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유년의 기억*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
다시 여객선을 타고 쪽빛 남해 바닷길을 3시간여를 가면
한동안 충무라 불리웠던 도시
내 고향 통영이 있었다
지금은 사통팔달 쭉쭉빵빵 신작로에 삐까삐까한 자가용이 대수지만
당시 육로로 마땅한 길이 따로이 없었던 그때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여객선은
부산에서 거제 성포와 충무를 경유해 전남 여수까지 가는 철선인 금성호 원양호 와
밤배인 목선 금양호등 있었다
“뿌 ~ ~ 웅" "뿌~ ~ 웅"
남도 특유에 짠물 섞인 경상도 사투리가 뱃머리에서 멀어져 가면
하얀 포말을 길게 만들어 내며 파도를 가르며 나가는 객선 이층갑판에 올라
선장실이며 이층 객실등
일상적이지 않은 낮선 볼거리들의 이곳저곳을 기웃기웃하기도 하고
비릿한 갯내음이 실린 바닷바람을 맞으며 낮선 이들과 어울려
같은 항로에 뱃길을 교차하면서
뱃고동을 울리며 지나는 여객선을 향하여 손을 흔드는 일은
아주 특별한 놀이 같은 것 이었으며
지금의 충무김밥과 다소 다른 원조격인 충무김밥 레시피
알맞게 말린 꼴뚜기와 홍합을
맛깔스럽게 조리해 대나무 꼬치에 순서대로 끼고
무를 어슷 하게 썰어서 적당히 익힌 삐딱 무김치와 어울린 충무김밥을 먹는 것은
그림처럼 펼쳐지며 물위에 떠있는 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만큼이나
신나는 일 이었다
또, 배에서 내려
초등학생의 걸음걸이로서는 꽤 먼 거리였을 할머니 집 가는 길은
제법 경사가 있는 신작로를 한동안 걸어올라
고갯마루 큰길가에서 꼬불 꼬불 난 주택가 골목길을 들어 돌아가서
길 한 모뚱이 안쪽으로 네 개의 기둥을 세위 지붕이 얹고
세 살배기 아이의 키 높이 정도의 둥근 구조물이 둘러쳐진
세월을 알 수없는 두레박 우물을 지나고서도 더 올라
좁은 언덕길이 끝날 무렵에 있는 수 백년 포구나무 아래를 지나서야 있었다
그렇게 거의 두 식경 이상의 만만찮은 먼 길을 걸리어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나무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언제나 그러하듯“은호 왔나”“욕봤제”시며 **은호** 원효의 우리할매 발음
정지에서 하루 길을 온 손자를 위해 미리 저녁을 만드시던 손길로
짧은 대청마루에 나를 앉히시며 시원한 물그릇을 내어오시던
유난하게 백발이 성성하시던 할머니^^
때가 되면
소금을 살짝 뿌리고 연탄불에 알맞게 구운
대가리에 깨가 서말인 밥도둑 뽈라구와
배추에 무를 적당이 섞어 익힌 김치만 있어도
사기 밥그릇에 소복하게 높이 높이 쌓아 올린
머슴밥을 후다닥 비워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고
식후에 내어 오신 쌀뜨물 누릉지 숭늉은
요즘. 일상으로 먹는 커피하고는 비교도 안 되었다
또
마땅치 않은 주전부리 대신에
간식으로 보리와 콩등 오곡을 볶아 가루를 내어 찬물에 타서
무시로 주시던 보리 미숫가루와
고구마를 어슷하게 썰어 말린 것에 유월 콩을 넣어 만들어주셨던
내가 유난히도 좋아했던 뺏때기 죽은
할머니표 이후에는 내가 먹어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의 정이 담겨있는 먹거리는 먹고서는
이웃에 있던 사촌들과 동네 또래 말썽꾼들하고 어울려
하루해가 끝나 가는 줄도 모르고
동양의 나폴리라 불렸던 해변 길과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해저터널이며
하늘만큼이나 높았던 뒷산을 헤집고 다니던 일하고
얼굴이 새까맣케 타는 줄도 모르고 들이며 바닷가를 정신없이 쏘다니다
더우면 할딱 벗고 아무데나 풍덩 뛰어들면 해수욕장^^
