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범 시인이 고희연에서
김종 시인은 말했다. "시인의 원초적 자산은 <그리움>이고, 시인의 그것을 팔아먹는 장사꾼이다. 그리고 시인은 언제나 <모성적 풍경>속에 있다."
절절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을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 팔아먹을 수 있는 그리운 기억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평생을 그 길에 서있었던 '강물 같은 시인'(이성자 시인의 표현). 전원범 시인의 백그라운드 역시 어머니의 품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품, 남도인들이 참 좋아하는 문구이다. 오재열 시조시인도 자신의 원점을 ''어머니의 품'이라 하고, 무등산이 국립공원에 지정되자 모두 "어머니의 품같은 산"이라고 했다. 어쩌면 좋을 때도 어려울 때도 우리에게 힘의 원천이 되는 '젖먹던 힘' 그 시작은 어머니의 품이었구나.
나는 한 때 전원범 시인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다.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시민응원메시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몇 가지 이야기 끝에 내가 당돌한 질문을 하였다 싶은 말이 있었다. "교수님의 시도 쓰고, 동시도 쓰시는데 한꺼번에 그것이 가능합니까?" 전원범 시인은 대답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각각의 고유의 영역이 있고, 글감을 생각하면 각각의 영감으로 다가온다. 시가 떠오르면 시를 쓰고, 동시가 떠오르면 동시를 쓰면된다." 너무 간결명료한 대답, 우문현답이었고 내게는 잊을 수 없는 한마디가 되었다.
김종 시인을 전원범 시인의 인생여정을 <수적천석>에 비유를 들었다. 끝없이 한없이 노력하고 진보하는 시인,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그리고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한국의 교육과정에 있는 모든 곳을 총망라한 전원범 시인, 93세 아니 120세 까지 우리 문단의 기둥이 되어주시길..., (모두 속으로)바랍니다.
이날 행사에서 '제자대표가 드리는 글'은 이성자 시인이 올렸는데, 이성자 시인은 "이 순간 역시 인생의 한 경점같다. 평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시인님의 문학은 삶, 그 자체였다,"고 "강물 같은 스승이었고, 맑은 강물의 환한 빛으로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제자들이 일동 큰절을 올리는 광경은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고 큰 박수가 터저 나오는 행사의 하일라이트(경점)이었다.
행사의 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전체적인 포맷을 잡아 행사를 구성한 김정희 시인이 사회를 맡아 시종일관 행사를 주관했으며, 시낭송으로 양명희 낭송가 <뜨개질>, 김미혜 낭송가 <우리들의 사랑은>, 박애정 낭송가 <차를 나누며>가 낭송되었고, 가곡으로 박채옥 성악가 <언덕에서>, 손수경 성악가 <걸어가는 나무들>이 천현주 피아니스트의 연주 속에 울려퍼졌다.
전원범 시인은 인사말을 통해, 자신이 첫번째로 잘한 것은 2남 2녀 자녀을 둔 것이 제일 잘한 일이라며 자동차도 4바퀴가 필요하듯, 가족의 화기애애한 소중함을 말했다.
두번째로 한국 교육계의 산표본이 되었다는 것으로 초, 중, 고, 전문대, 대학, 대학원까지 모든 과정의 교단에 선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그 기록은 기네스북이 따로 없을 것이라며, 참으로 대단한 그랜드슬럼이었다.
세번째로 5가지 인간관계를 말했다. 먼저 건강관리와 시간관리로 년중, 월중, 주중, 하루의 시간까지 아직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그리고 금전관리와 재능관리로 지끔까지 하루 독서 5권이상을 하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감정관리인데, 이웃과의 관계에서 한번도 언짢은 일이 없었다는 말씀을 주셨다.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 봄볕이 가득한 저녁길을 걸으며 김종 시인의 말을 떠올렸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먼저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끝이다.
나는 이 순간 많은 것을 깨달았다. 몰랐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누가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말하는가에 따라 이렇게 말이 달라질 수가 있구나. 놀라운 말의 힘, 전달의 마법이 아닐까. 다 같은 사람이 시를 써도 누구의 시는 꽃향기처럼 전달이 되고, 누구의 시는 모래에 묻히고 만다.
아직도 꼬끼리를 냉장고에 넣기는 힘들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창조적인 생각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생을 사는 방법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은 그 순서가 아닐까. 진실은 간단하며 단순한 것이니까.
전원범 시인의 고희연에서, 여러 문인문사들이 자청으로 만석을 이루고, 오래간만에 문학의 향기가 듬뿍 몸을 적시는 한 시간이 되었다. 나도 자랑거리를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하며 무등산을 내려왔다.
시인, 포토페이저 김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