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3
[K 생각] ㅡ 엉터리 여론조사
CBS노컷뉴스·알앤써치 여론조사(24~26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전주보다 3.2%포인트 오른 [44.7%]로 나타났다. 무선전화 자동응답(ARS) 조사로, 응답률은 [1.7%]였다. (중앙일보)
통계 없는 확률은 없다. 즉, 통합적 계산을 통해서 확률값을 정하는 거다.
그런데, 응답률 1.7% 여론조사란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거꾸로 뒤집으면 [98.3%]가 무응답이라는 것인데, 이걸 '여론'이라고, '의미있는 여론조사'라고 믿을 수 있나?
또한, 반드시 [선행 여론조사]가 있어야 한다.
즉, 우리나라 보수층이 몇 퍼센트이고, 보수층이 몇 퍼센트이고, 진보층이 몇 퍼센트이고, 무관심층이 몇 퍼센트인 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보수과표집 혹은 진보과표집을 피해서 여론조사를 해야지, "이번 조사는 튀었다"는 말 한 마디로 퉁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모닝컨설트 여론조사에선 "튀었다"는 말도 전혀 나오지 않고, 일정한 조사율을 유지하지 않던가.
왜 우리나라 여론조사만 '미친년 널뛰기'처렁 들쭉날쭉하나?
아무튼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최근 [왜곡]과 [조작]으로 점철하고 있다고 본다.
2. 2023
[피장파장의 오류와 잘못된 유비추리]
1. 유사한 사건, 유사한 대상들은 유사한 특징, 속성을 공유할 것이라고 추리할 때 유비추리라고 한다.
2. 그런데, 비교 대상의 속성이 본질적인가, 중요한가, 상관관계가 있는가, 라고 했을 때, 그렇지 않고 우연적 속성으로 비교될 때는 논리적으로 오류가 된다.
3. 가령, "지구와 화성은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 따라서 지구에 물이 있으니 화성에도 물이 있을 수 있다."와 같은 유추(유비추리)는 가능하다.
ㅡ> 추리하는 의미가 있다.
4. 그러나, “시계가 빨리 간다고 해서 좋은 시계는 아니다. 따라서 남보다 부지런히 산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은 잘못된 유비추리다. 사람과 기계는 비교 대상으로 삼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ㅡ> 추리하는 의미가 없다.
5. 또한, “개인의 국가와의 관계는, 유기체에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와 같다.”도 잘못된 유비추리다.
→ 유기체의 부분은 전체에서 분리되면 살 수 없지만, 개인은 국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로빈슨 크루소의 경우)
ㅡ> 개인은 국가에 저항하여 국가의 성격 자체를 바꿀 수도 있지만, 유기체에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6. 피장파장의 오류
'피장파장의 오류'는 '잘못된 유비추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나쁜 사례다.
내 잘못을 다른 사람의 잘못과 퉁치자는 아주 비열한 논리다.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내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들의 한국 강제징용공 배상에서도, 제3자변제안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즉, 제3자가 변제해줘도 배상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3. 2022
[오늘의 명언]
세계는, 당신 이전의 세계와, 당신 이후의 세계 둘 뿐이다.
당신 이후의 세계는, 당신이 만들어가야만 하는 세계다.
[오늘의 명언 -2]
당신이 인간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개처럼 꼬리를 흔들어대며 살거나
돼지우리에 평생 갇혀 살아야 된다.
4. 2022
[K 생각] ㅡ 윤석열의 인사 오류
인간의 오류, 굥의 오류 ..!!
기계엔 '고장'이란 것이 있고
神에겐 '실수'란 것이 있으며
사람에겐 '오류'란 것이 있다
신(神, 설계자)이 이 세상을 만들고 또 인간을 만들었다면,
세상은 선(善,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차야 하는데,
오히려 왜 악함(惡)과 어긋난 불량품들로 넘쳐날까?
그것은 신이 악(惡)해서가 아니라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in-put 과 out-put 의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밖으로 표출되어 나오면서 뭔가 이상(異常)이 생긴 것이다.
