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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차는 인생
□ 본문 : 이사야 55장 1-3절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상징하는 올 해의 과일과 곡식과 채소로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2024년의 감사제목을 쓰시라고 종이를 나누어드렸는데, 어떤 감사제목을 쓰셨습니까? 자신은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감사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감사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마음이 공허한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설령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득 찬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물질도 건강도 지식도 재능도 감사합니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이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우리는 감사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화과 열매도, 포도 열매도, 감람 열매도 없습니다.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양도 없고 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합니다.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이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득 찬 사람은 아무 것 없어도 감사합니다.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공허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가득 찰 수 있습니까?
1절 말씀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1.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하라.
하나님으로 채움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 무엇으로도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다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목마름이 있는 것을 부족한 사람, 약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 심지어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목마르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목마름을 해결하려는 헛된 수고를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세상 양식으로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이번에는 다를 거야, 이 사람은 다를 거야, 하면서 여전히 헛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사는 여인이 그랬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여자에게는 이혼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남자가 이혼을 결정하면 여자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남자에게 무려 다섯 번이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배신당했으면 혼자 살면 될 텐데 여전히 남자를 구했습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면 자신의 목마름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의 마음을 채워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수고로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다시는 버림받지 않으려고 다시는 배신당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고 수고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섯 번이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헛된 수고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결혼도 하지 못하고 또 다른 남자와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여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여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만 다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으로, 어떤 사람은 성공으로, 어떤 사람은 명예와 권력으로, 어떤 사람은 육신의 쾌락으로, 어떤 사람은 그 무엇에 집착함으로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런 헛된 수고를 멈추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런 것으로는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나아오라
자신의 목마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예배의 자리에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기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사마리아 수가의 목마른 여인, 모두가 부정하다고 욕하고 멸시하던 그 여인을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것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의 목마른 인생을 채워주시기 위해 불러주셨습니다.
3. 예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시기 위해 보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던 수가의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예수님 그 분이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마음이 가득 찹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수가의 여인은 세상 물을 기르기 위해 가져왔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욕하고 멸시하던 사람들을 향해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구세주를 만났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가득 찬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마른 인생을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시는 분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목마름이 해결되는데,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막힌 담을 무너뜨리셨습니다.(엡2:14)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찹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 어느 중년 남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더니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정말이냐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러니 당신도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것을 어떻게 공짜로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닙니다.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요? 시편 49편 7-9절 말씀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현대인의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그 몸값을 지불할 수 없으니 인간 생명의 값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을 지불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하지는 못하리라.”
생명의 값은 너무나 커서 그 어떤 것을 지불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값은 오직 생명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공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지불하셨기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과 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 먹어야 하면 돈을 내야 하는데 돈 없이, 값 없이 먹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 없이, 값 없이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가 목마른 인생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찹니다. 세상의 사랑으로는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우리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남편이 다섯 번이나 바뀌어도 채울 수 없습니다. 부모도 자녀도 채울 수 없습니다. 돈도 명예도 쾌락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 마음을 채워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면 포도주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면 젖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천국이 됩니다. 감사로 가득합니다. 내 마음이 감사로 가득하니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감사로 가득한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1903년에 조선 땅에 와서 서울과 경기도에서 전도활동을 했던 미네르바 구타펠이 기록한, 1906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조선 땅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감리교회 여성 외국인 선교사회가 세운 병원에 14살 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태어나서, 동생들을 먹일 양식을 받는 대가로 부모가 부잣집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종이 된 소녀는 굶주림과 추위와 고된 일, 그리고 주인의 무자비한 매질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두 손과 발 하나에 동상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이 소녀에게 더 이상 일을 시킬 수 없게 되자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이 소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나아서 다시 부려먹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8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은 동상에 걸린 두 손과 발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일 년 가까이 병원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옥분이었습니다.
성탄절 행사가 모두 끝나고 옥분이가 선교사님께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곧 본국으로 돌아가시나요?”
“그래. 일주일 후에.”
