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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집 스크랩 양희은 - 늙은 군인의 노래 (김민기 작사, 작곡)
한베러브 추천 0 조회 33 13.10.31 18: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홍경민 - 늙은 군인의 노래 _ 6월16일 불후의 명곡2, 양희은 편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피고 눈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아들 너로다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갔네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푸른하늘 푸른산 푸른강물에 검은얼굴
흰머리에 푸른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김민기

 

 

 

 

 

 

 

"국방부 홍보곡 '늙은군인의 노래' , 정작 국방부에서는 금지곡"

[노래여 나오너라 13] 이영미 선생님의 민중가요 이야기

2006-05-19 21:48:16 l 수정 2006-05-22 09:50:56

 

오늘은 김민기씨의 1970년대 후반작품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김민기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창작자로 태어나서 우리를 이렇게 오래오래 즐겁게 해주고있다는 것이 너무 좋답니다. 축복받은 느낌이기도 하구요.

김민기씨는 1970년대 중반에 군대에 갑니다. 이래저래해서 1970년대의 초기 포크는 75년을 계기로 해서 끝나게 되는데요. 74년까지 최고의 대중문화의 인기작품으로 떠오른 예컨대 영화 '별들의 고향' 이라든가 노래 신중현의 '미인' 어니언스의 '친구' 등이 모두 74년 작품들이예요.

특별한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했던, 청년문화로서의 포크는 결정적으로 1975년 대마초사건 때문에 철퇴를 맞습니다.

"국방부 홍보곡 '늙은군인의 노래' , 정작 국방부에서는 금지곡"

유신 선포는 나에게 큰 정치적 도전이었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유신헌법만 공고를 알리는 한국일보 호외를 읽고 있다. ⓒ

 

유신후기로 넘어가는 70년대 중반에 김민기씨는 군대를 가버리기때문에 어쩔수없이 그의 작업은 70년대 전반으로 한번 끊기게되죠. 75년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가 워낙 강하니까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겠다고 정부가 나섭니다.

하지만 그 당시 투표는 하나마나한 투표겠죠.

민주화운동세력은 당연히 그 투표를 거부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해야되는 날, 국민투표거부 행사처럼 명동성당에 모여서 하루종일 공연을 하는 행사를 준비했죠. 서울대 연극반, 탈반 등 진보적인 대학써클들이 이른바 주최아닌 주최가 됐었고 그 중에 임진택씨도 있죠.

김민기도 그 멤버들과 늘 같이 활동했던 멤버중에 하나였는데 군대를 가게되는데 그 사건이 당연히 정권의 미움을 받게되고 거기에 김민기가 주동의 한명으로 끼어있다고 정권은 판단을 한거죠. 군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군대 안에서도 뭔가 관여를 할수도있구요.
어쨌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행사에서 불려진 노래의 상당수가 김민기의 노래였기때문에 관여를 하든 안하든 주동자의 하나로 찍힙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졸지에 카투사에서 영창을 거쳐 전방으로 잡혀가고 이후 제대를 한 시기가 1979년입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고 김민기도 뭔가 달라지고 싶어해서 그 다음부터 야학활동을 하거나 좀 더 기층민중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요.

70년대초반까지 김민기씨노래가 주로 지식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과 고뇌, 감수성 예민한 한국청년의 고뇌 이런 것이었다면 뒤로 갈수록 노래 예를들어서 '식구생각' 처럼 일하고 사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얘기를 함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70년대 후반에 넘어가면서 부터는 자신의 노래가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좀 더 강렬하고 기층민들이 가지고 있는 힘에 관련된 음악적으로 보자면 상당히 투박한 노래들이 지어집니다. 75년이후 공식적으로 '아침이슬' 이 금지곡이 된 이후로 이미 그의 이름을 건 음반은 팔 수 없었어요.

