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클리앙)
2023-11-13 15:29:51 1
안녕하세요.
종종 사건 이야기를 쓰는 코지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대법원의 재미있는 판결을 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모욕죄에 관한 것인데요.
클리앙에서도 특정인에 대한 인터넷 게시글 또는 댓글로 생각지도 않던 모욕죄 피의자가 된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여러 회원분들을 대리해서 경찰 조사단계부터 무죄 주장하며 방어했던 사건들이 기억납니다.
그만큼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전혀 모욕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모욕죄의 "모욕"에 해당하여 곤욕을 치루는 경우가 생각보다 빈번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오늘 사건의 모욕에 해당하는 말은 바로 "용팔이"입니다.
1990년대부터였던가.. 용산에 워크맨 사러 친구랑 지나다보면 다섯 발도 떼기 전에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거나 팔을 잡아당기며 "얼마까지 보고 왔어?"라고 묻던 상인들을 지칭하던 말이 용산 시대가 저물면서 강변역 테크노마트 상인들에게로 옮겨갔다가 지금은 온라인 매장에서 말도 안되는 허위매물 등으로 고객을 낚는 상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했네요..
사건은 이렇습니다.
1. 피고인은 2021. 2. 15. 피해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xx컴퓨터'의 'ASRock B560 PRO4 에즈윈 인텔 오버용 중급 신규 메인보드 ATX규격 최신버전'이라는 제목의 판매 게시글의 ’묻고 답하기 란‘에 “이자가... 용팔이의 정점....!!”이라는 내용의 글을 작성하였는데, 이를 이유로 모욕죄로 기소되었습니다.
2. 제1심법원은 "➀ ’용팔이‘란 표현은 전자기기 판매업자를 비하하는 용어이고, “이자가 용팔이의 정점”이라는 말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며, ➁ 피고인은 피해자의 행위를 비판하기 위한 정상적인 표현을 전혀 쓰지 아니한 채 오로지 경멸적 용어만 사용하였고, ➂ 피고인이 사용한 표현을 가리켜 ‘지나치게 악의적이지 않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모욕죄에 해당하고, 이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라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배척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결하였습니다.
3. 이에 피고인은 항소하였는데, 항소심 법원은 먼저 "용팔이"라는 말이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는지와 피고인의 고의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하여, "피고인은 ‘용팔이’가 전자기기 판매업자들의 독과점, 시세조종, 허위물품 판매 등을 지적하는 맥락에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점, 피고인은 피해자의 허위물품 판매를 의심하면서 이 사건 게시글을 작성한 점, 위 표현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 사용 경위, 맥락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게시글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하고, 피고인에게 모욕의 고의 또한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피고인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용팔이"라는 표현 자체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고 이를 사용한 피고인의 고의성 역시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이 "용팔이"라고 글을 쓴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가 되는지에 대하여는 "피고인이 이 사건 게시글을 작성한 ‘묻고 답하기’란은 소비자들이 판매자에게 구매하려는 상품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장으로서 상품에 대한 것이라면 그 표현의 자유는 비교적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➀ 이 사건 상품은 품절된 상태였으나 피해자는 이 사건 상품을 즉시 판매할 수 있는 것처럼 판매 게시글을 올리면서 이 사건 상품의 판매가를 통상적인 판매가보다 매우 높은 가격으로 정하였던 점, ➁ 이 사건 게시글 작성 이전에 ‘40만원???ㅋㅋㅋ ㅋㅋㅋ 그냥 품절을 해놓으시지’라는 글이 작성되어 있었던 점, ➂ 이 사건 게시글 작성 이후에도 ‘카카 40이래. 양심좀 챙기죠 하나만 걸려라 이건가?’, ‘진짜 궁금한데요 팔리긴 팔려요?? 상품은 40만원 갑아치 하나여??? 15만원짜리보다 방열판이 10개정도 더 달려있나여??’, ‘40 선 넘네.....’ 등의 글이 작성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게시글은 즉시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품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려는 피해자의 의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위와 같은 의도를 비판하는 다수의 다른 게시글과 같은 견지에서 피해자의 위와 같은 행태를 비판하는 의견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 나아가, 피고인의 게시 횟수가 1회에 지나지 않고, ‘용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외에는 다른 욕설이나 비방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그 표현도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피고인이 "용팔이"라고 글을 쓴 앞뒤 정황을 고려할 때 이는 정당행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5. 이에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살펴본 바와 같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라고 판결하였습니다.
6.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정당행위로서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 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 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한다"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용팔이"라고 써도 모욕죄가 아니다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칫 판결문을 엉성히 읽거나 보도 기사의 제목만 대충 읽으면 마치 "용팔이는 모욕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1~3심 법원 모두가 "용팔이"라는 표현 자체는 모욕적 표현이 맞다고 인정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그러한 모욕적 표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종합해볼 때 예외적으로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를 받은 것이므로, 일반적으로는 "용팔이"라는 표현을 안 쓰는 것이 가장 좋고, 꼭 써야하더라도 "정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도록 몇몇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하겠죠.
쓰다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나름대로는 클리앙 회원들께서 자주 걸리시는(?) 모욕죄인지라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등의 활동에서 늘 주의하시면서 즐거운 클량 활동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