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미술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함에 따라 예술 작품의 유통뿐만 아니라, 미술 시장과 관련된 세미나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KIAF2007」에서는 아트페어 기간 동안 미술 비평가 정준모와 최병식의 세미나를 개최해, 최근 국내의 미술 시장이 활황을 이루게 된 원인과 예술 작품을 컬렉션 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 등을 소개해 미술 시장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정준모가 진행한 「그림 값, 어떻게 매겨지나?」의 경우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미술 시장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하려다보니 논점이 중간 중간 갑작스럽게 바뀌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미술 시장의 열풍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 요소들에(경매 주도의 작품 유통, 소수 작가군에 의존한 미술 시장, 예술 작품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투자 열기 등)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점은 의미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 준 모 _ 최근 일반 대중들을 비롯해 사회 전반적으로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여러 매체를 통해 미술 시장의 과열 양상이 보도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왜 갑자기 미술 시장에 관심들이 많아 졌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었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미술 시장의 활황이 조금은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현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미술 시장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그 만큼 시중에 유휴 자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현재 250조 정도의 여유 자금이 돌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 그 만한 자금이 미술 시장에 유입 된다면 아마도 시장이 폭발해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왜냐하면 현재 국내 미술 시장의 경우 일 년 거래량을 최대치로 잡아도 3천억인데, 250조의 1%만 미술 시장에 들어와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풍부한 여유 자금이 미술 시장의 미래를 밝게 점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신도시가 개발됨에 따라 올해부터 2009년까지 약 30조 정도의 자금이 풀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돈들이 다 어디로 갈까요? 정부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부동산은 막혀있고, 산업 자금이나 증권 시장으로 가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풍부한 여유 자금이 앞으로의 미술 시장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그 동안 국내의 미술 시장이 너무 과소평가 되어온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미술 시장 활황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1500선을 유지 하며 연일 고공 행진을 벌이고 있지만(최근에는 1600선을 돌파함에 따라 증시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국내의 증시가 다소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 정부 들어 다른 건 몰라도 경제문제 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했다는 것이 자평이지만, 일부 여의도 금융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500에서 3000까지 지수가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럼 미술 시장은 어떨까요? 주식 시장을 기반으로 미술 시장의 지수를 고려해 본다면, 국내의 미술 시장은 현재 520에서 550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미술 시장이 주식 시장을 따라 잡으려면 최소한 3배는 더 성장할 수 있어야 하겠죠. 현재 시중의 풍부한 자금이 미술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시장에서는 어떻게 반영 될 것인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미술 시장이 얼마나 좋아졌나 하는 것은, 2000년의 거래 액수와 2006년의 거래 액수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두 해의 거래액을 비교해 보면 거의 20배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불과 5-6년 사이에 말이죠. 낙찰률도 예전에는 28% 정도였지만 2006년에는 60%로 증가했고, 2007년 올 해에는 85-92% 까지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평균 낙찰률이 85% 정도 되는데, 그렇게 봤을 때 한국 미술 시장이 규모면에서는 아직 조족지혈(鳥足之血)이지만 상당히 활황을 보이고 있다고 얘기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활황을 넘어서 묻지마 투자로 간다.’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언론에서 미술 시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물론 요즘 미술 시장이 좋아지면서 많은 분들이 미술 시장 근처에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미술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분들은 대게 연봉이 1억에서 3억 정도 되는 대기업이나 금융 쪽의 부장 급들로 예상됩니다만, 이런 분들은 대게 정보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분들이기 때문에 미술 시장에서 나도는 허위 정보들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조금 일찍 미술 시장에 들어왔다면 훨씬 더 높은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미련이 ‘지금도 늦지 않았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일단 작품을 사두고 보는 식의 형태를 띠는 것이죠. 제가 볼 때에는 미술 시장의 활황을 두고 ‘묻지마 투자’라고 부르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컬렉터들이 그와 같은 루머성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눈으로 작품을 사기 보다는 귀로 작품을 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림을 눈으로 보고 내가 좋아서 사는 게 아니라, ‘이게 돈이 좀 된다더라.’하는 식의 루머성 정보에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미술 시장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귀로 작품을 사거나 말로 작품을 사는 것을 피하고, 좋은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주식 시장에 대한 공부는 많이 하지만, 미술 시장은 눈으로 빤히 보인다고 생각해서 인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단순한 투자만으로 이익을 얻을 순 없겠죠. 실제로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요.
