다님으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결과임이 분명합니다(Rawlinson).
(3) 압박과 속임수(11절)
“[11]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압박'(토크)은 '난폭스런 무법 행위를 가리킵니다(72:14).
그리고 '속임수'(미르마)는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타인에게 교묘히 사기를 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창 27:35;호 12:7).
한편 '거리'(레호바)는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성문 근처의 '광장'을 가리킵니다(대하 32:6;스 10:9;에 4:6).
이곳은 시장에(市場)이나 심지어는 법정(法廷)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어야 할 곳에 도리어 불의가 판쳤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3. 친구의 배신과 시인의 기도(12~19절)
1) 친구의 배신(12~15절)
(1) 행악자가 원수가 아님(12절)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여기서 다윗은, 모반을 꾀한 자가 자신에게 매우 신임 받던 인물이었음으로 인하여더 큰 괴로움을 느껴고 있습니다(41:9).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자가 차라리 그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큰 심적(心的)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망한(하라프). - '비방하다' 혹은 '훼방하다'의 뜻으로서 상대에 대한 험담 등을 함으로써 그 인격을 깎아내리는 것을가리킵니다(삼상17:25;왕하 19:4;느 6:13).
아히도벧과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자신들에게 향하도록 할 목적으로, 이같은 행각을 벌였을 것입니다(삼하15:6, 12 13).
원수가 아니다. - 압살롬이 다윗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압살롬을 도와 모반을 꾀했던 '아히도벧'은, 다윗에게는 훌륭한 조언자였고(삼하15:12),
한때 그의 말은 거의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습니다(삼하 16:23).
원수일진대 - 본 문맥의 의미를 잘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일 뿐, 히브리 본문에는 없습니다.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 이것은 압살롬과 아히도벧이 다윗을 비방함으로써 얻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별도로 자신을 다윗보다 더 나은 자로 인식시키기 위해,
자신들을 공의로운 자로 가장하기도 하였습니다(삼하 15:2-4).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 이것은, 모반의 주동자들이 원수였다면 소식을 들은 즉시 도망쳤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히도벧이 자신과 너무나도 각별한 사이였었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피신을 늦추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아히도벧과 압살롬의 반역 음모에 대해서 진작 들었지만, 이같이 자신의 도망을 늦춤으로써 별다른 준비도 못한 채 궁궐을 떠나야만 했습니다(삼하 15:13)
(2) 배신한 자는 친우임(13절)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료. - 문자적으로 '너는 나와 같은 반열에 서 있는 자라'로번역됩니다.
본문은 이전에 다윗이 아히도벧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암시해 줍니다.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 여기서 '친구'(알루프)는 다른 사람과 동행하여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Jack Scott).
한편 '가까운 친우'(미이다)는 상대를 피차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를 뜻합니다.
(3) 모사였던 자임(14절)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 본문은 문자적으로 '우리가 함께 달콤한 교제를 나누었던'의 뜻입니다.
의논은 어떤 중요한 일을 논의 결정하기 위한 비밀스런 회합을 가리킵니다(64:2;잠 20:19:렘 23:22).
무리와 함께 하여 - 여기서 '무리'는 '대규모의 군중'을 뜻합니다.
다윗은 아히도벧을 절기나 기타 국가적인 대규모 행사 때에 항상 대동(帶同)하였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가 개인적이며 은밀한 접촉이었다면, 본 문구는 공개적인 접촉 혹은 친교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도 아히도벧을 동행시킬 만큼 그와 가까웠음을 시사합니다(42:4).
(4) 반역자들이 실패를 기원함(15절)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9절에서는 아히도벧의 계략이 무력하게 되기를 간구했으나,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간구 뒤에 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덧붙이는 것은 9절이나(10,11절) 본절이 동일합니다.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것은 아히도벧 뿐만 아니라 그와 힘을 합하여 다윗을 대적했던 모든 자들에 대한 저주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초자연적인 징벌로 말미암아 땅속으로 빠져들어가 파묻혀버렸던 고라 일당의 사건(민 16:30-35)을 염두에 두고, 바로 이 같은 저주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편 '스올'에 관해서는 삼상 2:1 -10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홀연히 - '불시에'(by surprise)라는 말을 삽입하였다.
2) 기도 응답을 확신함(16~18절)
(1) 구원을 확신함(16절).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압살롬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드리워지려는 순간에 처해졌지만, 다윗은 기도를 계속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합니다(Calvin).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만 의지했던 모반자들의 자세와 현저하게 대조됩니다.
시인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간구에 있음을 확신했습니다(A. A. Anderson).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 기도 응답의 확신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을 강조하는 명칭인 '여호와'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기도 응답의 확실성을 강조합니다(Alexander).
(2) 세 차례의 기도(17절)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 '저녁과 아침과 정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던 세 번의시간을 의미합니다(단 6:10;행 3:1).
'탄식하리니'(시아흐)는 원래 '전하다' 혹은 '말하다'의 뜻으로서 상대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을 상세히 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69:12;삿 5:10;대상 16:9). 그리고 '근심하여'(하마)는 '큰소리로 말하다' 혹은 '한탄하다'의 뜻으로서, 대개 불안한 심리 상태를 억제치 못해 크게 소리내어 부르짖는 행위를 가리킵니다(59:6;77:3;겔 7:16).
