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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할 일도 없고, 심심하기도 해서 평소에 했던 생각을 끄적여봤습니다.
평어체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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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SNS(소셜 네트워크)가 대세다.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됨에 따른 결과이다. 주요 통신수단은 유선전화기에서 휴대전화로 바뀐 지는 이미 오래고,미니홈피, 블로그로 시작된 개인 미디어의 등장은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이어져 마치 미디어의 교체가 도래한 듯한 착각이 들도록 한다. SNS는 정치지형에도 변화를 가지고 오고 있는데 아이폰의 팟캐스트를 기반으로 한 정치풍자 토크쇼가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선거 때마다 인증샷 놀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디어의 환경 변화가 정치이슈를 주도하며,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정치권의 SNS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 SNS가 여론을 주도하다.
당초 열세가 예상되었던 야권의 몇몇 후보자들이 SNS로 촉발된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당선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 이후 매번 선거 때마다 SNS는 정치인들의 관심 한복판에 위치하였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 위원단에는 SNS 전담팀이 만들어지는데 이르렀다. SNS의 정치적 영향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에 정치와 분리되어 있었던 20/30대 젊은이들을 무대 위로 끌여들였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 보수진영은 그 영향력에 긴장하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그들의 등장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진보적인 성향의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일 것이다.
20대 그들은 과연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
20/30대의 정치참여. 온 국민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본인에게는 상당히 매력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SNS로 촉발된 이들의 정치참여는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정치권의 해석처럼 20/30대 젊은이들이 진보의 시대에 주인공이 되어 줄 것인가?'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거 때마다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다룬 뉴스를 보던 중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경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정치성향은 30대의 그것보다 보수적인 색채를 적지 않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수성향의 정치인에 대한 선호도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정책에 대한 지지도도 30대와 구분되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의 뜨거운 감자인 무상급식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 역시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내 돈 들여서 이건희 회장 손주에게 공짜밥을 먹이냐'는 불평은 우리세대의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성장과 분배, 안정과 변화의 가치 선택에서 20대는 3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진보로의 변화를 이끌었던 주체는 항상 10/20대였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 운동이 그랬고, 6월 민주항쟁이 그랬다. 우리나라 민주화을 주도했던 세대는 다름아닌 '학생'이었다.
386세대에서 298세대(386세대와 88만원세대 사이에 낀 세대) 까지
얼마 전 어느 TV토론회에 출연한 대표적 보수 인사인 전원책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나 대략 이런 맥락이었다. '이 시대 대학생들은 책을 너무 읽지 않아 정치적인 신념이 부족하다. 우리 때는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이 일상이었는 데 요즘 대학생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맞는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평소에 그리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이 사실이며, 주변에서도 책 읽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찾아 보기는 힘들다. 이 시대 대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바쁘고, 여가시간에 책을 가까이 하기에는 대체재가 무수히 많다. 그렇게에 전원책 변호사의 말은 맞지만 틀리다. 그는 스스로 대학생 시절 읽었다며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즈의 '화폐론' 등과 같은 책을 언급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기 386세대에게 보수와 진보, 소위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민은 현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30대, 바로 298세대는 경기호황의 수혜자로 활발한 배낭여행과 유학생활을 경험하고, 이전에 금지되어있던 일본 영화와 수 많은 헐리우드 영화를 접했던 세대이다. 이에 따라 대학가 풍경도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기존에 학생운동으로 대변되던 모임활동이 다수의 동아리로 교체되는 것이다. 이제 캠퍼스 안에서 애덤스미스, 마르크스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그 자리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특정한 영화 감독, 음악가, 혹은 연예인이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386세대에게는 삶 그 자체였으며, 민주주의 쟁취의 과정이라 할 만한 정치는 298세대에 이르러 문화에 대한 탐닉과 결합하게 된다. 