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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언젠가 반드시 우리 모두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 남유다는 휘황찬란한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고, 높고 든든한 성벽도 쌓아 올리며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나갈 때 더 겸손하고, 더 노력해야 하는데, 매사가 안정적이다 보면 즉시 나태해지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순간에 등장한 예언자가 있었으니 요엘이었습니다. 그는 경신례에도 밝고 언어 구사가 탁월한 문학가였습니다. 그는 옛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주님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을 힘차게 선포했습니다.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요엘 예언자가 불쑥 등장해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남발하니, 군중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가야할 길을 걸어가며, 외쳐야 할 말을 가감 없이 외쳤습니다.
예언자로서의 삶은 늘 외롭고 고달프고 황량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서 달콤한 하느님 위로의 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격려나 칭찬, 해방의 기쁜 소식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은 섬뜩하기 그지 없는 메시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강력한 경고, 공포로 가득한 멸망의 예고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울부짖으라고 외쳤습니다.
“사제들아, 자루옷을 두르고 슬피 울어라. 제단의 봉사자들아, 울부짖어라. 내 하느님의 봉사자들아, 와서 자루옷을 두르고 밤을 새워라. 너희 하느님의 집에 곡식 제물과 제주가 떨어졌다.”(요엘 1,13)
그러나 요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해서 코너로 몰아넣지만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있는 회개와 참된 단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질 것임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 2,12-13)
요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에게 닥친 대재앙, 그로 인한 시련의 원인이 바로 자신의 죄와 부족함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고 강조합니다. 형식적이고 외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내적 회개를 촉구합니다. 또한 그는 특정한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회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범국민적, 범국가적 회개를 요청했습니다.
또 다시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를 머리에 얹으며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는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 너나 할 것 없이 손톱만한 도토리들입니다. 티격태격, 아옹다옹하면서 ‘내가 더 높네. 내가 더 크네. 내가 더 대단하네.’ 외치지만,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그놈이 그놈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잠시 떠다니다가 하느님 자비의 품을 향해 사라질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광대무변하시고 영원하신 주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신 주님 앞에 우리는, 너무나 작고 미약한 존재라는 진리를 잊지않고 살아간다면, 우리 공동체의 삶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내가 선배인데, 내가 연장자인데, 내가 원장인데, 내가 회장인데, 하며 어깨에 힘줄 이유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인간 존재의 영원한 결핍성과 티끌보다 작음을 잊지 않는다면,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도 조금은 부드러워 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이웃을 향한 측은지심이요, 진한 동지의식일 것입니다.
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타고 남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무가치한 것, 허무한 것,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를 머리에 얹을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쳐야겠습니다.
“본래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먼지요, 티끌, 무(無)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토록 보잘것없는 제게 큰 은총을 베푸셔서 생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지금 저는 여기 서 있지만, 주님의 흘러넘치는 자비가 아니라면,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과거에도 저는 흙이었지만, 지금도 흙과 다름없는 존재요, 언젠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육체를 태우면, 심장은 사랑을 위해 뛰기 시작한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선과 단식과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는 신앙인이 싸워야 할 세 욕망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이 세 욕망을 한 마디로 육체적 욕망이라고도 합니다. 이 유혹을 이길 때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덕이 맺히게 됩니다.
이 욕망에게 힘을 주는 것이 심장입니다. 그런데 심장이 육체를 위해 뛸 때는 영혼을 위해 뛸 에너지를 잃습니다. 심장이 육체를 위해 뛸 필요가 없어질 때만 사랑을 위해 뛰기 시작합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엘리펀트 맨’은 ‘조셉 메릭’이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는 ‘존 메릭’으로 나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극도로 기형적인 얼굴과 몸 때문에 사람들에게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 중 코끼리에 짓밟히는 꿈을 꾼 뒤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믿었고, 존은 어린 시절부터 기형적인 외모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합니다. 결국 그는 부모를 잃고 갈 곳이 없어 유랑 서커스단에서 ‘괴물’로 전시되는 신세가 됩니다.
런던 병원의 외과 의사 프레더릭 트리브스는 그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와 보호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트리브스는 자신도 메릭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합니다. 그가 세상에 나오게 되자 사람들을 둘로 나뉩니다. 그를 이용하고 학대하여 자신의 돈과 자존심을 세우려는 사람들과 그를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고 연민을 느껴 그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사람들.
엘리펀트 맨은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은 날 스스로 처음 느껴보는 편안한 침대에 누워 하늘의 어머니에게 갑니다.
