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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죽기 전에 이미 죽으셨던 예수님!
이토록 어렵고 총체적 난국인 시기, 힘겹게 하루하루를 지탱해나가고 있는 분들,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서 빨리 이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날, 꿈결 같은 봄날을 맞이하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이 매서운 한파가 지나가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넉넉한 순간이 오기를, 어서 빨리 이 무덤 속처럼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 환한 광명의 땅으로 들어서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기도합니다.
간절히 꿈꾼다면, 끝까지 희망한다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끝까지 유지한다면, 많은 경우 꿈은 현실화됩니다. 춥다고, 힘들다고,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혹독한 추위가 지나가고 화창한 봄볕이 온통 우리 인생의 창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을 미리 그려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은 수난과 처절한 십자가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메시아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히신 예수님께서는 마무리 말씀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머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보다 적극적인 예수님 추종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 우리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꺼이 내 등에 져야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우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절대로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과도한 소유욕, 독점욕, 자리나 사람에 대한 지나친 욕심...
반대로 기꺼이 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입니다.
희생, 용서, 화해, 오해, 고독, 이웃의 짐, 남들이 싫어하는 굳은 일들...
이왕이면 져야 할 십자가라면 기꺼이, 관대하게 지고 갈 때 생기는 한 가지 특별한 현상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십자가가 십자가가 아니라 기쁨이요 은총이요 축복으로 변화되는 느낌입니다.
십자가를 운명이자 숙명으로 받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어쩌면 죽기 전에 이미 죽으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시며 담대하고 용기있게 돌아가실 준비 작업을 마치신 것입니다.
이런 사전 작업이 잘 마무리되었던 관계로 예수님께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수난과 죽음의 고통 앞에서도 당당하고 담대하셨습니다. 협박과 매질과 끔직한 십자가 형벌 앞에서도 태연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세사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순교는 십자가의 크기가 아닌 꾸준함에 있다
하퍼 리(Harper Lee)는 젊은 나이에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라는 위대한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은 1960년에 출판되어, 그해 퓰리처상을 받으며 문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약 50년 동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퍼 리가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그녀 자신이 그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부담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퍼 리는 그녀의 출판사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앵무새 죽이기’로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거릿 미첼(Sherman Mitchell)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라는 역사적인 소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 책은 1936년에 발표되어,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첼의 첫 번째 소설은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녀는 문학계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도 역시 그 이후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완벽주의는 열등감에서 옵니다. 더는 좌절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최고의 위치에서 또 다른 책을 썼다가 평이 좋지 않고 팔리지 않으면 자기 위치를 잃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 자존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반드시” 고난을 겪고 죽은 후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단지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함께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저도 사제가 되라는 주님의 뜻이 있었지만, 따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결혼 안 하고 산다는 게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자매와 산 정자에 앉았을 때 오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 말씀으로 십자가가 나에게 불가능한 무엇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무엇으로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바로 “매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평생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힘들지만, 하루하루로 생각하면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여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이 느끼는 신혼부부라도 어떤 한 사람이 여행 가서 일주일 떨어져 있는다고 상사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순교 또한 내가 얼마나 큰 크기의 십자가를 지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오늘 하루만 버틸 수 있느냐로 다다를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고문과 박해를 생각하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산입니다. 그러나 한 발짝씩 올라간다면 언젠가는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명작을 낸 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후속작을 쓴 대표적인 작가로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등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로 1939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써 나갔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영감을 받았다기보다는 매일 글쓰는 습관과 끈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타인벡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글쓰기는 ‘영감’이 떠오를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과 일관성에서 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 중 하나는 “영감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쓸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라고 했습니다. ‘분노의 포도’는 1939년 작품이고 ‘에덴의 동쪽’은 1952년 작품입니다. 이 밖에도 그의 작품은 10권이 넘습니다.
장사와 요리의 한국 대표적 전문가인 백종원 대표도 많은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빽다방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10개 중 1개만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자세입니다.
인도에 아내의 죽음 때문에 평생 산을 깨서 길을 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이 영화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사순을 시작하는 지금 그분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술과 담배를 끊겠어?’,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단것을 먹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나 오늘 하루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안 되면 한 시간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광야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사셨을 것이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40일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의 희망으로 합니다. 그런데 하루만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나면 부활의 기쁨이 마지막 때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십자가에도 부활의 기쁨이 벌써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책을 한 줄 썼을 때 이미 완성된 명작의 희망이 주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그다음 날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평생 지어야 할 십자가는 잠시만 보고 오늘 당장 지어야 할 십자가만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9,22-25: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어떤 길인지,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 당신을 닮는 것만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 안에 있을 때만이 진정으로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만 자유롭다. 이 행복과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닮는다. 하느님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모습은 매일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짐으로써 이룰 수 있다.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주님을 닮아가면서 이룰 수 있다.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가장 큰 십자가이며, 이 십자가는 다른 누구도 대신 져줄 수가 없는 나만이 지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십자가도 꼭 나만이 질 수 있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 생명을 우리가 마음대로 취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과 능력을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명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입으로만 주님을 부르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멀리 있다면 주님으로부터 우리도 외면을 당할 것이다. 주님께서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마 우리가 그분을 외면하여 바라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사순시기가 이제 진정으로 우리에게 은총의 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영광의 부활에 우리도 기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은 필수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원한다면 그물이나 낚싯대로 잡아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해야 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고되고 힘들기만 할까요? 그 과정에서 얻는 행복의 크기는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두고 강의 잘하는 신부라고, 강론 잘하는 신부라고 치켜세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이라는 생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묵상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되고, 매일 책을 읽고 또 매일 글을 쓰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행복합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저 자신을 보면서,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험도 행복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원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저절로 되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노력 역시 행복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는데, 3년 묵힌 쑥을 먹으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3년 묵힌 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찾은 시간이 7년 뒤였습니다. 애초에 쑥을 묵혀놨다면 3년이면 원하는 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없이 목적하는 바만 쫓다 보니 7년을 소비한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쫓는 우리가 아닌 지혜로움을 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당연하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노력에 고통과 시련도 분명히 따라옵니다. 이를 무조건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과정 역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지요.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고통과 시련이라는 과정을 겪으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사흘만에 되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이 따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모습이 참으로 지혜로운 신앙인이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영원한 생명이 확실히 보장되는 길입니다.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헤르만 헤세).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해야하는
이유는
그 길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네.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신명 11,26)>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30,15-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