우리는 9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음악이나 영화, 미술 작품에서 시대를 향한 저항정신이나 변화욕구,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장르의 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진보의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90년대가 그렇다고 하고 싶다. 그 이전 세대에서 어렵게 쟁취해 낸 민주주의는 298세대에 의해 관념이자 문화콘텐츠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장한 298세대는 문화적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애매하게 낀 세대로서 다수의 관심 밖에 있었던 자신들의 영역을 스스로 메인 스트림으로 끌어 올린다. 최근에 정치적인 활동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연예인 김여진 씨, 김제동 씨,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서 시사적인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김태호 PD,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출판 기념 북 콘서트와 같은 새로운 정치형태를 제안하고 있는 탁현민 교수가 모두 298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흔히 말하는 민주, 진보 정권 10년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386세대는 시대적인 강요에 의해 진보와 보수를 양자택일해야만 했지만 정치적 압력을 덜 받으며, 문화적 토대 위에서 정치를 바라 본 298세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영역에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게 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섵부른 축배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쳐 밀레니엄 시대에 등장한 참여정부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나라 진보정치는 겉보기에는 상당한 발전을 이룬 듯 보였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군부독재 치하에서 국민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헌법의 기본권마저 침해받으며 지내야만 했던 우리는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진보정치가 발전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 지형에 기반한다. 독재시절 정권을 잡고 있던 이들은 통치의 편의와 체제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해 자신들 이외의 세력을 철저하게 배격시켰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행태는 나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치에게 파시즘이 있었다면 당시 우리나라 독재정권에는 바로 반공주의가 있었다. 반공주의로 인해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사회주의자 혹은 친북주의자라는 낙인을 얻게 되었고, 진보라는 개념은 토론의 테이블에 올릴 수 조차 없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고 심도가 깊어 그 완성과 부족함을 논하기에는 본인 스스로의 지식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지만 흔히 진보좌파는 빨갱이가 되어 이른바 숙청되는 사회는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믿는다. 물론 애초에 진보는 친북, 빨갱이, 사회주의로 표상되고, 보수는 친일, 친미, 독재로 표상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 지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것들은 같은 카테고리에 묶일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는 독재시절에는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 자체를 나눌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와 같은 질곡의 시대가 386세대에 의해 끝맺음하면서 본격적으로 진보와 보수에 관해 '논할 수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298세대에 의해서 진보의 시대가 도래하는 듯 보였다.
IMF와 절대 경쟁 시대
하지만 이런 정치 변화와는 별개로 IMF로 시작된 극심한 경제 침체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탄생시킨다. 이들이 바로 상대적인 보수 성향의 '이 시대의 20대들'이다.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20대들에게 5/18 민주화 운동의 의미는 동학농민운동과 다를바 없다. 다소 비약적인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것이 사실에 가깝다. 우리 세대에게 민주화는 역사교과서 한 페이지의 일부일 뿐이다. 또한 298세대를 대표하는 문화 중의 하나인 동아리의 의미도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우리 세대의 관심사는 다른 경쟁자(친구)보다 우월한 스펙을 쌓는 데 있으며, 어떻게 하면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데 있다. 혹자는 이런 우리 세대를 보며 '꿈이 없다', '열정이 없다'라고 비난 할 지 모르겠다. 앞서 언급했던 전원책 변호사의 발언도 이런 비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런 비난은 세대차이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서 세대차이라 함은 구세대가 신세대의 유행을 좇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닌 말그대로의 격차를 의미한다. 이전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화 운동, 문화 향유가 시대적 요구였다면, 우리에게는 입시, 스펙, 취업이 시대적 요구이다. 이렇게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남과 함께 무엇을'이라는 가치보다 '남보다 내가 무엇이라도'라는 가치를 중시하게 된다. 또한 위험을 동반하는 새로운 시도, 변화보다는 안정과 적절한 부를 담보로 하는 기득권으로의 편입을 꿈꾸게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20대의 보수화의 결정적 요인이다.