외국의 미술 시장이나 한국의 미술 시장이나 전체적으로 시장을 이끌어 가는 것은 경매 시장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의 미술 시장은 경매 시장이 작품의 가격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묘하게도 경매 낙찰 가격이 시장 가격이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요.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인사동의 군소 화랑이나 브로커들 사이에서는, 경매 낙찰 가격보다도 비싼 가격으로 작품을 판매하려는 사례들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파는 사람들의 잘못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는 사람들의 잘못이라 얘기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사는 사람들의 책임이 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준비와 정보 없이 단순히 열기에 휩싸여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미술 시장에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각별히 주의를 기율여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그 동안의 미술 작품 가격은 작가들이 부르는 것이 가격이었습니다. 특히 교수 작가들의 경우‘대학 교수’라는 지위가 프리미엄으로 작용해,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보다 비싸게 거래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술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교수 작가들이 시장에서 퇴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3-40대의 젊은 투자자 혹은 컬렉터들은 교수 작가들에 대해,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며 작업은 언제 할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Full Time Artist로도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하물며 교수 작가들은 어떻겠냐는 것이죠. 결국 교수 작가들의 작품은 컬렉터들로부터 외면 받기 시작했고, 경매를 통해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미술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거나 경매 시장을 통해 급상승 하고 있는 일부 작가들 중에는 교수 작가들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림 값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오 가스텔리’라는 유명한 딜러는 시장 가격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 가격은 평가할 수 없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콩 심은 데서 팥이 났을 경우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대기 힘들 듯이, 그림 값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일부에서는 자산 가치, 위험 부담, 기대 수익, 유동성, 기호(嗜好) 등이 작품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들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이런 요소들은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기말고사에 문제 내려고 하는 얘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실제로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데 반영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생각 됩니다. 또한 흔히 얘기하는‘미술사적 위상’도 뜬 구름 잡는 얘깁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미술관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얼마나 규모 있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했느냐?, 회고전을 했느냐?, 또는 미술관이 기획한 전시에 작가가 얼마나 참여 했느냐?의 여부가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그런데 한국에서는 작가의 미술관 전시의 참여 여부가 작품 가격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한국에 미술관들이 많기는 하지만, 미술관다운 미술관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권위 있는 미술 전문지에 리뷰가 얼마나 비중 있게 실렸는지의 여부도, 작품 가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외에도 주요 미술관에서의 작품 소장 여부, 국제전이나 아트 페어에 참가해서 얼마나 실적을 올렸는지의 여부, 능력 있고 명망 있는 화랑과의 관계 등도 작가의 작품 가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에는 앞서 말씀드린 서양의 사례와는 달리, 경매 가격이 미술 시장의 가격을 주도하는 형태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술 시장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활황입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우 두바이, 홍콩, 싱가폴에 지점 내느라 바쁩니다. 크리스티, 소더비 다음으로 본햄스도 홍콩에 최근 지점을 낼 정도니까요. 소더비 같은 경우 재작년에는 신용 등급이 BB 였는데, 작년에는 BB+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익도 600% 신장했다고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의 분포도를 살펴보면 미국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영국, 프랑스, 이태리, 독일, 스위스, 홍콩 등입니다. 