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예찬
홍 성 자
토론토에 봄이 오면 나는 민들레를 뜯으러 간다.
아직도 쌀쌀한 날씨지만 4월 중순경, 토론토의 온 지면에 깔린 야생민들레. 어디를 가든지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모자를 쓰고, 비닐봉지 한두 개에 헌 칼 하나면 된다.
뜯어온 민들레 봉지를 펼쳐진 신문지 위에 풀어놓고 민들레를 다듬다 보면, 예전에 나물을 다듬으시던 손끝이 무디고 검게 물든 할머니의 손이 눈에 아른거린다. 쌉싸름한 민들레냄새와 흙냄새를 맡으며 캐나다의 봄나물을 즐긴다.
어렸을 때부터 나물 뜯기를 좋아했던지라. 나이 들어도 변하지 않아 캐나다까지 와서도 나물이라고 민들레를 뜯어오니 누구도 못 말릴 일이다.
아프게 흐르는 캐나다의 세월을 따라 여기 나그네로 살면서, 가도 가도 만족 없는 순간들을 견디며 앞만 보고 가다 보면 때때로 머 언 고향이 그립다.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그리운 충남 보령 사투리가 들리는 듯
"진지 잡쉈슈?“
"댕겨 옥께유"
그럴 땐 참을 수 없이 흘러간 옛 노래‘봄날은 간다.’를 들으면서 민들레를 다듬노라면, 고향의 진정한 정서가 가슴을 울먹이게 한다.’
북미에선 번식력이 강한 이 민들레가 골칫거리다. 노랗게 핀 꽃은 아름다운데 씨가 날릴 때면 많은 사람들이 봄 꽃 알러지로 고생을 한다. 콧물이 나며 눈이 맵고 기침이 나며 가렵기 때문이다. 잔디속의 민들레를 제거하는 일이 큰일이다. 전에는 이 민들레가 잔디밭에 너무 많이 퍼져서 없애려고 제초제를 뿌렸는데, 지금은 캐나다 온타리오 법으로 제초제를 뿌리지 못하게 되어있다. 화학성분인 제초제가 땅속으로 들어가 물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란다. 민들레를 없애려면 일일이 손이나 간단한 기구로 뽑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민들레를 즐겨먹는다. 캐나다의 긴긴 겨울을 꽁꽁 언 땅속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던 봄에 제일 먼저 튀어 나온 연한 민들레, 이른 봄에 노란 꽃이 피기 전 뜯는 민들레는 연하고 부드럽다. 일단 꽃이 피고 나면 잎이 억세져서 먹기에 좋지 않다. 잎을 뜯어다 깨끗이 씻어 겉절이도 해먹고, 소금 약간에 젓국 넣고 김치 담듯 담근다. 담근 민들레는 생명럭이 얼마나 강한지 소금과 젓국 속에서도 고개를 번쩍 쳐들고 죄다 일어난다.
민들레의 생명력! 가히 알아 줄만 하다. 비닐장갑을 끼고 민들레 김치 한쪽을 눌러 홀딱 뒤집어 아랫것이 위로 올라오게 하여 꼭꼭 눌러놓는다. 알맞게 익은 민들레 김치를 뜨거운 밥 수저에 얹어 먹으면 외로운 마음이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다.
민들레의 연한 속잎은 고기 구워서 상추와 함께 쌈도 싸먹고, 샐러드에 썰어 넣기도 하고, 또는 삶아 담갔다가 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한다. 잎이 억셀 때는 소금물에 며칠 동안 삭혀서, 고들빼기김치 담듯 담가 놓으면 포옥 삭아서, 캐나다의 긴긴 겨우내 가끔씩 꺼내 놓으면, 귀한 반찬이 되곤 한다. 민들레 잎을 뜯어다 씻어 말렸다가 차를 해 마시기도 한다. 한창 연한 잎을 다 못 먹게 되면 케일이나 셀러리 등과 한웅 큼 함께 넣어 갈면 시너지효과를 본다.
한국에서 즐겨먹던 고들빼기김치는 아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이민 와서 만병예방에 좋은 민들레 김치를 흔하게 먹게 되다니.......
민들레김치나 민들레 나물은 푹 삶아 무친 시금치나물 먹듯 목에 쉽게 넘기면 안 된다. 조금씩 꼭 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 민들레가 위 건강에 좋다고는 했지만 소화가 쉽게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들깻잎도 몸에 좋고 맛있다고 많이 먹으면 체한 것은 아닌데, 소화가 잘 안 되는 이치와 같다고 할까.
민들레는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아 축적된 식물이라던가.......
민들레를 환으로 만들어 소화제로 쓰고, 한방에서는 포공영이라 하며 뿌리 채 캐어다가 말려서 해열, 해독, 위염, 간염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시용한단다. 면역력강화와 기관지도 건강하게 해주고, 당뇨도 예방, 항암효과와 지혈작용, 이뇨촉진, 모유도 많이 나오게 하고, 눈에도 좋은 루테인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한다. 대량의 포타슘과, 칼슘, 소디움, 마그네슘과, 철분이 들어있다니 이처럼 좋은 캐나다의 봄채소가 있음을 감사한다.
또한 민들레에는 살아있는 유기성 마그네슘이 많이 들어 있다. 마그네슘은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뼈가 물러지는 것을 예방, 또한 피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여서 노인 분들이나 성장기 어린이에게 꼭 필요하단 다. 민들레는 섬유질 덩어리이니 화장실 넘버2가 아주 유쾌하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배추김치를 제쳐놓고, 젓가락은 민들레 김치로만 간다.
민들레가 좋다고 세뇌되어서 그런지 어느새 피곤이 가시는 듯하다.
캐나다의 온천지와 미동부지역 등, 지천으로 깔린 민들레이다 보니 천하게 여겨지지만, 참으로 건강에 좋은 민들레이다.
민들레는 홀씨가 아니다. 꽃을 피워 씨를 맺음으로 종자식물이다. 고사리나 버섯종류가 꽃을 피우지 않고 홀씨(포자)로 번식한다.
민들레 꽃씨는 바람 따라 흘러가 어디든지 앉기만 하면 뿌리를 내린다. 일반 땅이야 말할 것도 없고 촘촘히 박힌 잔디사이에도 뚫고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길가 시멘트 콘크리트의 벌어진 사이에도 뿌리를 내리고, 아무리 단단한 땅이나 지붕위에도 뿌리를 내린다. 일단 뿌리를 내리면 반듯이 꽃을 피우는 것이 민들레이다.
민들레를 보면 우리 이민자들의 삶을 보는 듯하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뿌리를 깊게 내리고 꽃을 피우는 이민자들의 생활력, 아니 집념으로 반듯이 꽃피우고야 마는 우리 한국인의 강한 열정,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성공하고야 마는 억척과 끈기, 민들레의 생리와 어찌 그리 닮았나, 그래서 민들레를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한국 사람들한테는 쑥이 좋아 쑥을 많이 먹으라고 대한민국 온 땅에 쑥을 주시고, 이민자의 땅 캐나다에 사는 우리들한테는 민들레를 먹고 캐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피우고 살라고 캐나다의 온 땅에 민들레를 주신 것 같다.
노란 꽃이 피기 전에 부지런히 조금씩 보약삼아 감사하게 먹을 일이다.
( 2024. 4.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