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서 책 짓는 마을로
고창 책마을해리
아이들이 떠난 학교는 오랫동안 외로웠다. 잠들어 있던 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은 지 10여 년, 울창한 ‘책숲’이 들어섰고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졌다. 폐교에서 책마을로 재탄생한 이곳엔 ‘함께 쓰는’ 수많은 이야기가 종이 위에 새겨지고 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왼쪽/오른쪽]월봉마을 책마을해리 교문 / 폐교에서 책마을로 변신했다.
가을 정취 완연한 교정
다시 태어난 학교
저 멀리 파도 소리 들리고 별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또렷이 보이는 고창의 월봉마을. 1933년, 이 작은 마을에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나지막한 건물이 세워졌고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물상이 교정 곳곳에 놓였다. 많은 학생들이 이 작은 배움터에서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01년, 나성초등학교는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 출판사에 몸담고 있었던 책마을해리의 이대건 촌장은 선친이 세웠던 잠든 학교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06년, '책마을'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가꿔나가기 시작했고, 2012년엔 아예 가족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유럽엔 책마을이 많아요. 오래된 책을 모아둔 전통 있는 곳이죠. 책마을해리는 책이 있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삶,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어내는 곳이었으면 해요. 스스로 저자가 되고 실제로 출판이 되는, 그리고 책 속에 쓴 꿈이 마법처럼 이뤄지는
마을이죠.”
삐걱거리는 복도를 다시 깔고, 교실을 말끔하게 단장했으며, 벽에 화사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곤 차곡차곡 책을 들여놨다.
책마을해리가 생겨나면서 20여 가구가 사는 월봉마을에 활기가 돋아났다. 동네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다녔던 학교가 다시 문을 열자 반겼다.
그리고 농사일이 끝나고 나면 이곳에 모였다. 글은 잘 모르지만 농사짓기 박사인 할아버지와 자식 키우기 선수인 할머니들이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놨고, 그것은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책마을의 가족인 개 사총사 별이, 달이, 구름 그리고 ‘해리’
책으로 가득한 책마을해리의 메인 공간 ‘책숲시간의숲’
[왼쪽/오른쪽]정겨운 나무 복도 / 서해의 바람이 곧장 불어오는 야외 공연장, 바람언덕
[왼쪽/오른쪽]옛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 / 책이 그득하게 쌓여 있는 온누리책창고
[왼쪽/오른쪽]도란도란 책 나누는 공간, 버들눈도서관 / 옛 칠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서관
책과 노니는 공간
책마을도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붉은 벽돌을 가득 덮은 담쟁이덩굴이 계절의 운치를 더한다. 책마을해리엔 12만 권의 책이 있다.
방송국과 출판사, 도서관, 개인 등에게 기증 받은 책들이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책이 쌓여 있는 ‘책숲시간의숲(책숲)’엔 묵직한 시간이 흐른다.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나무 서까래와 첩첩이 쌓인 책들의 시간이 묘하게 교차된다. 책숲 옆엔 종이를 만들어볼 수 있는 한지공방이 자리한다. 공방
한가운데 종이로 만든 작은 집에 들어가자 부드러운 공기가 감싸 안는다. 공방 창문 너머엔 닥나무 몇 그루가 자란다. 옆 교실엔 거대한 자태를
뽐내는 활판인쇄기도 있다. 낡아 보이지만 지금도 끄떡없이 돌아가는 인쇄기다.
교실 2칸으로 이루어진 ‘버들눈도서관’엔 수만 권 중에
고르고 고른 그림책과 어린이․청소년 책이 그득하다. 책을 기획하고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하는 ‘누리책공방’에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과 한 글자라도 더 익히려는 어르신들의 열정이 넘치는 공간이다.
학교 뒤편엔 책에 넣을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작은 스튜디오 ‘나성사진관’이 자리한다.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자 야외 공연장인 ‘바람언덕’이 나온다.
