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홀트. 그는 누구인가?
20세기 중반, 10,000년 인류문명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보면 지극히 작은 지류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는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아동 양육’이라는 새로운 물길을 연 사람이다. 그는 한국 해외입양의 상징적 인물이자 이름이다.
그가 한국에서 시작한 홀트씨양자회는 오늘날 홀트아동복지회의 뿌리가 되었고, 동시에 홀트인터내셔널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해외입양의 모델은 미국을 넘어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0년 한국 해외입양의 역사는 단지 한 나라의 입양사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세계적 지평에서 이루어진 ‘대륙의 경계를 넘어 아동을 양육하는 실험’, 곧 국제입양의 핵심적인 참고서이자 원조의 역할을 해왔다.
1950년대 해외입양을 위해 한국 아동들을 태운 미국행 전세기 내부. 좌석 사이에 영아들을 위한 요람이 줄지어 놓여 있다. (사진 출처:국가기록원)
그렇다면 우리는 해리 홀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가히 수천 년 인류 문명이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 사람이라면, 그의 창발성과 위대한 성취에 존중을 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어쩌면 ‘계륵(鷄肋)’이라는 오래된 말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닭의 갈비뼈. 먹자니 살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깝다. 한때는 위대한 인도주의적 발명으로 칭송받았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정말 인류가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제도. 해리 홀트는 어쩌면 그런 제도를 인류사의 지평 위로 끌어올린 사람으로 재평가될 수도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글을 쓰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2026년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몇 가지 사실로 짚어두고 싶다. 2026년 현재 한국의 홀트아동복지회는 해외입양사업을 이미 종결했다. 다른 민간 입양기관들도 해외입양사업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70년 동안 계속되어온 제도의 단순한 종료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 긴 역사 속에서 입양아동의 인권침해, 친생부모로부터의 부적절한 동의 획득, 기록의 조작·멸실·훼손, 이른바 ‘고아호적’의 광범위한 작성, 아동의 정체성 말소, 강제입양과 강제실종의 문제, 입양과 사후관리 과정에서 폭력과 성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지 못한 문제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을 생각하면 너무도 아프고 슬프며 분노가 치미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가 아직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대리입양(proxy adoption)’이다. 예비양부모가 한국에 오지 않고, 자신이 입양하게 될 아동을 직접 만나지도 않은 채, 한국과 미국의 입양기관과 대리인들이 사실상 모든 절차를 수행하여 아동을 미국으로 보내던 제도이다. 그리고 그 제도가 남긴 후과 가운데 하나가, 수십 년 뒤 일부 입양인들에게 시민권 부재와 강제추방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재평가가 아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호주를 비롯한 여러 입양수령국에서도 과거 국제입양의 실체에 대한 국가적 조사와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에서도 국제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정체성 말소와 인권침해 문제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인권 메커니즘을 통해 다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세계 각국 의회가 참여하는 국제의원연맹(IPU)도 2025년 제151차 총회에서 「불법 국제입양 피해자의 인정과 지원 및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Recognizing and Supporting the Victims of Illegal International Adoption and Taking Measures to Prevent This Practice)」를 공식 의제로 다루고 결의안을 채택했다. IPU는 불법 국제입양을 심각한 아동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각국 의회에 독립적인 진상조사와 피해회복, 배상, 출신 찾기 지원 및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¹
이렇듯 지난 70년 동안 송출국과 수령국 사이에서 막강한 상징권력을 행사해온 ‘국제입양의 선하고 아름다운 이미지(the glowing image of international adoption)’가 조금씩 부서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숫자도 이를 보여준다.
세계적 지평에서 국제입양이 정점을 찍었던 해는 2004년이다. Peter Selman의 국제입양 통계에 따르면 그해 45,482명의 아동이 국제입양되었다. 이후 국제입양은 거의 일관되게 감소하여 2022년에는 3,700명으로 줄었다. 정점 당시의 약 12분의 1이다.²
20세기 중반 인류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국제입양이라는 제도는 이렇게 서서히 퇴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제도를 둘러싸고 있던 과도한 정당성, ‘아이를 구하는 선한 행위’라는 찬사의 아우라도 함께 빛을 잃고 있다.
나는 이 역사의 바깥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다.
1992년 나는 스위스 국가교회의 선교동역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많은 한국계 입양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 가운데 하나는 내게 이런 질문으로 남았다.
“우리가 친생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상실을 겪고 있을 때, 한국의 시민인 당신은 누구 곁에 있었습니까?”
그 질문은 나를 오래 붙들었다. 한국에서는 누가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있었는가. 국가는 해외입양을 성공적인 아동복지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이를 상실한 어머니들, 특히 미혼모들은 깊은 사회적 낙인과 침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손은 누가 잡고 있었는가.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일어난 비극적인 분리와 상실을 슬퍼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 분리와 상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사회 자체를 바꾸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입양인들이 내게 건네준 이 질문과 지혜는 내가 한국의 해외입양 시스템과 입양을 선호해온 사회적 담론을 거꾸로 바라보게 한 힘이 되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2004년 나는 모국으로 돌아왔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입양인 공동체와 함께 애환이 깃든 분투의 길을 걸었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홀트씨양자회에 뿌리를 둔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해외입양기관들이 이제 해외입양사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우리가 오랫동안 ‘아이를 구한 역사’라고 불러왔던 70년의 역사는 이제 누가 아이를 보냈는가, 왜 보냈는가, 누구의 동의로 보냈는가, 어떤 법적 장치로 보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전혀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귀환 입양인을 위한 한국의 시민단체이자 게스트하우스인 뿌리의 집(KoRoot) (사진 출처 : 뿌리의 집 홈페이지https://www.koroot.org/main )
그래서 다시 해리 홀트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가 선한 사람이었는가 악한 사람이었는가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개인의 선의와 종교적 열정이 어떻게 하나의 제도가 되었으며, 그 제도가 어떻게 국가의 법과 행정을 움직이고, 한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거대한 아동이동 시스템으로 성장했는지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proxy adoption, 대리입양이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대리입양이라는 기묘한 제도가 어떻게 해리 홀트의 손을 거쳐 한국과 미국 사이의 제도로 자리 잡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부모가 아이를 만나지 않고도 어떻게 부모가 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묻고자 한다. 그 제도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대리하고 있었는가.
1. Inter-Parliamentary Union (IPU), “Recognizing and Supporting the Victims of Illegal International Adoption and Taking Measures to Prevent This Practice,” Resolution adopted by the 151st IPU Assembly, Geneva, 23 October 2025.
2. Peter Selman, Global Statistics for Intercountry Adoption: Receiving States and States of Origin 2004–2022 (Newcastle University, 2024), Table 1, p. 2. 2004년 국제입양 총계는 45,482명, 2022년은 3,700명이다. 이 통계는 주요 입양수령국이 제공한 자료를 집계한 것으로, Hague Conference on Private International Law (HCCH)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