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4]또삼촌과 또조카 그리고 또할과 또손
‘또삼촌’과 ‘또조카’에 이어 ‘또할’과 ‘또손’에 이르면, 무슨 암호가 아닐까 궁금할 듯하다. 벌써 38년이 다 되는 옛날, 요즘말로 ‘절친’들의 아들들이 하나둘 태어났다. 한 친구가 절친의 아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부르게 할까, 자신은 그 아이를 어떻게 부를까를 고심했다. 고심참담한 결과, 탄생한 기가 막힌 신조어가 ‘또삼촌’과 ‘또조카’였다. 당연히 ‘또숙모’도 잇따랐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칭. 젊은 시절, 친구의 아내를 제수씨라 하고, 친구의 아들에게는 큰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친구는 자기의 아내를 형수씨, 아들에게는 삼촌으로 부르게 하는 등, 호칭문제로 찌그락짜그락했던 경험이 모두 있을 것이다. 또삼촌, 또조카, 또숙모의 호칭은, 그런 점에서 불필요한 입씨름을 일거에 해결한 ‘신의 한수’였다. 친삼촌(숙부)는 아니지만, 어쩌면 친삼촌보다 실제로 더 친한 아빠의 친구를, 우리 아이들은 떡애기때부터 또삼촌이라고 불렀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실제로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친척’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니, 그 호칭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우리 20-30대때에는 시공간의 제약을 떠나 1년에 수시로 만나 우정을 나눴다. 절친은 정말로 내 아들들을 자기 자식만큼 예뻐했다. 아빠인 나보다 우리 아이들을 더 좋아하고 사랑한 듯했다. 나 역시 또조카를 사랑했다. 하여, 우리는 또삼촌, 또조카 신조어에 박수를 쳤다. 우정이 깊으면 이렇게 없는 단어도 만드는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신조어를 쓴다면,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오르지 못할 이유도 없을 터. 이번에 호주에서 둘째가 3주간 휴가를 내 다녀갔다. 맨먼저 묻는 게 또삼촌의 안부였다. 지난 6월 12일 위암 수술 후 5년이 지나 완치판정을 기대하며 병원에 다녀온 친구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완치 판정은 고사하고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됐다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 2개월여는 완전히 멘붕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전이 4기’ 암의 생존율이 2년내 10-20%라는 것. 지금은 신약 실험을 통해 암세포가 절반은 죽었다고 해 ‘암투癌鬪거사’ 친구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처음에는 하늘이 노랬다. 그 사실을 말하니, 내 아들들의 한숨소리가 너무 크고 깊었다. 그런 삼촌이었으니 어찌 그 사랑을 잊을 수 있겠는가. 나만큼이나 슬픔이 큰 듯했다. 내 손에 들려준 두 아들의 쾌유를 기원하는 '금일봉'을 찬구에게 전달하면서 나도 속으로 많이 울었다.
아무튼, 나의 손자가 태어나자 신조어는 곧바로 변형이 됐다. ‘변형’이 아니라 ‘진화’라는 말이 맞겠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에게 ‘또할(또할아버지)’이라 부르게 하고, 아기를 ‘또손(또손자)’라고 부른 것이다. 괜찮은 호칭이다. 멋지다. "또할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기어이 나의 손자 백일기념으로 한 돈쭝의 돌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신약의 효과인지 이제는 식사도 제법 하고 몸무게도 늘어났다(체중이 50kg를 못넘으면 항암치료도 하지 못한다)는 근황 보고에 기뻐하지만, 혼자 있어 그 친구의 정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확히 51년의 우정이다. 1973년 고교 1학년때 같은 반으로 만나 지금껏 어떤 얘기든 가리지 않고, 어떤 문제든 상의해온 ‘깨알 친구’가 아니던가. 만약 한두 해 내에 이 친구가 정말 ‘가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고 무섭고 두렵다.
소위 ‘100세 시대’가 아닌가. 한 달에 한번, 나의 유일한 바둑친구이기도 한데, 이 친구가 없으면 나이가 익어가면서 나는 누구나 수담手談을 나눌 것인가. '무법천지'의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누구와 허심탄회하게 비난하고 비판할 것인가. 포도주와 우정은 깊어갈수록 좋다는 말도 있지만, 반세기 ‘절친 우정’이 어디 그리 흔한 일인가. 농촌 한동네 출신의 ‘꾀복쟁이 우정’이야 70년도 너끈히 가능하겠지만,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3년 같이 다녔다는 인연만으로 50년을 같이 걸어온 ‘길동무’(불교용어의 도반道伴이 아니다)이기에, 앞으로 더욱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나이가 익어가야 할 일이거늘, 암투거사가 웬말이더냐. 그런데도 명색이 절친으로서 내가 해줄 것이 거의 없다. 그것이 또 슬프다. 이태 전에도 한 친구가 졸지에 가버려 지금껏 그 슬픔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 날 며칠 같이 있으며 고통을 느껴볼까? 동고동락, 희로애락을 같이 해야 하건만, 솔직히 자신이 없구나. 하지만 꺾어지면 안될 일이다. 너 자신의 독특한 ‘개똥치료 몸철학’으로도 반드시 이겨내라. 우리 아들들도 빌고 있다. 암투쟁과의 종전終戰을 선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