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누가복음1:30-33
2023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축하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성탄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잘 아는 복음성가가운데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 잡아 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2. 예수 찬양하기 원하네/ 예수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오 예수 날 위해 고통당하신/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3. 예수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해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이 노래는 예수님을 가장 귀한 그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장 귀한 그 이름으로 소개하는 이유로는
-먼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어서 나의 손을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처음과 나중 되시고 날 위해 고통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왕의 왕이 되시어 끝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가사 외에도 예수님이 가장 귀한 그 이름이 되시는 이유는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정말 귀한 이름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는 연인의 이름이 가장 귀한 이름이 될 것이고요
부모님들에게는 사랑하는 자식과 손주의 이름이 귀한 이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빛내고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귀한 이름이 있습니다.
나를 죽음에서 구원해준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귀한 이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세종이나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귀하다고 하면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가 귀한 이름이 될 것이고
미국에서는 워싱턴이나 링컨이 귀한 이름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귀한 이름들 중에서도 예수를 가장 귀한 이름이라고 노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탄절은 예수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날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인데요,
여러분, 성탄절만큼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탄절이 가까워오자 교회와 성당은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음식점 까페 등
성탄장식을 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성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전 세계 어느 나라 인종과 국적을
막론하고 이 날을 기억하고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천년동안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대대로 기억되고 지켜지고 기념되는 절기가 성탄절 말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의 유명한 사람들을 우리가 많이 기억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역적으로 종교적으로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생일이 기억될지 모르지만
전 세계를 막론하고 기억되는 생일은 예수님의 생일,
성탄절이 유일하지 않는가? 생각되어집니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공자나 석가나 소크라테스를
800자에서 1000자 정도에서 소개하고 있고
줄리어스 시이저나 알렉산더 같은 영걸은 500자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기록은 2만자가 된다고 하는데요,
이것만 보아도 예수 이름이 얼마나 귀한 이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가장 귀한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이 가장 귀한 이름이 되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먼저는, 큰 자가 되고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32절 앞부분에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했습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같은 분들을 생각할 때 그들의 고매한 인격과 업적을 보고 위대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위대함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위대성을 논할 때 ‘주 앞에 위대한 자’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 본질 자체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이 하신 크신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먼저는, 당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나병을 고치시고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시고,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십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호수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을 때
바다와 바람을 향하여 꾸짖어 바다와 바람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세 번째로, 가다라 지방에 가셔서 귀신 들려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광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고쳐주십니다.
주님은 영적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세력도 물리치시는 영적인 세계의 지배자가 되십니다.
또한 광풍도 잠잠케 하시는 자연을 다스리시는 자연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질병을 치유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지만 그 근본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이 세상 그 어떤 이름보다 크고 위대한 이름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32절 하 반절에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은 만왕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설명할 때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하는데요,
성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 선지자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물론 정치적인 왕이 아니셨기에 사람들이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그들을 피하여 도망가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왕위는 영적인 왕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자신의 왕 되심을 선포하신 후 내 나라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8:36,37절)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시오 사랑과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왕이고 사랑과 평강의 왕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왕으로 받아들이고 다스림을 받을 때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나라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한 가정을 누가 다스리느냐에 따라 가정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면 우리는 시기하고 미워하고
불평하고 화를 내고 그래서 마음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와 사랑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허물과 실수와 연약함과 죄 짐을 담당해주시는 사랑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33절에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바벨론에 끌려가 그곳에서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 네 왕 밑에서 총리직을 지냈습니다.
그는 변천하는 국제 정세 가운데서 한 거대한 신상을 이상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그 신상은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웠습니다.
그 신상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고 누구도 그 신상을 무너트리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한 ‘뜨인 돌’이 나타나 거대한 신상을 다 부숴버렸습니다.
여기에서 거대한 신상은 세상 나라를 의미하고, 한 뜨인 돌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세상 나라는 거대한 신상과 같이 크고 광채가 나고 두렵게 보이나 결국에는 산산이 부셔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는 결코 폐하지 아니하며 그 권세는 영원한 줄 믿습니다.(단 2:44,7:13,14절)
한때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가진 대영제국으로 해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 나라는 해가 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미국도 그 영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는 흥하고 망하고, 망하고 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특징은 영원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시민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절)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골 1:13절)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에 연연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세상나라에서도 잘살고 행복해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소망가운데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말씀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름입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왕으로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왕위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예수님의 이름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똑같은 귀한 이름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 이름이 가장 귀한 이름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이름이 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성탄절에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나시고 말구유에 뉘여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사람들로 여관이 다 찼다고 해도 어떻게 만삭되어 곧 출산해야 할 임산부에게 방 하나를 내어줄 수 없겠습니까?
아기 예수님은 가장 귀한 사람은커녕 가장 부족한 존재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영접 받지 못하였고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내 삶에서 멀리 떨어진 마구간 한 구석에 밀어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돈과 재미, 낭만과 쾌락, 물질과 명예를 사랑하여 그것을 내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두면서 그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가 임종을 앞두고 병상에 누웠을 때,
아들이 서류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님, 아무리 힘드셔도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서류에 사인을 하셔야 합니다."
부스는 서류를 훑어보고 난 후 가까스로 손에 펜을 쥐고 사인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봉투를 스스로 봉합한 뒤에 돌려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자손들이 그 서류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서류의 마지막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다”
그가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어 했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의 모든 소유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서명을 통해서 그가 드러내고 증거하고 싶어 했던 가장 귀한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장 귀한 이름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돈과 명예와 쾌락과 재미가 가장 귀한 이름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 이름을 가장 귀하에 여기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행복하고, 그 이름을 붙들고 영원 속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가장 귀한 그 이름입니다.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