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갈이
이 미 화 (2010년 7월)
수필 공부를 시작한지 삼 개월이 지나고 있다. 시작한 연유를 이제 생각하니 참으로 묘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묘함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느닷없는 선택이었는데 계기가 있었다. 고향에 오래된 버드나무 네그루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시겠다고 하셨다. 말씀대로 임업과 박사님이신 교수님을 만나게 해 주셨는데, 관심을 보이셨고 나무는 분갈이를 하듯 속을 채워 주셔서 지난날과는 다르게 잎을 성하게 피우게 되었다.
처음 뵙던 날
“나무를 살려 줄 테니 글을 한편 써오라”고 했지만,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도 이참에 수필 공부를 해 보라고, 하시는 바람이 세었는지 한 주, 또 한주 평생교육원으로 방향이 완전히 정해지게 되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도통 까맣고, 정작 글이랍시고 폭식을 하는 겪으로 연습에 연습일 뿐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들고 있던 화분을 주며 분갈이를 해 주어야 할 것이라며 키워보라고 했다.
분갈이를 하면서 보니 열대식물 같아서 해가 잘 드는 양지쪽에 놓아두었지만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햇살에 혹 마르지나 않을지, 그늘에 두자니 무를 것 같아 염려가 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식물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선인장에게 집게로 가시를 뽑아 주면서 사랑의 진동을 일으켜 보라고 했단다.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잘 보살펴 줄 테니 가시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마침내 가시가 없는 선인장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일화를 깊이 새겨 본다.
가슴에서 뽑아낸 글로 수필이란 것을 짓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내면이 부실하기 짝이 없음을 알 것 같았다.
뒤늦게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정작 내 정체성에 대해서 뿌리를 찾지 못했다. 제대로 보고, 나대로 보고, 똑바로 보고, 삶을 좀 더 음미 하려던 공부가 아니었던가. 나를 위한 분갈이를 하는 진통을 겪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刻苦’ 란 뜻을 가진 분갈이는 아닐지.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내일도 없고 다음도 없다, 라는 말을 자주 썼었다. 나 스스로에게 분갈이 하는 밑거름으로 듬뿍 주어야 할 말이라고 새겨본다.
척박한 화단의 관상수를 살기 좋은 텃밭으로 옮겨져 安存 하는 분갈이가 아니라, 겨우내 잠들었던 화초 뿌리에 혼을 불어 넣듯 햇빛으로 고개를 돌리는 잎처럼 글을 만지는 마음이에 분갈이가 되기를 바라며 ….
불이 꺼져 있어 올렸습니다.
첫댓글 언젠가 돌보아 주는 이 없는 세계로 내팽겨쳐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가시가 돋아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좋은글 ,기대 하겠습니다.
가슴에서 뽑아낸 글로 수필이란 것을 짓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내면이 부실하기 짝이 없음을 알 것 같았다.
나를 위한 분갈이를 하는 진통을 겪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刻苦’ 란 뜻을 가진 분갈이는 아닐지.
겨우내 잠들었던 화초 뿌리에 혼을 불어 넣듯
햇빛으로 고개를 돌리는 잎처럼 글을 만지는 마음이에 분갈이가 되기를 바라며 …."
처음 시작하실 무렵에 쓰신 글이라 의미가 있으시겠습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선생님도 풋풋한 때가 있으셨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