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자신학화 | 2023.01.20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 과정에 나타난 자신학화: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원과 형성, 1-4세기 발제 3
자신학화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자신학화(제3차 자신학화 포럼 자료집), 발행 : 2023년 1월 20일, 엮은이: 자신학화 포럼위원회, 서울:GMF Press. 수록면 : 108-121. 곽계일 박사(조지아 센츄럴대 교수)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원과 형성
초기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은 지중해였다. 그 중심은 안정된 고체가 아니라, 불안정한 액체였다.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흘러나온 지류들이 이 “땅 가운데 바다”로 섞이다 다시 다른 대륙의 연안에 부딪히듯이, 사람과 함께 물을 따라 흐르고 섞이며 교차 간섭하는 사상의 끝없는 움직임이야말로 지중해 문명의 생명력이었다.1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도 이 생명력을 힘입어 형성되어 나갔다. 삼대 대륙에 저마다 자리 잡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기점지는 지중해 물결이 부딪쳐 닿는 연안 도시들(혹은, 연안에서 가까운 도시들)이었다. 이 연안 도시‘들’로부터 고유한 지역(그리고 언어) 기반의 그리스도교 전통‘들’이 내륙을 향해 형성되어 나갔다. 동시에 다양한 지역 전통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교차 간섭하며 “보편 교회”라는 이름 아래 불안정한 혹은 역동적인 일치를 추구했다.2
일례로, ‘콥틱’ 그리스도교 전통은 로마 시대 제1의 지중해 항구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를 기점으로 나일강을 따라 누메니아와 에티오피아로 교세를 확장해나간 전통이다. 이 지역 전통의 기점이 된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4세기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를 출렁이게 했던, 그래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 소집의 주된 이유였던 ‘호모(이)우시아’ 그리스도론 논쟁의 진원지였다.3
공의회가 결론으로 내놓은 니케아 신경(信經)과 함께 ‘보편 교회’ 전통의 경계선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면, 이 전통의 형성 과정에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기여한 지분은 상당했다. 사도 베드로가 파송한 (복음서의 저자) 마가를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1세기 기원으로 보는 전승은 4세기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 교회 전통이 자리매김하던 위상에 걸맞아 보인다. 하지만 이 기원 전승을 처음 소개한 출처가 공교롭게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던 4세기 초에 작성된 『교회사』라는 점, 그리고 이 자료의 저자(혹은, 편집자)가 니케아 신경의 제정을 주도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정통성을 칭송했던 에우세비오스였다는 점은 베드로-마가 기원설에 대한 신빙성을 깎아내리는 요인이 되었다.4
게다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내부 입장과 직접 관련 있는(그리고, 비교적 온전히 보존된) 자료들 가운데 가장 이른 『바나바 서신서』의 저작 시기가 2세기 초라는 견해는 도리어 초기 기원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높여주었다.5 불확실성은 ‘알렉산드리아의 최초 그리스도교도들은 누구였을까?’라는 문제의식을 역사신학계에 던져주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유력한 연구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은 유대주의자(혹은, 유대교도)들과 영지주의자들이었다.6
이들과 주고받은 교차간섭을 통해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교의 ‘보편 교회’ 전통이 기원하고 형성되어 나갔다면, 그 과정은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생산되고 순환되었던 1-3세기 문헌들뿐만 아니라 이들 외부 공동체를 출처로 삼는 동시대 문헌들에서도 흔적이 발견되어야 마땅하다. 특별히,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 사이에 알렉산드리아에 출현한 영지주의 전통(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이집트의 지중해 도시를 가장 큰 디아스포라로 일구었던 유대교 전통(들)은 ‘보편 교회’의 기원과 초기 형성 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반드시 소환해야 할 가장 유력한 증인이다.7