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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폭포」는 폭포의 표정을 가장 가까이서 그려낸 작품이다. 물살이 강렬하게 교차하면서 희고 푸른 빛깔을 만들어 낸다. 상부에서 흘러내리는 물살이 계곡 중간으로 들어오는 작은 물살과 합쳐지면서 더욱 강한 기운으로 하부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물의 빛깔은 아주 투명하다. 계곡의 바위는 형태를 자세히 그리지 않았고 濃墨으로 검게 처리하여 폭포의 강렬하고 투명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출품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단순한 화면경영 이지만 시각적으로는 가장 강렬하다. 「上瀑」은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높이 솟은 산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그린 것이다. 폭포는 산 밑으로 쏟아지면서 장대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폭포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빠른 물살이 순식간에 집합되어 커다란 물연못을 만들고 있고, 변화무쌍한 물길의 성정이 사방으로 발산되며 거대한 雲霧를 뿜어내고 있다.
「계곡 폭포」는 바위로 인식되는 화면 상단부의 검은 묵색 부분의 사이를 뚫고 나오는 폭포를 그린 그림이다. 푸른 물보라를 일으키며 마치 산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듯 힘차게 분출하지만, 계곡에 합류되면서 부드러운 물살로 바뀌어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있다. 감상자들에게 문득 삶의 행로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雲谷」이나 「遠瀑」은 구름과 폭포를 대비시킨 작품이다. 불확실한 형상을 만들며 산속으로 퍼져 나가는 구름과, 계곡에 떨어져서 일정한 크기를 만들어가며 흐르는 물살을 그린 것으로 우주의 명료성과 모호함의 대비를 보여준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분방함과 그들만의 질서를 읽게 하는 그림들이다. 화면의 구성방식은 비어있음(虛)의 공간인 空白이 主体이다. 폭포나 계곡은 하얀 虛의 공간으로 화면의 메인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바위나, 산, 나무, 가옥들은 검정 묵색으로 面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다. 산이나 바위들의 형상은 사실적이지 않고 다만 검정묵색의 거대한 덩어리로 인식된다. 농묵의 깊이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시키려고 한 의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水墨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해방감으로 시원하고 호방하게 유도되고 있다. 그러나 농묵의 강렬함은 하얀 공백으로 드러난, 분출하듯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나 크고 작은 파동을 만들며 흐르는 계곡의 물살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이다. 감상자들은 조평휘의 화면에서 푸른 물보라를 만들며 떨어지는 하얀 폭포의 웅장한 속도에 우선 시선이 간다. 실(實,사물의 실체)속에서 허(虛, 우주의 비어있음)를 구하는 동양화법의 근본방식이 조평휘 식으로 전환되어 허(폭포,계곡)로 인하여 실(산, 바위)이 드러나고 있다. 조평휘식으로 산수를 보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自然 스스로 그 실체를 말하게 하려는 방식이다. 예컨대 「푸른폭포」에서 보이는 미세한 물살들의 다양한 층차의 표현이나, 여러 작품에서 목격되는- 강하게 떨어지는 폭포가 계곡과 합류하며 생성되는 물결의 완급의 관찰이나, 산등성이를 가르고 나오는 하얀 구름의 여러 표정들은, 산수를 그려낸다는 태도 보다는 산수 스스로 만들어가는 형상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평휘가 일관되게 수묵산수를 그려오면서 창조한 새로운 형식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시대에도 수묵산수의 진화가 가능한가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대답일 것이다
전통화법에 기반을 둔 현대 수묵산수 작가들이 줄어들고 새로운 트랜드를 찾아 수묵의 유전자가 이종교배 되고 있는 현재의 동양화단에서 조평휘의 수묵산수는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濃墨과 潑墨의 완숙한 구사와 거침없는 분방한 필선들은, 조평휘식 허(虛)중심의 화면경영에서 모던한 감각으로 새롭게 운용되고 있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나, 산이나 바위의 형상을 지우거나 하나의 面으로 배치하는 것, 강렬한 폭포의 물줄기와 부드러운 계곡물의 리듬감을 조화하는 것, 진한 농묵의 산이나 계곡의 바위들에 미세한 묵색의 층차를 내는 것 등 시각성을 강화하면서 寫意였던 전통산수화의 畵境에서 새로운 이 시대의 존재감으로의 산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존재감의 시각성을 "그려낸다"라는 자세보다는 자연이 "토해내고"있는 그들의 기운과 질서를, 스스로 발산하도록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폭포는 장쾌하게 쏟아지고 하얀 구름들은 변화 무쌍하며, 큰 계곡의 물은 푸른 물보라를 일으키며, 작은 계곡의 물살들은 부드럽지만 생동감이 있다. 진한 농묵의 큰 산들은 묵묵한 무게감을 줄뿐 압도하지 않는다. 각자 크고 작은 기운들을 토해내며 그들만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의경(意境)은 긴 시간 수묵의 통로를 건너 완숙한 묵법과 필법을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평휘의 수묵산수 그림은 빠르고 현란한 문화만을 소비하는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 잠시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쉼표 같은 신선함을 선사한다. 즉 조평휘의 산수세계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묵의 아름다움을 새삼 확인 시키고, 自然에 대한 모두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내고, 강렬한 시각성으로 水墨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장정란
롯데갤러리 대전점에서는 작가의 창작의욕 고취와 지역미술의 발전을 위하여 연간 4~6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개인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그 첫 번째 전시로 올해 팔순(八旬)이신 원로 한국화가 운산 조평휘(雲山 趙平彙) 선생님의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1932년 황해도 해주 출생의 조평휘 선생님은 전쟁을 피해 남으로 피난하여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76년 목원대학교의 교수로 대전에 정착한 이후 현재까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을 거주하면서 줄곧 제자들에게는 사랑이 넘치는 좋은 스승으로 또한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는 작가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십 수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국내외의 주요 한국화 전시에 참여하였고 94~95년에 목원대학교 미술대학의 학장을, 2001~05년에 운보미술관의 초대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목원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제작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는 지역뿐 아니라 우리 화단에서도 커다란 위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 청전 이상범과 운보 김기창에 사사한 조평휘는 한국적 정서에 어울리는 산수경 뿐 아니라 현대적인 표현 양식과 기법 등을 두루 익혔습니다. 이후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하여 깊은 계곡과 암벽, 폭포 등 우리 산하의 웅대한 정취를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재창조 해 내었습니다. 강렬하고 대담한 필법과 기존의 통념적인 산수화와 구별되는 다이나믹한 화면의 구성은 실경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산하의 정취가 손에 잡힐 듯 생동감을 주고 있습니다. ●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008~2011년의 신작을 전시합니다. 작가 특유의 통찰력은 단순한 기교를 넘어 발묵(潑墨)과 더불어 더 과감해진 생략을 통하여 한층 원숙하고 강렬한 감동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우리는 부단한 애정으로 작업에 매진해 온 작가 조평휘,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조평휘의 진지한 면모를 감상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끝으로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여러 제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손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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