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자: 2026.09.27 주일 낮 예배
- 말씀: 롬7:21/cf. 빌4: 6-9
- 찬송: 387장 멀리멀리 갔더니 /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하나님의 은혜 The Grace of God/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자
- 들어가는 말씀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바울은 자기 속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가 하면 악을 행하는 내가 함께 있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안에 두 개의 “나”가 있는 데 그 중 하나는 죄의 법이요, 또 하나는 마음의 법이라고 합니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합니다.
그중에서도 죄의 법이 더 강해서 내 마음의 선한 법을 자주 사로잡습니다. 바울은 “죄“를 “법”이란 말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통 때 법은 별 것이 아닌데 일단 법을 어기면 붙잡혀 감옥에 가지 않습니까? 롬7:1절에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죄는 단순한 도덕적 실수가 아니라 우리를 억압하여 꼼짝 못하게 하는 힘입니다. 힘입니다. 지배력입니다. 그래서 “법”입니다.
1. 내 속에 거하는 죄 -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그것이 어떻게 있습니까? 롬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에 “거한다”고 합니다. “거한다”는 말은 집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죄는 내 속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 안 나가고 늘어붙어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울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말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면서 “나는 죄인중의 괴수”인데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내용입니다. 분명히 자기의 과거를 고백한 내용입니다. 남들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전파하면서도 실제 그 심중에는 죄의 법이 도사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모두 이런 두 마음을 품고 살면서도 차마 입으로는 시인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시인하고 있는 줄 압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10-24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것은 이렇게 기록된 성경 말씀과 같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과거에 박해자였고 폭행자였는 데, 지금은 날마다 주 안에서 죽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29절~34절)- 부활장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내가 죄와 싸워서 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야 합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2.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빌립보서 4장 6-9절
내 안에 두 법이 공존하고 내개 스스로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 때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은 바울의 말씀입니다. 무조건 막고 품는 방법입니다. 무조건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 안에 자리하시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아뢰고 행하라, 그리하면 지키시리라. 이 말씀이 복음에 참여한 우리들, 그러나 여러 문제에 봉착한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이미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든지,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는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선을 이루고 유익 주는 것이라는 확신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셔도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굳게 믿는 기도가 감사의 기도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내가 죄의 법에 사로잡혀있으면 하나님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죄를 털어내야 하나님이 현현하시고 주님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그제서야 내가 나를 보면서 나를 질책하게 됩니다. 그게서야 기도가 나옵니다. 할렐루야!!!~~~~
죄가 내 머릿속을 꽉채우고 있으면 주여 주여 하고 한탄만 하게 되며 진정으로 사모하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는 깨어있어야 나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잘 알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하십니다. -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5). 그러나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자판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한 기도에 건강을, 재물을 위한 기도에 재물을, 성공과 합격을 위한 기도에 성공과 합격을 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는 말이다. 염려를 맡기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당장 그 염려거리를 제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반드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있다: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과 생각은 우리의 내부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는 일은 모두 외부에 있지 않은가? 건강, 부, 진로, 성공 등.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염려는 외부의 것을 대상으로 하긴 하지만, 분명히 내면의 문제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부에서 일어난 염려가 아무런 외부의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약속은 하나님께 우리 염려를 맡기면, 반드시 그 염려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절대적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염려를 가져가신다.
3. 하나님의 지각에 의존하라 -빌립보서 4:6-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실 때 그 뛰어난 지각을 사용하샵나다. 염려가 들어찬 우리 마음에 그냥 어루만져주시는 느낌이나 감정을 채우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우리로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시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시며,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로 생각하게 하셔서,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주의 평강이 찾아들게 하시는 것얍나다. 할렐루야!!!
성경은 두 종류의 염려가 있다고 말합니다(고후 7:10-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염려가 낳는 열매는 무엇인가? 분노와 원망과 불신, 비방과 다툼인가? 아니면 경건과 정결과 회개, 용서와 사랑인가? 우리옵니확신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만이 마음에 평강을 가져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그 고민을 기도로 모두 털어놓으셨습니다(막 14:34). 그리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구하셨습니다(막 14:36). 예수님 마음에 평강은 언제 찾아왔는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셨을 때, 즉 이 염려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니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실 것을 신뢰했을 때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평강을 누리자. 이것이 믿음 즉, 신앙의 의지이자 믿음의 승리입니다. 우리 모든 만나인을 위한 신앙의 힘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마음의 법과 죄의 법에서 해방된 것을 믿습니다. 내 마음을 지켜주시는 주님의 법 하나님의 법을 우리는 사랑하고 믿습니다.
- 결론 - 나가는 말씀 -나는 이미 거룩해졌다.
롬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0절도 다시 보십시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로다“. 죄는 우리 속에 거합니다.
그냥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는 죄“입니다. 문제는 죄가 우리속에 거할 뿐 우리가 죄인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속에 죄가 거한다고 했습니다. 영어 NIV 번역으로 보면 ”It is sin living in me“. ”내안에 사는 죄“입니다. 죄가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는 아닙니다. 죄는 내 안에 살고 있지만 나는 죄를 가진 존재일 뿐 내가 죄인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은혜요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할렐루야~~~
롬7장에 내 안에 죄가 있다고 3번 말했지만 우리 자신이 죄인이란 말은 한번도 없습니다.
롬7: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두 개의 “나”가 있습니다. 죄속에 거하는 “나”와 죄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나”입니다. 죄와 상관없는 나는 죄를 짓기 원치 않습니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현실적인 나는 죄와 함께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는 죄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사랑합니다.
주 안에 거하는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라고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옛사람, 곧 죄가 거하는 우리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새로운 본성이 생겼는 데 그것이 창조적인 “나”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예수님을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새로운 본성입니다. 그것이 롬7장에서 말하는 선을 행하려는 “나”입니다. 본래 죄의 지배를 받던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께끗해지고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복음의 의가 전신갑주로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성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주 안에서 새로워진 모든 만나인과 그 가정이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께 기도하며 오늘도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