이렇듯 줄세우기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왜 내 돈 들여서 이건희 회장 손주에게 공짜밥을 먹이냐'며 어린이들까지 가진자 못가진자로 줄세우기를 한다. 오히려 그 어린이들은 아직 그 무엇도 가져보지도 잃어보지도 않은 존재이기에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어야한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설 곳은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안철수의 청춘콘서트를 보고 듣고 열광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뒤돌아서 토익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난 후 읽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항소이유서'를 보고 정치에 대해 한 번도 치열한 고민을 해 본 적 없던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유명한 칼럼리스트가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투영되어 있는 정치적 의미을 설명할 때 반 이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이내 관심사에서 멀어지고는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사상교육
20대의 젊은이들의 보수화 경향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요인으로 나는 군대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싶다. 얼마 전 친구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는 그를 상당히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왜냐고 물었더니 북한을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게 나쁘냐고 계속 물었다. 북한은 적인데 당연히 나쁜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386세대와 298세대는 군 입대 전 학창시절에 이미 좋든 싫든 민주화 투쟁을 해보기도 하고, 문화 활동을 하면서 정치에 관한 주체적인 판단의 기회를 누렸다. 말하자면 내성이 생겨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현재는 20살이 되기까지 대한민국 학생들은 정치에 관해서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기 힘들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그 중에 몇몇 학생은 정치, 국사, 현대사와 같은 교과목을 배우긴 하지만 이들도 수능시험 과목의 하나일 뿐이지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아니다. 마치 미적분을 몰라도 사는데 지장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무방비한 상태의 학생이 군대에 들어가 인생의 첫 번째 사상교육을 받게 된다. 대적관 교육, 반공교육이 그것이다. 군대에 다녀온 분들은 알겠지만 정신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이러한 절차에는 우리가 어떤 과정에 의해 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상당히 배제하고 있다. 대부분 십 여년, 혹은 그보다 훨씬 전에 제작된 교육용 자료들은 맹목적인 적개심을 키우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군대 내에서 형성되고 의식화된 북한이 적이라는 개념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을 처음 배울 때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물론 북한이 군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상당한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와 동시에 북한이 때로는 협력자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통일의 대상이 될 동반자라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러한 사실이 모두 무시되고 국내에 존재하는 진보정당이 소위 빨갱이 친북좌파라는 주홍글씨가 힘을 발휘할 때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정상적인 판단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진다. 상대적으로 저교육층에서 보수적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데에 이러한 의식 조작이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섹스 앤 더 시티, 스타벅스 그리고 명품
군대가 젊은 남성의 보수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 시대 젊은 여성의 보수화에는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고민해봤다. 현재 잠시동안 호주 멜번에 살고 있는 나는 도심에서 한국 여성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이힐과 명품백이다. 워낙에 다문화 지역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서 언뜻 어려워 보이지만 그들의 모국을 구분해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각 나라마다 유행하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심지어 화장법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하이힐을 신고 명품백을 들고 있는 여성은 열에 아홉은 한국 여성이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크게 유행했었다. 이 능력있는 여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곧 대한민국 여성의 워너비가 되었다. 남성에 비해 수동적인 역할은 요구받아왔던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누가봐도 멋진 그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열광했으며, 차츰 그녀들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능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능력이 있어야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고,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경쟁하기에 바쁘다. 미모, 재력은 상당한 노력을 요구한다. 남들보다 부지런해야하고 한 발자국이라고 앞서 나가야 한다. 이것도 치열한 경쟁이다. 요즘들어 결혼도 제테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결혼해서 고생안하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우자를 만나는 데에 사랑이라는 가치보다 재력이나 학벌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물며 결혼도 이러할 진데 이들에게 진보의 가치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물론 이 말이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만연한 현상이다.
쿨함과 찌질함
진보는 젊은이들의 특권 중의 하나라고 믿는 나에게 20대의 보수화는 다소 아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적당한 이유를 찾아보려했고 다소 논리적인 비약이 동반한 근거를 언급해보았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며 이른바 쿨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맨 땅에 헤딩도 좀 해보고 남도 좀 도와줘가며 찌질하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무엇때문에 30대보다 상대적으로 20대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글이 쓰다보니 '우리가 좀 더 진보적이면 좋겠다'라는 바람으로 끝맺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것은 내가 가진 필력의 부족함에 비롯된 것이기도 하려니와 진정성의 발현이기도 한 듯 싶다.
첫댓글 내 인생의 첫 번째 사상교육 심히 공감합니다.
오랜만에 재밌는글이네요 ㅎㅎ 잘봤습니다. 예전 세대에 비해 현재 20대가 정치 활동에 능동적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정계가 보여주는 행태들에 대한 회의도 크게 작용할것 같네요.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가치에 모두가 다 집중하고 있기때문에 관심이 없는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 20대가 정치에 대해 보수적이거나 관심이 없다해도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갈수록 다른 양상을 보일거라 생각합니다. 현재도 그렇듯 자신이나 자신이 소속된 단체의 이익에 영합하는 당을 지지하거나 자신이 직접 움직이거나 하겠지요.