엘리펀트 맨을 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에너지가 육체를 향하고 있는 사람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자기 육체가 아닌 하늘을 향하는 사람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기도와 자선과 단식은 결국 나의 육신으로 향하게 하는 심장의 에너지를 영혼으로 보내 사랑을 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마리아 공동체 평화의 오아시스, 임 파우스티나 수녀가 쓴 ‘복녀 끼아라 루체 바다노’에 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좀 길지만 원문 그대로 써 봅니다. 어떻게 육체를 향한 심장이 약해질수록 사랑을 향해 심장이 뛰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복녀 끼아라 루체 바다노는 2010년에 시복되었습니다. 끼아라 루체는 1971년 이탈리아 사셀로에서 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찾는 신심 깊은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바다노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없는 결혼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던 아빠 루제로는 성모님께 봉헌된 성지에 가서 11년 동안 하느님께 생명의 선물을 주시길 기도하여 오랜 기다린 후에 드디어 끼아라를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투명하고 큰 눈을 지닌 끼아라는 “맑고 밝다”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삶도 그러했습니다. 생기있고 활발한 끼아라는 스케이트, 자전거 타기,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끼아라는 9살 때 포콜라레 운동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포콜라레는 끼아라 루빅 여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폐허가 된 세상에 ‘서로 간 사랑과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해 1943년에 창설한 영성 운동입니다.
끼아라는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 끼아라 루빅과 영적 모녀 관계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투병 중에 끼아라 루빅 여사로부터 “끼아라 루체”라는 새로운 이름과 편지를 받기도 합니다.
17살 때 테니스 경기 도중 어깨에 강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 후 결과는 암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기로 악명높은 골육종이였습니다. 이름대로 뼈에 생기는 종양이었습니다. 진단 결과를 알게 된 끼아라는 울지도, 반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즉시 침묵 속에 깊이 잠겼지만, 25분이 지난 후 그녀의 입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네”라는 응답이 흘러나왔습니다. 새로운 고통이 닥칠 때 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면 저도 원합니다.”라고 하며 단호하게 말하며 자신의 고통을 바침으로써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항구한 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끼아라는 매일 미사를 통해 성체 모시며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한 줌씩 빠지기 시작했을 때 끼아라는 “예수님, 이 고통을 십자가에서 저를 구원하신 당신을 위해서예요.” 라 말하며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육신의 고통의 강도는 점점 커졌으나 끼아라는 예수님과 함께 그 고통을 잘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끼아라가 예상치 못한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이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두 번째 수술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녀에게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엄마는 끼아라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끼아라야, 예수님께서는 다리가 없는 너에게 날개를 주실거야.” 끼아라는 “엄마, 제가 걷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천국 가는 걸 선택할 거예요. 지금 제 마음을 끄는 것은 천국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너희들은 지금 예수님과 내 관계가 어떠한지 결코 상상할 수 없을 거야… 하느님께서 내게 무언가 더 큰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느껴. 어쩌면 오랫동안 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내게는 하느님의 뜻만이 소중하고 현 순간에 그것을 잘하는 것이야.
지금 사람들이 내게 걷는 것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야. 이 상태의 내가 예수님께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치 어두운 굴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온 힘 다해 사랑하려고 나 자신을 다시 던졌고 빛은 되돌아왔다.” “순간을 잘 산다면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만약 그 끔찍한 고통의 순간을 예수님께 선물로 드린다면, 이 끔찍한 순간까지도….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한 의미 있는 선물로 바친다면 고통은 그냥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끼아라는 작은 종이에 성모님께 바치는 글을 적었습니다. “천상의 어머니, 제가 회복될 수 있는 기적을 당신께 청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굴복하지 않는 힘을 제게 주시기를 청합니다.”
끼아라는 투병 중에도 빛나고 환한 미소를 절대 잃지 않았습니다. 평온하고 강하게 남으며 고통스러운 치료를 감수했고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을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이끌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끼아라는 아주 활동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통해 또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을 사랑을 다 해 맞음으로 오히려 그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힘과 용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간 친구들은 도리어 그들이 위로받고 돌아갔습니다.
1990년 여름, 의료진은 끼아라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끼아라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십자가상의 수난을 나누고자 하는 원의와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진통제인 모르핀 투약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고통만을 바칠 수 있는데 모르핀은 제 정신을 흐리게 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제 고통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가능한 한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끼아라에게 하루는 햐안 옷을 입은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빛으로 싸인 천사는 끼아라의 손을 꼭 잡아주며 “힘을 내렴!”하고 말하고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병은 진전되었으며 고통도 늘어났습니다. 불평 한마디 없이 그녀의 입에서는 “예수님, 당신과 함께;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만 나왔습니다.
많이 고통스러운지 묻는 엄마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무한히 사랑하세요. 특별히 힘겨운 밤을 보낸 후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내 영혼은 노래를 불렀어요…” 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끼아라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께 오셔서 천국으로 나를 데려가시기를 청하지 않아요. 그분과 조금이나마 십자가를 나누기 위해, 그분께 내 고통을 계속 바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녀 없이 홀로 남게 될 것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계속해 말하기를 “하느님께 믿고 맡기세요.