그 이상(異常)을 신에게는 '실수'라 명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오류'라 이름하며, 기계나 사물에게는 '고장'이라 칭한다.
'고장난 기계'는 이미 '고철덩어리'에 불과해서 소용이나 쓸모가 없어지고,
사람의 경우엔, 판단에 있어서 오류를 반복하면, 사람구실을 못 한다고 여겨진다. 광신도나 치매환자나 편집증환자,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관들 인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굥의 반복되는 오류는 매우 심각하다.
교수라서 교육부장관 시키고, 의사라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데려다가 쓰려는 굥의 오류와 반복은 분명히 정상(正常)이 아니다.
참고로, 알콜중독의 치료는 정신병원이 담당하고 있다.
5. 2022
시대정신..!! (2)
부산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는, 일반 사람들은 변하는 것들을 눈으로 쫓지만,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고 말합니다.
경제학자들은 강수량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 원리를 찾으려 하고, 정치인들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강수량이 변화하는 이유와 원인을 찾아 변하지 않는 법칙과 원리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철학자들은 다시 그것이 인식론적으로도 타당한지를 따져 묻습니다.
가령, 인간들 사이에서 교환의 원리가 작동하면, 그 원리가 고정불변의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가를 따져 묻고, 다시 그 방법이 유일한지, 다른 방법은 또 없는지를 연구합니다.
즉, 과학자가 코끼리를 관찰해서 기술할 때, 인간 인식의 한계를 다시 지적하는 겁니다. 다시 또 등장하는 말, "부분의 합은 전체로 볼 수 있는가?"
과학이 절대적일 수 없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려고 할 때, 모든 가능한 경우들을 전부 실험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그럴듯한 경우들을 골라 선택해서 실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혈압 치료제를 연구하다가 발기부전 치료제인 '어쩌다 비아그라'가 발견되는 것이고, 이것이 또한 알츠하이머 치료에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새로운 연구가 시작되는 겁니다.
이 '어쩌다 과학'과 '어쩌면 과학'을 보다 튼튼한 토대 위에 변하지 않는 '과학의 과학'으로 세우려는 곳이 과학철학이라는 분야입니다.
시대는 분명히 변합니다. 빠르거나 늦거나 확실히 변합니다. 어느 시대건 예외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변한다는 것이 곧 변하지 않는 법칙입니다.
따라서 기득권에 안주해서 오래도록 누리려고만 하면 반드시 개피를 보는 게 인간 세상의 법칙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늘 그래왔습니다.
오늘의 내것이 내일엔 남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역지사지도 하고 갑질도 못하게 됩니다.
시대를 읽는다는 건, 변하는 것과 함께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관심을 가져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6. 2021
[계몽의 계몽]
판단력 비판..!!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혹시 이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하나님(하느님)은 왜 인간을 위하시지? 왜 인간을 위해서 일하시지?"
"내로남불"의 유래에 대해 말하기 위해, 서양 근대의 계몽주의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무지몽매로 점철되는 현실에 대한 자각과 비판이 "계몽"입니다. 그리고 그 계몽을 가져오는 것은 인간의 "이성" 능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성의 독단을 막고 이성을 비판하는 것 또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독일의 칸트는 3대 이성 비판서를 내놓습니다. 바로 "계몽의 계몽"을 위해서인거죠.
현재 우리 자신들에게서 보여지는 진보의 모습이 바로 이 "계몽의 계몽"을 게을리하면서, "계몽"(현실비판)에 머물면서 또 거기에 갖혀서, "독단"을 낳아, "내로남불"의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촛불 깨시민들이 어떤 존잽니까? 바로 이 점을 꿰뚫어본 것이고 또 심판한 겁니다.
