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보물을 찾기
1열왕 3,5-12; 로마 8,28-30; 마태 13,44-52 / 연중 제17주일; 2026.7.26.
1. 오늘은 연중 제17주일로서 7월의 마지막 주일이기 때문에, 7월 전례에서 들려온 하느님 말씀의 흐름을 주일 중심으로 간추려 보겠습니다. 이 달의 가장 큰 전례는 7월 5일에 지낸 김대건 사제 순교자 기념일이었습니다. 내용상으로 대축일급이었던 이 날의 전례를 모처럼 주일에 지내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 최초의 사목자로서 활약했던 사제 최양업 토마스까지 포함해서, 사실상 공동의 수선탁덕인 이 두 사제가 한국천주교회에 미친 어마어마한 영적인 영향력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이 '순교'라는 주제를 떼어 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했음을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피 어린 역사와 각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가톨릭 성가집 287번, 김대건 안드레야 사제 순교자 성가의 가사를 음미해 보았던 것도 그래서 였습니다. 특히 이 성가의 5절 가사는 김대건과 최양업 사제를 포함하여 박해시대 모든 순교자들이 우리 후손 천주교 신자들에게 남겨진 과업과 소명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가신 님 자국자국 남긴 피 뒤를 따라 싸우며 끊임없이 이기며 가오리니 김대건 수선탁덕 양떼를 돌보소서 거룩한 주의 나라 이 땅에 펴주소서.”
2. 우리가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비롯한 순교 성인들의 뒤를 따라 ‘거룩한 주의 나라'를 이 땅에 펴자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박해시대는 아니지만, 순교자들처럼 목숨을 바칠 각오로 우상숭배의 풍조와 싸워야 하고 또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것이 순교정신이요, 우리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순교 성인들을 우리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공경하는 절박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아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지 못했으며, 우리 교회가 올리는 경신례는 세상 사람들의 정의감을 일깨울 만큼은 거룩하지도 또 사회적이지도 못한 듯합니다. 이는 경신례를 올리는 신자들의 마음 밭이 복음의 씨앗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을 만한 좋은 땅이 되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고, 그리하여 우상과의 싸움에서 부딪치며 정화되고 성숙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무릇 토양이 비옥해지자면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듯이, 우리 신자들의 마음 밭이 비옥해지자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 주일에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법이 없고 열매를 맺게 하고야 말듯이, 예언자들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도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고야 맙니다. 그 열매는 영원에로 열린 생명입니다. 영과 혼이 결합되고, 혼과 마음이 소통하며, 마음이 몸과 소통하는 온전한 생명입니다.
3. 세 번째 주일 복음의 메시지는 밀밭에 돋아난 가라지들을 처리하는 지혜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즉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들이 밀밭에 자라난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며, 가라지들을 뽑겠다고 함부로 덤비다가 밀을 다치게 해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저 밀이 잘 자라도록 집중하다 보면 수확 때가 될 때 비로소 밀과 가라지가 확연히 구분될 것이므로, 가라지는 베어서 땔감으로 활용하고, 밀은 베어서 곡식으로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라지는 밀을 위한 존재로서, 악이 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고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치에 따라 당신께서 부르신 제자들을 사도로 양성하는 일에 영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담긴 가르침은 사도직 영성을 위한 내공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우리네 마음밭에서 밀을 수확하는 사도직의 공로와 보람으로 남습니다. 이 내공과 공로와 보람이 씨앗이 되어 그 다음에 이룩할 사도직 활동에서 더 크고 더 많은 선의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서른 배나 예순 배 심지어 백 배나 되는 풍성한 열매가 맺히리라던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제 이 내공으로부터 순교 정신이 열매를 맺어야 할 결정적 열매인 영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이 영성이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묻혀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캐려는 비범한 노력이자 사색을 말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시는 비유를 가르치셨는데, 하늘 나라가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같다는 비유가 그것입니다. 농부가 밭을 가느라 수고하고 땀도 흘리게 되지만 그 대가로 알차게 영근 곡식을 얻는 일도 보람찬 일이기는 해도, 그 과정에서 밭에 묻혀 있던 보물까지 얻게 된다면 이는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그런데 비유에 나오는 농부는 보물을 발견한 다음에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농부는 그 밭의 주인이 아니라 소작인이었던 모양이고 따라서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했다면 그 보물의 소유권은 그 소작 농부가 아니라 원주인에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숨겨 두었다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주인 모르게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려고 했던 것이겠지요. 그러니 농사짓는 수고로 얻은 수확물보다 몇 배 더 값비싼 그 보물이 그 농부의 기쁨이 되었을 터입니다. 숨겨지고 감추어졌던 것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공을 들여야 하고 지혜도 필요한 법입니다.