(3) 구원하셨다고 함(18절)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 '나를 치는 전쟁'은 문자적으로 '나에 대한 전쟁'으로, 압살롬과 그 모사 아히도벧에 의해 주도된 모반을 가리킵니다(삼하 16:15).
한편 '구원하사'(파다)는 완료 시제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삼하 16:14-18)이지만, 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확실함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파다'라는 동사는 '되사다' 혹은 '되찾다'의 뜻으로서, 이미 팔려간 사람이나 물건을 어떤 대가의 지불을 통하여 다시 찾아오는 것을 가리킵니다(레 27:27; 렘 31:11).
특히 이 동사는, 본문에서 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구출해내시는 것에 대해서 사용되기도 합니다(삼하 4:9;느 1:10).
3) 보응하심(19절)
“[19]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셀라)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옛부터 계시는(야쉐브 케뎀) - 이는 '영원토록 앉아계신'의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예나 지금이나 항상 공의로운 심판자되시는 분임을 가리킨다(74:12;신 33:27;합 1:12, Keil).
본절에서 시인은 소망의 근거를 신앙 고백적인 진술로써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심판주로서 영원토록 좌정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괴롭히거나 당신을 경의하지 않는 자들에게 반드시 보응하실 것입니다(W. A. VanGemeren).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72:14)
4.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운명(20~23)
1) 그들이 죄악(20~21절)
(1) 언약을 배반하였음(20절)
“[2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여호와의 신실하심과는 대조적으로, 반역자들은 절친한 친구를 배신하고 그 뒤통수를 치는 계교를 꾸몄습니다.
한편 여기서 '언약'이란 직접적으로는 다윗과 아히도벧 간에 맺은 굳은 약속이나 맹세를 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배후에 하나님이 증인으로 계셨다는 점에서 그 배반은 곧 하나님께 대한 거역의 의미를 내포하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A. A. Anderson).
(2) 언행이 불일치함(21절)
[21]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 아히도벧이 평소에 유순한 말(Calvin) 혹은 아첨하는 말(Keil)을 많이 했었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의 '우유 기름'은 '버터'를 뜻합니다.
그 마음은 전쟁이요 - 겉과는 달리 속에서는 살의(殺意)를 품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뽑힌 칼 - 사람을 즉각적으로 죽일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아히도벧의 내면적 잔악성을 여실히 폭로해 주는 말이입니다.
2) 확신과 결심(22~23)
(1) 확신(22절)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기서 다윗는 자신을 2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압살롬과 아히도벧의 반역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된 결론을 피력하고 있습니다(W. a. Vangemeren).
네 짐(예하브카) - 이는 '주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하브'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너의 몫'(Rawlinson). 혹은 '네게 주어진 것'(Hupfeld)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다윗을 짓누르던 '염려' 혹은 '근심'을 가리킵니다.
너를 붙드시고 - 여기서 '붙드시고'(쿨)는 원래 '기르다' 혹은 '먹을 것을 주다'의 뜻(창 47:12;50:21)으로서, 주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의미를 시사합니다.
(2) 결심(23절)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 '파멸'(솨하트)은 '부패' 혹은 '멸망'(렘 13:9)의 뜻이며, '파멸의 웅덩이'는 사람의 시체가 부패하는 '무덤'을 뜻합니다(Rawlinson, Calvin). 그렇다고 한다면 본 문구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속이는 자들. - 아히도벧이 다윗에게 겉으로는 유화적(宥和的)이었으면서도 속으로는 살의를 품고 모반 음모를 꾸몄던 사실(21절)과 관계 있습니다.
그들의 날이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 이것은 아히도벧 일당이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못할 것을 가리킵니다.
사실 아히도벧은 자살하였으며(삼하 17 23),
압살롬은 요압의 손에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삼하 18:14, 15).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여기서 다윗이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구원의 은총을, 악인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을 내려주실 것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Calvin).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1,2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귀찮아하지 않으시며, 귀를 기울이시고, 친히 몸을 굽혀 찾아오십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내 모든 근심과 걱정을 아뢰십시오.
우리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2) 공의로우신 분입니다(18,23절).
하나님은 시인의 목숨을 빼앗을려던 악인들을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그를 구원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보응(報應)과 보호(保護)를 신뢰하며, 뒤틀려진 이 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도록 간구합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3~9절).
시인은 그가 사는 성읍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일에 눈감고 싶었지만,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께 그것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부패와 부조리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적절한 모습일까요?
2)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12~23절).
시인이 살고 있는 성읍은 온갖 죄악으로 넘쳐났습니다.
그도 원수들에게서 핍박받으며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괴로운지 차라리 광야가 더 낫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믿었던 친구마저 그를 배반하였습니다.
한때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친구의 배반을 보며 차라리 그가 원수라면 견디기 쉬웠을 거라고 한탄합니다.
이렇게 고통이 해결되기 전에 또 다른 고통으로 짓눌리지만, 시인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통에서 배제된 존재들이 아니라,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문제들을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