“크리스마스 장식과 우리 모두에게 선물을 보내주신 분들, 선교사님 친구 분들을 만나게 되나요?”
“그럼. 그들에게 무사히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면.”
옥분이는 잠시 머뭇거린 다음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옥분이가 감사하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선교사님은 그런 옥분이의 기특한 요구에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옥분아, 내 친구들은 너를 모르는데. 너를 뭐라고 소개할까?”
옥분이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 옥분이라고 전해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선교사는 놀랐습니다.
“안 돼, 옥분아. 그 말은 할 수 없어. 세상은 너무 크고 네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아니 적어도 내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
옥분이는 고개를 떨구었다가 이내 다시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말해 주세요. 그래요, 그게 더 좋아요. 우리나라에서 오늘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어요.”
선교사님은 옥분이의 꼭 다문 입과 진지한 얼굴을 보면서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옥분아, 네가 말한 걸 방금 생각해 봤는데. 그래,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더라고 친구들에게 말해 줄게. 단, 내 친구들을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나한테 말해주기만 한다면.”
옥분이가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그건 쉬어요. 이유가 여러 가지에요.”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좋아, 그럼 하나하나 대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동생들의 양식을 위해 종으로 팔린 옥분이, 굶주림과 추위와 주인의 매질과 고된 노동으로 결국은 두 손과 발에 동상이 걸려 절단한 14살 소녀 옥분이가 자신을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라고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옥분이는 무엇 때문에 조선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옥분이가 선교사님에게 자신이 조선에게 가장 행복한 소녀인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제 모든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에 저는 가장 행복해요. 여기 있는 몇 달 동안 매를 한 번도 안 맞았어요.”
“둘째 이곳에 온 후로 배고픈 적이 없어요.”
“셋째 의사 선생님이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계속 여기 있어도 된데요!”
“넷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았어요. 그렇게 예쁜 걸 본 적이 없거든요.”
선교사님이 옥분이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다 말했니?”
슬프지는 않지만 눈물이 글썽한 눈을 하고 옥분이가 대답합니다.
“아뇨, 선교사님. 하나가 더 있는데 이게 마지막이에요. 모르시겠어요? 짐작 못하시겠어요? 내가 예수님께 기도하면 손발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죄를 씻어주신다고 사람들이 말했잖아요. 두 손이 없고 발도 하나만 있는 나 옥분이도 예수님이 사랑하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기도했더니 그분이 정말 들어주셨어요. 내 죄를 다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걸 알아요. 그만하면 충분히 말할 수 있지 않나요? 선교사님, 그래요. 내가 조선에게 가장 행복한 소녀에요. ‘감사해요’라고 대신 말해 주세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데 감사가 없습니까? 기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감사로 가득합니다. 14살 어린 소녀라 할지라도, 동상으로 두 손과 발을 잃어버렸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옥분이처럼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목마른 인생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내 안에 오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다 가져가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 여러분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 채워줍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이 하나만으로 여러분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합니다. 이 하나만으로 여러분은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저는 옥분이의 이 감사를, 이 행복을 압니다. 저도 예수님을 만나고 이 감사와 이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옥분이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감사로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는 대부분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옥분이처럼 감사로 가득합니까? 옥분이처럼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무엇을 더 이루어야합니까? 얼마만큼 가져야 합니까? 아닙니다.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더 이루고,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고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삽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 집니다.
육신의 목마름은 먹고 마시면 해결되지만, 영혼의 목마름은 그런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 누려도, 아무리 높아지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것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우리의 영혼이 곤고한 것은, 우리에게 감사가 없고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은 육신의 양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8:11-13)
아모스의 말씀이 꼭 우리 시대의 말씀 같습니다. 육적으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아니 육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을 찾고 찾다가 결국은 목말라 쓰러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말씀의 기근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성경이 우리 손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말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말씀을 듣고 있는데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5-57)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영혼이 가득 찹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기우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날마다 충만합니다. 날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행복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이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이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십시다. 순종합시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삽니다. 감사로, 영원한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는 인생을 삽니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