걱정되는것은 현재는 그나마 소수라 보여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극단적 신자유주의자들이 이 나라에 가득차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정계에서도 몇몇에게 보여지는.. 우리 나라를 통해 부를 쌓고 정작 나라마저도 자신의 이익에 맞는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그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늘어난다면 정말 큰 문제일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와 기회주의자들의 땅인 미국에서조차 자국민들의 애국심과 소속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그나마 자국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떨어져나가게끔 만드는것 같아요. 얘기가 산으로갔는데.. 결국 제가 말하고 싶은건 20대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 경향을 띄는건 차라리 낫다, 너무 급진적 혹은 너무 매국적인 경향만 띄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입니다.
예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계가 보여주는 행태들에 대한 회의도 능동적이지 못한 정치 활동에 물론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허나 그런 행태가 어제 오늘일이 아닌 것도 사실임에도 과거에는 젊은 학생들이 적극적인 정치행동을 보여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현재는 왜 그렇지 못할까에 주목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북문제에 관한것에 대해 혼자 공상하는걸 말씀드려보자면, 김정일 정권에서 이제 차기 정권으로 넘어간다면 연방제를 제시하는 대화의 물꼬를 터서 북한 정권 유지 및 국방 관련 부분들을 기득권층들에게 맡겨놓아서 급진적인 전쟁발발을 막고, 식량 공급을 해주되 민족간 경계를 허물고 이동이 자유롭도록 계약하는걸 차근 차근 교류하면서 흡수 통일하는 것을 상상해보네요. 물론 지금 북한 정권은 정말 증오하지만 그 증오하는 북한 정부, 군, 핵도 이용하기에 따라 한반도 전체엔 이득이 될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합니다.
연방제를 제시하고 그 이후 한반도 전체를 중립국 선언을해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스위스처럼 한반도도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란 공상을 요새 하네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보수화 경향은 부모들의 그릇된 교육열로 말미암은, 사회가 조장하는 경쟁의식, 풍족한 현실에서 비롯된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가짐, 신자유주의가 합쳐진 복합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렇지 못할까는 역시 정치의 행태가 끼치는 영향이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아직까지는 가해지지 않아서겠죠. 만약 당장 내일부터 자신의 이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심각하게 끼치는 영향이 정치권을 통해 가해진다면 현재 수동적인 20대들도 불같이 일어날겁니다. 허나 정치권도 바보는 아닌지라 알게 모르게 처리하거나 사회가 들고 일어서지 않을정도만 영향을 가하니 현재는 나름 잠잠한거겠죠.
님께서 말씀하신 방식의 통일도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방식으로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주체가 어떤 집단일지가 상당히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통일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이 특정 기득권층에게 편중되고, 상당수의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면 전체적인 손익이 플러스가 될 지라도 상당히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역시 그렇겠죠 ㅋㅋ 우리 나라 통일은 외교 국방 민족감정등 모든걸 넘어서 결국 자본이 크게 좌우하겠죠. 그래서 그 모든걸 타파할 어떠한 획기적 사건이나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한 힘들것 같긴합니다만.. 어렸을적부터 통일에 대한것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나라 사례나 소설, 만화 등등 찾아봤지만.. 어떤것도 해답이 될만한게 없더군요 정말. 그래서 그냥 저건 제 상상속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가장 피를 덜 흘리면서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의 부조리가 고쳐지지 않는것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가 지켜지는 모습을 보여야 "불의"를 보고 가슴이 뜨거울텐데.. 용기 내게 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부자되세요"란 덕담아닌 덕담을 하고, 쌍용차 폭력 진압이 방송되도.. 김진숙씨 일년여 크레인생활해도.. 안바뀌니까.., 정치 사회에 관심이 있을리 없죠. 그 눈엔 시위는 단순히 길막히게 하고 바꾸지도 못하면서 하는 부질 없는 짓 이니... 전 요즘 김어준이 참 좋은게 "쫄지마 씨바" 이거 .. 너무 멋진 말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에게 용기를 붇돋는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난번에 반값등록금 시위할때 너무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아 이제 얘들이 용기를 내는구나.. 그런데 안바뀌니까.. 황우여와 면담에서 소득이 전혀 없으니까.. 눈기리고 아웅이고.. 야당도 해주는게 없으니까... 사그러 들더라구요. 그래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는 선배들이 죽으면서, 자기 인생 바꿔가면서 만들어준 좋은 사회에서 .. 그렇게 공부했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현실에 대한 걱정이 많아, 용기를 못내는구나..
