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치봉후(雍齒封侯)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가 가장 싫어했던
옹치(雍齒)를 제후로 봉했다는 뜻으로,
여러 장수들의 불만을
진정시킨 계책을 일컫는 말이다.
雍 : 성 옹
齒 : 이 치
封 : 봉할 봉
侯 : 제후 후
출전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한 고조 유방이 대업을 이룬 직후의 일이다.
여러 장수들이 숙덕거리는 것을 본 고조가
그 이유를 묻자 장량이 말했다.
'폐하가 평민에서 천자에 오르셨는데,
오랜 친지들에게만 상을 주고 사적으로 원한이 있는
이들은 벌하고 죽이셨습니다.
그러니 불만과 두려움에
반란을 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해 하며 대책을 묻는 고조에게 장량은,
고조가 가장 미워한다고 모두에게
알려진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바로 그 사람을 서둘러 책봉해 주라고 하였다.
고조는 즉각 옹치를 십방후로 책봉하였고,
이를 보고 다들 기뻐하며 말했다.
'옹치도 책봉되었으니 우리는 걱정할 게 없겠군.
' 미워하는 사람을 요직에 앉힌다는
옹치봉후(雍齒封侯)' 성어의 유래다.
옹치는 고조와 같은 고을 출신으로서,
별 볼 일 없던 시절의 모습까지 알아서인지
영 고분고분하지 않았고, 요충지 풍읍을 맡겼는데
배신하고 다른 나라에 귀순해 버린 전력까지 있다.
다시 휘하에 들어와서 공을 많이 세우는 바람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었을 뿐,
고조가 그를 그토록 미워한 것도 이해가 갈 정도다.
그야말로 성군(聖君)이 아니고는,
여러 차례 자신을 모욕하고 배신까지 자행한 이에게
포용을 베풀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옹치봉후는 감동적인 용서와
대화합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정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장량에게 주목해 본다.
장량은 고조의 심복인데 모반 논의를 알고서도
왜 물을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사실 그는 목숨 걸고 직언을
아뢰는 유가적 충신과는 거리가 있는,
명철보신의 처세에 능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를 두고 사마광은
참으로 간언을 잘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고조는 큰 이익을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릴 줄은 알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스스로 위기임을 느끼지 않고서는
자기 고집을 꺾을 사람이 아니다.
장량은 고조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고
적절한 시기에 지혜롭게 간언한 것이다.
노출된 미움마저 안정을 이루어내는
도구로 삼은 그의 처방은 주효했다.
권력을 쥔 자들이 사적인 호오에 사로잡힐 때,
그 집단을 지탱하는 기반인 공정성과 신뢰는
한없이 허물어져 보복과 담합이 만연하고,
미래의 지평은 좁아지게 된다.
불만과 두려움이 더 깊어지기 전에,
각 분야마다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공적 기준을 인정하고 서로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권모술수의 지혜라도
발휘해야 할, 위기의 시대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