4.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서 제13장에다 예수님의 비유들을 총망라한 장을 꾸미면서, 이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의 비유 이야기 속에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에 숨겨진 교훈을 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즉, 공생활 내내 그리고 마지막 수난의 십자가를 통해 참으로 고생스러우셨던 예수님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로 오늘의 비유를 삽입해 넣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이해 받지 못하고 중상모략을 당하면서도 줄기차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느님께서 보물처럼 주시던 기쁨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던 농부의 심정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생을 모조리 투자하여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이 일을 계승할 제자들을 불러 모아 사도로 양성하시는 데에 집중하셨습니다. 이 선포 활동과 양성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한 비결이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기쁨이었으리라고 본 것입니다. 이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차지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마치 소작인 농부가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듯이 당신의 목숨을 바쳐 이 기쁨을 제자들이 계승하도록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생활이나 활동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밭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밭의 소작을 맡은 농부로서 그저 주어진 작업만을 하고 소작료를 받아 가거나 수확물을 걷어갈 수도 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로 볼 때는 누구나 자기 밭에서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야 물론 없지만, 하느님의 이치로 볼 때는 다릅니다. 누구나 일상의 생활이나 활동이라는 하느님의 밭에서 그분이 숨겨 놓으신 놀라운 섭리를 캐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비장물(秘藏物)로 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치로만 보면 보물을 발견할 확률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에 비길 만큼 그 희박한 확률이지만, 하느님의 이치를 믿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100%의 확실한 확률로 보물을 캐낼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고 그 시간을 감내할 인내와 그 노력을 기울일 정성이 따라야 하지요. 그래서 필요한 것은 그분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요 그분이 이미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가능성들을 안배해 놓으셨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공생활을 해 나가셨던 것이고, 골고타 언덕에 오르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것이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 비범한 노력으로 하느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보물을 찾는 영성입니다. 순교는 박해의 결과였고, 백년에 걸친 박해는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고난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은 전국의 심산유곡에 흩어진 교우촌에서 천주교 교리에 따라 기도를 바치는 평범한 신앙 생활로 이 박해를 끝내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관한 하느님의 섭리는 엄정한 법이어서 하느님을 믿는 무고한 백성을 죽인 죄과는 백년이 넘는 민족의 고난으로 이어졌습니다. 국권을 빼앗기고 일제의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해방 후에도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이 갈라져야 했고 또 갈라진 동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수백만의 인명이 죽거나 다쳤고 국토는 파괴되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전후에 다가온 가난과 독재 속에서 우리 민족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기어이 선진국 대열로 나라를 끌어 올렸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이제는 정보화까지 전 세계에서 10위권에 들어가는 나라로 국격을 상승시킨 것입니다. 이 민족 고난을 승화시킨 주역은 자녀와 손주 세대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 주겠다던 평범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비범한 노력을 기울인 평범한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우리의 조부모와 노인 세대입니다. 우리는 이 분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또 다른 백년에 복음이 펼쳐질 주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의 기념일인 오늘에 맞이하는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아 교황 레오 14세가 권고한 기도를 알려 드립니다.
제6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이를 굽어살피시니 제가 나이 들어도 저를 굽어 살피소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이름을 드러내시고 제가 나약해도 실망하지 않으셨나이다.
아버지께서는 자애로운 손으로 저를 품어 안으시고 주름진 저를 어루만져 주시나이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잊지 않으시나이다(이사 49,15 참조).
제가 저의 나약함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저의 나약함을 사랑하신 것처럼 저 또한 그 나약함을 사랑하게 하소서.
저의 나약함에 귀 기울이신 것처럼 저 또한 그 나약함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온갖 권능을 지니시고도 스스로 비천함을 입으시고 저의 나약함을 선택하신 것처럼
저 또한 그 나약함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나이 들수록 저희가 모든 교만과 분열에서 벗어나
아버지 안에서 하나 되어 이 시간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버지께서는 결코 저희를 잊지 않으시리이다(이사 49,15 참조).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