저는 등록금 투쟁하는거 보면서 뭔가 안타깝더라구요.. 직접 길거리에 나와 시위하고 참여하는거 다 훌륭한 행위지만 진정 그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입막음, 국민의 무관심, 정계의 안하무인 그 모두를 압도할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좀.. 순진했다고 봅니다. 운동 자체를 폄하하거나 그들의 노력을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정치는 말그대로 파워게임인데 단순히 기존의 방식대로의 시위만으론 힘든 게임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전태일처럼 분신이라도 하지않는한 학생 시위가 전 국민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실질적인 힘을 갖는건 힘들지 않나 싶네요.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집회와 같은 집단의 변화요구가 응축된 행동이 좀처럼 효과가 없는 것에 대한 체념도 한 몫을 했으리라 봅니다. 반면 이런 측면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5/18민주화 운동이나 6월 민주항쟁 때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사회 변화에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길거리에 나오지 못하는 학생이 용기없는 겁쟁이 소리를 들었을테지요. 하지만 지금은 학생이라면 응당 참여할만한 반값등록금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냉소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가령 저러고 있을 시간에 스펙이나 하나라도 더 쌓지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식의.
고르쥬님의 생각도 이해 갑니다. 아마 그런 비슷한 이유로 트윗이 세상 바꾼다는 고재열과 절대 못바꾼다는 허지웅이 엄청 싸운거겠죠. 그 소극적 행위도 전 겁이 나서 라고 생각을 해요. 이렇게 까지 했는데, 안바뀌면 어떻하지..라는.. 가카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권력은 다 자기들 위한 거니까.. 작게나마 조금씩 바뀌는거.. 보면.. 점차 용기낼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차 강해질 거라고 전 기대합니다. 전 sns가 세상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SNS는 젊은 세대들에겐 기성세대의 종이신문,라디오뉴스니까요..
저도 재열이형을 믿습니다.. 트윗이 세상을 바꾼다..
비단 이건 우리나라에 관해서 국한된 현상은 아닌거 같아요. 다른 나라들도 예전같이 정부에 대해서 시위를 한다든지 학생들이 진보적이지 않아지고 있죠.
그렇기도 하다고 보여집니다만 제 경험으로만 말씀드리자면요. 제가 지금 약 1년반 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면 말씀하신대로 시위를 한다든지 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집단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의식 자체가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진보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지나친 경쟁이나 부의 축적, 안정적인 삶의 추구보다는 상대적으로 나눔이나 도전정신 같은 것에 무게추를 두고 있다는 것이죠.
재미있는 글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30대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제 경험과 생각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네요. 이젠 세대차이를 좀 느끼나 봅니다 ㅠㅠ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의 어느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극자본주의의 성향을 띄게 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지만 작지 않은 사회 전체가 미쳐가는 느낌입니다. 지금처럼 젊은이들이 스펙에 신경쓰고 취업에 목을 매는 것이 시대상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그 시 대상이라는 것을 용납 못하겠습니다. '부'가 인간을 평가하고 잣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지는 사회가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것인데 이런 사회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천민자본주의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된 것도
천민자본주의와 맥을 함께한다고 할 수 있겠죠. 도덕성 따위보다는 당장 눈앞(부동산 거품)의 이득이요.
여성들이 명품에 집착하는 것도 천민자본주의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데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크게 한 번 일이 일어날 거 같습니다.
사람들의 인내가 슬슬 한계점을 향해 가는 거 같거든요.
심히 동감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 중의 하나가 가치의 우선순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고르라고 하면 아직도 우리 국민 중 대다수는 박정희를 뽑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노인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죠.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라고 얘기합니다. 이유를 물으면 그래도 그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지 않았냐는 이유지요.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대답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공이 온전히 박정희에게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는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탄압한 사람입니다.
고로 아무리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가정하더라도 박정희는 결코 훌륭한 대통령일 수 없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도덕, 생명, 민주주의, 사랑과 같은 가치는 결코 돈과 동일선상에 놓여질 수 없으며 놓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측면에서 말씀하신 극자본주의 성향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