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구세군은 매년 3번의 모금을 한다. 4월에는 세계 선교를 위한 극기헌금(Self-Denial Appeal), 5월에는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을 위한 붉은방패모금(Red Shield Appeal), 12월에는 지역사회를 위한 자선냄비 모금(Christmas Kettle Appeal)을 한다.
1. 극기헌금(Self Denial Appeal)
1886년 영국의 존칼톤(John Carleton) 사관이 '1년 동안 매일 푸딩을 먹지 않으면 50 쉴링을 모을 수 있으며, 이렇게 모은 돈을 선교헌금으로 드리겠다.'는 제안을 창립자가 발전시킨 것이다. 지금도 국제 구세군은 사순절 기간을 즈음하여 극기헌금을 세계선교를 위하여 국제 본영으로 보낸다. 극기헌금은 선교가 힘든 지역에 중요한 자원이 된다.
2. 붉은방패 모금(Red Shield Appeal)
1940년 경에 호주보다 먼저 캐나다도 유사한 문제에 봉착했다. 캐나다 구세군은 사회, 경제 문제를 타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회의를 가졌다. 회의 도중 ‘캐나다 태평양 철도 회장’(Chairman of the Canadian Pacific Railroad)은 “이것은 구세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고, 지역 사회의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이 기폭제가 되어 캐나다 구세군에서는 ‘Red Shield Appeal’이란 이름으로 ‘외부모금(External Appeal)’을 시작했다. 호주에서도 캐나다 구세군의 모금 방법을 도입하여, 1965년부터 ’붉은방패모금‘(Red Shield Appeal)을 시작하게 되었다.
3. 자선냄비 모금(Christmas Kettle Appeal)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선냄비는 그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1891년 추운 겨울날 선박이 좌초돼 승객 1,000명 여명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구세군의 죠셉 맥피 사관은 갑작스럽게 재난을 당한 이들과 도시 빈민을 위한 모금을 위해 부두로 나가 주방에서 수프를 끓일 때 쓰던 큰 쇠솥을 내 걸었다.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구세군 자선냄비의 태동되었다.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였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
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존엄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행위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대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은 심판장이다.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온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최후의 심판 때 양과 염소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2.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는가? 궁핍한 사람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예배와 기도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는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율법학자가 예수님에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예수님은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하였는가”라고 되질문을 하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했다. 이때 율법학자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하지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하신 것이다. 비유를 마치시고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냐”고 물으니, 자비를 베푼 자라는 대답을 듣고 “너희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
3.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다.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 보이는 믿음과 보이지 않는 믿음이다. 보이는 믿음은 행함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자비와 친절을 베풀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의 영적 성숙도를 높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실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구세군에는 ‘한손에는 빵, 한손에는 성경이다.’라는 모토가 있다. 빵만 가지고 가면 구제이고, 성경만 가지고 가면 전도이며, 두 손으로 가면 선교이다. 구제는 육신구원이고, 전도는 영혼구원이며, 선교는 전인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