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지난 토요일 가톨릭교수회에서 고성에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1박2일간 피정을 간다고 해서 집사람과 같이 갔다 왔다. 마누라가 남들은 어디 놀러 간다고 해 샀는데 바쁘다는 핑게로 생전 나들이가 없다는 불평도 좀 누그려뜨릴겸 큰 마음을 먹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실 내마음 같아서는 라켓트 하나만 달랑 들고 인근 테니스장으로 가서 공이나 실컷 쳤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피정에 대해서 특별히 마음이 끌렸다기 보다는 분주한 일상생활을 조금 벗어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싶어 총무가 물어왔을 때 마누라와 같이 간다고 신청을 했었던 것이었다.
같은 학교에 있는 가톨릭 교수회 조총무의 차를 얻어 타고 남해 고속도로와 마산에서 통영으로 빠지는 확 트인 길을 따라가다 국도로 빠져 꼬불꼬불한 시골 길을 한참 들어가니 수도원 안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부산지역의 다른 대학 교수들 몇 분이 먼저 와서 돌박 위에 걸터앉아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잘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도착하는 날은 기도와 강의 질의응답 그리고 저녁식사와 자유시간의 친교시간은 서로간의 대화를 통하여 신앙심을 깊게 하는데 또 주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게끔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수도원은 입구 도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아직 시작단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정갈하게 꾸며놓은 방갈로식의 건물에서의 1박은 숲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모습과 거룩한 독서로써 주님의 뜻에 따르려는 수사들의 생활을 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아침기도를 드리고자 할 때에 나 자신은 거기에 참석할까 말까 잠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월5일에 세례를 받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도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교리에도 밝지 않아 아침기도에 내가 끼인다면 어색하지 않을 까도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 와서 스케줄을 벗어나 혼자서 이리저리 서성거린다면 그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겠다 싶어 같이 참석하기로 하였다.
아침기도를 마치고 식사 시간에 먹는 먹거리는 몇가지 되지 않는 반찬이었지만 정말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식사후 설거지도 교수들중에서 서너명의 지원자들이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나도 주방에 들어가서 하고 싶었지만 먼저 들어간 사람들에게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식사후 오솔길로 난 산책로를 따라 조총무와 집사람 나 셋이서 풀밭 사이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숙소 바로 뒤편에 지극히 순수한 모습으로 성모님 상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 십자가의 길이라 하여 자연석을 여기 저기 세워놓은 14처가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사건을 의미한다고 집사람이 귀띔한다.
숲속이라 하지만 아직도 가꾸지 않은 땅들이 여기 저기 버려져 있고 나무들도 제대로 가꾸어져 있지 않아 제대로 되려면 아직도 손이 많이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회지의 세멘트 포장 길 대신에 흙을 밟으면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쿳션처럼 폭신폭신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고 붉은 황토빛에다 온갖 잡초들이 새 순을 땅속에서 내밀고 있는 모습이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풋풋하고 싱싱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발밑에는 풀이파리에 걸쳐놓은 하얀 거미줄에 아침 이슬이 영롱한 구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어제 저녁 때의 '렉시오디비나'(거룩한 독서)에서도 나왔듯이 모든 분쟁의 근원은 듣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라 지적했듯이 개인간의 문제나 사회단체 그리고 국가간에도 서로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결국은 투쟁으로 치닫게 된다고 요나 수사가 강조하던 생각이 났다.
또 거룩한 독서의 한가지 방법으로 한 구절 한 구절 연상법으로 6하원칙에 의해 분석하여 성경을 공부하면 종이 위의 글자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미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독서를 할 때는 대충대충 읽는 경우도 있고 정독을 할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사안에 따라 다르다.
한참 숲속으로 걸어들어가니 현대식으로 지은 수녀원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길가에는 붓꽃이 보라빛으로 활짝 피어 있고 군데군데 심어놓은 조팝나무가 온통 하얀 싸래기 꽃으로 둘러쓰고 있었다. 그 외 꽃들도 길가에 심겨져 있었고 엉겅퀴를 비롯하여 이름 모를 꽃들도 앞다투어 피어 있었다. 산딸기는 아직 때가 이른지 나무에 열매를 맺어내고 있었다. 길가에는 쑥들이 통통하게 피어올라 있는 것을 보니 이곳 흙이 예사로 기름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땅은 본래 제7일 안식일교회에서 구입했다가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려고 했는데 지난번 셀마태풍에 포도밭이 피해를 입자 포도 농사짓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라 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이곳에 수녀로 들어와 있는 어떤 분의 오빠가 그 땅을 수도원에 기증했다는 소문이다. 그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산중턱에 넓게 자리잡은 이 땅은 저 멀리 고성벌판을 내려다 보며 서울에서 통영으로 내리달리는 고속도로를 만든다고 분주히 햄머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녀원에는 여자분들만 숙소를 정했기 때문에 남자들인 우리는 그곳에 얼신도 못하는 줄로만 알았다. 미사는 10시부터 수녀원 2층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고백성사를 보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성당건물은 지언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아주 깨끗하게 보였고 맞은 벽 위에는 십자가 고상이 걸려 있었고 그 위에 큰 유리창이 붙어 있는데 그 유리창을 통해서 오월의 푸르름이 메꾸어 주고 있었다.
미사는 글레고리오 성가로 미사를 집전하는데 성당 안에는 우리 교수회 뿐만 아니라 고성분도회 회원과 멀리 서울에서 수녀 몇 분들이 견학왔다고 의자가 꽉 찰 정도로 상당 안을 사람들이 메우고 있었다. 미사는 중앙 성단을 좌우로 하얀 옷을 입은 수사들과 수녀들이 서고 줄곧 노래로 찬미하고 기도 하였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앞에서 기념찰영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오는 길에 옥천사에 들렀다가 휴일이라 차가 밀릴 것을 우려하여 일찍 출발하였으나 장유에 오니 예상했던대로 길바닥에 차가 주차장처럼 꽉 들어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