이 중 우리나라가 시장의 1%라도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 홍콩과 중국의 성장세가 가장 눈에 띄는데 홍콩의 경우 최근 중국의 신흥 부자들이 예술 작품을 컬렉션 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크게 확장되고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최근 서양의 주요 경매에서 중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고가에 낙찰되면서 덩달아 시장도 크게 신장되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처럼 중국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외국 컬렉터들의 역할 보다 중국 컬렉터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는데, 이들이 자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서양의 유명 경매에서 다량으로 컬렉션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박수근의 작품이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 고가로 낙찰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 컬렉터가 작품을 사왔기 때문입니다. 외국 사람이 박수근의 작품을 내놓고, 한국 사람이 사온 셈이죠. 결국 미술 시장에서는 자국의 파워가 받쳐주지 않으면 즉, buy power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 작가들은 세계무대에서도 뜨기가 어렵다는 것을 중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서양의 미술 시장에서 대세를 이루는 작가들은 대게 러시아, 인도, 동유럽, 아랍, 그리고 중국 작가들입니다. 최근에는 중국과 더불어 인도 작가들의 성장도 괄목할 만합니다. 그런데 요즘 잘 나가는 인도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좀 웃길 정도에요. "저런 것이 어떻게 그림 축에 속하나?", 우리나라로 치면 1960년대 중 후반 정도의 그림들이 지금 인도에서는 잘 팔리거든요? 이해하기가 좀 어렵죠?
현재 국내 미술 시장의 가장 큰 맹점은, 국내 미술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30여명의 작가들이 미술 시장을 거의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한국에서 미술 시장이 가장 호경기였던 시기는 1993년 이었습니다. 1993년 당시에는 팔리는 작가도 많았고, 작품 가격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30명의 작가가 한국 미술 시장의 8-9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30명의 작가들 중 생존 작가는 몇 명 되지도 않습니다. 많이 잡아도 5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결국 살아 있는 작가들 중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는 5명도 안 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왜 생겼을까요? 대게는 IMF 이전 경기가 좋을 때 작품에 투자했던 컬렉터들이 IMF 사태가 터지면서 급하게 작품을 팔려다보니, 구매 가격의 2/3이라도 받고 팔 수 있는 작품들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의 몇몇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그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반값 이하에 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 가격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죠. 운보 김기창 같은 경우에도 IMF 이후 아직까지도 그림 값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IMF때 문 닫은 모 보험회사에서 1000여점에 이르는 김기창의 작품을 한꺼번에 처분했기 때문입니다.(이 정부 들어 친일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름에 따라, 운보 김기창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은 친일문제가 거론됨에 따라 가격이 못 오르고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몇몇 인기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작품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2006년 국내 미술 시장의 총 거래 건수는 1024건이었는데, 그 중 300만원에서 3000만원 짜리 작품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300만원에서 3000만원 이내의 작품들이 많이 팔렸다는 얘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중산층, 셀러리 맨들 중에서도 연봉이 조금 고액에 속하는 사람들이 미술 시장에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 국내에서는 어떤 그림들이 잘 팔릴까요? 미술 시장에서 잘 팔리는 그림들을 살펴보면 서양화가 전체 작품들 중 거의 80%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한국화, 조각, 설치, 드로잉 등의 순입니다. 조금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면 서양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판화가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게 남들이 안 갖고 있는 것, 나만 갖고 있는 것을 중요시 하다 보니까 판화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은 작품들 중 ‘Multiple’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일정 수 까지는 모두 작품으로 인정받습니다. 판화의 경우 유럽에서는 13개 까지 에디션을 만들어내도 미술품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을 넘어 14개부터는 공예품으로 취급합니다.(미국의 경우에는 11개 까지 미술품으로 인정) 그럼 사진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사진의 경우에는 에디션이 떨어질수록 값이 올라갑니다. 1/10 일 때는 100원 이었으면, 10/10 일 때는 2-300원 정도로 값이 올라갑니다. 희소성 때문이죠. 사진의 경우에는 독일의 베허부부와 그들의 제자들 이후부터 미술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자본주의 논리에 가장 최적화 된 매체가 바로 사진이라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2006년 국내의 미술 시장에서 팔린 작품들 중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팔린 작가들 30명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박수근, 김환기, 이우환, 백남준, 도상봉, 장욱진, 천경자의 순으로 나열됩니다. 