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강의를 위해 노력하심에 감사합니다.
여기에 좀 더 전문 지식을 가미하면 좋을 듯 합니다.
남경은 동오 동진 송 제 량 진 6조의 수도였던 고도이고요 후에 남당 명 태평천국 중화민국 등이 수도로 삼았던 10도고도 입니다.
북송의 수도는 개봉, 남송의 수도는 임안(현재 항주)입니다. 요즘은 일반지식들이 높아서 '대충' 생각대로 이야기하면 지적받아요!!~~
광개토호태왕1개월 전
고구려영토는 장수태왕기준,산시성,산동성,하북성북경,동몽골,요서,만주,연해주,한성까지였다.호태왕때는 감숙성둔황지역까지였다.둔황지역의 고구려벽화가 있고.고구려초기때 산시성태원공격,동천태왕때 산시성중간 평양성수도세움.북위수도가 낙양인데,그때에 고구려국이 강대국인데 낙양좀 떨어진곳 산시성남부서 전투가 있었지,상식적으로 북위가 낙양수도서
북경지나 요서지나 만주로 왔다는거 조작이지.산동성에 백제국이 있었고,내몽골쪽에 연이 있었고,만주까지 원정 역사조작이지.산시성산동성서 고구려국 지도층유물이 나오고,고구려국천문관측지가 산시성산동성서 나온다.고구려국역사를 바로써야지.모본태왕,태조태왕때 고대조선영토,번조선영토를 수복하려고 했고,진조선수도왕검성이 산시성에 있으니,고구려초기에 산시성태원공격했다.요서갈석산은 낙양쪽갈석산이고,낙양동북쪽에 낙랑,현도,대방,요동군은 황하바로위로
태조태왕때 산시성서안평공격,산시성서남쪽인데,낙랑,현도,대방,요동군이 고구려영토가 됐다.미천태왕때는 낙양쪽 낙랑군 6000명을 포로로 잡아,산시성중간평양성으로 압송했다는기록.산시성중간이 평양성이니 지금문헌기록이 이해된다.만일 요양이 수도평양이면
태왕이 출전하는데 지금 갈석산낙랑군정벌한다치자,만주서 상당한거리고 임금출전하니 시일이 더 걸리고 군량미,군수물자수송도 해야하니 거리가 좀 멀고,또한 전투해
낙랑군포로를 만주로 이송하는것도 시일이 길다.하여 요양이 초기수도평양은 아니다.요서평주가 수도평양이라해도 좀 그렇지.낙랑군과 평주가 같은지역이고,포로로 잡았다기록하지,압송이라 기록안하지.하여 고구려초기수도평양성은 산시성중간이다.백제국이 요서산동백제인데 낙양북위와 전투해 낙양점령해 백제위례성쌓았다는기록.그러한 역사가 한국고대사이고 역사를 바로세워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