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을 보내면서 제 전공의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이 글은 마무리 글이라고 ---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엔도 슈사쿠
한 사람의 단점은 곧 장점이 될 수 있고, 장점은 단점도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이 서로 등을 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허세, 허영심’의 문제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통 허영이라고 하면 허세를 부리거나 겉치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말함으로, 부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실력을 과장하거나 자신의 역량이나 지위를 남들에게 부풀려 보이는 사람을 두고 허세, 허영심이라고 한다. 그러한 허영심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서는 곤란하다. 자신을 실력 이상으로 꾸며낸다 해도 남들은 그것을 꿰뚫어보기 때문이다. 자기에 속아넘어가는 사람은 어지간히 착해빠진 어수룩한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허세 부리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인간관계에서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허영심은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그렇다며누 허영심이나 허세를 전혀 가져서는 안 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나는 오히려 어느 정도의 허영심을 가지고 허세를 부리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주체성, 자기 동일성을 나타내는 말을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말한다.(참고.- 앞에서 공부한 ‘동일시’라는 말도 identificatin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자기의 아이덴티티(자기, 자아)를 제데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대의 젊은이라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한 사람은 거의 없다.(노년인 우리도 자기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대체로 자기의 약점, 내가 어떤 말을 들을 때 특히 기분이 나빠지거나,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싫어진다면, 그 말 속에 진짜 내가 들어있는 수가 많다.)
허세나 허영심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주는 것은 허세와 허영심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허영심은 그 사람의 욕망이고, 그 육망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가슴 속에 허영심이 머물고 있다면 그 혀영심을 역이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노인들과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자기 자신은 어느 분야에 전문가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기야 그 일로 평생 자기의 삶을 꾸려왔으니까 당연한 생각이다. 노년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므로, 은퇴후에도 자기의 자랑을 유지하려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다.(자기의 직종에서만이 아니고, 취미 생활에서도, 일반적으로 은퇴 후에는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허세와 허영을 학교 다닐 때에 공부를 잘 하였다든지,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직위 등어서의 허세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허세, 즉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이것은 허영심을 좀 더 긍정적으로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그래서 문학 사랑방 교실에 나와서 공부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라는 것이 광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