특이할 만한 점이 있다면 이들 30명 중 작품 활동이 가능한 생존 작가는 4-5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미술 시장의 구조 때문에 지금은 베스트 30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과다하게 올라가고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작가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 시장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새롭게 편입될 여지가 보이는 작가들이 작년 연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석원과 오치균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이 최근 시장에서 치고 올라오는 양상을 보이는 까닭은 작품 가격이 저렴한 것인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또한 컬렉션의 안정성을 중요시 했었기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도 미술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몇몇 젊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중견 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상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미술 시장에 익숙하지 않은 컬렉터들이 유명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차후 더 높은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연습 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미술 시장을 경매가 주도해서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에게 투자한 컬렉터들의 성적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미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작품을 구입할 때, 최소 10년 정도는 두고 볼 생각을 하고 작품들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식에서도 흔히 샀다, 팔았다 하다 보면 수수료만 많이 나가고, 결국은 증권 회사만 좋은 일 시켜주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예술 작품은 자주 샀다, 팔았다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작품을 살려면 10년 정도는 보관할 생각을 하고 구입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몇몇 유명 컬렉터들은 10년을 소장할 생각이 아니라면, 10초도 작품을 갖고 있을 생각 말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술품을 투자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떤 분들의 경우에는 단기 투자를 위해 미술 시장에 들어왔다가도 꾸준한 컬렉터로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 기호가 작품을 구입하는데 반영되기 때문이죠. 보통 미술 시장에 들어오고 1년 반 정도 지나면 그렇게 바뀌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림을 사실 때 가격에 상관없이 꼭 챙겨두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림을 인수할 때 작품에 대한 보증서를 꼭 받아두시라는 겁니다. 갤러리가 발행한 것이든, 감정기관에서 발행한 것이든 작품의 정보가 분명하게 기입된 보증서를 받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 전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 경매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낙찰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 팔린 이유 중의 하나는(물론 최근 베이컨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그 그림을 유명 여배우인 소피아 로렌이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피아 로렌이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베이컨의 그림은 서로 반반씩 잘라 가질 수 없어서 공동소유로 갖고 있던 것을 이번 경매에 내놓은 것인데, “소피아 로렌이 갖고 있던 작품이다.”라고 해서 더 비싼 가격에 낙찰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적어도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유명인이나, 안목 있는 컬렉터들이 갖고 있었던 그림의 경우에는 가격이 좀 더 비쌉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알만한 유명 수장가들의 컬렉션 리스트에 들어있었던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시장에 나오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습니다. 따라서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작품이, 어떤 컬렉션의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이 작품이 어떤 책에 실렸나?”와 같은 작품 관련 문헌 정보도 중요합니다. 권위 있는 잡지나 권위 있는 미술 이론서에 실릴수록 가치는 높아지기 때문이죠. 사실 이런 정보들 같은 경우 외국의 갤러리들 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해 줍니다. 국내의 경우에는 팔기에 급급해서 정보를 감추는데 주력해서 문제가 되지만 말이죠. 그리고 규모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된 경력이 있는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똑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좀 더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어쨌든 최근 들어 미술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과연 이것이 거품이냐, 아니냐를 놓고 말들이 많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묻지마 투자’라는 생각은 안 들고요, 관심이 조금 많아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듯싶습니다. 예전에는 작가를 비롯해 미술 시장에 소속된 사람들이 라면이나 수제비 같은 걸로 하루 한 끼 먹는 정도였다면, 요즘은 두 끼 먹는 작가들이 조금 생겼다는 정돕니다. 활황이고, 거품이고 까지 가려면 제가 보기에 하루 세 끼 먹고, 후식타령 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동안 한국의 미술 시장이 워낙 어려웠었기 때문에, 요즘 조금 살 오른다고 해서 뚱뚱해 보이는 거죠.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조금 더 엄격하게, 한편으로는 시장의 추이를 좀 더 관망하고 예의 주시하면서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작품은 눈과 귀로 사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사는 것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