논리학 책의 구조를 보면, 개념론, 판단론, 추리론, 오류론, 이렇게 순서대로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 순서는 다릅니다. 실제로는 개념이 먼저가 아니고 판단이 먼저입니다. 판단은 "judgement"이기도 하지만, 불완전한 형태로서의 "sentence"(문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 발달 단계에서는, 한 단어, 두 단어, 세 단어로 늘려가다가 완전한 문장으로 완성됐을 때 발달 단계는 끝납니다. 이 때부터 판단이 시작되는 겁니다. 즉, 생각다운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칸트는 판단력(판단하는 능력)을 이성의 고급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감성능력과 이성능력을 조화시키는 우리의 능력이 바로 이 판단력(urteilskraft)이라고 보았고, 그것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예술의 영역이라고 봤습니다. 따라서 예술이 추구하는 미(beauty)나 미적인 것(aesthetic)들은 모두 균형과 조화의 원리에 따른다고 봅니다.
가장 조화롭고 균형의 능력을 우리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바로 자연이고 자연의 창조주인 신(god)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우리는 신을 닮으려 할 것이고, 우리의 이성은 신의 원리, 아름다움의 원천인 균형과 조화를 찾게 됩니다. 이 때 가장 고급 이성인 판단력이 작용을 일으킵니다.
갑자기 더 쓰기 싫어졌는데요. 급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현실비판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도 자기 함정, 자기 독단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사람이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자기 이성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면 균형감을 상실하고 부조화를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내로남불의 형태로 보여지게 됩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할 때는 더 어글리한(추한) 모습으로 보여진다는 겁니다. 따라서 "계몽의 계몽"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저의 말씀!
좀 더 간단히,
현실은 이성이 비판하고, 이성은 누가 비판? 그 이성이 논리적 이성이든 도덕적 이성이든, 판단력이 한다는 겁니다.
7. 2021
[혁명과 개혁]
조국의 다른 이름은 '조선 개국'...!
정몽주의 '개혁'과 정도전의 '건국'을 비교한다면, 박근혜를 탄핵하면서, "이게 나라냐?"에 대한 국민의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는 '개혁'과 '건국' 사이에서 망설여왔다고 봅니다. LH사태로 폭발된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은 [다음백과]에 실린 내용입니다.
"썩은 이를 처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정몽주, 정도전 등의 개혁파는 먼저 권문세족이 가지고 있던 대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골고루 나눠 주는 토지 개혁을 단행했다. 귀족들은 크게 반대했지만, 정몽주와 정도전은 함께 힘을 합쳐 토지 개혁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다음백과)
뒤에 정몽주는 점진적 개혁으로, 정도전은 썩은 이는 뿌리채 뽑아내야 한다는 과격한 방법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토지개혁에 있어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더랬죠.
과거에조차 그렇게도 서로 피흘리며 당파싸움을 했었어도, 양쪽 모두가 힘들고 가난한 백성들은 흔들어대지 않았어요. 어려운 백성을 어떻게 하면 잘살게 하냐를 두고 서로 방법을 달리했을 뿐이었죠.
그런데 오늘의 조중동 언론을 보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국민들을 흔들어대고 선동해요.
가령, "경제가 파탄났다", "제2의 IMF가 온다", "중국을 봉쇄해라", "세금폭탄이다", "백신 맞지 마라" 등 지난 4년 간 수도 없이 국민들을 좌절과 혼란 속에 빠뜨렸어요.
이렇게 본말을 전도시키면서까지, 언론권력의 힘자랑을 해가며,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려 그 원망이 정부를 향하게 해서 정부를 붕괴시키려는 끈질긴 시도가 계속되어 왔었죠. 과거에도 없던 '신적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3억이 오르면, 같이 걱정하고 부동산 안정을 위한 방법을 찾으려 하는 게 아니라, 마치 5억, 10억이 올라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폭망하기를 희망하는 듯한, 전혀 민생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가 짝이 없을 정도의 조중동 언론의 모습입니다.
만일 정도전이 다시 살아서 온다면, 조중동은 뿌리채 뽑혔을 거라 장담합니다.
진보 정권이라 자신을 칭한다면, 정도전의 창업정신과 개혁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또한 정몽주의 의리정신도 빼놓아서는 안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둘이 함께 한 일들 가운데, 으뜸은 토지개혁을 통한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던 생각입니다.
K / 2026.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