보름달이 뜨는 금요일, 이곳에선 작은 축제가 열린다. ‘부엉이와 보름달 작은 축제’는 달마다 주제를 정해 밤늦도록 재미있는 책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낭송대회와 함께 음악이 흐르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책마을해리의 독특한 공간을 꼽자면 단연 ‘책감옥’이다. 시간이
없어서, 혹은 집중이 안 돼서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들이 환영할 만한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꼼짝 않고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자발적 수감자는 계속 늘고 있는 중! 책마을해리엔 ‘꽃피는민박’과 ‘별헤는민박’이 있어 하루 머물다 가기도 좋다.
[왼쪽]거대한 활판인쇄기[가운데/오른쪽]이상하게도 자발적 수감자가 늘고
있는 책감옥
생각의 알맹이가 스며든 책 만들기
책마을해리에선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인다. 출판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누구나 쉽게 책을 만들 수 있다.
책마을 주변엔 잘 보존된 갯벌과 습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 1500년 이야기를 지닌 선운사, 전봉준과 손화중․송문수 장군의 동학
이야기,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 등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널려 있다. 스스로 기자가 되어 취재를 하고, 책을 쓰는 작가가
되어보는 것이다. 기억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출판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여행에 관한 기록 외에도 가족이 기념할 만한 사건을
함께 책으로 펴낼 수도 있고, 부모님을 인터뷰해서 자서전을 대신 써드릴 수도 있다. 매년 여름 김근 시인이 진행하는 ‘어린이시인학교’는 마음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렇게 쓴 글들은 실제로 출판되기도 한다. 책을 만드는 데에도 책마을해리만의 특별한 생각이 스며 있다.
“저자 소개를 쓸 때 자기의 생을 돌아보는 묘비명 같은 글을 쓰게 해요. 앞으로 책을 낸다면 어떤 제목일지, 어떤 회사에 들어갈 것인지
등을 생각하게 하면 아이들은 구체적인 꿈을 꾸게 되죠.”
책을 기획하고, 쓰고, 편집하고, 전통 방식으로 제본하는 등 책과 관련된 모든
체험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편집자인 이대건 촌장과 이영남 관장을 중심으로 이육남 그림작가, 윤동호 선생, 김민경 선생 등
7명의 책마을 식구들이다.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책을 만들면서 우린 꽤 많은 생각의 알갱이를 펼쳐낸다.
즉, 자신이 한 권의 책이자 도서관이 될 만큼 의미 있다는 것이다.
“책마을해리에서는 함께 읽기를 넘어 함께 쓰기가 되었으면 해요.
책마을의 슬로건인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은 개인의 사적인 생각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거지요. 혼자 쓰기 어려우니 ‘함께’여서 어렵지
않고요.” 이대건 촌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담아내는 일, 오래도록 이어온 책의 역사를 조금씩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전통 제본 방식인 오침안정법으로 뚝딱, 책을 만든 아이들
[왼쪽/오른쪽]책 만들기를 돕는 윤동호 체험팀장 / 책을 처음 만들어보는 김종자 할머니의
미소
[왼쪽/오른쪽]책마을해리를 세운 이대건 촌장과 이영남 관장 부부 / 책마을해리
식구들
여행정보
책마을해리
주소 : 전북 고창군 해리면 월봉성산길 88
문의 :
070-4175-0914
1.주변 음식점
서해식당 : 회, 백합칼국수, 조개구이 /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해변길 122-1 / 063-563-9202
호수가든 : 바지락죽, 백합죽 / 고창군 해리면 동호로 350 / 063-563-5694
정자나무횟집 : 회 /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해변길 135 / 063-563-0713
하늘땅물바람 : 파스타, 돈가스 / 고창군 심원면 두어1길 58 /
063-563-3869
2.숙소
책마을해리 농촌민박 : 고창군 해리면 월봉성산길 88 /
070-4175-0914
고창처녀농부민박 : 고창군 해리면
월봉성산길 100 / 063-563-5382
효심당 : 고창군 해리면 평지길 32 /
063-563-3233
첫댓글 고창 선운사 옆이네요
서해식당 백합 칼국수 맛은 좋은데 예전보다 양이 조금 줄른것 같네요
이런 곳은 정말 가치있고 소중한 공간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