엄마는 모든 것을 했어요.”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없을 때는 하느님을 따르세요.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에요.” 라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1989년 출혈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끼아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예수님께로 갑니다. 저의 장례식에서 저는 사람들이 울기를 원치 않고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끼아라는 모든 것을 다 생각해 두었습니다. 장례식에서 부를 노래, 꽃들, 머리 모양, 신부가 입는 흰 드레스에 분홍색 리본 허리끈까지.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저를 준비시킬 때 이렇게 계속 말하셔야 해요: 지금 내 딸 끼아라는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아주 고통스런 밤이 지난 후 1990년 10월 7일 새벽 정배는 그녀를 데리러 왔습니다. 끼아라는 아직 18살. 그녀의 19번째 생일 파티는 하늘에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되자 끼아라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천국으로 갈 거야.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안녕! 엄마! 나는 행복하니까 엄마도 행복해야 해.”
키아라가 병에 걸리기 전에 하던 일들을 계속했다면 그만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육체는 영과 반대입니다. 사랑의 에너지를 빼앗습니다. 그래서 육체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써야 합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머리에 재를 얹는 것입니다. 복녀 키아라 루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저에게는 아직 심장이 있고 그렇기에 언제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아 홍수 때 40주야 동안 폭우가 내리게 하여 심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을 종살이하였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 주야를 단식과 기도로 지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 예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 주야를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시작되는 사순절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부활 때까지 주일을 제하고 세어보면 40일이 된다. 교회가 이렇게 사순절을 제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차지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그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기 위하여 그분의 수난에 우리가 참여하는 시기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이다. 이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어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재의 예절”을 거행한다. 이 재의 의미는 회개와 보속, 죽음과 겸손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머리에 재를 받는 것은 우리 죄로 인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및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보속 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이 재의 예절은 우리가 우리의 죽음을 미리 묵상하게 한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것은 우리의 현세적인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기적인 생활과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멀리 떠난 삶에서 회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돌아서게 하는 데 있다.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를 알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이 재는 한 줌의 흙이다.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면 한 줌의 흙이 된다. 그 자리에는 아무런 형체도, 권세도 명예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재를 교만과 명예의 자리인 머리에 얹음으로써 인생무상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하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회개와 보속의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자선과 기도, 단식에 관한 세 가지 본보기를 알려주신다. 자신의 덕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넘치게 기도하면서 자기의 신심을 자랑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2절). 내가 하는 일을 떠벌이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의 찬사를 얻으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신앙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동은 자체가 나팔이다. 숨겨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이나 장소보다도 베풀려는 뜻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3절). 이 말씀 역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인데, 할 수 있으면 우리가 선을 베풀 때, 베푸는 손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른손은 의인과 의로운 행위를 뜻하고 왼손은 죄인과 죄가 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어떤 일이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지려면, 의인인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한다. 우리가 충실하고 신심 깊게 행하기 위해서는 죄인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6절). 우리의 기도는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마음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께 기도하면 우리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6절). 사람들에게서 상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또 다른 상을 받을 수는 없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16절). 교회도 또한 이 시기에 극기와 절제를 통하여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그리스도를 닮고, 어느 때보다 기도를 많이 하여 은총을 받고자 마음을 모으는 때이며, 예수님의 부활 영광을 우리도 누리기 위해 속죄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사순시기를 통하여 우리가 더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전쟁은 수천 년 전부터 끊임없이 계속됐고, 지금도 지구상에서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원인에는 사람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탐욕이 커지고 커져서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탐욕에 당당히 맞서 희생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평화)을 누립니다.
국가 간의 문제에서만 이 원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도 탐욕이 점점 커지면서 크고 작은 다툼이 계속됩니다. 이 다툼에서 이겨야 나의 욕심을 채우면서 평화를 얻겠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어떤 다툼도 끝낼 수가 없습니다.
누구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라 하지만, 결국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전쟁을 멈추고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이 있을 때,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감사할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만을 강조하셨던 이유를 묵상하게 됩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세상의 탐욕 속에서 멈추지 않는 전쟁을 당장 멈출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재의 수요일인 오늘입니다. 참회의 상징인 재를 축복해서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사순시기를 시작인 재의 수요일 복음에서는 자선과 기도와 참회에 대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자선과 기도와 참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즉,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또 칭찬받으려는 마음을 갖고 이 중요한 덕목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려는 자선, 기도, 참회이기에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서 “열심히 산다.”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없기에 하느님에게서 그 어떤 상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창세기의 말씀인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 3,19 참조)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 달렸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연결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하느님 뜻인 사랑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삶이 아닌, 하느님께 잘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에 집중하는 은총의 사순시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명언: 용기를 내면 잠시 길을 잃는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쇠렌 키르케고르).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옷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찢어라.”(요엘 2,13)
지금은 우리가
단식하며
울고
슬퍼해야 하는 시간.
허영의 옷을 벗어던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소곳이 앉아서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 하는 시간.
숨어 기도하며
숨어계신 아버지와
은밀히 화해하는
은총의 시간.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사순시기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본래의 자리로 모시고,
인간은 한 줌의 재로 돌아갈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하며 겸허해져야 하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삶이
사순시기를 잘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방법을
기도, 자선, 단식으로 제시합니다.
기도와 단식으로 육신을 비우고 영을 채울 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나눔과 자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비우지 않고
어떻게 자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육을 가꾸는데
어떻게 자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올 사순시기가 제가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청해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12-18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5,20─6,2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