어깨와 등판은 빨갛게 익어 허물이 벗겨지고 벗겨지고 또 벗겨지고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가 해질녁이 다되어서야 집에 들곤 했었다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디 그것뿐이랴
지붕 처마 밑에 가지런하게 매달려 있던 대나무 낚시대의 유혹은
할머니 댁에 머물기 시작한 다음날 부터시작 되었고
그땐 잘 모르긴 했지만
물때와 바람이 낚시 여건에 맞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렸다
드디어 D - 데이가 되어
위로부터 명령은 하달되고
물 빠진 낮 시간을 이용해 일을 나가신 삼촌들을 대신하여 미끼가 되는 돌 갯지렁이를
코피 터지는지도 모르고 갯물가 석축 아래에서 파고 나면
서열대로 큰삼촌 작은삼촌 순서대로 길고 잘생긴 대나무 낚시대가 지급되고 남은
제일 짧고 못생긴 대나무 낚시대를 배당받아
밤 갯바위에 올라서서
오늘을 위하여 시간 날때마다 틈틈이 익혀놓은 서툰 솜씨로 묶은 낚시에
미끼만 끼어 던져 넣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꽉 꽉” 물어줄 것 같은 놈들은 어디서 무었을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천근같은 눈까풀만 비벼 올리다가 지쳐
진작 고기가 물때가 되면 늘치가 되어 잠에 떨어져 ‘꼴까닥’
갯바위 모퉁이에 웅크리고 한참을 자고 깨어보면
대바구니에 감성돔은 한바구니 가득 채워져 있었고
물때는 이미 지나있었다
왜?? 고기 물때 깨우지 않았냐구? 하는 되지도 않는 앙탈에
그냥 빙그레 웃으시던 삼촌들^^
잠자느라 고기는 못 낚아도
삼촌들이 낚아놓은 한 바구니나 되는 고기망태를 둘러메고 낑낑대며 저만치 앞장서 가서
제일먼저 집에 들어 자랑처럼 펼쳐 놓으면
한 바구니나 되는 고기를 보시고
“피는 못 속여” 하시면서 얼굴 가득 환한 웃음 지어보이시던 할머니^^
지금은
정겨웠던 할머니 고향집은 퇴락한지 오래 이고
서울 친구들에게 떠벌렸던
그림 같은 나폴리 해안 길과 연이어져 있는 해저터널 위로는 콘크리트 다리도 모자라서
그 옆에 새로이 쇠다리가 길게 놓여 졌고
미끼를 파던 갯물가는
내 유년의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축을 하여 여의도 만큼이나 넓은 육지가 되어
대규모아파트가 들어섰으며
뒷산 숲속 산허리에는 4차선대로가 지나고
풍덩!! 자맥질을 하던 바닷가는 고기 한 마리 살지 않는
속된말로 똥물이 되었다^^
모든 것이 날이 가면 변하는것이 세상이 이치라서
부박한 세월을 탓하고 따질 일은 아니나
마음한구석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은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소소한 일상조차 유난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 되는 것은
코발트 빛 통영 바다의 아름다움과 어울린 유년의 때 뭍지 않은 동심 탓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리운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철없던 어린 시절
그때. 그곳. 그 사람들이
몹시도 그립다
*** 산인지교 ***
첫댓글 여러분이 계셔서 행복했고!
여러분이 계셔서 즐거운 물 놀이!
덕 분에 잘 먹고예!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더운날씨에 수고하셔습니다.
선운님 건강 하이소 사랑합니다.
고향은 누구나 그리운곳 ㅡㅡ
오 ㅡㅡ옛날이여 ㅡㅡ허나 ㅡㅡ다시올수없는것 ㅡㅡ
선운님 덕분에 좋은곳에서 마음것 즐겨읍니다 다음이 또 기대하고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