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못 위의 잠」평설 / 홍일표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도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를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나는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 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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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시선과 거리
우연히 어느 시골집 처마에서 시인은 제비집을 발견합니다. 제비 새끼들이 연신 재재거리며 어미의 먹이를 기다립니다. 밤이 되어 새끼들은 어미의 품속에서 잠들고, 아비 제비는 제비집 옆 대못 위에 눈을 감고 잠들어 있습니다. 순간, 시인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의 모습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 거지요. 고향을 떠나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는 직업이 없이 백수로 살아갑니다.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아버지는 무력한 중년의 사내일 뿐입니다. 당연히 집안 살림은 어머니가 꾸려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아버지는 고작 집안에서 자식들을 돌보고, 아내의 퇴근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마중을 나갑니다. 먼지바람 부는 종암동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서 있습니다. 잔업이라도 하는지 오늘따라 아내의 퇴근 시간은 마냥 늦어지기만 합니다. 수많은 버스가 지나간 뒤에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버스에서 내립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여인의 얼굴은 창백합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 품에 안기고, 사내는 말없이 제 자리에 선 채 창백한 달빛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때의 아버지 마음을 성인이 된 자식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라며 회상에 젖습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 회한의 나날을 보냈을 아버지, 그 아버지를 시인은 연민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인 고통의 시간들을 아버지는 말없이 감내하면서 세월의 격랑을 헤쳐나온 것이지요.
실업의 나날을 어렵게 견디고 있던 아버지는 그럴듯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못 위에서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처럼 아버지의 삶은 애틋합니다. '못 위의 잠'이 '못 위의 삶'으로 전이되어 시인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동일시는 나희덕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민이 단순한 감상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 대상에 대한 진지하고 치열한 사색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홍일표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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