"국방부 홍보곡 '늙은군인의 노래' , 정작 국방부에서는 금지곡"

양희은과 김민기 ⓒ


김민기 이름으로 나오는 곡은 심의 자체가 안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그런 연유로 노래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발표됩니다. 김아영이라는 그의 친구 이름으로 발표되기도 하는데 양희은씨의 1978년 음반을 보면 김아영 작사작곡이 참 많아요. 하지만 김민기의 팬들은 들어보면 다 압니다. "아하, 김민기의 노래구나"

'상록수' 는 음반에 실릴때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들잎처럼' 이라고 실리게 됐어요. 왜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 음반에서 가장 '아침이슬' 을 연상시키는 곡이라고 할까요. 물론 '아침이슬' 보다는 훨씬더 개인의 고뇌가 아니라 집단의 고뇌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원래 이곡을 지은 것은 야학 강학을 할때 야학 출신 노동자 둘이서 결혼을 했대요.

그래서 축가로 지은 노래라고 합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손맞잡고 눈물 흘리니" 이런 노래가 충분히 가능했던 거죠. 70년대 개인적 고뇌 지식인적인 상상력에서 민중적 상상력으로 옮겨가려고 매우 노력한 흔적이고요. 그들고 함께 부르려고 지은 노래였던 거구요. 투쟁의 현장에서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지어졌기 대문이라고 봅니다. 특별히 대중가요로써 인기를 끌거나하지는 않았지만 70년대 전반의 '아침이슬' 과 맞먹는 그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양희은의 같은음반에서 소개된 '늙은 군인의 노래' 입니다. 김민기 노래를 사랑하고 있었던 특별히 사회의식보다는 예민한 감수성과 음악과 균형잡힌 음악감각을 사랑하고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이런 음악을 이해할 수 없었죠.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화성진행을 쓰고 있다던가 선율이 굉장히 아름답다던가 우리가 알고있는 김민기는 그랬는데 '늙은 군인의 노래' 는 말하자면 군가잖아요.

그냥 행진곡입니다. 음악적으로 볼때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것이죠. 김민기다움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뭔가 복잡한 내면과 섬세한 질감이 있는 음악이 아닌 것으로 사람들한테 느껴졌다는 것이죠.

78년음악의 꽤 많은 것들이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었는데 음악적으로는 좀 단순 또는 투박해졌다고나할까요? 지식인청년의 치장과 악세사리들을 다 떨고 기층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었던 거죠. 저같은 고등학생은 당시에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실력이 줄었나? " 이렇게 헷갈리기도 했답니다.
나중에 그게 얼마나 힘들 노릇이었을까, 무언가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연예활동을 하다가 군에 간 사람들에게는 국방부에서 군인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연예인 출신 군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잖아요.

'늙은 군인의 노래' 는 본인한테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김민기씨도 요청을 받고 지은 노래라고 해요. 국방부에서 의도한 군인은 씩씩하고 멋있어야 되는데 김민기가 내놓은 군인은 늙은 군인인데다가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고, "맛난거 먹고푸냐" 이런 이야기나 하고, 돈도 없고 가난하고 오로지 나의 소원은 통일되서 가보는겁니다.

국방부가 생각하는 군인은 늘 멋있고 힘차야 되는데 이런 신세타령같은 노래를 국방부는 수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작 국방부의 요청으로 만든 노래지만 국방부에서 이노래는 금지였다고 하죠.

그리고 대중가요 음반으로 실렸던 거고, 발표를 하고 나니까 국방부에서는 당연히 금지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국방부도 군인들도 아닌 군인들을 생각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그리고 진보적 학생들의 노래가 됐습니다. 대학에서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고 금지곡으로 판정난것도 아니고 음반으로 팔린상태였으니까 불러도 무리는 없었죠. 단지 라디오나 텔레비젼에 잘 나오지 않았을 뿐이죠.

"국방부 홍보곡 '늙은군인의 노래' , 정작 국방부에서는 금지곡"

87년 노동자대투쟁 ⓒ


그리고 이 노래가 다시한번 각광을 받은것은 80년대 후반이예요. 87년에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는데 노동자들이 부를 노래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80년대 초중반의 민중가요는 대부분은 대학생들쪽에서 나온 노래였고 노동자들의 정서와 좀 안맞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특히 나이가 든 남성 노동자들의 감수성에 이 노래가 딱 맞았던 거구요. '늙은 군인의 노래' 를 '늙은 노동자의 노래' 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이 노래는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양희은씨가 김민기 헌정음반을 내면서 다시 불렀었는데요. 양희은씨가 20대후반이었을적 78년음반으로 들어보시겠습니다. 양희은씨의 목소리와 작은 북소리가 아주 경쾌하게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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